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고난주간]대속의 죽음과 고난

하나님아들 2013. 3. 29. 11:01

예수가좋다오

메시야의 대속의 죽음과 고난

마태복음 27장 45~53절

설교/김홍도 목사

 


  예수님의 죽으심은 순교의 죽음도 아니고, 희생의 죽음이 아니라, 대속의 죽음, 즉 죄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시기 위한 대속의 죽음입니다. 어떤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꼭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셔야만 했겠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질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죄의 값을 우리 대신 치루지 않고는 우리를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눈감아 줄테니, 다, 천국 뒷문으로 들어가라”라고 하셨다면, 하나님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신뢰할 수 없는 분이 되고 맙니다.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고 했으므로, 누군가는 죽어야 하고 죄의 값을 치러야 우리가 구원받고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지만, 한 가지 할 수 없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고,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어느 유명한 판사의 아들이 면허증도 없이 아버지 차를 타고 시내에 나갔다가 큰 사고를 내고 직결 재판받으러 법정에 섰는데 마침 자기 아버지가 재판하게 되었습니다. 이 고등학생은 아버지가 사랑의 아버지이므로 무조건 무죄판결을 내려 주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뜻밖에 자기가 갚을 수 없는 무거운 벌금이 떨어졌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아버지는 판사의 법복을 벗고 내려와서는 그 벌금의 큰돈을 자기가 지갑에서 꺼내주었습니다. 판결도 아버지가 내리고 죄의 값도 아버지가 치러 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며, 질서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을 너무나 끔찍이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의 재물로 이 땅에 보내셔서 온갖 고난을 다 받으시고, 우리의 죄를 다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다 쏟아 죄의 값을 치러 주셨습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요절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죄가 많고, 적고 상관없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영생을 얻고 천국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와 물까지 다 쏟아 주시고 숨을 거드실 때, 큰소리로 “다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그 의미는 “죄의 값을 다 치루었다”는 뜻입니다. 세상 모든 인간의 죄를 다 치루시고 구원을 달성하셨기 때문에, 이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다 구원 받는 것입니다. 예수를 안 믿어서 지옥 가는 것이지 죄가 많아서 지옥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특별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까지 받으신 대속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잔인무도한 로마 군인들의 행동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명을 가지고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웃기 위해 다 낡은 자색 옷을 입히고, 만왕의 왕이시고 평화의 왕(이사야 9장 6절)이신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왕관 대신 가시로 만든 관을 머리에 사정없이 콱 눌러 씌울 때, 그 굵은 가시가 이마와 머리에 박힐 때 아마 우지직하는 소리가 났을 것입니다.

 

 온 얼굴과 머리가 피범벅이 되어 흘려내렸습니다. 왕의 홀 대신 갈대를 예수님의 손에 들리우고 무릎을 꿇고 희롱하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구세주로 오신 메시야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때리며 고통을 주었습니다. 얼굴과 머리가 피범벅이 된 채 십자가를 지워가지고 골고다로 향해 갈 때, 밤새도록 매를 맞으며 심문을 받아 몹시 피곤하고 지켜서 기진맥진하셨기 때문에, 어푸러지고, 쓰러질 때마다 가죽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려치곤 했습니다. 피가 나도록 아무리 때려도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 십자가의 형틀은 쌀 한 가마 내지 두 가마 무게였다고 하니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로마 군인들이 지나가던 행인 중에 피부가 검은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시몬을 끌어다가 십자가를 대신 지우고 골고다로 향해갔습니다. 로마서 16장 1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루포의 어머니 곧 내어머니”라고 한 것을 보며, 비록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그 가문이 크게 복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골고다 언덕에 도착해서는 십자가형틀을 눕혀놓고 그 위에 예수님의 양손을 벌려 눕혀놓고 굵은 쇠못을 양손과 발에 망치로 내려칠 때, 피가 솟구쳐 오르며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손과발로 지은 죄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십자가 형틀을 일으켜 세울 때, 쿵 하는 동시에 못 박힌 자국마다 충격을 받으며 피가 콸콸 쏟아졌습니다.

 

우리가 머리로 생각으로 지은 죄 때문에 가시관을 쓰셨고, 손으로 지은 죄와 갈 데, 안갈 데를 다니며 지은 죄 때문에 손과 발에 못 박히셨고, 마음으로 지은 죄 때문에 옆구리가 창에 찔렸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포도주와 쓸개를 탄 마취제를 입에다 갖다 대며 마시게 했더니, 고개를 돌리며 마시기를 거부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대속의 고난을 맑고 똑똑한 정신으로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고통 중에도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이 입었던 옷을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졌습니다(시편 69편 1절).

 

  2.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조롱(27장 39~44절)

  “골고다”라는 뜻은 “해골곳”이라는 뜻인데 그것은 해골이 많아서가 아니라, 멀리서 보면 지형이 해골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골고다는 큰길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지나가던 행인들이 고개로 흔들며 조롱하기를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다시 짓는다고 했다며” 라고 하면서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당시 흉악범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일 때는 죄명을 써서 그 죄패를 목에 걸어 사형시켰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죄명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이므로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로 써서 걸어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들이 조롱하기를 27장 46절에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라고 조롱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그들의 조롱대로 자기는 구원했으나 우리 죄인들을 구원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시편 22편 6~8절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한 다윗의 예언시입니다.

 

  12시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성경 6시~9시) 세 시간 동안 온 땅이 일식 때처럼 캄캄하고 조용했습니다. 하나님도 독생자의 고통당하는 처참한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얼굴을 돌이켰던 모양입니다. 이때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입니다. 이 순간은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독생자를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 처참한 고통의 순간 아버지 하나님마저도 얼굴을 돌이키셨고 3시간 동안 캄캄했습니다.

 

죄값으로 인하여 버림당하셨기 때문에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하시지 못하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이 흑암은 또한 심판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받을 심판이 예수님께 내려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절에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라고 바울(Paul)이 책망했습니다.


  ●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는 순간 3가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지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지금까지 어둡던 지성소가 환히 밝아졌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혔던 죄의 담이 무너진 것입니다. 이 휘장은 예수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히브리서 10장 19~20).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몸이 찢어지는 순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담이 무너져, 누구든지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다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사람 제사장이 중재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떤 죄인도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구약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새로운 왕의 법이 선포되는 순간입니다.

 

성전 휘장이 아래로부터 위로 찢어진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노력해서 또 인간의 공의나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기적은, 지진이 일어나면서 잠자던 성도들의 무덤이 열리면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부활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주석에 보면 무덤이 열렸으나, 부활해서 나온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여 무덤에서 나오실 때까지 기다렸으리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성도들의 무덤이 열려 부활한 것은 실제사건으로 믿어야 합니다. 이 지진은 율법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9장에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을 때 지진이 일어났는데, 여기서 일어난 지진은 예수님이 율법이 요구하는 죄값을 육체로 완성하기 위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이루셨음을 의미합니다. 죄를 정복했다는 뜻입니다. 사망을 이기신 것입니다.
 

  셋째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기적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4절에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하셨고, 히브리서 10장 19~20절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라고 했습니다.

 

  3. 빌라도 총독

  올바른 판결을 내려야 할 사람인데,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군중이 반란을 일으킬까 무서워서 죄 없는 예수님을 죽게 내어주고, 죽어야 될 강도는 살려 내보냈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군중이 원하는 죄인 한 사람을 특별사면으로 석방하는 규례가 있어서,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예수를 놓아주랴, 강도 바라바를 내어주랴?” 하고 물을 때, 의례히 예수를 놓아주고 강도를 죽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며 군중이 외쳤습니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내어주고, 강도 바라바는 특별사면으로 석방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아니오” 해야 할 때, 자신에게 손해가 오고 인기가 떨어질까봐 “예” 하면서 죄와 타협하고, 마귀 편에 드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또 “예”해야 될 때, 불이익을 당할까봐 “아니요” 하지는 않습니까? 불이익을 당하고, 목숨을 잃더라도 하나님 편에 서서 옳은 것은 옳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빌라도 총독은 그릇된 판결을 해 놓고는 물에 손을 씻고 “이 일에 나는 상관없다”고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역사 2,000년 동안 모든 성도들이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고 외우고 있고,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면서 “그 피 값을 우리와 우리자손에게 돌리소서”라고 외친대로 성전이 무너지고 나서 가는 곳마다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안을 얻지 못했습니다. 히틀러(Hitler)에 의해 유대인 600만 명이 끔찍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마지막 날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예수님은 심판주로 다시 오십니다.

 

  4. 가룟유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3년이나 따라다니며 그 귀한 말씀을 듣고 배우고, 3년 동안 한 솥에 밥을 먹은 사람이 주님을 스승을 은 30냥에 팔아먹고, 그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후회하면서 은 30냥을 성전에 뿌려 던지고 목매달아 자살했습니다. 배신자 유다는 후회는 했으나 참회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참회할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①-최후의 만찬 때, ②-가야바 법정에서 예수님의 얼굴과 마주칠 때, 참회하고 용서를 빌었다면 예수님이 용서해 주셨을 터인데, 그 기회를 다 놓치고 언덕 위에서 목매달아 자살하며, 땅에 떨어지면서 곤두박질하며 창자가 터져 나와 죽어 지옥형벌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가룟유다는 돈을 너무 사랑해서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의 돈 전대를 맡아 가지고 다니면서 그 성물을 도적질하기도 했습니다. 배신자 가룟유다 때문에 예수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배신자가 되지 맙시다. 사실은 수제자 베드로(peter)와 다른 제자들도 다 배신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참회했기 때문에 다시 찾아와서 지나간 허물을 묻지 않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습니다. 우리도 허물 많은 인생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취제를 마시지 아니하시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신 것 같이 우리도 주님 앞에서 기도할 때에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몽롱한 정신으로 기도하는 것은 불교에서 정신을 잃기 위해 향불을 피우고 기도하는 것이 됩니다. 죽음 앞에서도 정신을 놓지않으신 예수님을 닯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만나 주시고 지나간 허물을 묻지 않으시고 「내양을 보호하고, 가르치고, 먹이라」고 말씀 하실 때 아멘으로 화답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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