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타락이나 신앙의 타락의 원인에 대해 말할 때 여러 측면으로 말할 수 있으나 기독교의 근본적인 타락은 성경을 부인하거나 왜곡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 이단은 물론이고 정통교회에서 조차 성경을 새롭게 번역한다거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는 명분으로 성경의 무오성을 여러 형태로 부정을 하며 교묘하게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말살하려 하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는 사단의 최고의 전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이 무너지면 곧 기독교 신앙은 자동적으로 무너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믿는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최고로 놓고 이 성경을 계시적인 관점으로 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아래의 내용은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께서 현재 교역자 대상으로 여러 곳에서 진행하고 있는 고 김석준목사님께서 생전에 강의하신 ‘체계적 신앙신학’의 내용 중 ‘계시관’의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순서대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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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계시관(啓示觀)
보통은 신학과 신앙을 별개로 보고 있다. 신학이 신앙이요 신앙이 신학이요 이것이 곧 생활화되어 살지 않으면 배울 필요가 없다.
계시관에는 여러 가지 종별이 있고 여러 가지 방편이 있다. 물론 이것을 크게 나누면 특별계시와 일반계시로 나누고 조직신학에서는 자연계시와 초자연계시라고도 한다. 물론 초자연계시는 다 특별계시이고 일반계시는 다 자연계시라는 말은 아니다. 초자연계시 중에도 일반계시에 속하는 것이 많이 있다.
흔히들 말하기를 초자연계시를 다 특별계시라고 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초자연계시라고 해서 다 특별계시는 아니다. 계시의 구별도 해야 되지만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계시의 원인과 계시의 동기와 계시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바로 알게 될 때에 그 계시가 역사계시이던 형식계시이던 상징계시이던 계시의 종별이 다르다 할지라도 그 가르치는 궁극목적은 하나임을 알게 된다.
이 계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지식 혹은 의사인데 이것이 일반적으로는 숨겨져 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것을 숨겨 놓고자 하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알려 주고자 하신다.
알려주시고자 하는 이것은
①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계시.
②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계시(과거서).
③ 또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계시(현재서).
④ 또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계시(미래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 하는 그 면을 우리 인간에게 계시하고 있다.
우리 인간들이 그것을 인간의 지식의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하고 있는 사건들 즉,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고 계시는지 표면적인 것만 알았지 하나님의 사역성은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계시가 필요한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일에 대해서 표면적인 면은 인간들이 짐작하는지 모르지만 사건적으로는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는 이 계시가 절대로 필요하다.
※ 계시가 무엇이냐? 성경 전체는 계시 속에 다 들어간다. 계시관 속에는 성경 한 절까지도 다 포함된다. 기록된 성경만이 특별계시이다. 초자연계시는 특별계시에 속하나? 성경이 기록되기 전, 성경이 문서화되기 전에 계시목적에 의한 성령의 감화 감동의 활동영감으로 된 것만 특별계시이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한 이것도 계시인가?
계시: 하나님 자신을 알려주기 위해서. 천국이 실제적으로 있다고 하는 것을 알려줌. 당신이 하신 일을 알려줌.
이방종교의 낙원 혹은 극락은 추상적이요 상상적이다.
천국은 누가 갈 천국이냐? 외국에 가려면 외국의 문물을 알아야 되듯이 천국의 성질 성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천국에 대하여는 그렇게 무관심인가?
① 신학적으로 알고, 또 그 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하나님은 나에 대하여 어떤 하나님이시냐, 나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냐, 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이냐 하는 그 면을 계시하고.
② 성경을 덮어놓고 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눈에 보이는 이것만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보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일은 더 많다.
③ 알면 순종 안 할 수 없고 공경 안 할 수 없고 안 믿을 수 없다.
④ 하나님께서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냐?
인간은 하나님을 통해서 영광을 받았으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고, 그러면 하나님은 인간으로 통해서 영광을 받았으니 힘없는 인간을 슬슬 도와주기나 하는 그런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표면적으로는 물질계 자연계를 움직이고 계시지만 이면적으로는 신령계를 동원시키고 움직이고 계신다(계시록)고 하는 이것만 우리가 알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이런 것들을 움직이시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정확하게 가르치는 것이 계시이다.
⑤ 계시로 통해서 보는 자기와 계시 없이 자기를 보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⑥ 계시를 떠나서 인간을 보면 자유하고 있는 인간, 행복한 인간으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계시를 통해서 보면 인간은 죄의 속박 아래 있는 인간이다.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⑦ 계시로 통해서 보면 인간은 죄의 종이었는데 그리스도로 통해서 자유이다. 계시가 아니고는 죄의 속박을 가르쳐 줄 그 무엇도, 아무도 없다.
⑧ 또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어 중생한 사람은 자유하나 실제생활이 자유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이성과 몸이 실제적으로 죄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⑨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大통일 정치에서 이탈해 나가면서도 이것을 모르고 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도 모르고 있는데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더 모른다.
⑩ 이탈해 나가면 어떤 영향, 어떤 결과가 온다고 하는 것을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탈하면 내발적 고통 외발적 고통 영원적인 고통이 된다고 하는 이것을 성경이 아니면, 계시가 아니면 모른다.
이렇게 성경은 ①하나님을 ②인간을 ③세상을 말해주고 있다.
이 성경에는 역사적인 면의 예언이 있고 구원적인 면의 예언이 있는데 이 성경 계시만이 하나님이 하신 일과 또 하실 일 즉, 미래적인 사역성을, 미래적인 미래성(천국)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대개는 계시성을 가지고 역사적인 면만 족하게 받으려고 한다. 우리에게는 구원적인 면이 더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핵심적인 구원적인 면을 알게 하기 위해서 역사적인 면을 보조적으로 주신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은 본 예언은(계시성) 무시하고 껍데기만 잡고 씨름한다.
다니엘서에 금우상이 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바벨론 메데 파사 헬라 로마의 10분열국이라는 것만 알면 성경을 다 알았느냐? 성경을 몰라도 되느냐? 다니엘 당시대에는 로마나라가 있지도 않았는데 로마가 10나라로 분열되는 이것이 다니엘과 무슨 연관이 있나? 계시 없이 본다면 필요가 없다.
또 현재의 우리 입장에서 그 역사를 본다면 우리에게는 이미 지나간 과거사이다. 이미 지나간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나에게 필요한가? 역사 예언이냐, 구원 예언이냐?
금우상이 그 때 뿐인가? 지금도 보이지 않는 금우상이 있다. 이것이 보이지 않으면 예수 믿을 필요 없다. 금우상은 세상이다. 모든 바벨론 사람들이 금우상에게 절을 한다.
머리: 금 → 제일 높은 세상.
가슴: 은 → 조금 높은 세상.
허리: 구리 → 보통 세상.
종아리: 철 → 조금 낮은 세상.
발가락: 철과 진흙 → 아주 낮은 세상.
이것이 아무리 오르락내리락 해도 세상일 뿐이다.
이것을 그냥 계시 없이 보면 각 나라들이다. 그러나 계시로 보면 우상이다. 세상축소판이다. 발가락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발가락으로 아무리 오르락내리락 해 봐야 천국이 아니고 세상이다. 금덩어리 좋아하고 명예 영광 좋아해 보아야 세상이고 우상이지 천국은 아니다. 세상 격차성, 시대의 타락, 진보의 평가성을 보여준다. 계시적으로 보면 세상관이 달라진다.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하시려고 하며 인간은 지금 그것도 모르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 결과는 어떻게 될는지? 성경만이 이것을 보여준다.
제一절 서론(계시개관, 계시록 1장 전장 참고-특별히 19절 참고)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① 신학적인 객관적인 면에서 어떤 분이냐 하는 자가 있고.
② 추상적으로 말하는 자가 있고.
③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이러이러한 분이 되어야 될 것이다’ 하는 자 있고.
④ 체계적 신학 면에서는 ‘나에게 대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는 것이다.
갑이 을을 두고 연구할 때에
㉠ 조직과 성분을 연구하는 자가 있고.
㉡ ‘나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고 어떤 수고를 하고 있나’ 하고 관계성을 짓는 자가 있고.
일반 신학의 신론에서는 ‘하나님은 이러이러한 분이니 우리가 한 번 찾아가 볼만하다. 그 분이 무능자이면 찾아갈 필요가 없지만 유능자이니 찾아가 보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학적이다.
계시록 1장 12절 이하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다 하는 것을 말했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자체성을 말하고 호세아서는 나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등지고 기억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마다하고 갈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는 것을 말해준다. 이처럼 성경 구구절절이 하나님이 나를 염려하지 않는 구절이 하나도 없다.
① 명령을 하시는 구절이던. ② 지시를 하시는 구절이던. ③ 의사표시를 하시는 구절이던. ④ 무엇을 요구하시는 구절이던 모든 구절을 신관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나를 염려하고 계신다. 은혜가 안 되는 구절이 하나도 없다. 체계신학을 알고 나면 ‘성경은 경전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창15:에 3년 된 암염소 또는 수양 집비둘기를 바치라고 요구했다. 이것을 사건 자체로만 볼 때 하나님이 무엇이 필요하기 때문에 요구한 것이냐, 하나님 당신 자신을 위해서냐, 아브라함을 위해서냐?
성경에 보면 요구되는 사항이 너무 많다. 이 전부는 나를 위해서이다. 하나님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요구했을 때 만일 아브라함이 거절을 했다면 어떤 일이 나오겠느냐?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수십년(약 50년) 동안 하나님을 쫓아다녔더니 마지막에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달라더라’ 이렇게 소문을 퍼뜨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요구에 순종했더니 이삭을 죽이지 않았어도 바친 것으로 인정이 되었고 그 결과는 아브라함이 위대해졌다. 노아가 120년간 자기의 전 생애, 자기의 전 재산을 들여 방주를 지어 놓은 그 결과는 홍수가 끝나니 온 세상이 전부는 자기의 것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대해 어떤 분이냐? 나에게로부터 덕을 보려고 하는 분이냐, 나를 영광스럽게 해 주기를 원하느냐? 하나님을 계시적으로 양면으로 볼 수 있느냐?
하나님 자체 신의 온전성 신의 절대성 – 이런 분이 나와 관계를 맺고 무엇을 하고 계신다. 나와 어떤 관계냐? 지금은 무엇을 하며 나를 위해 해놓은 일, 장차 될 일, 필연적으로 있을 일이 무엇이냐?
왜 굳이 계시라는 말을 붙이느냐? 인간이 지식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계시라고 붙이지 않는다. 일반학적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기를 원하는 자, 성령의 감화 감동을 입은 자라야만 인식이 되는고로 이것을 계시라고 말한다. 학문으로 두뇌로 인적인 지혜 지식으로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하는 것, 알아지는 것을 계시라고 한다.
계시로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현재 무엇을 하고 계신다 하는 것을 확실하게 모른다. 하나님께서 대 자연을 섭리하고 계신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 이것보다 하나님이 나에게 현재 무엇을 하고 계시느냐? 특별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계시로 통하지 않고는 모른다.
특별계시를 알면 자연계시의 보조 여부는 납득이 되고 인식이 된다. 계시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을 위하여 현재 부지런히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지를 못한다.
어머니가 10살 된 아이에게 옷을 입히기 위해서 옷을 만들고 있고 아이는 밖에서 놀고 있다고 할 때 다른 사람이 아이에게 ‘너의 어머니가 무엇을 하느냐’ 하고 묻는다면 어머니가 하는 일을 보지 못한 아이의 대답은?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앞으로 될 일, 하실 일, 필연적으로 하게 될 일, 필연적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이 계시이다. 앞으로 될 일은 나와 다른 한 사람 뿐만 아니고 전체성을 두고 하는 말이니 물론 일반적으로는 현재의 인간 자기를 두고 ‘장차’ 라는 말을 하지만 그러나 전체 시간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장차’ 라는 말은 미래라는 말로 바꾸어서 좀 더 폭 넓게 전체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영원히 해당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미래에 되어질 일, 있을 일, 하실 일에 대해 숨겨 두지 않았다. 이것이 밀폐되어 있지 않고 특별계시를 통하여 또한 일반계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다.
우리가 66권의 성경이 특별계시임을 전재하고 있지만 자연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계시에 대하여는 무관심할 때가 많다. 일반계시 전체계시 즉, 초자연계시가 아닌 자연계시로도 얼마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하실 일, 필연적으로 있는 일, 장차 될 일에 대해서 볼 수 있다.
흔히 일반적으로 이 현존 물질계에서 인류의 종말이 어떠한 형태로 오느냐 하는 그 문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하고 신경을 쓰고 있다. 인류의 종말이 어떤 형태로 오느냐? 3차 대전이니 핵전이니 사상전이니 남북동서 중소전이니 이런 것을 가지고 인기를 끌고 있지만 우리는 어떤 형태로 인류가 종말이 된다고 하는 이것보다도 그 때를 대비해야 할 것을 생각해야 되고 그 이후를 대비해야 할 것을 생각해야 되고 그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장차란 단순한 미래가 아니고 영원성을 포함하고 있는 미래이다. 인류 종말만 계산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고 계시는데 너는 현재 어떤 자로 사느냐’ 하고 구구절절이 말하고 있다. 즉 앞으로 너의 인격은 어떻게 되고 너의 능력은 어떻게 되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계시이다.
내가 인간이라면 계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계시를 잘못 깨달아서도 안 된다. 계시를 무시하면 자기의 영원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계시를 중요하게 여겨라!
글..궁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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