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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믿음을 시험하라 (마 15:21~28)

하나님아들 2013. 8. 1. 16:52

믿음을 시험하라 (마 15:21~28)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이 시간에는 “믿음을 시험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믿음에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서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말했습니다. 대단히 경종을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음 믿음 하는데 믿음이란 용어는 왜 생겨났을까요? 믿음이란 말은 상대적으로 믿지 못할 일이 많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용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불신앙의 시험이 강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이방 땅 두로와 시돈으로 가셔서 가나안 여자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 딸을 고쳐주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여자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께서 그 믿음을 칭찬하신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가지고 얼마나 참 믿음에 섰는지 자신의 믿음을 시험에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그럼 참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1. 무시당해도 개의치 않는 것입니다.


22-23절에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가나안 여인은 그토록 기다리던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나가 예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귀신들린 딸을 고쳐 줄 것을 간구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무시를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무시를 당해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부르짖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무시당해도 피해의식을 갖지 않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초라한 현실을 보지 마시고 믿음의 눈으로 보세요. 여러분은 참으로 위대한 존재입니다. 상상도 못할 복을 받았어요. 대기업 사장 회장이 부럽습니까? 부럽다면 예수 잘못 믿은 것입니다.


 

일본의 위대한 신학자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는 고배(神戶)에서 첩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기생이었습니다. 그는 늘 기생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본처의 자식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왜 나 같은 것을 낳았느냐'고 늘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담 모퉁이에 기대서서 생을 비관하고 있을 때 북치고 나팔 불며 지나가는 구세군 전도 대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전도하며 외칩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가가와 도요히코는 물었습니다. “기생 아들도 사랑하나요?” “아무렴, 하나님은 어떠한 죄인이라도 사랑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당장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너무 좋아 어떤 멸시천대 핍박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후에 그의 글에 나타나듯이 '나는 기생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감격이 종종 나옵니다. 이런 비밀이 있기에 믿음의 사람들은 무시를 당해도 개의치 않는 것입니다.


2. 거절을 당해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나안 여자는 계속하여 예수님을 따라오며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소리를 지릅니다. 그 소리에 참다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그러자 주님께서는 상상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고 여인이 이방인이라서 그의 청을 들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곳까지 왜 오셨단 말입니까? 이방인이라고 무시할 것 같으면 이방 나라에 왜 오셨습니까? 사실은 여인의 믿음을 시험해 보신 것이지 거절하려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 아이를 고쳐주려고 이방인을 상대한다는 그 핍박 다 받아가며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여인이 다윗의 자손을 부르짖은 것을 보면 메시아이심을 확신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방인을 위한 메시아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여인은 거절을 당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보면 성도는 예수 안에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진리에 굳게 서야 합니다. 내 현실이 어떻든지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복을 받았다. 나는 승리했다. 삶은 내 현실을 거부해도 믿음 가진 우리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끝까지 진리에 서시기 바랍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한 치도 뒤로 물러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히10:38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눅18:1)고 억울한 일 만난 과부처럼 뒤로 물러서지 않고 나가는 것이 믿음이라 하셨습니다. 믿음은 이런 우직한 면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말은 믿지 못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의 포기하지 않는 삶이 유명합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링컨은 평생에 걸쳐 실패와 마주쳐야했습니다. 그는 무려 여덟 번이나 선거에서 패배했으며, 두 번이나 사업에 실패했고 또 신경쇠약증으로 고통 받았습니다. 링컨은 수없이 중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내가 걷는 길은 험하고 미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미끄러져 길바닥 위에 넘어지곤 했다. 그러나 나는 곧 기운을 차리고는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길이 약간 미끄럽긴 해도 낭떠러지는 아니야’” 이 말은 에이브라함 링컨이 상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에 한 말입니다. 이처럼 예수 안에서 주신 아버지의 은혜를 끝까지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멸시를 당해도 그것을 달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인이 뒤따라오기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의 앞을 가로막고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도와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25절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그러자 예수님은 이번에도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 취급했습니다. 그 식으로 해보았습니다. 제자들도 놀랐을 것입니다. 평소에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좌절하지 않고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말을 듣자 주님께서는 기다리셨다는 듯이 여인을 향해서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에 걸쳐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 시험을 잘 통과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라면 개라면 어떻습니까?

 

시편기자는 여호와를 사모하여 성전에 집을 짓고 사는 참새를 부러워했습니다. 주님을 가까이하시려면 참새라도 되시기 바랍니다. 시편22:6에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벌레라도 좋습니다. 주님을 가까이하는 일이라면 벌레라도 좋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위해 죄 없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의식은 너무 귀족화되어 있어요.

 

 나를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왜 시험 듭니까? 왜 화가 납니까? 왜 괴롭습니까? 평안하지 않습니까? 왜 불만입니까? 나를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멸시 받아도 예수님 고난에 동참함을 생각하면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던 바울의 믿음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덕규의 가시나무라는 노래에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로 시작되는 가사는 마음에 자아가 너무 많아 하나님이 머물 곳이 없다는 강렬한 신앙적 고백이 담긴 노래로 기독청년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입니다. 가나안 여인의 위대한 점은 나를 내려놓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가나안 여자처럼 믿음의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받아 아버지께서 예수 안에서 주신 복을 생각하며 무시당해도 개의치 말고, 삶이 나를 거절해도 복음의 말씀을 믿고 감사하며, 멸시를 받아도 도리어 나를 비우는 은혜의 기회로 삼아 가나안 여인처럼 예수님께 믿음을 칭찬 받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참된 믿음에 합격하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성진 목사.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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