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예수만 바라보자

하나님아들 2013. 1. 22. 17:36

 

 

예수만 바라보자

 

 

(히 12:1-2)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인간을 정의할 때 여러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생각하는 사람),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만드는 사람),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서서 걷는 사람),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사람) 등입니다. 학술적으로 인간을 분리하여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생각하는 사람)” 즉 생각할 수 있는 존재로, 호모 사피엔스는 인간이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선물 중에 가장 소중한 선물이 바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에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주셨을까요? 그 이유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할 수 있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두 길이 만들어 두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타락의 길이 있으며, 그 결과는 심판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과 형통의 복이 기다리고 있으며, 영원한 낙원의 삶이 보장됩니다.

 

오래전 미국 뉴욕 교외에서 한 기관사의 태만으로 열차 충돌 사고가 발생하여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으며, 재산상으로 엄청난 피해를 당했습니다. 사고 조사 결과 이 지역의 신호등은 모두 제대로 작동되고 있었습니다. 또 사고지점에 이르기 전 3/4마일 정도의 거리에서 부터 속도를 줄이라는 경고하는 신호등들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는 조사 결과 밝혀졌습니다. 사고의 원인은 기관사는 방심으로 신호 등을 무시하고 달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주 말씀을 통하여 경고의 신호등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서라, 경계하라, 가라 등등 이러한 말씀의 신호 등에 따라 우리가 순종하면 우리의 삶은 형통하고 축복의 삶이 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경고의 신호등을 무시해버린다면 불행이 닥쳐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시하는 방향으로 조정키를 곧 바로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신호등”을 따라 전진하면, 우리 자신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닥칠 위험에서 보호될 것입니다.

 

우리의 무지나 나태가 많은 사람들의 비극을 초래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에덴의 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허락하시고, 순종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의 열매를 먹지 말 것을 명하시고, 그 외 에덴동산의 모든 것은 허락하셨습니다.

 

이처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생각하는 사람)”로 창조된 처음 인간에게 주어진 명령은 순종과 불순종이라는 문제를 안겨 주었습니다. 당사자인 아담은 생각하고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특성은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하지 말라” 하면 왠지 더 그것에 관심을 기우리고 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런 인간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사탄은 그 생각에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 호기심을 자극하면, 결국에 “생각하는 인간은 정복하고 싶고, 갖고 싶어서 결국에 경고의 신호들을 무시하고 범죄 속으로 빠져들고 마는 것이 인간의 속성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범죄 행위를 저질러 결국에 심판의 길로 접어들고 맙니다.

 

인간의 생각은 항상 두 가지의 길이 열려 있습니다. 하나는 “하라”이고, 다른 하나는 ”안 돼“입니다. 좀 더 발전한다면 하나는 믿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의심입니다. 좀 더 신앙적으로 발전하면 하나는 순종이고, 하나는 불순종입니다. 이처럼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로 지음 받은 인간은 어떠한 말에 두 가지로 반응을 하는데 긍정과 부정, 의심과 믿음으로 반응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믿음 안에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수 8:10절 이하에 보면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점령하기 위하여 일찍이 일어나서 백성을 점검하고, 그는 장로들과 더불어 백성들 앞서 아이 성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작전을 짜고, 병력을 배치합니다. 여호수아는 결코 자신의 판단력이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으며,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나 여론에 의지하지도 않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아이 성은 완전히 무너져 불에 탔으며, 아이 성 왕은 산채로 사로잡혀 여호수아 앞에 끌려오게 되었습니다. (수 8:25) "그 날에 아이 사람의 전부가 죽었으니 남녀가 일만 이천이라“ 오직 예수,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말씀에 순종했더니, 아이 성을 점령하고 왕까지 사로잡는 통쾌한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뜻은 무슨 뜻일까요?

 

1.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헬) “안드로포스(ανδροπος)”라고 하는데 ”위를 바라보는 동물“이라는 뜻입니다. 개, 소, 돼지는 아래를 바라보고 사는 동물이지만, 인간은 위를 바라보고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축복을 주실 때, 먼저 바라보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살펴보면 고향을 떠날 때, 자식도, 재산도, 거처할 땅도 없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창13:14-15)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니라“

 

하나님은 먼저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시고, 그리고 먼 미래의 약속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25년이라는 먼 시간을 통하여 바라봄의 믿음과 순종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복의 지름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행할 때에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불 뱀에 물리어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백성들이 죽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민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민 21:9)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림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이 말씀의 중요한 진리는 “하나님은 바라보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2절)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 예수님을 바라보는 교회는 축복과 은혜가 넘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또한 주님을 바라볼 때, 죄 사함을 받습니다. 죄는 사람을 육신의 탐심과 정욕, 걱정과 두려움에 얽매이게 합니다. 파스칼은 말하기를 “나는 의인, 위인, 성자”라는 세 단어를 믿지 않는다. 이 땅에는 오직 한 가지 종류의 사람들만이 존재한다. 그들은 죄인이다.

 

(벧전 1: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이 말씀처럼 죄는 육신의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는 심층적인 무지의 소치입니다. 만일 인간이 순결과 공의의 하나님을 안다면, 감히 죄짓는 생활을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지와 육욕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무지는 육욕의 모태입니다.

 

(렘 2:5)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이 말씀처럼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듯이 수증기는 밤에 가장 많이 일어납니다. 즉 죄의 검은 수증기는 어두운 무지의 영혼 속에 가장 많이 일어납니다. 사탄이 육신의 탐욕에 깃든 사람 앞에 죄악의 검은 안개를 뿌려놓게 되면, 탐욕으로 가득 찬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의 화염검을 보지 못하게 되어 죄를 짓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최고의 선이시며 우리의 축복은 그분과의 연합에 있습니다. 그러나 죄는 강한 편견처럼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떼어놓습니다. 죄인은 하나님에게 작별을 고하고, 그리스도와 긍휼에게도 고별인사를 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죄를 향하여 일보 전진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일보 후퇴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양에서 더 멀어질수록 그만큼 더 어둠에 가까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탐욕에 물든 영혼이 하나님에게서 더 멀리 떠날수록, 그만큼 더 그 영혼은 불행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회개 없는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파멸의 길, 지옥의 길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아름다운 화초들이 화초에 자생한 병으로 인하여 화초가 시드는 것처럼, 사람들도 그들의 영혼 속에 자생하는 탐욕의 부패로 인해 시들고 마는 것입니다. “죄는 기름과 같고, 하나님의 진노는 불과 같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애를 써도 항상 죄 가운데 헤매고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또한 수시로 죄의 포로가 되고, 얽매어 고통 속에 사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런데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죄에서 자유롭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종종 방송에서 사형수가 사형집행 후에 다시 살아났거나, 전쟁터에서, 혹은 교통사고나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또는 병원에서 의사가 죽었다고 판단되어 시체실에 옮겨 놓았는데 살아났다든지, 아무튼 구사일생으로 기적같이 죽음에서 살아났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에 다시 태어난 기쁨으로 살게 됩니다. 어느 중범사형수가 대법원의 최후 법정에서 다음날 사형언도를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판사가 등단하여 말하기를 “본 피고인의 재판은 본 법정보다 높은 최고 법정으로 이송되었으므로 본 재판은 자동 해소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어젯밤 감방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나라 법률에는 죽은 자를 재판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사형 선고와 사형 집행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요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말씀처럼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죽었고, 다시 예수님과 함께 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서 죽은 자에게 다시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빛이시며, 어둠을 밝히는 생명의 빛입니다. 시들어가는 화초가 빛을 쪼이면 다시 싱싱하게 살아나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면 생명의 빛으로 오신 주님은 우리의 무더운 죄악의 옷을 벗겨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금한 것을 했다면, 십계명을 범하는 죄가 됩니다. 또한 “하라고 명한 것을 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죄입니다.” 즉 사랑하지 않거나 예수를 믿지 않는 죄에 해당됩니다. 죄의 영역에는 세 가지 영역이 있다고 합니다.

 

(1) 대자관계(자신)의 죄입니다.

 

주어진 달란트를 무익하게 사장한 죄 ,소금이 맛을 상실한 죄,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죄, 이러한 죄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소홀이 한 죄에 해당이 됩니다.

 

(2) 대타관계(타인)의 죄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지못한 죄, 화해하지 않고 남을 용서하지 않는 죄, 문전의 거지 나사로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부자의 죄, 세리와 창녀를 경멸한 바리새의 도덕적 교만 죄, 병자와 죄수와 가난하고 외롭고 고통 받는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 죄. 이런 것들은 모두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지 못한 죄에 속합니다.

 

(3) 대신관계(하나님과 인간)의 죄입니다.

 

하나님 대신 자신을 신처럼 섬기는 죄, 하나님의 기대 명령인 예수 영접을 거부하는 죄, 믿음도 마찬가지로, 주님보다 자신이 앞에 있고, 주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먼저인 자, 이러한 죄를 우리는 결코 범하지 말아야합니다.

 

(시 16:8-9)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 말씀처럼 항상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그분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헨리 보쉬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소크라테스는 40년 동안, 플라톤은 50년 동안, 아리스토텔레스는 40년 동안 그의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 3년간을 가르쳤을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3년간의 사역은 고대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130년간의 가르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영향은 큰 것이었다. 예수님은 한 장의그림도 그린 적이 없다. 그러나 라파엘과 미켈란젤로의 가장 우수한 그림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테와 밀턴, 그리고 세계의 위대한 시인들의 수 백편의 시들이 그에 의하여 영감을 받았다. 예수님은 한 곡의 음악도 작곡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이든, 바하, 헨델, 베토벤, 멘델스죤은 그들이 예수님을 찬양하기 위해 작곡한 찬송가, 교양곡, 오라트리오 등에서 재능을 보여 주었다. 인간의 위대한 모든 영역은 나사렛의 겸손한 목수에 의하여 풍부해졌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오늘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이든지, 서 있는 그곳에서 생명의 빛으로 오신 겸손한 예수를 바라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주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고 의와 평강과 형통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드리워진 인생의 모든 짐과 죄악의 문제들을 깨끗이 해결 받아서 축복과 자유와 은혜를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에벤에셀 홈에서

 

 

 

출처 : 빛과 흑암의 역사 (성경연구,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글쓴이 : 우림과둠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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