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십자가에서 만나는 예수
이사야50:4~9
들어가는 이야기
천재로 불리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천재답게 그의 인생은 항상 오르막길이었습니다.
결국 주위의 기대대로 미국 최고의 하버드대학 교수가 됐고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수많은 학생들과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는 인기 있는 교수였을 뿐 아니라 그가 집필한 30여권의 책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는 인기 있는 저술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명예와 부와 성공을 다 거두는 세상에서 제일 잘 나가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폭탄선언을 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직을 포기하고 정박아시설로 들어가서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안타까워하면서 그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오르막길 인생은 성공과 칭찬에 가려 예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낮은 곳에서 예수를 만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는 인생의 말년을 정박아시설에서 장애인들의 용변 식사 목욕 등 자질구레한 일에 헌신하다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사람이 그 유명한 헨리 나우엔 교수입니다.
인생의 오르막길에서는 성공과 칭찬에 가려 예수가 보이지 않았다는 이 말을 우리는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어느 마을에 잘 지어진 아름다운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 교회의 벽에는 선명한 글씨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는다.” 는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건물 벽에 담쟁이넝쿨이 자라나면서 벽에 쓰인 글을 가리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십자가에 못 박힌” 글이 가려지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만 보였습니다.
얼마 후 담쟁이넝쿨이 더 자라나서 이번에는 “그리스도”를 가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남은 말은 “우리는 믿는다.”는 말뿐이었습니다.
끝내는 이 담쟁이넝쿨이 벽을 모두 가려 원래 있던 글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이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풍자는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의 현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성공과 물질의 풍요라는 담쟁이넝쿨에 의해 교회에서 십자가와 고난의 예수는 가려지고 있고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입니다.
믿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는 종교입니다.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신 그리스도가 빠지면 그것은 진정한 기독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종교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살아있습니까?
아니면 그 예수님은 다 가려지고 다른 엉뚱한 것들만 나타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평화일 것입니다.
지금도 한반도에서 전쟁의 기운이 고조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만 전쟁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이 땅에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든지 평화가 유지되어야 하고 전쟁의 소문은 사라져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소원이요 뜻입니다.
그런데도 이 땅에서는 왜 그렇게 우리가 원하는 평화는 정착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전쟁은 많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우리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주님의 모습 속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과 같이 나귀새끼를 타는 사람이 점점 적어지고 반대로 늠름한 말을 타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힘이 없어 잘 가지 못하고 뒤뚱거리는 멋없는 새끼나귀를 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런 나귀보다는 늠름하고 멋있는 말들을 타고 싶어 합니다.
좋은 말을 타고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하고, 멋있게 보이려고 하고, 가능하다면 남을 이기려고 합니다.
보이는 명예, 물질, 권력 그것이 성공이요 그것을 얻기 위해서 남을 이겨야 된다는 무한 경쟁의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이 세상은 절대로 평화가 정착될 수 없습니다.
말을 버리고 나귀를 타는 예수님의 모습을 배울 때만이 이 세상은 평화의 삶으로 정착될 수 있습니다.
오늘 고난주일,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신 주님의 그 고난과 겸손과 낮아짐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이고 이것이 작은 자들의 벗이 되는 것이며, 이런 모습이 있을 때 이 땅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본문 속으로
오늘 본문은 이사야서에 나타난 고난의 종에 대한 4가지 노래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누구이든 간에 ‘나’는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고 그가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는 6절 말씀은 글자 그대로 주님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며 챔 뱉음을 당하고 갈대에 머리를 맞으면서도 묵묵히 그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어찌 괴롭지 않으며 어찌 부끄럽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주님은 반항하지 않고 악을 쓰지 않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로 대표되는 사람은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주셨을 뿐 아니라 아침마다 자신의 귀를 깨우쳐서 알아듣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깨우치시고 무엇을 알아듣게 하셨다는 말씀입니까?
6절 이하에 나오는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구원방법임을 깨우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했을 때 다른 방법이 아닌 고난의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었지만 유독 고난의 방법을 택하신 것은 이것이 진정한 구원의 방법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주님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서 구유에 누여졌던 주님은 가장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셨습니다.
악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는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인기 있는 물질적인 방법과 기적적인 방법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는 방법을 거부하시고 십자가의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가 하나님의 뜻이며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위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내가 죽어야 할 곳에서 주님이 대신 죽으신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어야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그의 갈라디아서 강해에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즐거운 교환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용서를 받았습니다.(사53:4-5)
예수님이 대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낫게 되었습니다.(사53:5)
예수님이 대신 죄를 지심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습니다.(사53:6,10-11)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히2:9)
예수님이 대신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습니다.(고후8:9)
예수님이 대신 수치를 당하심으로 우리가 영광에 이르게 되었습니다.(마25:35-37)
예수님이 대신 거절당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되었습니다.(마27:45-51)
예수님이 대신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갈3:13-14)
우리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며 얼마나 큰 능력이 되는가를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여서 나의 축복으로 삼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믿음이라는 자산은 너무나 어마어마합니다.
가장의 능력만큼 가족들이 풍성함을 누리는 원리와 같습니다.
자녀가 가출을 하면 자신의 모든 삶을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지만 집안에 있으면 아버지의 능력만큼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축복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죽음은 영생으로 저주는 복으로 가난은 부요로 위기는 기회로 갈등은 화목으로 상처는 치유로 죄책감은 자유함으로 염려는 평강으로 열등감은 자존감으로 우울증은 유쾌함으로 변화될 줄 믿습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축복을 누리는 자는 이 십자가의 축복을 전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화목의 역할은 이 십자가의 축복을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를 통한 즐거운 교환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 십자가의 정신과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땅에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십자가의 정신이 실천되는 데에 있습니다.
이 땅에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도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섬기는 십자가의 정신이 구현되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칼을 가지고 정복하는 자는 더 날카로운 칼에 정복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전쟁은 전쟁을 낳지 그것으로 절대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죽고 내가 낮아지고 내가 희생할 때 평화가 이루어지고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10:45)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이 실천되어질 때 이런 예수님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있는 곳에 구원의 역사, 평화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방법이 하나님의 뜻임을 아신 주님은 기꺼이 그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6절 말씀에 나타난 그대로 주님은 온갖 고난 속에서도 기꺼이 묵묵히 그 고난을 참고 견디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십자가가 하나님의 뜻이며 고난이 하나님의 축복을 이루어가는 방법이 됨을 믿으신다면 고난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그 고난을 잘 견디고 참고 이기며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실 주님을 믿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가 고난 받을 때 “주 여호와께서 우리를 도우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의 은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고난을 감당한 자에게 승리와 부활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 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히12:2)
십자가 다음에는 부활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고난이 있어야 합니다.
고난 없이 부활이 없고 고난 없이 영광이 없습니다.
주님을 위한 고난에 참여하게 될 때 여러분들에게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나가는 말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안디옥교회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말인데 이 말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그의 말씀과 그의 정신과 그 분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이 그렇게 살았기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이 보여야 하고 예수님의 정신이 보여야 되고 예수님의 가치관이 보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제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고 예수님을 제대로 닮았다고 할 수 없고 예수님을 따라간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스코틀랜드 가정의 표어 가운데는 “봉사하기 위하여 구원받았다”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고침 받은 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공부하고 우리가 성공하는 것도 주님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섬기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잘 섬기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고 잘 섬기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고 잘 섬기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성패는 얼마나 섬기는 생활을 잘 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예수님의 삶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정신은 보이지 않고 예수님의 가치관이 보이지 않고 예수님의 섬김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섬겨야 할 대상을 생각하기보다 나를 섬겨줄 사람을 찾고 계산하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겸손과 낮아짐과 섬김을 하기 보다는 높아지고 섬김을 받으려 하고 십자가의 정신과는 먼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 물론 보장된 미래와 지위를 포기하거나 다른 사람을 위해 섬기는 자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믿고 따르고 그 가르침을 받아 살아가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 자기 자리를 내놓는 일, 그래서 나를 버리고 너를 살리는 일이 십자가의 정신이며 삶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정신을 깨닫고 실천할 때 우리 사회는 훈풍이 넘치는 행복한 삶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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