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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의 조기 교육방법*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부모들만큼 조기교육의 열정이 뜨거운 부모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조기교육이라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하여 이 작은 나라에서 세계적인 인물들이 나타나게 된 것도 사실인데, 대표적인 예가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 본명 장영주 양입니다. 사라 장이 세 살 반 때에 처음으로 피아노를 쳐 보게 되었을 때에 그 아이에게 천부적인 절대음감이 있음을 발견한 그녀의 부모들은 그로부터 6개월 후 즉 만 네 살 때 16분의 1 사이즈의 바이올린을 손에 쥐어 주고 연습을 시작하게 했다고 합니다.
과연 모세를 그렇게 키운 교육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자녀들을 진정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큰 인물로 만들기 위하여 반드시 지켜야 할 '영적 조기교육'의 원칙이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부모는 자기 자녀를 우선 '신전인격적 생명'으로서 인식해야 합니다. 1절부터 4절에 기록하기를 "1레위 족속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더니 2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 달을 숨겼더니 3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4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세상의 부모들이 자녀로 인하여 받게 되는 그 어떤 스트레스와도 비교가 안 될 엄청난 압력을 모세를 낳게 되는 첫 순간부터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출애굽기 1장 22에 기록된 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고센 땅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점점 더 강성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그런 끔찍한 명령을 내렸던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식을 부모가 스스로 죽이는 것은 정말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임에 분명했지만, 모든 이스라엘의 부모들이 그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바로의 명령이 절대적이고도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모세의 부모만 그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절대적인 권력자 바로의 추상같은 명령을 어기고서 모세를 숨겨 키울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그 갓난 아들을 '하나님 앞에서' 볼 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20절 상반절에 보면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히브리서 11장 23절에서 더욱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히브리서의 구절에서 '믿음으로'라는 말은 '모세'를 수식하는 말이 아니라 '그 부모'를 수식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다시 번역하자면 '모세가 났을 때에 믿음으로 그 부모가...'라는 어순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모세의 부모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으며, 그 결과 자신의 아들 역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의 눈으로 볼 줄 알았고, 그러니 아무리 바로의 명령이 준엄하고 두렵다고 해도 그처럼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고 준수한 아이'를 결코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그런 까닭에 모세의 부모는 그 아들의 생명까지도 오로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온전히 맡길 줄 알았습니다.
그때 이미 7, 8세 쯤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을 딸려 보내어 멀리서 지켜보게 하기는 했지만,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7장 21절에 "(모세의 부모가 그를) 버리운 후에"라고 기록하고 것처럼, 그 부모로서는 그야말로 '최후의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모세를 그냥 버리지는 않고 "역청과 나무진"으로 완전히 방수처리가 된 갈대 상자를 마련하는 등 끝까지 최선을 다한 후에 나머지는 오로지 하나님의 손에 맡겼던 것입니다. 이처럼 모세는 바로의 명령에 따르면 '죽여야 할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 부모가 그를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결코 그럴 수 없는 '아름다운 아이'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처럼 두려운 명령도 '무서워 아니하고' 그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부모치고 자기 자식이 사랑스럽지 않은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어느 아버지 어머니의 눈에도 자기 아들이야말로 '최고로 준수한 완소남'이요 자기 딸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공주'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제 새끼를 귀여워하는 것은 사실 동물도 똑같이 할 줄 알지 않습니까? 명실 공히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자기 자식을 보는 눈이 그 정도 수준에 머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부모라면 당연히 자기 자식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자녀가 그냥 나를 닮아서 귀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실로 '아름답고도 준수한 생명'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아들은 내 성을 따르고 내 핏줄을 이어갈 아들이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선택하신 '생명책에 기록된 택자'이며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구속함을 얻게 된 아들인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운 내 딸 역시 내가 그런 '딸 바보'가 되기 훨씬 전부터 하늘 아버지께서 이미 당신의 사랑하시는 '언약의 자녀'로 지명해 두셨고 그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딸'로 조성해 주신 것을 꼭 먼저 인식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저와 여러분은 자녀를 키울 때에 모든 '세속적 압력'을 이겨내고 오직 '하나님의 기준'만을 따르게 됩니다. '이 아이가 다른 사람 눈에 어떤 아이가 될까?'라는 걱정에 빠져 전전긍긍하는 못난 부모가 아니라, '이 아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사랑스럽고 흠모를 받는 아이가 될까?'라는 설렘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인도를 따라 그를 양육하는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아들이 학교 선생에게 얼마나 똑똑한 학생으로 보일까? 내 딸이 제 또래 친구들에게 얼마나 더 예쁘게 보일까?' - 이렇게 보기 이전에 '이 아이가 하나님의 눈에 지금 몇 점짜리 아이로 보일까?'라고 판단할 줄 아는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저 부모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육신적 부성애나 모성애가 아니라 '믿음으로' 자녀를 대하고 판단할 줄 아는 영적 부성애와 모성애가 아니겠습니까?
2. 부모는 자기 자녀를 가능한 한 어릴 때부터 '교회중심의 신앙교육'으로써 양육해야 합니다.
5절 이하 10절에 "5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열고 그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7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8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9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 하였더라"고 기록했습니다.
모세의 부모가 그를 '갈대 상자'에 넣어 하수에 띄워 보낸 후에 오직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맡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즉시 실로 오묘한 구원의 역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결과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이제 더 이상 숨길 필요 없이 아주 당당하게 자기 아들에게 젖을 먹이며 키울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애굽의 공주로부터 "삯" 즉 양육비까지 받아 가면서 자기 집에서 합법적으로 모세를 양육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자랐을" 때에, 즉 모세가 젖을 떼고 걸음마를 할 무렵이 되었을 때 요게벳은 그를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야" 했고, 그때부터 모세는 그의 친부모와는 완전히 생이별을 하고 요게벳의 아들이 아니라 애굽 공주의 아들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그 모세가 장성한 후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으며 자기 민족이 이스라엘인 것도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그의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라는 사도행전 7장 23절의 기록을 통해서 확인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모세는 40세가 될 때까지 여전히 하나님 신앙을 지키고 자기 민족에 대한 사명감까지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전적으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그 아들에게 '영적 조기교육'을 시켜 준 덕분이었습니다. 다른 일반 교육은 나중에 모세가 바로의 궁전으로 들어가게 되면 다 자동적으로 받게 될 것이니까 조금도 염려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요게벳은 그 제한된 기간 동안 매일 같이 자기 아들을 그 얼마나 열심히, 그 얼마나 철저히 가르쳤겠습니까? 몇 년만 지나면 떠나보내야 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생부모와 헤어지고 자기 민족과 단절되고 무엇보다도 신앙교육을 전혀 받을 수 없는 곳으로 자기 아들을 보내야 할 것을 생각하면서, 요게벳은 그야말로 분초를 아껴서 자나깨나 모세에게 반복적으로 주입식 신앙교육을 시켜 주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녀는 모세에게 젖을 먹일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에 감사하는 기도를 그 영아 모세의 귀에 들려주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위대한 기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사실을 두고 히브리서 11장 24절로 26절은, 바로 그 앞절에서 그 부모의 신앙을 칭찬한 후에 곧 이어서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바로 그 어머니 요게벳의 조기 신앙교육의 결과 모세는 끝내 '믿음으로 장성하게' 되었고 온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는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모세가 0세부터 3, 4세까지 자라는 동안, 아직 말도 제대로 못 배웠을 나이였지만, 그 영아 모세의 영혼 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호가 깊숙이 박혀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그가 나중에 바로의 궁전에 들어가서 초중고대학교 전 과정을 거치면서 애굽의 온갖 태양신, 짐승신, 잡신들에 대한 신학만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아무 사람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여호와의 성호를 기억하고 그 하나님만을 믿는 신앙을 지켜낼 정도였습니다.
요게벳의 경우처럼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 역시 제한되어 있으며 절대로 실패해서는 아니 될 단 한 번의 기회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자녀들이 내 집에서 먹고 자랄 동안 우리는 이들이 평생토록 잊지 못할 신앙교육을 완전히 다 마쳐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경향교회 영아부와 유치부 주일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에 벌써 그들의 인격 속에 평생을 두고 절대로 지워지지 아니하도록 우리 부모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아이들의 귀에 '예수님, 하나님, 성령님'의 이름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자녀의 뒤꽁무니만 따라가거나 불신사회의 과잉교육 풍조에 휩쓸리지 말고, 우리의 소중한 아들딸들을 오직 이처럼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기관'인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교육에 최우선을 두고서 양육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자녀란 부모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기력의 시작'인 동시에 '축복의 기업'입니다. 그러니 그 자녀를 잘 키우고 바로 교육시키는 것은 부모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중차대한 의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속된 말이지만 정말 '자식 농사'를 잘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식을 키워 본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듯이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우리나라의 어느 유명한 기업가가 자기 평생에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 뜻대로 될 수 없었던 일 세 가지 중에 하나가 '자식'이었다고 말했을 정도인 것입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자녀들을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 밑에서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야말로 내 자녀의 진짜 부모인 '생명의 창주주'이시며 육신의 부모인 나보다도 훨씬 더 그들을 사랑하고 계시는 '아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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