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납되는 예배 (말 1:6-14) 믿음 13. 4. 7
[서 론]
불교 신앙의 중심이 절이라고 한다면 우리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예배입니다. 주일낮, 오후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 등... 예배가 없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예배란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의식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예배 속에는 ‘찬송과 말씀과 예물과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禮拜는 우리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신앙도 실패합니다. 교회의 부흥도 예배에 달려 있고, 개인의 축복도 예배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진정한 예배자가 되십시오. 축복을 받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온전한 예배자가 되십시오.
이 시간에는 예배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열납(기쁘게 받으심)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 론]
1.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요, 우리 인간을 지으신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계 4:11)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만든 우상(수공물)에게 절하지 말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합니다.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시 96:7-9)
예배의 첫 형태는 제사였습니다. 돌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제물(소, 양, 염소, 비둘기)을 죽여 태워 드렸습니다. 이 제사를 ‘번제’라고 합니다. 그렇게 동물의 제물을 바쳐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은 그 제물을 받으시고 응답해 주시거나,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자기에게 제사(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창 15:9) 또 야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창 35:1)
그래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거나,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모두 제사를 드리는 예배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고, 곧 예배를 받으시고, 예배드리는 자에게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① 노아를 보십시오. 노아가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1년 이상을 방주 안에 있다가 육지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땅에 나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창 8:20-21)
② 사무엘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불레셋 족속과 전투할 때 사무엘이 먼저 어린양을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삼상 7:9) 곧 하나님께서 큰 우레를 발하여 불레셋 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주셨습니다.
③ 다윗을 보십시오. 그가 인구조사를 한 일로 하나님이 진노하사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어갔습니다. 그때 다윗이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더니 하나님의 진노가 그쳤습니다.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대상 21:;26-27)
④ 솔로몬을 보십시오. 솔로몬이 왕이 된 후 신하들을 이끌고 여호와의 성막(성전)에 올라가 놋제단 위에 1,000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대하 1:6) 그랬더니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솔로몬이 구하는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광도 주셨습니다.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라’(대하 1:12)
이처럼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며, 또 예배하는 자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배드리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예배는 괴로운 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정말 복을 받습니다.
[멀린 캐더로스 목사가 예수님을 믿기 전의 이야기이다. 그가 어느 날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이끌려 반강제적으로 예배에 참석하였다.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불쌍하게만 보였다. “불쌍한 사람들, 바깥 세상의 재미있는 생활을 모르는 사람들이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창고에서 밤을 허비하려고는 하지 않을텐데”
찬송이 시작됐고, 그는 찬송가를 부르는 시늉이라도 내어야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귀에 바짝 대고 말하는 무거운 소리를 들었다. "너는 오늘밤 나를 믿기로 결심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그는 자동적으로 말했다. “뭐라고?” “반드시 늦고 말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릴까? 내가 헛소리를 들은 것인가?”
그러나 그 음성은 확실히 들렸다. “하나님이다. 하나님!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은 바로 나를 알고 계시구나.” 그는 섬광처럼 깨달았다. “왜 이전에는 그것을 알지 못했을까?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고백했다. “예, 하나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배 시간에도 찾아 오셔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거듭나게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배를 귀하게 여기십시다.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예배 받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예배자로 하나님앞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려는 열망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의 예배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2. 예배를 받지 않는 이유
그런데 하나님은 예배를 받기 원하지만 모든 예배를 다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도 있고, 거절하는 예배도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그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두 형제가 한 날, 같은 장소에서, 각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가인은 하나님이 자기 제사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몹시 분내며 안색이 변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창 4:6-7)]
오늘 읽은 말라기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 1:10)예배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왜 그들이 드리는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물을 올려놓는 제단이 문제입니까? 아니면 제물을 태우는 불이 문제입니까? 아니면 제단을 쌓는 시간이 문제입니까?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바치는 제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바치는 제물 때문에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성전 전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제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단 위에 올려 놓는 제물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흠없고 깨끗한 동물을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병든 것, 흠있는 것, 상한 동물을 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흠있는 것을 드리면 열납되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려거든 기쁘게 받으심(=열납)이 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가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너희는 눈 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있는 것이나 습진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이런 것들은 제단 위에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레 22:19-22)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동물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습니까? 흠없는 온전한 동물을 바친 것이 하나님이 기뻐할 수 없는 동물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8절을 보면 ‘눈 먼 것, 저는 것, 병든 것’ 을 드렸다고 했으며, 13절에도 ‘훔친 것, 저는 것, 병든 것’ 을 가져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8절) 지도자(높은 분)에게 그런 ‘눈멀고, 절고, 병들고, 흠있는 것’으로 예물로 드린다면 그가 좋아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지도자라면 그 예물을 받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예물 드린 자를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예물을 드리는 행위는 상대방을 멸시하는 행동이나 다름없습니다.
그처럼 하나님도 그런 제물을 바치는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말 1:13)
그런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향해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① 악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8절) ② 더러운 떡을 바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7절) ③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6절) ④ 저주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흠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14절)
하나님은 그런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도리어 책망하십니다. ‘보라.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제물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말 2:3)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도 가인처럼 책망과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예배라고 다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더러운 떡’을 드리는 예배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시며, 나의 예배를 받지 않으시며, 도리어 책망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예배를 한번 돌아보십시다.
3. 나 자신이 제물
오늘의 예배는 예전의 제사처럼 더 이상 동물로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제사법을 페지하셨습니다. 만약 지금도 동물의 제물로 제사를 드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동물들이 매일 죽어 동물의 씨가 마를 것입니다. 그리고 동물애호가들이 매일 피겟을 들고 항의할 것이며, 법적으로도 시비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젠 동물의 제사를 폐지하셨습니다. 오직 그의 아들 예수님을 모든 인간을 위한 영원한 한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희생하여 영원한 한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우리는 다른 동물을 제물로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동물을 제물로 삼아 드리는 제사 예배는 사라졌습니다.
그럼 오늘의 예배에서는 제물이 사라졌을까요? 아무런 제물도 없이 예배를 드리면 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일이라면 무엇인가 드리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흔히 헌금(예물)을 제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예배에 있어서 제물은 돈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 자신을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나를 동물처럼 피흘려 태워 죽여서 드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희생제물의 제사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끝났습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제물처럼 드리라는 것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거룩한 산 제물’ 이라는 것은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친 ‘흠 있고, 병들고, 눈먼 제물’이 아니라 ‘흠 없고 깨끗한 제물’을 말합니다.
이제는 예배자인 내가 거룩한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내 자신을 흠없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예배자를 보고 예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배자인 내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렇게나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나의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내 자신을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예배를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거룩한 산 제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예배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아버지인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말 1:6)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공경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흠있는 제물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면 그런 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방법은 바로 내 자신이 예배 시간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을 만날 때는 시간을 꼭 지킵니다. 늦게 간다는 것은 상대방을 공경하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배 시간을 지키는 것이 나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방법입니다. 늦게 예배당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거룩한 제물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과 같습니다.
② 앞자리부터 앉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기장에 가거나, 무슨 공연을 보거나 할 때 잘 보려면 앞자리로 갑니다. 그래서 앞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합니다. 예배자도 앞자리에 앉기를 사모하는 것이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방법입니다. 보통 ‘앞자리를 금 자리요, 뒷자리는 동 자리라’ 고 말합니다. 앞에 앉아야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록펠러의 어머니가 그에게 남긴 신앙의 유언에 보면 ‘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자리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뒷자리는 도망가는 자리요, 불평하는 자리요, 구경하는 자리요, 시험드는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뒷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말고 앞자리에 앉는 것이 나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일이 됩니다.
③ 몸가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동물은 죽습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예배자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옆 사람과 잡담>을 삼가해야 합니다. 예배시간에는 옆 사람과는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휴대폰 사용>을 금지해야 합니다. 공부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면 공부 분위기를 깨고, 공부도 못합니다. 그래서 학교에 가면 휴대폰을 거두었다가 집에 갈 때 줍니다. 예배시간에도 휴대폰을 끄고,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며 그 자신이 거룩한 제물이 되지 않습니다.
또 <졸지 말아야 합니다> 닭이 졸듯이 예배시간, 특히 설교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가끔 피곤해서 졸 수 있지만 자주 존다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병든 짐승의 특징은 자주 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졸면서 은혜 받을 수 없습니다.
졸면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합니다. 졸고 있는 마음밭에 말씀의 씨가 떨어져서 예배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예배시간에 졸면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졸고 있는 교인 1,000명보다는 눈을 똑바로 눈을 뜨고 말씀을 듣는 100명의 교인이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실 것입니다.
[죤 웨슬레 목사님은 친절하고 인자하시지만 설교시간은 엄위하셨습니다. 어느 예배 시간에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교인들 중에 몇이 졸고 있었습니다. 입을 벌리고 머리를 들고 조는 사람, 머리를 숙이고 자는 사람들이 있었다. 목사님은 설교를 하다가 안타까웠습니다.
자는 사람들을 볼 때 가슴이 답답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갑자기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 "불이야! 불!"
그러자 교인들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놀라 눈이 동그랗게 되었습니다. 잠이든 교인들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불이라니, 어디에 불이 났습니까?" 어떤 교인이 소리쳤습니다. 교인들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펴보았지만 연기도, 불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웨슬레 목사님은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지옥의 불을 말하는 것입니다. 설교 도중에 잠을 자는 사람들이나, 정신없이 멍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이 가게 될 지옥불 말입니다." 그제야 교인들은 정신을 가다듬어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④ 예배에 동참해야 합니다.
예배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온 신자이지, 예배를 구경하러 온 관광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배순서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함께 찬송을 부를 때는 함께 열심히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벙어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함께 기도할 때도 함께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묵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함께 말씀을 들을 때 ‘아멘, 아멘’으로 화답해야 합니다. ‘아멘’은 하면 할수록 마음에 은혜가 되고, 예배가 살아나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마귀가 물러갑니다. 예배에 동참하지 못하고 구경꾼이 된다면 거룩한 산 제물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려야 제물은 동물이 아니라 예배자인 나 자신입니다. 내 자신이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내가 거룩한 제물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은 내가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너희가 이러한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말 1:13)
[결 론]
성도 여러분, 우리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예배입니다. 그러기에 예배는 우리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신앙도 실패합니다. 교회의 부흥도 우리의 예배에 달려 있고, 개인의 축복도 예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아무렇게나 예배에 참석한다고, 무조건 예배를 드린다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는 받지 않으시고, 제발 그런 예배는 안드렸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노라.’(10절)
하나님은 우리가 깨끗한 제물을 갖고 예배드리기를 원하십니다.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11절) 그 깨끗한 제물(거룩한 제물)은 바로 내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내 자신이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은혜를 더하여 주십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곧 열납하시는 예배를 드리도록 힘을 씁시다. 내 자신을 깨끗하고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십시다. 하나님이 거절하는 예배가 아니라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십시다.
내가 어떻게 하면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예배가 살아나면 교회도 살고, 가정도 살고, 나 자신도 삽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되십시오. 진정한 예배자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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