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30:1-6 겸손한 자의 신앙고백
오늘의 본문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라는 말씀으로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 잠언의 부록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 봅니다.
이 30장을 쓴 사람이 아굴인데 아굴이 누구인지에 대한 기록은 자세히 말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어느 시대의 사람이라는 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왕상4:30절에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의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도 뛰어난지라"라고 하신 것을 보면 아굴은 분명히 솔로몬과 같은 당대의 유명한 현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디엘과 우갈이라는 사람이 나오고있는데 아마도 아굴의 제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굴의 잠언 집을 편집하는데 협력한 사람일 것으로 봅니다.
"이디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우갈"이라는 이름은 "전능하신 자" 또는 "강함"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이름들을 가만히 음미해 보면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디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즉 임마누엘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우갈"이라는 이름의 뜻은 "전능하신 자, 강함"이라는 뜻인데 전능한 자가 하나님 말고 또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전능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이름들을 많은 주석가들은 메시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7:14절에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하셨고,
9:6절에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예언하는 말씀인데 뭐라고 하십니까?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신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하심으로서 메시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디엘과 우갈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뜻으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겸손한 신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겸손한 신앙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신앙입니다.
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아굴은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기 전에 자기는 인간으로서 미련함과 약점과 결점을 가지고 있는 자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몸가짐입니다.
우리는 잠언의 교훈을 지금 55회나 살펴보면서 들은 말씀입니다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비굴해도 안되지만 교만하면 더욱 안되는 것입니다.
연약하고 약점과 결점 투성이인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겸손하지 않고는 안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 아굴과 같이 "나는 짐승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자기의 부족을 깨닫는 것 그 자체가 무한한 지혜를 얻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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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그러했습니다. 창18:27절에서 자기를 티끌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소돔 성의 롯을 건져
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봅니다.
바울은 고전15:8절에서 자기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엡3:8)라고 했습니다. 성도 중에서도 지극히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딤전1:15절에서는 자기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까지 하면서 자기를 낮추었습니다.
본래 그는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이름 뜻은 큰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후에 그의 이름은 바울이 되었는데 바울이라는 뜻은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다니엘도 자기를 낮추면서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이 응답으로 내려왔습니다. 미래ㅡㄹ 알게하여 주었습니다.-단9장
느혜미야도 겸손하게 금식하면서 모든 죄를 아뢰면서 기도하였을때 하나님의 기적적인 일이 나타났습니다.(느1장)
사도요한도 자기가 죽은자같이 엎드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려의 계시가 임하여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계1:17-19)
겸손은 바로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기도하되그 속에 자기의 부족과 죄를 고백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리고 간절함의 구함이 들어 있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셨는데 바리새인들은 거만하게 기도합니다.
큰 소리로 기도합니다.
마치 자기만이 의로운 자처럼 기도합니다. 자기의 행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나는 십일조를 했습니다. 나는 금식을 했습니다"
자기는 말씀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을 마치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옷에 붙이고 다닙니다.
예수님께 칭찬을 들었습니까? 오히려 칭찬이 아니라 외식자라고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세리의 기도하는 것을 보시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는 너무나 더러운 죄인 줄 알기에 감히 가까이도 나오지 못하면서!
감히 얼굴을 들지도 못하면서!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할뿐이었습니다.
누가 더 의인이라고 하셨습니까? 세리가 더 의롭다고 하셨습니다.(눅18:13,14)
고전1:28,29절에 하나님께 부름 받은 자들도 한결같이 지혜 있는 자가 아니요, 총명 있는 자가 아니요, 강한 자들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신 것은 이 세상에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는 근본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며 하나님의 본체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셨고,
사람의 모양이 되셨으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리고 끝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겸손히 자기를 낮추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분명히 보상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만하여 징계 받고 책망듣기 보다는 겸손히 자기를 낮춤으로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여 주시는 보상을 받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자연을 찬양하는 신앙입니다.
4절/ 읽겠습니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무슨 말입니까? 이는 놀라우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 이성으로 무한하신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은 숨어 계신 하나님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또 멀리 계신 하나님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멀리 계시지 아니하시고 가까이 계시며 숨어 계시지 아니하시고 우리 앞에 계신 분이십니다.
여러분 대 자연을 한번 보십시오! 하늘을 보십시오! 그리고 부는 바람을 보십시오!
그 광활한 바다와 흐르는 시내, 끝없이 펼쳐지는 땅!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요, 이것들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숨결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바라보고 바위를 바라보고 큰 나무를 바라보고 두려워 그 앞에 절하였습니다.
이것들 속에서 하나님의 신성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 본 것입니다.자연을 찬양하기보다 그자연을 만드신 주인을 찬양해야합니다.
그 나무와 돌과 산 자체에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을 지으신 우리 하나님이 위대하시기에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앞에 경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람과 파도도 우리 주님께 순종하지 않습니까?(눅8:22-24)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가시지 않으셨습니까?(막6:48)
자연을 지으신 분이 자연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고 섭리하십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아름답게 집을 지었을지라도 그 집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 집을 설계하고 지은 자가 위대한 것처럼! 나무와 돌과 산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위대하시며 전능하신 고로 그분을 향하여 경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 있든지 하나님의 숨결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계시지 아니한 곳은 없는 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셋째. 말씀을 높이는 신앙입니다.
5,6/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 시니라,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여기 아굴은 자기의 제자들의 질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도저히 다 설명 할 수 없으니 너희가 말씀을 찾아가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보거든 가기에 무엇을 더하든지 빼든지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자연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충분치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특별 계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특별 계시인 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데 이 두 계시를 다 보여 주어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에는 의심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하는 책이 아니라 받아드리는 책입니다. 믿는 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뭐라고 하셨습니까?
시12:6절에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鍛鍊)한 은 같도다" 무슨 말입니까?
흙 도가니에 일곱 번을 단련하였다는 말씀은 불순물이나 찌꺼기가 추호도 섞이지 아니했다는 말씀입니다.
시119:140절에 보면 "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심히 정미 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내 맡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방패가 되시며 소망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따라가면 어떤 어려움 가운데 들어갈지라도 참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시며, 힘이 되시며 환난 중에 큰 도움이 되시기 때문입니다.(시46:1-2)
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계시로서 충분합니다.
여기에 더 무엇을 더할 필요도 없고, 불필요해서 뺄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큰 일 납니다.
그런 자를 하나님께서 저주하시겠다고 합니다.(계22:18,19)
그리고 알려 주시는 것만 만족해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알려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성급하게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말씀하시지 않는 것을 말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가끔씩 머리를 들고일어나는 이단자들의 주님 재림의 미혹을 조심해야 합니다.
주의 재림의 날과 시를 계시 받았다고 하면서 순진한 성도들을 미혹하고 어지럽히는 자들이 있는데 큰일 낼 사람들입니다.
성경이 거기에 대해서 침묵하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 날과 시를 알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누가 안다는 말입니까?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특별 계시인 성경을 주신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어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요20:30-31)
부디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주셔도 더욱 주를 사랑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처럼 부할 때든지 가난할 때든지 일체의 비결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주님이 주시는 능력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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