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예배 기타!!!

[스크랩] 교회의 중요성과 사명

하나님아들 2014. 7. 27. 22:52

 

교회의 중요성과 사명

행 2:37-47


호주 사람인 닉 부이치치라는 분이 있습니다. 1982년 호주에서 태어난 그는 태어날 당시에 팔과 다리가 없이 아주 작은 왼쪽 발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닉은 자라면서 점점 아이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서 희망 대신 절망을 먼저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8살 때에 자신의 삶을 끝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희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언제나 친구가 없이 혼자였고, 삶의 의미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볼려고 장애인 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전학했습니다. 대학에서는 회계학과 재무학을 복수 전공할 만큼 자신의 활동무대를 넓혀 나갔습니다. 지금은 팔 다리가 없는 몸인데도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는 행복전도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상: 행복전도사 닉 부이치치)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바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시 한번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점검하고 회복해야 합니다. 세속주의 문명사회에서 점점 더 황폐화 되어가는 영혼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예수님입니다. 이 시대의 문제는 물질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지식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영혼을 살리는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지 못해서 문제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확실히 만나면 그 영혼이 참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고난이 있어도 이겨냅니다. 인생의 참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천국의 영생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전부이십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이 세상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다하면 이 세상에 희망이 있습니다. 반대로 교회가 그 본질과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이 세상 어디에도 희망이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에 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부디 이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가, 그리고 우리 교회가 주님 앞에서 사명을 재확인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도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그 행복을 나눠주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신약시대 최초의 교회가 설립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교회인데, 이 교회를 가리켜 초대교회(초기에 세워진 교회)라고 부릅니다. 이 교회의 모습은 이후의 모든 시대, 모든 교회의 원형(모델)입니다. 말하자면, 교회의 모습은 이래야 된다고 기준을 잡아준 교회입니다.

초대교회가 세워진 것은 언제입니까?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오순절 절기 때입니다. 오순절날 성령님이 강림하였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자 성령 충만 받은 베드로와 사도들이 나가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37절을 보십시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던 무리들, 조롱하던 무리들, 무심했던 무리들이 이제는 마음에 찔림을 받고 어쩔 줄 모릅니다. 그때 베드로가 안내해 줍니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말을 들은 무리들이 어떻게 합니까? 회개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행 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말이 그렇지 3천 명이 얼마나 많은 숫자입니까? 3천명 회개는 정말 대단한 사건입니다! 기적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모이기 시작한 그리스도인들이 초대 예루살렘교회를 이룬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탄생한 교회가 어떤 것인지, 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살펴봅니다.


1. 교회의 정의 - 예수 그리스도의 몸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두 축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부활은 생명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는 절망입니다. 부활은 희망입니다.

죄가 죽은 곳이 십자가이고, 우리가 의로 다시 산 곳이 부활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와 부활, 두 사건의 열매가 교회입니다. 즉 십자가로 구원을 완성하시고, 부활로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믿는 자를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교회’라고 부르셨습니다. 건물을 짓고 교회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믿는 자를 불러내시어 그들을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이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εκκλησια)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의 중심이요, 이 두 중심으로 탄생한 것이 교회요, 교회는 부활을 증거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를 부활공동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골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라고 했습니다. 즉 교회인 우리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명령을 받아야 하며,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그리스도와 유기적인 관계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둘이 아닌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주님과 생각이 같아야 합니다. 감정도 같아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머리는 하나이지만 지체는 많습니다. 많은 지체들은 각기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체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조화와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2. 교회의 중요성 - 교회와 성도와의 관계

여러분, 그러면 교회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로 영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적인 존재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 관계입니다.

한편 인간은 혼자 살지 않고 모여서 삽니다. 즉 사회적 존재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수평적 관계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시대가 세속화되고 개인화되면서 점점 하나님과의 접촉, 사람들과의 접촉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고독하고 외톨이가 되어 갑니다. 군중 속의 고독입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친구가 없습니다. 가족 사이에 불화와 갈등이 있으면 더욱 심각해집니다.

시카고 대학 내셔널 오피니언 리서치 센터의 조사 자료를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성인 남녀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사람이 1985년에는 10%이던 것이 2004년에는 24.6%에 달했습니다. 친구가 있다면 몇 명인지 조사하는 질문에 1985년에는 평균 3명이었는데, 2004년에는 평균 2명으로 줄었습니다. 최근 자료를 보니까 미국 대학생 중 13%가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방이나 집 등의 특정 공간에서 나가지 못하거나 나가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가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현상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 그리고 사람과의 만남이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생활이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을 가까이 함과 동시에 성도들과 잘 어울려야 합니다. 그게 바로 교회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의 3대 원리가 무엇이죠?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입니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입니다. 교회 중심은 수직적 관계와 더불어 인간과의 수평적 관계를 포함합니다. 그런고로 정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교회생활에 충실해야 됩니다.


성도들 중에는 교회에는 다니지만 예배만 ‘가끔’ 드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설교 말씀도 거의 듣지 못하고, 양육도 받지 않고, 봉사도 하지 않고, 목회자와 사랑의 관계가 되지도 못하고, 교우들과 무관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로지 가끔씩 예배에만 참석하는 것이 유일한 신앙생활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로부터 거의 은혜를 공급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참 힘이 듭니다. 재미가 없습니다. 세상을 이기거나 마귀를 이기지 못합니다. 변화를 받거나 주님으로부터 어떤 능력을 공급받지도 못합니다. 그저 교회를 다니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교회 중심부로 들어와야 합니다. 교회로부터 은혜를 공급받고자 해야 합니다. 교회가 성도들에게 은혜를 공급하기 위하여 실시하고 있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은혜의 통로가 막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설교도 잘 듣고, 양육과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고 봉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무지무지 많이 내게 유입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은혜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크고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적으면 저와 여러분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오직 은혜만이 우리를 크게 하고 위대하게 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통해서 공급해 주시는 은혜를 크고 많이 공급받는 일에 힘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교회의 본질과 사명

그러면 과연 교회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무엇일까요?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보면 세 가지 모습을 가진 공동체였습니다. 그것이 오늘날도 여전히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첫째로, 교회는 은혜의 공동체입니다.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이 열심히 모였습니다.

성전에 모여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배우고, 이런 모임을 통해 그들은 신령한 은혜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놀라운 기사와 표적들이 생겼습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행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

그렇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영혼이 기쁘고, 생활에서도 축복을 받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열심히 모여야 됩니다. 혼자서도 은혜를 받지만 모이고, 접촉하고, 나누면 더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둘째로,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물론 초대교회는 특별한 상황에 처한 시대였지만, 사랑으로 한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행 2:44-45)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행 2:46) ...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한 마디로 말하면 유무상통(有無相通)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당시에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 문제 때문에 쫓겨나고 박해받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서로 나누고 위로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재분배가 이루어진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령의 은혜로 자발적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분배를 강조하지만, 강제로 개인의 소유를 빼앗아서 분배하려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칼빈은 교회를 가리켜 이렇게 비유합니다. “교회는 어머니의 품이다!”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고, 나누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에 사랑이 없으면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 조심해야 됩니다.

인도의 지도자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가 젊었을 때 영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온갖 차별과 편견과 냉대에 시달리면서 어려운 유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성경책을 발견하고 이를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간디는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은 그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성경을 읽은 간디는 하나님을 위해 그의 일생을 바쳐야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에 지나지 않는 미개한 나라이었고 인종차별이 심한 때이었기 때문에 그의 결심은 빛을 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찾아다니며 ‘예수를 잘 믿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여러 차례 청원을 해 보았으나 교회당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쫓겨나기가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쫓겨나면서 한 그의 마지막 말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는 존경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경멸한다.”

그는 결국 기독교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교회에서 이런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그 안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위로 받고 격려 받을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교회는 사명의 공동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성도는 그 지체 손과 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세상에서 하시던 일, 예수님이 하고 싶으신 일을 우리가 성령의 권능을 받고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은 복음 증거입니다. 47절을 보십시오.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복음 증거로 믿는 성도의 수가 날마다 늘어갔습니다.

그런데 복음 증거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도와 선교! 전도는 동일 문화권에서의 복음증거를 말하고. 선교는 타 문화권에서의 복음 증거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개인적으로 복음 전도자가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교회와 협력하여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가든지 보내든지!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개인의 인생이 변화됩니다. 영생 얻고 복된 인생 됩니다. 가정이 변화됩니다. 사회, 국가, 민족이 변화됩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교회가 교회의 중요성과 사명을 다시 한 번 깨닫고 회복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사진 & 행복으로의 여행
글쓴이 : 감사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