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특징, 하나님 자원

하나님아들 2014. 3. 1. 10:40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특징, 하나님 자원


우리의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중심의 삶입니다. 성경은 창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은 창조주요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피조물된 우리는 창조주 되신 하나님의 공급으로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오 인간은 피조물이기에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살 때 하나님의 모든 생명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보호, 인도, 평강과 안식, 물질의 풍요등 하나님의 모든 생명과 복이 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하나님을 떠날 때 즉,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게 될 때 거기에는 하나님의 공급이 중단됨으로 철저한 결핍이 시작됨을 살펴보았습니다. 생명의 결핍인 죽음이, 사랑의 결핍인 미움이, 건강의 결핍인 미움이, 평안과 안식의 결핍인 두려움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 중심, 자기중심적인 삶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에 나타난 특징: 1)하나님 자원 2)하나님 목적 3)하나님 방법

자기중심적 삶의 특징: 1)자기자원 2)자기목적 3)자기방법

                

                하나님 중심적인 삶과 자기중심적인 삶의 특징

           하나님 자원의 삶

             자기중심적인 삶

자기자원(율법주의, 자기 자원의 사역)

하나님 자원(은혜에 의한 삶, 믿음에 의한 삶

자기목적(기복신앙, 자기영광)

하나님 목적: 하나님 영광

(하나님과의 친밀함, 하나님 나라)

자기방법(인본주의

하나님 방법(하나님 지혜, 성령에 의한 삶)


하나님 자원, 자기자원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특징 첫째는 하나님 자원으로 사는 삶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 자원으로 사는 삶입니다.


Ⅰ.하나님 자원으로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


1.십자가의 복음에 토대한 삶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의 복음은 십자가에 관한 교리가 아니라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으로 산다는 말은 살아계신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매순간 모든 일에서 신뢰하며 사는 삶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원으로만 가능합니다. 즉,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공로만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 (기도응답도, 하나님의 은혜도..)


마22:1-14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 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러분! 보세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은 오직 십자가의 공로로만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자기의 행위를 자기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문제가 뭔지 아세요? 반복적으로 넘어지는 자기의 생활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열심히 합니다. 봉사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배후에 보상심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라도 열심히 해야 지난날의 과오를 주님께서 덮어주실  것 같아서입니다.

그러나 적당히 타협합니다. ‘아니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렇게 말하면서 적당히 선을 그어놓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나가려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의 자원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기에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해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겁니다.


2.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도 하나님 자원, 즉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말씀에 기초해야합니다. (인생사용설명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앙은 단순하게 말씀에 의한 삶이 아니라 말씀에 기초한 성령에 의한 삶입니다.


계시의 3단계

1단계: 역사적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실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인류 역사 속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으키신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계시의 2단계: 성경에 나오는 사실들은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들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알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사건만 가지고는 하나님께서 그 사건을 통해서 무슨 일을 하신 것인지 그리고 그 사건의 참다운 의미는 무엇인지 등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계시의 3단계: 성령의 조명입니다. 성령의 조명은 성경이 말하는 실제를 각 사람이 성령의 비추심으로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예로 들어보십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 가셨습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그것이 우리의 죄를 위함이며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우리들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성령의 도움으로 성경이 말하는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 분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1)성령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 수 입니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여기서 하나님을 아는 것도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구원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이 오직 성령으로만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2)성령은 우리의 성화를 위해 필수 입니다.

성화는 우리의 노력으로 일구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보는 만큼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그런데 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3)성령은 우리의 사역을 위해 필수입니다.

우리의 사역은 우리의 임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자신의 일을 이루시는 것이 우리의 사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예) 예수님의 예

요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요8:28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요12: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요14:10-11"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하면

1.하나님께서 일하신다.

2.예수님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3.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본다.

4.예수님은 그것만 행한다.

5.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자기의 하시는 일을 보이신다.


사도바울의 예

사도 바울은 성경에 나와 있는 어떤 원리를 따라 최선의 노력을 다해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성령을 통해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행13:1-3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행16:6-10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행20:22-23 "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4)성령은 우리의 예배를 위해 필 수입니다.

예배의 주관자는 성령입니다. 예배는 우리들이 임으로 정해놓고 순서를 그저 매끄럽게 진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빌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참다운 기독교인의 특징 중 하나로 성령으로 예배하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여기 ‘섬기다’라는 단어는 ‘예배하다’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NIV 성경은 그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예배는 성령께서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손처럼 인도하시는 대로 다양한 은사들이 나타나는 예배였습니다. 거기에는 즉흥성이 있었습니다.

고전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Ⅱ.우리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기 위해선

철저한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존재임을 내게 선함이 하나도 없음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선함이 내게 하나도 없음을 ,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즉 내가 빵점인 것을 철저하게 깨달아 알아야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전환이 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그들은 하나님을 열심 찾은 것 같지 않습니다. 다만 창4장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은 때가 에노스 때부터라는 사실입니다.


창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기 ‘에노스’의 뜻은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하나님은 무한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을 찾게 되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존재였습니까?

엡2:1-3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내게 선함이 하나도 없음을 인식하게 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인식하게 될 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또한 나의 궁핍, 결핍이 내가 하나님을 떠나 내 중심으로 살았던 결과임을 인식하게 될 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어떤 존재임이 잘 인식이 되던가요? 잘 안되던가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기 위해 광야라는 것을 사용하십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 중 하나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자원으로만 사는 법을 가르치시기 위해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법을 가르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하나님께서 광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가장 주된  목정 중 하나는 자기자원으로 사는 거짓신앙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법을 훈련시키기 위함입니다.


신명기 8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목적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이는 너를 낮추시며”라고 나옵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통해 겸손하기를 원했습니다.

3절을 읽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위 말씀은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인용하셨던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이 구절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영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하고 육신은 양식을 먹어야 한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방금 설명한 의미 그 이상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그곳으로 인도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알다시피 광야라는 곳은 자기 자원이 없는 곳입니다. 자기 것으로 살려고 해도 살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는 자기 자원이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리로 인도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주리게 하시고 목마르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의 자원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다루심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광야로 반드시 인도하십니다. 무엇하기 위하여? 우리를 다루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만이 힘이시며, 하나님만이 생명이심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광야한 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인도하신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을 똑 같이 환경을 통해 다루십니다.


괜히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지금 힘들게 하고 있나요? 하나님이 다루시고 계시는 손길입니다. 하나님이 다루시면 ‘내 편’이 없는 것같이 여겨집니다. 여기가도 저기가도 여러분을 힘들게 합니다. 이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과 부딪치면 상처만 받습니다. 그저 “아, 하나님이 지금 나를 다루시고 계시구나” 여기면서 즉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 가운데 즉각 서야합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생각하는 한, 가시 같은 사람들이 옆에 붙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아담적인 본성에 따라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루실 수밖에 없습니다. 아담적인 본성을 다루시기 위해 하나님은 이렇듯 막다른 골목으로 우리를 데려가시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들이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들통이 납니다. 믿음 없는 자신을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럼 언제 들통이나는 걸까요? 답은 광야입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 들어가 보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 여부가 긍방들통납니다.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자기에게서 믿음 없는 상태가 보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게 하십니다. 우리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들추어내십니다. 이처럼 광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좇아갈 때 반드시 거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 속에 우리들을 집어넣으십니다. 우리를 빚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법을 배우게 하심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정직성입니다. 정직하게 하나님을 대면하여 서야합니다. 하나님을 대면하면 할수록 이런 과정은 반드시 거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은 다 이 과정을 거쳤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어떨 때, 이 과정이 싫어 인간적으로 대처하려고 하는 버릇이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에이 그 인간 만나지 않으면 되는 거지. 마주치지 않도록 피해사자. 미친개한테 물렸다 셈치자,”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다른 편으로 도망가면 다른 사람이 당신을 괴롭힐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도망가서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광야는 도망사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부딪혀야 빨리 끝납니다. 직면해야 빨리 지나칠 수 있습니다. 도망가면 갈수록 또 다른 광야기 기다립니다. 대면하십시오. 정직하게 환경을 직면하십시오.


히5:7-9, 눅4:23-24에 보면 예수님도 친히 광야를 거치셨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도 광야를 거치셨습니다. 예수님 환경은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광야를 대면해야합니다.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다루심 앞에 직면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 선함이 없음을 보아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속에 선함이 없음을 동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럴 때라야 독생자의 십자가만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능력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유일한 처방임을 보는 것입니다. 넘어지더라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좌절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항상 깨어 있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보좌 앞으로 나아갈 때에는 매순간 십자가를 바라보게 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자기의 위치를 알게 됩니다.


십자가의 공로가 아니면 자신은 전혀 의로워 질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그동안의 어려움으로 인한 상처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온전케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사실을 바라보면서 치유됩니다. 관점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십자가를 이해하게 되면서 자유가 찾아옵니다. 이떤 혼돈이 닥쳐와도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끈을 붙잡게 되어 흔들리지 않고 놀라운 자유를 누립니다. 기쁨을 경험합니다. 승리를 경험합니다. 비록 환경이 막혀 있어도 실망이 되질 않습니다. 비록 지금은 잘 안되지만, 하나님은 완전하시니까,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분임을 확인하며 하나님이 길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일회용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의지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십자가 입니다.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매순간 의지 하는 것입니다.

출처 : 둥근달
글쓴이 : 둥근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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