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행함이 있는 감사(주일예배 20130707)

하나님아들 2014. 6. 19. 23:17

성경봉독 누가복음 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설교: 행함이 있는 감사!

 

오늘 본문 말씀은 감사에 대해 말씀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10명의 문둥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 중 9명은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고, 딱 한 사람 사마리아인 하나만 와서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러 온 사마리아인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당연히 10명 모두가 감사해야 하는데 오직 한 사람만이 감사함에 대해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은혜를 입으면 감사해야 함을 압니다. 그러나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행해야만 그 감사가 진짜가 되는 것입니다.

감사한 건 알지만, 내가 바빠서, 내가 할 일이 많아서, 내가 문제가 많아서 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감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입니다. 맥추감사절을 대부분 보리나 밀농사를 지어 추수하는 농부가 그 수확한데에 감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큰 은혜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맥추절은 밀농사를 잘하여 추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라면 신약시대의 맥추절은 오순절날 성령 강림으로 교회가 탄생하고 성도가 생겨나서 구원의 역사가 이루워진 것에 대한 감사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진정한 행함이 있는 감사에 대해 결심하시는 은혜의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에게는 육, 혼, 영이 있습니다. 육신이 치유되었지만 영이 구원받지 못하면 반쪽 구원만을 받은 셈입니다. 10명의 문둥병자가 치유되었지만 오직 한 명만이 영혼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었음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고 홍해를 건넌 것은 1차 구원이라고 한다면 가나안까지 가는 것은 온전한 구원인 것입니다. 우리도 온전한 구원인 영혼 육이 함께 구원받아야 합니다. 감사하러 온 사마리아 사람은 육체만 치유 받은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받는 온전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온전한 구원을 이루며 사는 삶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저도 간혹 어려우신 분들을 도와드리곤 합니다. 간혹 억울하게 당한 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기도하고 돕고자 합니다. 그러나 도와줄 때 외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도와줄 때만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심지어 아주 당당히 저에게 칼을 등에 꼽고 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인간관계로 생각해보면, 이것은 아주 어렵고 힘든 목회의 길이지만, 교회에서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도와주는 것은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그 사역을 따라하는 것뿐입니다. 어렵고 힘든 자들을 위해 돕는 구제사역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아픈 자들을 치유하는 것!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과 사명을 가지고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처럼, 예수님께서는 10명의 나병환자의 그 고통과 어려움을 보시고 친히 그 문둥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한 명도 아니고 10명 다 고쳐주셨습니다. 왜 그리하셨을까요? 정말로 예수님께서는 열 명 다 와서 감사할 거라 생각하셨을까요? 그 중 한 명만 와서 감사할 것이라는 것을 모르셨을까요? 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10명 다 고쳐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고, 예수님의 능력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감사하는 자와 감사하지 않는 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다 똑같이 문둥병이 나았는데, 예수님께서 감사하러 온 사마리아사람이 뭐 더 특별하게 받는 복이 있었습니까? 또

감사하러 오지 않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오지 않았을까요?

 

첫째로, 지나친 자신의 소유욕내지 이기심 때문입니다. 분명히 9명의 나병 고침 받은 사람들은 능력 있는 예수를 만나 그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병이 완전히 고쳐졌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가서 병 낫음을 보이고, 가족들과 친구들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사회생활을 다시 잘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9명은 동시에 괜히 도움 받았다고 해서 발목 잡히기 싫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예수님은 제사장들이나 다른 바리새인들의 미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병고쳐준 것은 고맙지만, 내 인생도 있으니, 여기서 그만두자... 자기도 제사장에게 보이라고만 하지 않았어?” 하며 자신 멋대로 자기 편한 데로 생각하며 예수님께 다시 가서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사기 치는 사람들을 대부분 보면, 착하고 선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이 사람이 나에게 도와주는 선한 마음은 그 사람이 멍청해서, 내가 똑똑하고 이 사람은 순진해서 그런거다..” 하면서 도리어 “이 사람은 가진 게 많으니 그리해도 된다!”고 양심마저도 저버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그 누구보다 더 가져야 한다는 소유욕이 강하고, 이것을 위해서는 그 어떤 누구도 상관없이 이용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도움을 받는 자들이 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감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보면, 자기 힘으로 해냈다고 자만하는 자존심들이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가 자기의 힘으로 난다고 생각하면 감사를 못합니다. 그러나 공기가 있기 때문에 난다고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나 그곳에서 먼저 감사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자기의 능력으로 걸어왔다고 생각하면 자기 다리를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히 자기 다리로 걸어왔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있었음을 알게 되면 감사를 하게 됩니다.

 

그럼 여기서 9명의 감사하러 오지 않은 사람과 한 명의 감사하러 온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보면, 그 고칠 수 없다는 문둥병을 모두 다 고침 받은 사람들 아닙니까? 무엇이 더 있단 말입니까? 19절입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육체의 나음 뿐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도 받았습니다. 이제는 병마와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나머지 9명은 이러한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분명히 이 9명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지 못해, 문둥병은 나았으나, 세상 여러 가지 문제와 고통 가운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막상 이런 일들을 당하면 극복할 힘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감사하러 온 한 명은 그의 인생에 문둥병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 지라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모든 것 되시니 다 극복하고 시련이 축복이 되는 놀라운 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를 행하는 자가 누리는 복인 것입니다.

예전 중국동포교회 김해성 목사님께서 성남에서 한 파키스탄 노동자를 도와주신 일이 있습니다. 당시 거의 20년 전 일이니까 불법 노동자들은 일하다가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려도 사장님에게 치료비나 보상을 바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성남시장이 되신 이재명 변호사와 김 목사님은 이 파키스탄 노동자가 일하다 다리가 잘려 강제 추방당하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이 노동자가 파키스탄으로 되돌아갔어도, 대신 그 보상비를 받아서 그 사람에게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있다가 얼마 후 편지가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돈을 보내주어서, 제가 장애인으로 파키스탄에서 굶어죽을 수도 있었는데, 잘 살게 되었습니다. 보내주신 돈으로 부인도 세 명이나 얻고, 땅도 사고 집도 사서 잘 먹고 살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읽은 김 목사님은 순간 머리를 뚱하니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마치 자신들이 돈 받아주는 브로커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 억울한 자들 편에 서서 일해 주었지만, 이 파키스탄 노동자는 “왜 이 김목사님과 이 변호사님께서 대신 싸워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셨을까?”라는 생각대신, 돈보내준 것만 관심 있었고, 이를 아주 운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 파키스탄 노동자의 인생은 한국에서나 파키스탄에서나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제가 생각하기에 그런 정신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 노동자는 보내준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다시 거리로 내몰리지 않았을까 생각도 됩니다.

 

제가 이 자리에 계시는 성도님들을 이모저모로 기도하며 돕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은 사람들이 도우면 됩니다. 그러나 앞으로 올 어려움과 인생은 오직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제가 경찰서를 따라가고 출입국을 따라다니고 병원을 찾아가지만, 인간의 마음을 바꾸시고, 속히 일이 해결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하셨고, 그 뜻을 하나님께 두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셨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의도를 잘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도 감사하지 못하는 자들에 대하여 서운한 감정을 솔직히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7-18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사람도 감사하는 자에게 정이 가듯이 하나님도 감사하는 자를 더욱 기뻐하십니다.

 

둘째, 감사를 표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현대인들의 특징 중 하나는 고마움을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입은 자가 그 은혜를 모릅니다. 부모의 은혜도 모르고, 하나님의 은혜도 모릅니다. 돈을 꾸어간 자가 돈을 갚지도 않는 시대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꼭 잡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오늘부터 감사하는 습관을 키워 나가자는 것입니다.

 

셋째, 감사의 조건을 찾아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를 헤아려보면 감사할 조건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어떤 식당들은 유명한 아이돌이나 연예인이 다녀갔다면서 광고하면서 장사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인 교회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며, 성도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교회에 헌신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일꾼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한 일입니다. 감사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의 완성은 거룩하게 되어가는 성화를 통해서입니다. 그 성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감사가 습관이 되고 체질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모든 덕목을 다 갖추었다할지라도 감사가 빠지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사람은 감사하는 자가 되어서 몸이 온전해 지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도 구원받는 감격을 누렸습니다. 감사의 생활은 우리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가정 주심에 감사해야합니다. 우리 주위에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주심도 감사해야 합니다. 섬기는 교회 주심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도 살아있어서 감사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일일이 셀 수 없는 것들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배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더욱 감사하시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우리가 주 안에서 늘 감사하게 하옵소서. 9명의 나병치유받은 자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주님께 돌아와 감사드리며 하나님께 영광드린 사마리아인처럼 영과 육이 다 치유받고 복받는 인생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세상 살면서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 열 방 교 회
글쓴이 : 열 방 교 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