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이슈 넘버링+ 약물에 취하는 아이들 2편 창고형 약국과 사각지대 청소년 일반의약품 오남용OD 쉬운 접근성이 가장 큰 문제 경고 넘어선 사회적 개입 필요대한민국 10대들의 일탈이 '교문 뒤 담배'에서 이제는 형형색색의 알약으로 번지고 있다. 우리는 넘버링+ '약물에 취하는 아이들' 1편에서 병원 처방을 매개로 한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실태를 고발했다. 2편에서는 처방전 없이도 무더기로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의 사각지대를 추적했다. 아이들이 빠져 있는 '약물의 늪'은 생각보다 깊었다.
일반의약품 과다복용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약물에 취하는 아이들' 1편(버젓이 유통되는 의료용 마약류… 펜 대신 약을 쥐는 아이들·더스쿠프 704호)에서 청소년들 사이에서 확산하는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 실태를 살펴봤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청소년이 의료용 마약류를 비의료 목적으로 사용해본 경험은 5.2%로, 흡연 경험률(4.2%)을 앞질렀다. 마약류 의약품을 대하는 아이들의 심리적 장벽이 담배보다 낮다는 방증이다.[※참고: 여기서 말하는 의료용 마약류는 '처방'을 받은 약물이다.]
이런 약물 오남용의 중심엔 입시 경쟁 속에서 '공부 잘하는 약'으로 둔갑한ADHD치료제와 외모 가꾸기 수단이 된 식욕억제제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병원 처방약이라는 이유로 안전하다고 오인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처방 구조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청소년을 위협하는 약물의 문제는 병원이나 처방전 등 의료 시스템 내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의사의 처방전조차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더 큰 오남용 사례를 쉽게 포착할 수 있다.
"타이레놀 30알 한번에 털어넣기" "이 약은 환각이 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런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학생들은 특정 감기약이나 수면유도제 이름을 공유하고, 복용 후기를 생생하게 쏟아낸다. 이른바'OD(OverDose·과다복용)' 논란이다.
OD는 종합감기약, 수면유도제, 진통제와 같은 일반의약품을 다량 복용해 환각이나 의식 변화 등을 유도하는 행위를 뜻한다. 일부 청소년 사이에선 이같은OD가 놀이처럼 번지고 있다. 처방전이 필요 없는 만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위험 요인도 크다.
예컨대, 수면유도제의 주성분인 디펜히드라민을 과량 복용하면 환각과 심박수 이상, 경련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감기약에 포함된 덱스트로메토르판은 과다복용 시 환각과 호흡 억제를 유발한다. 해열진통제의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도 간 손상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간부전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창우 명지병원(정신건강의학과·한양대 교육 협력) 교수는 "청소년들은 일반의약품을 덜 위험하게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과다복용은 신체에 심각한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며 "경우에 따라 응급실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위험해질 수 있는 만큼,OD확산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려가 커지자 관계기관도 잇따라 경고음을 내고 있다. 지난 4월 30일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최근SNS를 중심으로 일반의약품 과다복용 경험을 공유하는 게시물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김헌주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원장은 "일반의약품이라는 이유로 안전하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과다복용은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행위"라고 경고했다. 대한약사회 역시 지난해 12월 청소년 의약품 오남용 대응 지침을 전국 약국에 배포하고, 복약지도 강화를 요청했다.
문제는 이런 경고에도OD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쉬운 접근성'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데, 최근 빠르게 늘어난 창고형 약국이 일반의약품 구매 문턱을 더욱 낮추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창고형 약국은 대형마트처럼 넓은 진열대에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을 진열하고,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선택해 구매하는 형태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약국 관계자에 따르면, 일반 약국 대비 평균 30%가량 저렴한 수준이다. 지난해 6월 경기 성남시에 첫 매장을 열어젖힌 '창고형 약국'의 수가 1년여 만에 전국 40여곳으로 확산한 이유다.
하지만 빈틈이 숱하다. 무엇보다 신분증 확인이나 구매 수량·금액 제한 같은 별도 규제가 없다. 매장에 약사가 있긴 하지만 소비자가 먼저 질문하는 경우에만 '복약지도'를 한다. 처방전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만 취급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경고와 주의를 넘어선 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창우 교수는 "창고형 약국의 운영 방식이 청소년의 약물 접근성을 무력화하고 의약품 오남용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준희 서울성모병원(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좀 더 구체적인 의견을 내놨다. "청소년들 사이에서OD가 확산하는 현상은 개인의 선택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특히 지금의 청소년들은 일반의약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소비재'로 인식하고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이런 상황에서는 약국 형태와 무관하게 '(의약품의) 복수 구매' 여부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통제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대면 복약지도를 통해 부작용과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는 등 판매 단계에서 실질적인 차단 장치가 작동해야 함은 물론이다."
아울러 관련 부처와 입법 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창우 교수는 "지금의 일반의약품 유통 체계는 청소년의 충동적인 과다복용을 막을 최소한의 여과 장치도 없다"며 "이제는 주의와 경고 수준에 머무를 게 아니라, 대량 구매 제한이나 연령 확인 강화 같은 규제 장치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건복지부와 약사회, 제약업계 역시 오남용 우려 의약품에 관리 기준을 좀 더 명확히 설정하고, 유통 전 과정에서 실효성 있는 통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놀이'라 불리는OD. 이제 손봐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