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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의 대속의 죽음과 고난 마태복음 27장 45~53절 설교/김홍도 목사
“누구든지” 죄가 많고, 적고 상관없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영생을 얻고 천국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와 물까지 다 쏟아 주시고 숨을 거드실 때, 큰소리로 “다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그 의미는 “죄의 값을 다 치루었다”는 뜻입니다. 세상 모든 인간의 죄를 다 치루시고 구원을 달성하셨기 때문에, 이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다 구원 받는 것입니다. 예수를 안 믿어서 지옥 가는 것이지 죄가 많아서 지옥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특별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까지 받으신 대속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잔인무도한 로마 군인들의 행동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명을 가지고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웃기 위해 다 낡은 자색 옷을 입히고, 만왕의 왕이시고 평화의 왕(이사야 9장 6절)이신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왕관 대신 가시로 만든 관을 머리에 사정없이 콱 눌러 씌울 때, 그 굵은 가시가 이마와 머리에 박힐 때 아마 우지직하는 소리가 났을 것입니다.
온 얼굴과 머리가 피범벅이 되어 흘려내렸습니다. 왕의 홀 대신 갈대를 예수님의 손에 들리우고 무릎을 꿇고 희롱하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구세주로 오신 메시야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때리며 고통을 주었습니다. 얼굴과 머리가 피범벅이 된 채 십자가를 지워가지고 골고다로 향해 갈 때, 밤새도록 매를 맞으며 심문을 받아 몹시 피곤하고 지켜서 기진맥진하셨기 때문에, 어푸러지고, 쓰러질 때마다 가죽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려치곤 했습니다. 피가 나도록 아무리 때려도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 십자가의 형틀은 쌀 한 가마 내지 두 가마 무게였다고 하니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골고다 언덕에 도착해서는 십자가형틀을 눕혀놓고 그 위에 예수님의 양손을 벌려 눕혀놓고 굵은 쇠못을 양손과 발에 망치로 내려칠 때, 피가 솟구쳐 오르며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손과발로 지은 죄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십자가 형틀을 일으켜 세울 때, 쿵 하는 동시에 못 박힌 자국마다 충격을 받으며 피가 콸콸 쏟아졌습니다.
우리가 머리로 생각으로 지은 죄 때문에 가시관을 쓰셨고, 손으로 지은 죄와 갈 데, 안갈 데를 다니며 지은 죄 때문에 손과 발에 못 박히셨고, 마음으로 지은 죄 때문에 옆구리가 창에 찔렸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포도주와 쓸개를 탄 마취제를 입에다 갖다 대며 마시게 했더니, 고개를 돌리며 마시기를 거부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대속의 고난을 맑고 똑똑한 정신으로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고통 중에도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이 입었던 옷을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졌습니다(시편 69편 1절).
2.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조롱(27장 39~44절) “골고다”라는 뜻은 “해골곳”이라는 뜻인데 그것은 해골이 많아서가 아니라, 멀리서 보면 지형이 해골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골고다는 큰길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지나가던 행인들이 고개로 흔들며 조롱하기를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다시 짓는다고 했다며” 라고 하면서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당시 흉악범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일 때는 죄명을 써서 그 죄패를 목에 걸어 사형시켰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죄명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이므로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로 써서 걸어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들이 조롱하기를 27장 46절에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라고 조롱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그들의 조롱대로 자기는 구원했으나 우리 죄인들을 구원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시편 22편 6~8절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한 다윗의 예언시입니다.
12시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성경 6시~9시) 세 시간 동안 온 땅이 일식 때처럼 캄캄하고 조용했습니다. 하나님도 독생자의 고통당하는 처참한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얼굴을 돌이켰던 모양입니다. 이때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입니다. 이 순간은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독생자를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 처참한 고통의 순간 아버지 하나님마저도 얼굴을 돌이키셨고 3시간 동안 캄캄했습니다.
죄값으로 인하여 버림당하셨기 때문에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하시지 못하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이 흑암은 또한 심판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받을 심판이 예수님께 내려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절에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라고 바울(Paul)이 책망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몸이 찢어지는 순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담이 무너져, 누구든지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다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사람 제사장이 중재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떤 죄인도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구약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새로운 왕의 법이 선포되는 순간입니다.
성전 휘장이 아래로부터 위로 찢어진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노력해서 또 인간의 공의나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뜻입니다.
셋째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기적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4절에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하셨고, 히브리서 10장 19~20절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라고 했습니다.
3. 빌라도 총독 올바른 판결을 내려야 할 사람인데,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군중이 반란을 일으킬까 무서워서 죄 없는 예수님을 죽게 내어주고, 죽어야 될 강도는 살려 내보냈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군중이 원하는 죄인 한 사람을 특별사면으로 석방하는 규례가 있어서,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예수를 놓아주랴, 강도 바라바를 내어주랴?” 하고 물을 때, 의례히 예수를 놓아주고 강도를 죽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며 군중이 외쳤습니다.
4. 가룟유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3년이나 따라다니며 그 귀한 말씀을 듣고 배우고, 3년 동안 한 솥에 밥을 먹은 사람이 주님을 스승을 은 30냥에 팔아먹고, 그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후회하면서 은 30냥을 성전에 뿌려 던지고 목매달아 자살했습니다. 배신자 유다는 후회는 했으나 참회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참회할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①-최후의 만찬 때, ②-가야바 법정에서 예수님의 얼굴과 마주칠 때, 참회하고 용서를 빌었다면 예수님이 용서해 주셨을 터인데, 그 기회를 다 놓치고 언덕 위에서 목매달아 자살하며, 땅에 떨어지면서 곤두박질하며 창자가 터져 나와 죽어 지옥형벌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가룟유다는 돈을 너무 사랑해서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의 돈 전대를 맡아 가지고 다니면서 그 성물을 도적질하기도 했습니다. 배신자 가룟유다 때문에 예수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배신자가 되지 맙시다. 사실은 수제자 베드로(peter)와 다른 제자들도 다 배신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참회했기 때문에 다시 찾아와서 지나간 허물을 묻지 않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습니다. 우리도 허물 많은 인생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취제를 마시지 아니하시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신 것 같이 우리도 주님 앞에서 기도할 때에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몽롱한 정신으로 기도하는 것은 불교에서 정신을 잃기 위해 향불을 피우고 기도하는 것이 됩니다. 죽음 앞에서도 정신을 놓지않으신 예수님을 닯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만나 주시고 지나간 허물을 묻지 않으시고 「내양을 보호하고, 가르치고, 먹이라」고 말씀 하실 때 아멘으로 화답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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