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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는 옛말…93%가 화장, 묘소 없애고 추모제단 건립도

하나님아들 2025. 9. 26. 00:11

‘파묘’는 옛말…93%가 화장, 묘소 없애고 추모제단 건립도

입력2025.09.25. 
 
묘소 관리 부담으로 합동 추모제단 확산
한국국학진흥원, 조선 묘지 분쟁 문서 공개


조선시대의 치열했던 묘지 분쟁의 습속은 장묘문화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멸됐다. (사진=연합뉴스)
 
 
조선시대 부계 조상을 중시하는 유교 이념과 관련해 묘지 분쟁이 치열했던 사실을 보여주는 문서가 공개됐다. 25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산송(山訟)과 관련된 1000여점의 자료가 소장돼 있으며 특히 유교 이념이 본격적으로 정착한 18~19세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산송은 타인 묘역에 불법으로 시신을 묻는 투장(偸葬) 행위에서 비롯됐다. 당시 피해자는 관아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송 문건을 제출하고 수령은 현장 확인 또는 대리인을 통해 상황을 조사한 뒤 판결을 내렸다.

실례로 1881년 5월, 안동 고성이씨 문중은 선산 묘역에 누군가 시신을 몰래 묻었다며 50여명 서명을 받아 관아에 소지(所志)를 올렸다. 투장 장소가 명당의 혈을 짓누른다는 이유로 즉시 이장(移葬)을 요청했다. 안동부사는 “상황을 조사한 후 판결하겠다”고 처분했으며 문서 뒷면에는 “현장에서 그린 산도를 살펴보니 기우제단이 근접해 있어 즉시 파내도록 지시했다”는 추가 판결 내용이 기재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묘지 분쟁은 장묘 문화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화장 통계에 따르면 화장률은 92.9%에 달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매장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현재는 화장이 장묘 문화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화장률 증가와 함께 납골당(봉안당)과 자연장(수목장 등)도 급증했으며 매장은 점차 감소했다.

최근에는 묘소를 소멸하고 합동 추모제단으로 모시는 사례도 등장했다. 안동 진성이씨 주촌 종가에서는 문중 구성원 고령화로 벌초와 묘제 수행이 어려워 종택 뒤쪽에 시조 이래 종손 부모님까지 52명의 비석을 세운 추모제단을 조성해 음력 10월 14일 합동묘제를 지낸다. 종손은 “문중 젊은 인력이 부족해 많은 묘소를 벌초하고 제물을 운반하는 것이 힘들었다”며 “선조의 혼령을 추모제단으로 모셔 예를 올리고, 묘소는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영화 ‘파묘’에서 알 수 있듯 고위 관직자 산송은 임금이 직접 중재에 나설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였지만, 현재는 화장률 증가와 납골당 문화 정착으로 묘지 분쟁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며 “산송 자료는 사라진 우리의 묘소 문화와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유의미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양유라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