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으로 세워가는 신앙 시133:1-3, 살전5:9-11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에 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형은 나이가 들어 결혼하였으므로 아내와 자식까지 두었고, 동생은 아직 미혼자였습니다. 두 형제는 하나같이 아주 부지런한 농군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물려받은 재산을 똑같이 분배하였습니다. 형제는 수확한 사과와 옥수수를 똑같이 나누어 각각 자기 몫을 각자의 곳간에 저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밤이 이슥해지자 동생은 '형님은 딸린 식구가 많아 식량이 부족할 터이니, 내 몫을 좀 덜어 드려야지"하고 형님 곳간으로 많은 양을 옮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형은 형대로 '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으니 늙어서도 별 걱정이 없겠지만 동생은 혼자 몸이니 미리 저축해 놓아야 할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는 자기 몫을 떼어 동생 곳간에다 옮겨 놓았습니다. 날이 밝아 형제는 각기 자기 곳간을 가보니 웬일인지 자기 몫들이 조금도 줄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다음날 밤에도 또 그 다음날 밤에도 반복되어 사흘 밤이나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두 형제는 전날 밤과 같이 자기 몫을 떼어 상대방의 곳간으로 나르다가 그만 중간에서 서로 부딪쳤습니다. 그래 두 형제는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 형제는 뜨거운 형제애에 그만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는데, 이 울었던 곳이 예루살렘의 가장 고귀한 장소로 지금도 알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으로 연합 된 모습은 언제나 누가 보아도 흐뭇하고 아름답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연합으로 세워가는 신앙”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성도는 주님과 연합 된 자들입니다.
1)주님 안에 거할 때 연합이 됩니다.
신약 본문 10절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했습니다. 예수님은 주님과 성도와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로 비유하셨습니다. 요15:4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하셨습니다. 성도는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즉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한다’는 말은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 안에서 편히 쉬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와 배 속의 아이가 탯줄로 연결되어 자양분을 공급 받는 것처럼 주님 은혜와 사랑을 공급 받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는, 밖에 버려 말라지게 하고 불에 던져 태워버리듯, 예수님께 온전히 거하지 아니하는 성도들은 주님과 상관없이 밖에 있는 자들이요, 천국잔치에 초청받지 못하고 밖에 버려져 슬피 울면서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2)항상 주님 의지하고 기도하는 자로 삽니다.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신 후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어머니와 태중의 아이가 계속 교감을 나누는 것처럼 성도가 주님 안에서 은혜와 사랑, 자양분과 수분을 공급 받고, 열매 맺는 것은 기도와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도 하나님께 늘 기도하셨던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 형편을 알기 때문에 당연히 해주시겠지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호흡처럼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되, 하나님 말씀을 알고, 말씀대로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 이루리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아는 자는 당연히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를 할 것이요, 그 기도의 응답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는 덕과 유익이 되고, 자신에게는 은혜와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성도는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주님과 연합 될 수 있습니다.
3)항상 주님 말씀을 따라 행하기를 힘쓰는 사람이 됩니다.
주님과 연합 된 성도는 에녹처럼 항상 동행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게 됩니다. 마음과 생각에 주님의 마음을 품고, 말씀의 인도 받는 삶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전도의 열매를 맺고, 좋은 영향을 줍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 된 생각입니다. 사실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은 혼자 고립된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본을 보고 자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본이 자녀의 생각과 언어 그리고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결국 자녀들은 부모에게서 배운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임 전도사가 교육 컨텐츠 협동조합 이사장의 책임을 맡고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상담, 컴퓨터 중독, 성교육에 대한 강의를 하느라 바쁘게 다니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아내가 직장에 다닐 때 다동 낙지 골목을 지나면서 술 취한 사람 만나면 배를 쓰다듬으며 아가야 너는 저런 사람이 되지 말고 저런 사람들을 교화 하는 사람이 되라고 태교하곤 했는데 그대로 되었다고 말합니다. 성도의 기도와 말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줍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선 사람의 본을 보며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전도하면 전도 받은 사람도 기도를 많이 하고, 전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전도된 사람은 전도를 많이 하는 것을 교회 안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좋은 것도 본이 되지만 좋지 않은 것도 본이 됩니다.
우리 모두 주님과 연합 된 자의 모습으로 평소 언행을 통해 좋은 신앙의 본을 끼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성도는 믿음의 형제들과 연합 된 자들입니다.
1)성도는 주님 안에서 모두 한 형제, 자매들입니다.
다윗은 구약 본문 1절에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형제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이 시편이 쓰여 진 배경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불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긴 후 법궤(언약궤)가 20년 동안 기랏여아림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 무장한 후에 법궤를 레위지파와 제사장을 앞세워 다윗 성 예루살렘으로 정중히 모셔왔습니다. 그 법궤 안에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 돌판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던 만나, 그리고 아론의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법궤는 이스라엘 민족을 지키시고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그런데 20년 동안이나 법궤가 기랏여아림에 방치되어 있다가 이제 다윗 성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리하여 그 기쁨에 감격한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기쁨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흩어졌던 이스라엘 12지파가 하나님 앞에 다 모였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격차, 유, 무식, 불문하고 모든 이스라엘이 사람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리고 다함께 기뻐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윗은 형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12지파를 이룬 열두 형제들은 4명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배다른 형제였는데 서로 온전한 형제처럼 지내지 못했습니다. 서로시기하고 미워하며 갈등 속에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 야곱은 가슴 아픈 고통과 슬픔을 격어야 했습니다. 이같은 불화는 온 가족의 아픔과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고 이제 흩어졌던 12지파가 다 그 앞에 모였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다윗은 이 모습을 보고 너무도 기쁜 나머지 춤까지 덩실 덩실 추면서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역어진 우리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사랑으로 연합 될 때 주님이 기뻐하시고, 사람들께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2)서로 존중히 여기고 격려해야 연합하게 됩니다.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상대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가치로 상대를 볼 때 서로 존중히 여길 수 있습니다. 가정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흔히 역기능(逆機能) 가정 혹은 순기능(順機能) 가정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여기서 역기능과 순기능은 자녀들의 수, 경제적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부부관계, 부자관계, 형제자매관계가 깨어져 있으면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요로워도 그 가정은 역기능 가정입니다. 반면에 가난하더라도 온 가족이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가정은 순기능 가정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기능의 역동적이고 성장하는 교회는 성도의 수, 경제력, 건물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성도와의 관계, 교역자와 성도와의 관계, 성도와 성도와의 관계가 얼마나 역동적이고 아름다우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입니다. 상대를 빈부귀천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으로 보고, 하나님의 자녀로 보고, 천국의 상속자로 보는 것입니다. 상대의 배경과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서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대하면 가정은 순기능적인 가정이 될 것이고 교회는 순기능적인 교회가 될 것입니다.
상대를 존중히 여기는 마음에 격려하는 말과 행동이 따르게 됩니다. 격려 자가 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격려란 단어는 익숙한 말이지만 실제로 찾아가서 격려하는 것은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격려하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격려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격려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도 격려를 받으면 더 힘이 나고 더 큰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카페에 올린 글을 보고 “감사 합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새 힘을 얻었습니다.” 등등의 댓글을 보면 큰 힘이 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 격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격려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3)서로 사랑으로 용서해야 연합하게 됩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용서하고 덮어줍니다. 주님은 형제가 우리에게 잘 못했을 때 몇 번까지 용서해야 하느냐는 베드로의 질문을 받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무한히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요셉이 애급에서 총리가 된 다음에 자기를 노예로 팔아버린 형제들이 흉년을 만나 양식을 구하러 왔을 때 결국 형들이 자기들이 노예로 판 동생이 애급 총리가 된 사실을 알고 보복을 당할까봐 두려워 할 때 요셉은 오히려 형들을 위로하고 가족들을 부양하는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대학생선교회 CCC를 운영하면서 한국교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신 고 김준곤 목사님의 실화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목사님의 가족이 다 공산당에게 끌려가서 갖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목사님의 눈앞에서 목사님의 부친과 아내가 공산당에게 맞아 죽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목사님도 너무 매를 많이 맞아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그 때 미군 함정이 나타나는 바람에 겨우 위기를 벗어나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급기야 김목사님의 가족을 죽인 공산당원들을 미군들이 잡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빵을 들고 미군에게 찾아가서 공산당원들에게 주고, 미군에게 사정사정해서 풀어달라고 하였습니다. 미군이 목사님의 간청에 못 이겨서 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공산당원들이 산 속에 들어가서 계속 게릴라전을 벌였습니다. 그 때 김목사님은 성경책을 들고 산 속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는 공산당원들을 찾아 들어갑니다. 그 결과 그들 공산당원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108명이 모이는 시골교회를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김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아버지를 죽이고 아내를 죽인 사람까지도 용서했던 것입니다. 그 놀라운 사랑의 힘으로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 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런 진정한 연합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3.이 연합을 잘 지켜가는 자에게 복이 임합니다.
1)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하나님 없이 나누는 사랑이나 교제는 그 수명이 길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깨지고 맙니다. 이해관계로 얽힌 사랑, 그래서 조건 부적이고 상대적인 사랑이나 교제는 오래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시고 나누는 사랑은 값지고 숭고합니다. 진정과 신령으로 교제하기 때문에 깨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교제와 연합은 그 결과가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 1-2에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했습니다. 출애굽기 29장을 보면 제사장을 세울 때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해 머리에 성유를 부었습니다. 그 기름이야말로 거룩한 제사장을 삼는 것이기 때문에 거룩하고 보배로운 기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기름은 얼굴로 흘러내리고 수염으로 흘러 내려 옷깃을 적시게 됩니다. 바로 그 장면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하고도 신령한 축복이 흘러넘치는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친히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든 인종, 신분, 빈부귀천,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이 한 형제자매가 되어 사랑의 교제와 연합을 이루게 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꿈꾸노라. 언젠가 흑인 소년 소녀가 백인 소년 소녀의 손을 잡고 형제와 자매로서 같이 지내는 날이 올 것을 나는 꿈꾸노라. 언젠가 피부 색깔이 아닌 인격에 따라 평가되는 그런 나라에서 사는 날이 올 것을 나는 꿈꾸노라"고 했습니다. 이 설교를 듣던 백만이 넘는 군중은 워싱턴 광장에서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저들은 형제가 연합하는 날을 소망하면서 통곡하며 울었던 것입니다.
2)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구약 본문 3절에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니” 했습니다. 여기 "거기서,"는 형제들이 연합하여 함께 거하는 곳을 말합니다. 성도가 연합하여 함께 거한다는 말 가운데는 누가 기쁜 일이 생기면 함께 그 기쁨을 나누고, 누가 슬픈 일을 당하면 함께 그 슬픔을 나누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머리가 둘 달린 아기가 있는데, 이 사람들 두 사람으로 쳐야 할까요, 아니면 한 사람으로 처야 할까요, 하는 문제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만약 한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다른 머리가 야 시원하다 하면, 둘은 두 몸입니다. 그러나 한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상대방의 머리가 같이 찡그리면 이는 한 사람이라는 교훈입니다. 다른 성도가 아플 때에 내가 아파하지 않으면 아직 한 몸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성도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내가 어려운 일을 당한 것처럼 함께 아파하고 고민하고 위해서 위로해주고 기도해 주는 성도는 이미 한 몸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런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연합이 있는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한 형제로서 사랑하는 그 자리에, 믿음의 형제들이 연합하고 동거하는 그 자리에, 믿음의 형제들이 예배하고 찬양하는 그 자리에, 믿음의 형제들이 친교하고 봉사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은 축복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3)주님과 함께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연합과 화합은 강자에게 굴종하거나 약자를 정복하는 것이 아닌, 사랑의 하나님을 정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합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입니다. 우리는 죄인들입니다. 죄의 비참한 모습 가운데는 분열, 부조화, 미움, 시기, 적개심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이기신 하나님은 다시금 조화를 가져오십니다. 그리고 모든 연합은 하나님으로부터 오고,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연합은 세상 그 어떤 것도 끊을 라야 끊을 수 없는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이고, 믿음의 형제자매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세상의 어느 누구도 깨트릴 수가 없습니다. 어떤 훼방하는 세력도 훼방 할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롬8:35-37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본문 시편에 나오는 연합이라는 말은 원어로 “야아드”라고 하는데 그 뜻은 일심으로, 한 마음으로 라는 뜻입니다. 동거라는 말은 “야솨브”라고 하는데 그 뜻은 “계속해서 거주하다.” 라는 뜻입니다. 한번만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함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상한 결혼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1달이고, 6개월이고, 1년이고, 살아보고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즉 동거해보고 계속해서 살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지내보고 자기에게 유익이 있으면 지내고 그렇지 못하면 가차 없이 떠납니다.
그러나 주님과 성도의 관계, 주 안에서 맺어진 성도의 관계는 세상 끝날 까지, 주님 오실 때까지 항상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참고 인내하며, 감싸고 덮어주며 아름다운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다가 주님이 예비하신 하나님 나라 영생에 참여하는 복을 받습니다. 구약 본문 3절에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복 중의 복은 주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는 영생의 복입니다. 우리 모두 영생에 참여하는 복 받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연합으로 세워가는 신앙”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성도는 주님과 연합 된 자들입니다. *주님 안에 거할 때 연합이 됩니다. *항상 주님 의지하고 기도하는 자로 삽니다. *항상 주님 말씀을 따라 행하기를 힘쓰는 사람이 됩니다.
♡.성도는 믿음의 형제들과 연합 된 자들입니다. *성도는 주님 안에서 모두 한 형제, 자매들입니다. *서로 존중히 여기고 격려해야 연합하게 됩니다. *서로 사랑으로 용서해야 연합하게 됩니다.
♡.이 연합을 잘 지켜가는 자에게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주님과 함께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이 되고, 형제자매로 연합이 되어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다가 다 함께 영생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3. 8. 4. 성산 교회.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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