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간음한여인앞에서

하나님아들 2014. 8. 26. 22:17

간음한여인앞에서

요8;1-11

 

 

본문은 초막절의 끝자락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초막절의 끝에 하던 두 가지 중요한 행사가 있는 데

하나는 물깃는 행사였고,

또 하나는 불놀이 행사입니다.
  

1) 물깃는 행사는

광야에 거할 때에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내어 주신 것을 기념하면서

제사장이 실로암 못가에 가서 물을 떠와 성전 제단에 부으면서 잔치 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광경을 보시면서 7장 37,38절에서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2) 불놀이 행사는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을 기념하면서

성전 밖의 여인의 뜰에 네 개의 큰 등을 달아놓고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광경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

8장 12절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두 말씀 안에서 예수님은

광야와 같은 갈한 심령에 생수가 쏟아져 나오게하는 생수의 근원,

생명의 물줄기”이시며 “어두운 세상에 비추는 생명의 빛”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생수의 근원된 주님의 생명을 가득 채우고

세상에 생명을 쏟아내는 생수의 강이며,

생명의 빛이신 주님의 빛안에서 어둠으로부터 나와 빛으로 살고,

세상에 생명을 비추는 빛들”이라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이 두 말씀 가운데 있는 본문의 사건은

광야와 같이 어둠속에서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던 여인이 어떻게

생수의 강물과 생명의 빛을 비추는 등대로 서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육신의 일이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생을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질 주머니를 그 영혼과 마음 가운데 두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그 주머니에 하나님의 사랑 대신에 ‘

물질, 쾌락, 명예, 권력, 성공, 알콜과 환각을 일으키는 약물, 각종의 취미활동

그리고 우상숭배와 같은 것들’로 채웁니다.

 

문제는 채워도 채워도 만족함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 간음한 여인은 한 개인이기도 하고, 당시에 유대인들을 대표하는 여인이기도 합니다.

이 여인도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초막절의 절기를 일주일동안 지내고 잔치 끝날 밤에 남자의 품을 찾습니다.

그리고 밤새 한 남자와 욕망을 채우는 시간을 보냅니다.
  

애굽땅에서 종되었던 유대인들은 예배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안에서 만족과 행복을 누리도록 디자인된 신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 불법과 우상숭배로 가득채웁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처럼 음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그분의 영광만을 위해 살기로 부름을 받은 교회 공동체 가운데

어느새 세속주의와 물질만능주의와 기복주의와

각종의 세상적인 사상과 시스템이 들어와 주인행세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한쪽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붙잡고 있지만

또 한 쪽으로는 세상의 법을 붙잡고 있으면서

엉거주춤하게 말씀 사이를 헤치고 욕망을 추구하며 삽니다.

 

그럴수록 참 만족과 기쁨과 감사는 잃어버린 채 세상의 염려와 허무한 것에 집착을 합니다.
이처럼 이 여인은 교회와 성도된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둘째로; 사탄의 일이 있습니다
  

은밀하게 쾌락을 즐기겠다는 이 여인은 현장에서 잡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끌려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고자하는 미끼로 예수님 앞에 던져집니다.
  

이 사건속에서 사탄의 가장 전형적인 두 가지의 일 혹은 전략을 찾아볼 수 있는 데

 

1)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욕망과 갈증을 아는 사탄은 그 여인의 눈에 쏘옥 들어오는 남자를 만나게합니다.

그 남자를 향한 사랑이 이 여인을 정말 만족시켜줄 것이라 믿게합니다.

그리고 중독적으로 이 왜곡된 사랑을 추구하게 합니다.
  

이 여인이 그렇게 사랑했던 남자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자신을 만족시켜줄 것 같고,

그것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았던 것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인생을 떠나거나

설령 있을지라도 구원하지 못할 무력한 것들 뿐입니다.

이것을 붙잡고 평생을 허비하게 하는 것이 사탄의 유혹입니다.
  

2) 참소입니다.

기세등등하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여인을 잡아와 수치를 드러내며 고발합니다.

누구보다 말씀에 정통한 이들이 말씀으로 여인을 참소합니다.

사탄도 말씀을 읽고 암송하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할 수 없는 것 세 가지가 있는 데

 

먼저는,

말씀 가운데 숨겨놓으신 하나님의 비밀을 그들이 알 수 없고,

 

두번째는

말씀을 알아도 자신에게 적용하지 못하고, 세 번째는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말씀을 갖고 판단하고 참소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을 유혹해서 마지막 하나님과 거룩하신 예수님의 보좌 앞에서 참소하고

망하게 하려는 것이 사탄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훼방하는 게 그들의 목적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일이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 안에서 우리를 향한 이 사랑의 세 가지 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주님께서 내가 너 대신 죽어주신다는 것입니다.

 

 6절 말씀에서 “...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라 하십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글을 쓰시는 장면이 두 번 나오는 데

오늘 말씀과 더불어 모세에게 십계명의 말씀을 주실 때에 돌판에 기록하실 때입니다.
  

모세가 40일 동안 시내산에 올라가 기도하고 토라의 말씀을 받아 내려올 때

사람들은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상을 섬기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들을 보면서 모세는 돌 판을 깨트립니다.

이것은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당신 자신을 깨트려주시고,

당신의 몸을 찢으셔서 언약을 이루시는 것에 대한 계시적인 행위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신 주님께서 퍼포먼스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 대신에 깨트려질께,

내가 너 대신에 죽을께”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선포 속에 하나님의 강렬한 사랑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

네가 죄를 짓고 세상에서 그렇게 뒹굴었어도 내 아들을 찢어서 내가 책임진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아직 원수되었고,

죄인되었을 때에 당신 스스로의 몸을 깨트리고 찢으시겠다는 것입니다.

2) 네가 나를 보게 해줄께 입니다
  

예수님은 재차 땅 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십니다.

 

1) 8절에서 “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라 합니다.

 

여기서 ‘땅’이란 단어는

일반적인 땅을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라 ‘

구약의 성전의 지성소 밑의 땅’을 말합니다.

 

성막의 다른 곳은 다 은으로 깔았으나 지성소의 바닥은 아무 것도 깔지 않았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로서 어떤 막힘도 없이 인생과 만나시며 사랑을 나누시겠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 땅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우리의 마음의 심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2) 모세가 들고 간 돌판에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다시 말씀을 새겨주시듯이

예수님께서 각자의 마음의 판에 당신의 사랑의 말씀을 새겨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9절에서 “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라고 합니다.

말씀 쓴 것을 보았다고 하지 않고 들었다고 합니다.

즉, 이것은 심령의 마음의 귀로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을 때에 휘장이 찢어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담고 있는 법궤가 보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눈이 열려지고, 귀로만 듣기만 하던 하나님을 다시 보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지금 그 앞에 서 있는 사랑의 본체이자 말씀 자체이신 주님을 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기록하고 계시는 그분의 말씀을 마음으로 듣습니다.

이미 율법으로 말하면 죽은 자인 자신을 찾아오신 그 놀라운 사랑을 접촉합니다.

그 때 이 여인의 마음과 존재는 한 순간에 새로워집니다.
  

진정한 생수의 근원되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진정한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 앞에 홀로 머물러 있습니다.

10절 말씀에서 “...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

 

여자여’란 단어는 창 2장에 한 번 나오고

어머니 마리아를 향하여 한 번

그리고 여기에 유일하게 나옵니다.

 

이것은 “나의 신부여!!!”라고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었으나 그분과 함께 다시 산 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함께 산 자들을 향해서 오늘도 “나의 신부여”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돌과 같고 가시나무 같은 우리들을 당신의 말씀

즉, 황금으로 감싸주시어서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로 세워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만드시기 위해서 성령님으로 오셔서 작업하십니다.
  

우리가 또 실패하고 넘어져도 “내가 십자가 질께...”라고 하십니다.

우리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그분께서

우리가 실수하고 죄를 지을 때마다 다시 십자가를 지시고,

보혈로 덮어주셔서 다시 일어나고

또 일어나 결국은 그분의 아름다운 신부의 실체로 우리를 세워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주님 앞에 선 여인이 주님께 고백한 말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나이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결심을 하고 메모를 해보았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어떤 것도 끼어들지 않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펼 수 있는 한 최대한 믿음의 날개를 펼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간음에 대한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적인 욕구 본능적인 욕구는 모든 인간에게 다 있습니다.

 

그 욕구가 있기 때문에 사랑이 있고 생존에 대한 희망이 생기고 힘이 생겨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탐욕이 되어서 정도를 지나치게 되어서

나도 파괴하고

타인도 파괴하고

사회를 혼란 속에 빠뜨리게 됩니다.

 

성적인 욕망은 사람에게 있어서 고귀한 겁니다.

 

먹는 것을 통하여 인간이 고귀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성적인 욕구도 인간에게 중요한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을 다스림에 있어서 얼마나 신중하고

성실하게 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비록 이것을 지키는 것이 어려울지라도

이 엄격한 교훈을 통하여 사람됨에 도리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온전하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하다가 잡혀온 한 여인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은 돌로 치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자 했던 무리들을 물리치셨습니다.

 

인간은 누구도 죄인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언제든지 생각해야할 것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이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음욕이 일어나진 않는지,

욕심이 과하진 않는지,

남에 인격을 짓밟아 오진 않았는지,

사람됨에 바른 도리를 지키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힘입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엄격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하나님의 가르침 안에 살아간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내 기분과 편리에 맞추어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엄격하게 잘라내고 떼어 내면서

바르게 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설교는 우리가 얼마나 자신에 대해서 엄격하고

신실하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들은 본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때로는 본능대로 욕심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살아갈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뜻에 맞게 살도록 한순간도 놓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점촌 반석 교회
글쓴이 : 별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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