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본질과 사명(3)
본문: 딤전 3:14-16
로마 교회가 망할 때 로마도 같이 망했습니다. 로마 교회가 망할 때 로마 교회 신부들이 죄를 회개하고 바르게 살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바늘 끝에 천사들이 몇 명이나 앉을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3일이나 싸웠습니다. 쓸데없는 일을 하다가 결국 로마가 망한 것입니다.
러시아 교회가 부패될 때 러시아에 공산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러시아 교회 신부들이 모여서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미사를 집례할 때 황금색 가운을 입어야 되나, 빨간색 가운을 입어야 되나 하는 것으로 일주일간이나 싸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황금색 가운도 입지 않고 빨간색 가운도 입지 않았는데, 그것이 뭐 그리 중합니까?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니 공산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나라 어느 교단 총회에서도 축도할 때 ‘축원하옵나이다’라고 해야 되나 ‘축원할지어다’라고 해야 되나 하는 것 가지고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 한국 교회의 부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그리 중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전하고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이 중한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과 목적은 크고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거나, 성도들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나 구제나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셨다면 '잘 살아보세.'라던가, 새마을운동이라던가 이런 운동을 전개하셨을 것입니다. 의식 구조를 바꾸려고 하셨을 것입니다. 부지런함의 필요와 근면의 필요를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정신을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어 받았기 때문에 베드로가 미문가에 앉은 거지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행3:6)"라고 했습니다. 은과 금을 주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플러스 알파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 오늘날 기독교는 타락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질을 알고 행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새로운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복음의 초창기였던 초대 교회 당시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지금이나 여전히 감격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이며, 우리가 이 일에 동참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설립된 것이 사람의 뜻에 따라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된 것임을 믿습니다. 이 시간 저는 성경에 근거해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이며, 주님께서 주신 우리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말씀해 드림으로써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먼저, 교회의 본질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길을 가다가 십자가 종탑이 세워진 건물을 보고 교회라고 말하곤 합니다. 또는 그 교회가 속해 있는 교파와 관련해서 저 교회는 무슨 장로교회라거나 무슨 감리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식의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종탑이 세워진 건물은 교회가 아니라 예배당이며, 장로교회라든가 감리교회라는 것은 교리의 차이에 따라서 결성된 기독교인들의 조직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 볼 때, 교회는 예배당 건물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고, 교파나 교단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교회의 초창기에는 별도의 예배당 건물이 없었습니다. 사도들과 성도들은 주로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의 수가 점점 늘어가자 모이는 장소를 성전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라고 한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 가운데서 믿음이 신실하고 넓은 공간을 가진 성도의 집에 모였습니다. 예를 들면, 고린도전서 16장 19절에 보면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모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빌레몬이라는 성도에게 보낸 편지로서, 1장 2절에 “네 집에 있는 교회”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빌레몬의 집이 그리스도인들의 회집 장소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초대 교회 당시에는 교파나 교단도 없었고 모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교파가 생겨난 것은 한 참 후의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교회의 주인이시며 설립자가 누구인가? 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몇 년 동안 고생해 완성한 ‘최후의 만찬’을 공개하기 위해 지인들을 초청했습니다. 드디어 천이 벗겨지고 작품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순간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한 친구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군. 예수의 손에 들린 저 광채 나는 유리잔을 보세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붓을 들어 유리잔 부분을 뭉개버렸습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을 향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했습니다. “이 작품은 실패한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시선이 예수의 얼굴에 집중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유리잔에 시선이 모아졌다면 그것은 제 의도를 벗어난 것이지요.” 그는 유리잔이 예수의 표정을 가리지 않도록 다시 그림을 그려 완성시켰습니다.
현대인들은 종종 예수의 손에 들린 광채 나는 유리잔에 환호하는 우를 범합니다. 신앙은 삶의 본질을 찾는 과정입니다. 신앙은 유리잔에 가려진 예수의 얼굴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을 알려면 교회의 주인이요 설립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교회의 본질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하셨습니다. 곧 예수님 자신이 교회의 설립자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이심을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이며, 주님께서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 되어야지 목회자나 성도가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되면 교회의 본질에서 떠난 것입니다. 대개 교회 안에서 다툼이 생기는 것은 다른 데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하려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 교회는 예수님 중심으로 한 마음 한 뜻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입니다.
이에 대하여 골로새서 1장 18절에는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하였고, 에베소서 5장 23절에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머리와 몸처럼 밀접한 관계가 또 어디 있습니까? 둘은 서로 뗄 수 없는 일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몸이 머리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머리가 몸을 움직이듯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주장하십니다. 당연히 교회는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의 구성원인 신자들은 무엇에 해당합니까? 이에 대하여 성경에는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7)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몸인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성경은 이같이 말씀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2,13)
우리 가운데는 눈에 해당하는 성도도 있고, 입이나 귀에 해당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물론, 손이나 발에 해당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혹은 손가락이나 발가락에 해당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또는 몸 속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간이라든가 대장에 해당하는 성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모든 지체가 다 몸에 붙어 있고 몸과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손과 발이 서로 떨어져서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손이 아프면 손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온 몸이 다 고통 합니다. 간이 병들면 간만 아픈 것이 아니고 온 몸이 고통 합니다. 이와 같이, 한 교회에 속해 있는 성도들은 서로에 대하여 남남이 아니고 영적으로 한 몸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믿음의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격려하는 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교회와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본문에 보니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곧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을 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신 곳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교회 안에 충만히 임하셔서 생명의 역사를 이루는 곳이 교회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전에서 하나님께 양이나 소를 잡아 제사를 드렸으나 신약시대에는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헌신과 봉사가 바로 산 제사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예루살렘 한 곳에만 성전이 있었으나, 신약시대에는 수많은 곳에 성전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알아둘 점은 지상의 모든 교회는 결국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 1:2),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살전 2:14)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한 것은 교회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한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2장 19절에는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습니다. 온 성도가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사랑으로 하나 되어 서로를 섬기는 곳이 교회입니다.
넷째로 교회와 복음의 진리의 관계입니다.
본문에 교회를 일컬어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 기둥은 지붕을 떠받치고, 터는 집 전체를 떠받치듯이, 교회는 복음의 진리를 떠받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 이야기를 하는 곳이 아니고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해야지, 복음의 진리를 떠난 교회는 아무리 조직이 잘 되어 있고 규모가 크더라도 더 이상 교회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천주교는 복음의 진리를 떠나서 천주교 자체를 신격화했습니다. 그들은 교황이 천국의 열쇠를 갖고 있으므로 신자들의 구원을 좌우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 곧 변질된 복음에 불과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서있는 교회라야 참된 교회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교회와 그 구성원의 관계입니다.
아무나 원한다고 해서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지체가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올바른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시몬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반석은 곧 베드로가 고백한 바른 신앙고백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일컬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고전 1:2)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도는 고린도 교회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 믿어 구속받은 성도들이 교회의 구성원들임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행복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것은 교회의 일원이 된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늘의 천사들도 동경하고 흠모하는 영광스러운 신분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성도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같이 기뻐하고, 하나님이 분노하는 일에 같이 분노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성경에 "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잠25:13)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같이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할 충성된 사자가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바로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할 충성된 자들을 키워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주님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성도들이 "편리성"만을 추구하다 보니, 성전 앞에서 제물을 사고 팔고, 심지어는 환전을 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제사장들은 점점 영성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돈벌이에만 눈이 어두워진 것 같습니다. 지금의 교회가 이런 모습은 아닐까요? 상업화되고, 외식과 형식, 권위주의와 거짓이 판치는 곳은 마귀의 소굴이요, 강도의 굴혈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은 다 참아도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과 사명을 떠나는 것은 참지 못하십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근본 목적과 사명은 무엇입니까?
첫째, 교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요4:23-24)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곳은 하나님의 집이 아닙니다. 어떤 집에서 술을 팔면 술집이 되고, 빵을 팔면 빵집이 되고, 예배를 보면 예배당이 됩니다. 예배를 통하여 진리의 말씀이 가르쳐지고 배우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훈련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결코 교역자들의 사업장이나, 교인들의 친교장소나 지식을 전하는 강연장이 아니며 더욱이 결혼식장이나 구제단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곳입니다.
둘째,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마21:13)
예수님이 교회를 가르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교회를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합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 되거나 "강도의 굴혈"이 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주일 아침마다 온 성도가 모였을 때, 기도소리로 성전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많은 죽어 가는 영혼이 모여들고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교회를 기도로 채우십시오. 기도가 있는 곳에 능력이 있고, 기도가 있는 곳에 모든 악한 영의 세력은 물러갑니다.
셋째, 교회는 영육간에 병든 자를 고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마21:14)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교회는 병든 자의 치유가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범죄한 인간은 영육간의 질병으로 시달립니다. 머리 아픈 자, 실직의 아픔, 실연의 아픔, 인간관계의 고독의 아픔, 사랑 받지 못한 자의 아픔 등등, 교회는 이런 것들을 치유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러면 이런 치유가 나타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능력"입니다. 성도에게는 이미 이런 능력이 예수님으로 인해 주어졌습니다. 마가복음16장17절의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말씀이 바로 성도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과 서기관은 예수님의 치유의 사역을 이상한 일로 보았습니다.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닙니까. 살리는 일에는 아무 능력도 없는 무력한 자들이 이것저것 따지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영육의 치유와 죄인을 살리는 사역은 '이상한 사역'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 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찬양케 해야합니다. 성경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마21:16)라는 말씀처럼 성도들의 입에서 참된 찬양이 흘러나오게 해야 합니다. 성도는 찬송하는 자들입니다. 이사야 43장21절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의 천국의 모습은 찬양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여호사밧은 찬송으로 모압을 물리쳤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찬송으로 옥문을 열었습니다. 찬송은 성도의 무기입니다. 우리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부를 찬송이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찬송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짐바브웨 출신의 니프라이스라는 골프선수가 있습니다. 그는 골프를 치다가 슬럼프가 오면 항상 휘파람을 붑니다. 왜?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어려서부터 "어려움이 있을 때는 휘파람을 불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신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찬송을 불러라. 기쁠 때에든지, 슬플 때에든지 찬송을 불러라. 힘찬 찬송은 마귀를 물리치며, 막힌 곳을 뚫으며,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라"
다섯째, 교회는 선교하고 봉사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에 앞서 제자들을 비롯한 성도들에게 분부하시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선교는 교회의 열매입니다. 선교를 열심히 하면 교회가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등 불우한 이웃을 돌봐주고, 착한 일을 행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바른 교회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데 있습니다.(고전19:31, 엡1:3-14)
여섯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할 사명이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남편에, 교회를 아내에 비유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5:22-27)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들어서 남편과 아내의 본분을 가르친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하는 까닭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희생하기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교회는 파수꾼의 사명이 있습니다.
파수꾼은 밤중에 깨어 망루에서 성을 지키는 사람을 말합니다.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발견하면 나팔을 불어 잠자는 백성을 깨워 방비하게 합니다. 만약에 파수꾼이 졸고 자면 성이 함락되는 날, 성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이 시대의 파수꾼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워 왔음을 알리기 위해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노라면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병들고 썩어 냄새가 진동합니다. 이러한 때에 교회는 이 백성들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소돔과 고모라 처럼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해야 합니다.
여덟 째, 교회는 다음 세대를 가르칠 사명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딤전 4:13)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주신 명령일 뿐 아니라, 모든 교회에게 주신 사명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기독교신앙을 계승해 나갈 다음 세대를 가르쳐서 양육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는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올바로 양육하면 다음 세대에도 신앙의 맥을 계승해 나갈 수 있으나, 이에 실패하면 한국교회의 내일을 보장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 교회는 온 성도가 한 마음이 되어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는데 힘써야 할 줄 믿습니다. 성도님들 가운데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분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지금 어린이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많이 뿌려 놓아야만 다음 세대에 가서 거두어들일 것이 있을 것입니다.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마치 어린 연어들을 강물에 풀어놓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 어린 연어들이 넓은 대양으로 나갔다가 다시금 그가 태어났던 강물로 거슬러 올라오듯이, 어린 시절에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 되어 교회로 돌아오는 비율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갖고 힘써 나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들 모두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의 본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해 나가심으로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거룩하시고 자비로운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옵나이다. 주님의 피 값으로 세우신 이 교회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살아 움직이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질서 있는 교회가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말씀 안에서 더욱 더 부흥하며 성장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특히 처음 사랑과 믿음이 변질되지 않고 끝까지 바른 신앙을 가지고 교회의 본질과 본래의 사명에서 벗어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교회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파선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어느 위험한 해안에, 한 때 볼품 없는 작은 인명 구조 본부가 있었다. 건물이라곤 초라한 오두막 한 개뿐이었고 구명 보트도 작은 것 하나뿐이었다. 그렇지만 헌신적인 몇 명의 구조대원이 끊임없이 바다를 지켰고 험한 파도 속에서 계속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다. 그래서 점차 이 구조 본부는 아주 유명해졌다. 구조된 사람들 중에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 가운데서도 자발적으로 구조 대원으로 봉사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많았고, 돈을 대주는 사람들도 늘었다. 그래서 이 인명구조 본부는 구명 보트도 새로 구입하고 구조 대원들도 더 훈련시키는 등 작은 구조 본부가 점점 커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많아지고 기구가 커지자 새로 가입한 회원들 중 어떤 사람들은 볼품 없는 낡은 건물과 시설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구조된 사람들의 임시 피난처가 되기 위해서도 좀 더 편안한 시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들은 비상용간이 침대를 훌륭하고 편안한 침대로 갈아치웠고, 건물도 확장 보수하고 좀 더 좋은 가구들을 갖다 놓았다. 그리고 구조대원들이 대기하는 동안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 간단한 운동 기구들과 장기, 바둑 등 오락 시설도 갖추어 놓았다. 이렇게 되자 이 인명 구조 본부는 회원들을 위한 대중적인 회합 장소가 되어 버렸고 그곳을 일종의 사교 클럽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그곳을 더욱 아름답게 치장했고 멋있게 꾸며 놓았다. 이런 변화와 함께 회원들은 인명을 구조하는 본연의 임무를 위해 위험한 바다에 나가는 일에는 점차 관심을 잃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런 일을 전담할 수 있는 구조대원들을 새로 채용하기로 했다. 시간이 더 지나가자 그 다음 번에 모인 회원들의 총회에서는 불화가 생겨났다. 많은 회원들은 클럽의 인명 구조 활동들이 별로 즐겁지도 않고 오히려 위험한 일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제부터는 인명 구조 활동은 그만 두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사교 클럽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일부 회원들은 인명 구조 활동이야말로 이 조직 본연의 임무요 목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인명구조 본부가 사교 클럽으로 바꾸어져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주장은 투표 결과 패배 당했고, 만일 그들이 계속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면 저 아래편 해안에서 그들 나름의 구조본부를 새로 만들어 시작할 수 있다는 결정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사교 클럽에서 나와 새로이 구조 본부를 만들었다. 여러 해가 지나면서 새로 생긴 이 인명 구조 본부는 옛날 구조 본부가 겪었던 똑같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 구조 본부는 또다시 일종의 사교 클럽으로 발전해버렸고, 그래서 또 그 아래편에 또 다른 인명 구조 본부가 새로 생기게 되었다. 역사는 계속 반복되었고 그래서 만약 우리가 오늘날 그 해안을 방문한다면 우리는 그 해안에서 수많은 클럽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바다에서는 여전히 파선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구조 당하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교회의 중요한 사명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인데, 많은 교회가 선교를 통해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는 오히려 교회의 자체 유지와 교인 상호 간의 친목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교회가 인명 구조 본부의 역할보다는 사교 단체나 친목 단체의 역할만 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2. 묵상 및 토의
0 우리 교회는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0 나의 교회는 구원의 방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0 우리 교회의 자랑은 무엇인가 이야기 해보세요.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실천해야 할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 웨스트민스터 사원
영국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꼭 찾고 싶어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오래 전에 이 사원을 방문했던 방문객들의 입에서부터 이런 흥미 있는 일화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이 이 유명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인도해주던 안내자가 있었습니다. 이 안내자는 사원에 대한 역사적인 내력과, 그리고 무덤에 묻혀 있는 지나간 세기의 찬란한 영웅들의 삶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또 현재 그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이 끝난 후에 안내자는 방문객들을 향해서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미국의 아이오아 주에서 이곳을 방문했던 어느 여신도 한 사람이 안내자를 향해서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과 내력에 관해서 훌륭한 설명을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을 한가지만 하겠습니다. 최근에 이 사원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이 뜻밖의 질문 앞에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안내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모임)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와 내용은 무엇이며, 오늘 우리가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 모든 형식과 허상은 그 내용과 어떤 관련이 되어져야 하는지 우리는 뒤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화(2) : 중요한 것은 본질과 기초
미국의 금문교를 만든 사람인 레드우드는 아이디어를 2000년된 나무에서 얻었다고 합니다. 그가 나무를 보니 세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첫 번째가 다른 나무보다 뿌리가 더 깊이 뻗어 있더라는 것 입니다. 두 번째는 다른 나무보다 잔뿌리가 많은데, 잔뿌리가 습기있는 곳으로 찾아 들어가 수분을 나무로 공급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그 뿌리가 큰 바위를 칭칭 감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2000년 동안 온갖 변하는 환경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은 거지요. 그래서 금문교를 만들 때 반석이 나올 때까지 깊이 파고 들어가 그 위에 교각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 많은 지진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늘까지 건재한 이유 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보다 중요한 것이 본질이고 기초입니다. 기초없이 제대로 성장이 될 수가 없습니다.
* 예화(3):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사는 신자들
어느 작은 시골마을에서 한 번도 서커스를 구경해 보지 못한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읍내마을로 서커스단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 아버지는 그 소년에게 돈을 주어 가보도록 했습니다. 그 소년이 읍내에 도착하였을 때 마침 그 서커스행렬은 도심지를 향해 가고있었는데 소년은 그 엄청난 광경을 그 자리에서 넋을 잃고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렁찬 악대며, 휘황찬란하게 장식된 의상들이며, 사나운 짐승들, 그리고 사나운 짐승을 다루는 곡예사들은 시골뜨기 소년의 마음의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광대 한 사람이 나와 익살을 부리며 광대놀이를 할 때 광대 한 사람이 넋을 잃고 구경하는 소년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소년은 아버지께서 주신 돈을 가만히 광대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이 틀림없는 서커스일거야"하고 생각하면서, 그 행렬이 지나간 다음 소년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 소년은 비로소 자기가 본 것이 서커스가 아니라 단지 행렬만 보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치 못하고 단지 아는 것으로 머문 신자들의 구원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교회를 통하여 단지 시회 사업이나 사람의 친교, 어떤 모임 정도로만 알고 예수의 구원을 믿지 못한다면 서커스의 행렬만 보고간 소년과 같습니다.
4. 찬송: (242장) 교회의 참된 터는
교회의 참된 터는 우리 주 예수라
그 귀한 말씀 위에 이 교회 세웠네
주 예수 강림하사 피 흘려 샀으니
땅위의 모든 교회 주님의 신부라"
5. 시: 이런 교회가 되게 하여 주소서 말씀이 있으면서 행동이 있는 교회
사랑이 있으면서 순교가 있는 교회 모임이 있으면서 역사가 있는 교회
기도가 있으면서 능력이 있는 교회 감사가 있으면서 찬송이 있는 교회
연약한 자들에게 힘이 되게 하시고 실패한 자들에겐 희망이 되게 하사
살아있는 교회로 부흥하게 하소서(작자 미상)
예화포커스(1- 50권)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회,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서를 통해 목회자들은 은혜로운 설교를 하게 되고, 성도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새사람이 되어 늘 샘물같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지음, 좋은땅, 각 권 값4,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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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홈페이지: http://allcome.ce.ro
본문: 딤전 3:14-16
로마 교회가 망할 때 로마도 같이 망했습니다. 로마 교회가 망할 때 로마 교회 신부들이 죄를 회개하고 바르게 살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바늘 끝에 천사들이 몇 명이나 앉을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3일이나 싸웠습니다. 쓸데없는 일을 하다가 결국 로마가 망한 것입니다.
러시아 교회가 부패될 때 러시아에 공산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러시아 교회 신부들이 모여서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미사를 집례할 때 황금색 가운을 입어야 되나, 빨간색 가운을 입어야 되나 하는 것으로 일주일간이나 싸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황금색 가운도 입지 않고 빨간색 가운도 입지 않았는데, 그것이 뭐 그리 중합니까?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니 공산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나라 어느 교단 총회에서도 축도할 때 ‘축원하옵나이다’라고 해야 되나 ‘축원할지어다’라고 해야 되나 하는 것 가지고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 한국 교회의 부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그리 중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전하고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이 중한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과 목적은 크고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거나, 성도들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나 구제나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셨다면 '잘 살아보세.'라던가, 새마을운동이라던가 이런 운동을 전개하셨을 것입니다. 의식 구조를 바꾸려고 하셨을 것입니다. 부지런함의 필요와 근면의 필요를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정신을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어 받았기 때문에 베드로가 미문가에 앉은 거지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행3:6)"라고 했습니다. 은과 금을 주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플러스 알파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 오늘날 기독교는 타락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질을 알고 행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새로운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복음의 초창기였던 초대 교회 당시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지금이나 여전히 감격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이며, 우리가 이 일에 동참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설립된 것이 사람의 뜻에 따라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된 것임을 믿습니다. 이 시간 저는 성경에 근거해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이며, 주님께서 주신 우리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말씀해 드림으로써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먼저, 교회의 본질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길을 가다가 십자가 종탑이 세워진 건물을 보고 교회라고 말하곤 합니다. 또는 그 교회가 속해 있는 교파와 관련해서 저 교회는 무슨 장로교회라거나 무슨 감리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식의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종탑이 세워진 건물은 교회가 아니라 예배당이며, 장로교회라든가 감리교회라는 것은 교리의 차이에 따라서 결성된 기독교인들의 조직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 볼 때, 교회는 예배당 건물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고, 교파나 교단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교회의 초창기에는 별도의 예배당 건물이 없었습니다. 사도들과 성도들은 주로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의 수가 점점 늘어가자 모이는 장소를 성전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라고 한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 가운데서 믿음이 신실하고 넓은 공간을 가진 성도의 집에 모였습니다. 예를 들면, 고린도전서 16장 19절에 보면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모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빌레몬이라는 성도에게 보낸 편지로서, 1장 2절에 “네 집에 있는 교회”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빌레몬의 집이 그리스도인들의 회집 장소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초대 교회 당시에는 교파나 교단도 없었고 모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교파가 생겨난 것은 한 참 후의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교회의 주인이시며 설립자가 누구인가? 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몇 년 동안 고생해 완성한 ‘최후의 만찬’을 공개하기 위해 지인들을 초청했습니다. 드디어 천이 벗겨지고 작품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순간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한 친구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군. 예수의 손에 들린 저 광채 나는 유리잔을 보세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붓을 들어 유리잔 부분을 뭉개버렸습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을 향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했습니다. “이 작품은 실패한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시선이 예수의 얼굴에 집중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유리잔에 시선이 모아졌다면 그것은 제 의도를 벗어난 것이지요.” 그는 유리잔이 예수의 표정을 가리지 않도록 다시 그림을 그려 완성시켰습니다.
현대인들은 종종 예수의 손에 들린 광채 나는 유리잔에 환호하는 우를 범합니다. 신앙은 삶의 본질을 찾는 과정입니다. 신앙은 유리잔에 가려진 예수의 얼굴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을 알려면 교회의 주인이요 설립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교회의 본질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하셨습니다. 곧 예수님 자신이 교회의 설립자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이심을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이며, 주님께서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 되어야지 목회자나 성도가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되면 교회의 본질에서 떠난 것입니다. 대개 교회 안에서 다툼이 생기는 것은 다른 데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하려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 교회는 예수님 중심으로 한 마음 한 뜻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입니다.
이에 대하여 골로새서 1장 18절에는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하였고, 에베소서 5장 23절에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머리와 몸처럼 밀접한 관계가 또 어디 있습니까? 둘은 서로 뗄 수 없는 일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몸이 머리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머리가 몸을 움직이듯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주장하십니다. 당연히 교회는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의 구성원인 신자들은 무엇에 해당합니까? 이에 대하여 성경에는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7)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몸인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성경은 이같이 말씀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2,13)
우리 가운데는 눈에 해당하는 성도도 있고, 입이나 귀에 해당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물론, 손이나 발에 해당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혹은 손가락이나 발가락에 해당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또는 몸 속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간이라든가 대장에 해당하는 성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모든 지체가 다 몸에 붙어 있고 몸과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손과 발이 서로 떨어져서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손이 아프면 손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온 몸이 다 고통 합니다. 간이 병들면 간만 아픈 것이 아니고 온 몸이 고통 합니다. 이와 같이, 한 교회에 속해 있는 성도들은 서로에 대하여 남남이 아니고 영적으로 한 몸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믿음의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격려하는 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교회와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본문에 보니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곧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을 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신 곳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교회 안에 충만히 임하셔서 생명의 역사를 이루는 곳이 교회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전에서 하나님께 양이나 소를 잡아 제사를 드렸으나 신약시대에는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헌신과 봉사가 바로 산 제사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예루살렘 한 곳에만 성전이 있었으나, 신약시대에는 수많은 곳에 성전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알아둘 점은 지상의 모든 교회는 결국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 1:2),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살전 2:14)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한 것은 교회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한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2장 19절에는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습니다. 온 성도가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사랑으로 하나 되어 서로를 섬기는 곳이 교회입니다.
넷째로 교회와 복음의 진리의 관계입니다.
본문에 교회를 일컬어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 기둥은 지붕을 떠받치고, 터는 집 전체를 떠받치듯이, 교회는 복음의 진리를 떠받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 이야기를 하는 곳이 아니고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해야지, 복음의 진리를 떠난 교회는 아무리 조직이 잘 되어 있고 규모가 크더라도 더 이상 교회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천주교는 복음의 진리를 떠나서 천주교 자체를 신격화했습니다. 그들은 교황이 천국의 열쇠를 갖고 있으므로 신자들의 구원을 좌우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 곧 변질된 복음에 불과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서있는 교회라야 참된 교회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교회와 그 구성원의 관계입니다.
아무나 원한다고 해서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지체가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올바른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시몬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반석은 곧 베드로가 고백한 바른 신앙고백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일컬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고전 1:2)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도는 고린도 교회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 믿어 구속받은 성도들이 교회의 구성원들임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행복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것은 교회의 일원이 된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늘의 천사들도 동경하고 흠모하는 영광스러운 신분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성도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같이 기뻐하고, 하나님이 분노하는 일에 같이 분노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성경에 "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잠25:13)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같이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할 충성된 사자가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바로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할 충성된 자들을 키워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주님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성도들이 "편리성"만을 추구하다 보니, 성전 앞에서 제물을 사고 팔고, 심지어는 환전을 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제사장들은 점점 영성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돈벌이에만 눈이 어두워진 것 같습니다. 지금의 교회가 이런 모습은 아닐까요? 상업화되고, 외식과 형식, 권위주의와 거짓이 판치는 곳은 마귀의 소굴이요, 강도의 굴혈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은 다 참아도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과 사명을 떠나는 것은 참지 못하십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근본 목적과 사명은 무엇입니까?
첫째, 교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요4:23-24)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곳은 하나님의 집이 아닙니다. 어떤 집에서 술을 팔면 술집이 되고, 빵을 팔면 빵집이 되고, 예배를 보면 예배당이 됩니다. 예배를 통하여 진리의 말씀이 가르쳐지고 배우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훈련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결코 교역자들의 사업장이나, 교인들의 친교장소나 지식을 전하는 강연장이 아니며 더욱이 결혼식장이나 구제단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곳입니다.
둘째,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마21:13)
예수님이 교회를 가르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교회를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합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 되거나 "강도의 굴혈"이 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주일 아침마다 온 성도가 모였을 때, 기도소리로 성전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많은 죽어 가는 영혼이 모여들고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교회를 기도로 채우십시오. 기도가 있는 곳에 능력이 있고, 기도가 있는 곳에 모든 악한 영의 세력은 물러갑니다.
셋째, 교회는 영육간에 병든 자를 고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마21:14)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교회는 병든 자의 치유가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범죄한 인간은 영육간의 질병으로 시달립니다. 머리 아픈 자, 실직의 아픔, 실연의 아픔, 인간관계의 고독의 아픔, 사랑 받지 못한 자의 아픔 등등, 교회는 이런 것들을 치유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러면 이런 치유가 나타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능력"입니다. 성도에게는 이미 이런 능력이 예수님으로 인해 주어졌습니다. 마가복음16장17절의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말씀이 바로 성도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과 서기관은 예수님의 치유의 사역을 이상한 일로 보았습니다.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닙니까. 살리는 일에는 아무 능력도 없는 무력한 자들이 이것저것 따지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영육의 치유와 죄인을 살리는 사역은 '이상한 사역'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 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찬양케 해야합니다. 성경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마21:16)라는 말씀처럼 성도들의 입에서 참된 찬양이 흘러나오게 해야 합니다. 성도는 찬송하는 자들입니다. 이사야 43장21절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의 천국의 모습은 찬양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여호사밧은 찬송으로 모압을 물리쳤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찬송으로 옥문을 열었습니다. 찬송은 성도의 무기입니다. 우리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부를 찬송이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찬송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짐바브웨 출신의 니프라이스라는 골프선수가 있습니다. 그는 골프를 치다가 슬럼프가 오면 항상 휘파람을 붑니다. 왜?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어려서부터 "어려움이 있을 때는 휘파람을 불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신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찬송을 불러라. 기쁠 때에든지, 슬플 때에든지 찬송을 불러라. 힘찬 찬송은 마귀를 물리치며, 막힌 곳을 뚫으며,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라"
다섯째, 교회는 선교하고 봉사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에 앞서 제자들을 비롯한 성도들에게 분부하시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선교는 교회의 열매입니다. 선교를 열심히 하면 교회가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등 불우한 이웃을 돌봐주고, 착한 일을 행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바른 교회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데 있습니다.(고전19:31, 엡1:3-14)
여섯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할 사명이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남편에, 교회를 아내에 비유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5:22-27)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들어서 남편과 아내의 본분을 가르친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하는 까닭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희생하기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교회는 파수꾼의 사명이 있습니다.
파수꾼은 밤중에 깨어 망루에서 성을 지키는 사람을 말합니다.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발견하면 나팔을 불어 잠자는 백성을 깨워 방비하게 합니다. 만약에 파수꾼이 졸고 자면 성이 함락되는 날, 성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이 시대의 파수꾼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워 왔음을 알리기 위해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노라면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병들고 썩어 냄새가 진동합니다. 이러한 때에 교회는 이 백성들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소돔과 고모라 처럼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해야 합니다.
여덟 째, 교회는 다음 세대를 가르칠 사명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딤전 4:13)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주신 명령일 뿐 아니라, 모든 교회에게 주신 사명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기독교신앙을 계승해 나갈 다음 세대를 가르쳐서 양육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는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올바로 양육하면 다음 세대에도 신앙의 맥을 계승해 나갈 수 있으나, 이에 실패하면 한국교회의 내일을 보장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 교회는 온 성도가 한 마음이 되어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는데 힘써야 할 줄 믿습니다. 성도님들 가운데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분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지금 어린이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많이 뿌려 놓아야만 다음 세대에 가서 거두어들일 것이 있을 것입니다.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마치 어린 연어들을 강물에 풀어놓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 어린 연어들이 넓은 대양으로 나갔다가 다시금 그가 태어났던 강물로 거슬러 올라오듯이, 어린 시절에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 되어 교회로 돌아오는 비율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갖고 힘써 나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들 모두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의 본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해 나가심으로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거룩하시고 자비로운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옵나이다. 주님의 피 값으로 세우신 이 교회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살아 움직이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질서 있는 교회가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말씀 안에서 더욱 더 부흥하며 성장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특히 처음 사랑과 믿음이 변질되지 않고 끝까지 바른 신앙을 가지고 교회의 본질과 본래의 사명에서 벗어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교회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파선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어느 위험한 해안에, 한 때 볼품 없는 작은 인명 구조 본부가 있었다. 건물이라곤 초라한 오두막 한 개뿐이었고 구명 보트도 작은 것 하나뿐이었다. 그렇지만 헌신적인 몇 명의 구조대원이 끊임없이 바다를 지켰고 험한 파도 속에서 계속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다. 그래서 점차 이 구조 본부는 아주 유명해졌다. 구조된 사람들 중에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 가운데서도 자발적으로 구조 대원으로 봉사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많았고, 돈을 대주는 사람들도 늘었다. 그래서 이 인명구조 본부는 구명 보트도 새로 구입하고 구조 대원들도 더 훈련시키는 등 작은 구조 본부가 점점 커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많아지고 기구가 커지자 새로 가입한 회원들 중 어떤 사람들은 볼품 없는 낡은 건물과 시설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구조된 사람들의 임시 피난처가 되기 위해서도 좀 더 편안한 시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들은 비상용간이 침대를 훌륭하고 편안한 침대로 갈아치웠고, 건물도 확장 보수하고 좀 더 좋은 가구들을 갖다 놓았다. 그리고 구조대원들이 대기하는 동안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 간단한 운동 기구들과 장기, 바둑 등 오락 시설도 갖추어 놓았다. 이렇게 되자 이 인명 구조 본부는 회원들을 위한 대중적인 회합 장소가 되어 버렸고 그곳을 일종의 사교 클럽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그곳을 더욱 아름답게 치장했고 멋있게 꾸며 놓았다. 이런 변화와 함께 회원들은 인명을 구조하는 본연의 임무를 위해 위험한 바다에 나가는 일에는 점차 관심을 잃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런 일을 전담할 수 있는 구조대원들을 새로 채용하기로 했다. 시간이 더 지나가자 그 다음 번에 모인 회원들의 총회에서는 불화가 생겨났다. 많은 회원들은 클럽의 인명 구조 활동들이 별로 즐겁지도 않고 오히려 위험한 일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제부터는 인명 구조 활동은 그만 두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사교 클럽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일부 회원들은 인명 구조 활동이야말로 이 조직 본연의 임무요 목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인명구조 본부가 사교 클럽으로 바꾸어져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주장은 투표 결과 패배 당했고, 만일 그들이 계속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면 저 아래편 해안에서 그들 나름의 구조본부를 새로 만들어 시작할 수 있다는 결정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사교 클럽에서 나와 새로이 구조 본부를 만들었다. 여러 해가 지나면서 새로 생긴 이 인명 구조 본부는 옛날 구조 본부가 겪었던 똑같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 구조 본부는 또다시 일종의 사교 클럽으로 발전해버렸고, 그래서 또 그 아래편에 또 다른 인명 구조 본부가 새로 생기게 되었다. 역사는 계속 반복되었고 그래서 만약 우리가 오늘날 그 해안을 방문한다면 우리는 그 해안에서 수많은 클럽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바다에서는 여전히 파선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구조 당하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교회의 중요한 사명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인데, 많은 교회가 선교를 통해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는 오히려 교회의 자체 유지와 교인 상호 간의 친목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교회가 인명 구조 본부의 역할보다는 사교 단체나 친목 단체의 역할만 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2. 묵상 및 토의
0 우리 교회는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0 나의 교회는 구원의 방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0 우리 교회의 자랑은 무엇인가 이야기 해보세요.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실천해야 할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 웨스트민스터 사원
영국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꼭 찾고 싶어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오래 전에 이 사원을 방문했던 방문객들의 입에서부터 이런 흥미 있는 일화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이 이 유명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인도해주던 안내자가 있었습니다. 이 안내자는 사원에 대한 역사적인 내력과, 그리고 무덤에 묻혀 있는 지나간 세기의 찬란한 영웅들의 삶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또 현재 그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이 끝난 후에 안내자는 방문객들을 향해서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미국의 아이오아 주에서 이곳을 방문했던 어느 여신도 한 사람이 안내자를 향해서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과 내력에 관해서 훌륭한 설명을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을 한가지만 하겠습니다. 최근에 이 사원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이 뜻밖의 질문 앞에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안내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모임)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와 내용은 무엇이며, 오늘 우리가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 모든 형식과 허상은 그 내용과 어떤 관련이 되어져야 하는지 우리는 뒤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화(2) : 중요한 것은 본질과 기초
미국의 금문교를 만든 사람인 레드우드는 아이디어를 2000년된 나무에서 얻었다고 합니다. 그가 나무를 보니 세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첫 번째가 다른 나무보다 뿌리가 더 깊이 뻗어 있더라는 것 입니다. 두 번째는 다른 나무보다 잔뿌리가 많은데, 잔뿌리가 습기있는 곳으로 찾아 들어가 수분을 나무로 공급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그 뿌리가 큰 바위를 칭칭 감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2000년 동안 온갖 변하는 환경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은 거지요. 그래서 금문교를 만들 때 반석이 나올 때까지 깊이 파고 들어가 그 위에 교각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 많은 지진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늘까지 건재한 이유 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보다 중요한 것이 본질이고 기초입니다. 기초없이 제대로 성장이 될 수가 없습니다.
* 예화(3):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사는 신자들
어느 작은 시골마을에서 한 번도 서커스를 구경해 보지 못한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읍내마을로 서커스단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 아버지는 그 소년에게 돈을 주어 가보도록 했습니다. 그 소년이 읍내에 도착하였을 때 마침 그 서커스행렬은 도심지를 향해 가고있었는데 소년은 그 엄청난 광경을 그 자리에서 넋을 잃고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렁찬 악대며, 휘황찬란하게 장식된 의상들이며, 사나운 짐승들, 그리고 사나운 짐승을 다루는 곡예사들은 시골뜨기 소년의 마음의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광대 한 사람이 나와 익살을 부리며 광대놀이를 할 때 광대 한 사람이 넋을 잃고 구경하는 소년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소년은 아버지께서 주신 돈을 가만히 광대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이 틀림없는 서커스일거야"하고 생각하면서, 그 행렬이 지나간 다음 소년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 소년은 비로소 자기가 본 것이 서커스가 아니라 단지 행렬만 보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치 못하고 단지 아는 것으로 머문 신자들의 구원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교회를 통하여 단지 시회 사업이나 사람의 친교, 어떤 모임 정도로만 알고 예수의 구원을 믿지 못한다면 서커스의 행렬만 보고간 소년과 같습니다.
4. 찬송: (242장) 교회의 참된 터는
교회의 참된 터는 우리 주 예수라
그 귀한 말씀 위에 이 교회 세웠네
주 예수 강림하사 피 흘려 샀으니
땅위의 모든 교회 주님의 신부라"
5. 시: 이런 교회가 되게 하여 주소서 말씀이 있으면서 행동이 있는 교회
사랑이 있으면서 순교가 있는 교회 모임이 있으면서 역사가 있는 교회
기도가 있으면서 능력이 있는 교회 감사가 있으면서 찬송이 있는 교회
연약한 자들에게 힘이 되게 하시고 실패한 자들에겐 희망이 되게 하사
살아있는 교회로 부흥하게 하소서(작자 미상)
예화포커스(1- 50권)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회,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서를 통해 목회자들은 은혜로운 설교를 하게 되고, 성도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새사람이 되어 늘 샘물같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지음, 좋은땅, 각 권 값4,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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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태완 목사님 설교 예화 자료집
글쓴이 : 복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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