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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오신 이유

하나님아들 2025. 9. 18. 23:44

예수님 오신 이유

 

4:16-20 (94)

 

 

 

 

 

 

다음에 제가 드리는 웃기는 이야기에 잘 들으시고 한 번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술이라면 환장을 하는 어느 남자가 밤새 술을 마시고 집에 와서 와이프가 하는 잔소리에 그만 열을 받아서

 

술김에 와이프가 다니는 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광고 시간에 다음 주일은 맥추감사주일 예배를 드립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서 자기 친구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 다음 일요일에 나랑 교회에 가자.” 라고 하니까 친구들이 다 놀랬습니다.

 

그 남자는 , 우리 집사람 교회에서 다음 일요일에 맥주로 파티를 한단다.” 라고

 

일종의 변형된 전도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친구들이 다들 그 다음 주일에 교회를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면서

 

여기요, 우리는 맥주 10병 주세요.” 라고 주문을 했답니다.

 

 

 

다들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사지선다형으로 해볼까요?

 

교회에 와서 맥주를 달라고 하다니 대단하다

 

나도 맥추감사주일이 맥주감사주일인지 알았다

 

아니 그런데 교회에서 맥주를 마셔도 괜찮지 않나?

 

맥추감사주일이라는 것도 있나? 별의별 주일이 다 있네.

 

 

 

어디에 기표를 하셨습니까?

 

그런데 제가 지금 내드린 이 4개의 예가 신앙적으로

 

과연 맞는 표현인가에 대한 의심을 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와 생각을 신앙적인 가치와 기준을 가지고 제대로 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워낙에 사람의 이해라는 것이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냥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앞에서 말씀드린 이 예화에 등장하는 남편이나 아내 모두 자기중심적인 생각만 하고 있다는 것이

 

제가 이 예화를 사용하는 핵심 포인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람의 사고와 이성을 사람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뒤부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똑똑하길 원합니다.

 

물론 똑똑한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똑똑함이 자기 자신을 위한 똑똑함이 되어버리는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사람의 똑똑함은 자칫 복된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앙생활을 가지고 자기의 유익만을 찾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한다면 자칫 자기 아닌 다른 모든 존재는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됩니다.

 

다른 이는 모두 내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의식과 생각에 사로잡힌 가장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처음 받은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들은 자기 민족 외에 다른 모든 민족은 몽땅 다 자기 민족을 위한

 

도구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때문에 자기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의 엄청난 재난과 재앙에도 전혀 끔쩍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민족은 누구 하나 손가락이라도 다치기만 하면

 

천 배 만 배의 잔인한 보복을 가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하는 주장의 배경에는 성경말씀이 등장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정당함을 주장하는 도구로만 작용할 뿐,

 

실제의 뜻과는 전혀 다른 겁니다.

 

 

 

5:38-4538절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절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절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절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절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절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은 내게 유리하고 불리하고를 떠나서 무조건적인 공평함이 그 기준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미치는 사랑입니다.

 

내 감정과 내 형편과 내 처지와는 전혀 다른 수준과 가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결정적으로 타나나고 보이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오심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그 차별이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20:25-2825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절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솔직히 이런 말씀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명제가 되고, 표어가 되며, 가훈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사랑이고,

 

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이미 섬김입니다.

 

사랑과 섬김은 그 대상이 있어야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또 예수님의 이 섬김을 우리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인 대상을 가지고

 

실천에 옮기라고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공동체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앞서서 말씀을 드린 예에서처럼 모든 것을 자기만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해서 사는 모습은 아닐까요?

 

예배당을 달려가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러 가는 겁니다.

 

아니 어떤 사람들은 자기 삶의 문제나

 

아니면 자기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소리를 거침없이 해댑니다.

 

그런 모든 것이 다 내가 추구하고 바라는 것만 채우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그 한계를 정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그냥 모든 것의 기준이 자기를 위한 것으로만 이해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겁니다.

 

 

 

혹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우리는 무슨 가치와 이해를 바탕으로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에 있어서도 마치 부동산 중계업자와 같은 모습일 때가 많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그 기준점이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겁니다.

 

미리 말씀을 드리지만 2015년 나무목교회의 표어는 복음으로 사는 나무목교회입니다.

 

복음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거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섬기러 오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것으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겁니다.

 

몇 배로 되돌려 받을만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은 조금도 내놓지 않고 남의 것으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동안 섬겼던 꽤 많은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지금도 제 마음에 그 모습이

 

아름답게 남아 있는 분이 딱 한 분이 계십니다.

 

이 집사님은 자기는 부목사도 전도사도 아닌데,

 

또 누가 수고한다고 사례비를 주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자기 돈을 엄청나게 써가면서 전도를 하러 다니십니다.

 

그것도 일 년 열두 달, 52, 365일 내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그러십니다.

 

주일에 새로운 성도를 교회에 등록하러 나오더라도 교회의 봉고차 보내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습니다.

 

소형 차 마티즈에 몇 명이나 탑니까?

 

그런데 그 작은 차로 몇 번을 왕복해서 실어 나르기도 합니다.

 

그냥 모든 것을 자기 비용으로 다 합니다.

 

구역예배를 일주일에 네다섯 군데에서 드립니다.

 

그리고 그 비용도 몽땅 다 자기가 냅니다.

 

동네 마트며, 빵집이며, 과일가게며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길을 가다가 혹시라도 말을 붙이는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냥 전도의 기회라고 여기고 교회 전도지가 아닌

 

자기가 직접 마트나 빵집이나 과일가게에서 물건을

 

자기 돈으로 사서 선물을 건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서 무조건 기도해줍니다.

 

그렇다고 그 집사님 댁이 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겨우 산동네에 빌라 하나 사서 삽니다.

 

그리고도 장애인으로 태어난 미혼모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웁니다.

 

모든 교역자들이 그 집사님의 형편과 처지와 건강을 오히려 더 염려를 하고 기도를 해주십니다.

 

목사님들만 보면 밥을 사려고 하고, 아이들만 보면 이 주머니 저 주머니에 먹을 것을 꺼냅니다.

 

아파트 단지에 전도를 하려고 몇 달 동안을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에게

 

자기의 사비로 점심 도시락을 만들어 날랐습니다.

 

교회의 일을 한다고 해서 절대로 교회에 손을 벌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10년 전 한 달 핸드폰 사용료가 30만원이 넘게 나왔으니까 그 정도를 짐작하시겠죠?

 

그렇게 다 희생하신 겁니다.

 

 

 

예수님처럼 섬긴다는 것은 딱 한마디로 그냥 무조건 희생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희생을 연습하고 훈련하는 곳이 바로 교회공동체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공동체는 희생을 훈련하고 연습하는 곳입니다.

 

그것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하는 것입니다.

 

 

 

희생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희생해야만 하는 그 대상의 선정에 있어서

 

나한테는 권리나 자격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희생의 대상을 내가 고르고 선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 희생을 잘 하고 있는 교회가 정말 주 안에서 잘 되는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나무목교회는 희생이라고 하는

 

예수님의 오신 이유의 관점에서 볼 때, 좋은 교회일까요?

 

이것은 앞으로 우리 나무목교회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고민을 해봐야만 하는 영적인 관심 포인트입니다.

 

 

 

물론 우리 나무목교회 공동체를 섬기는 우리 성도들은 사실 이미 희생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희생은 이만큼 하면 되었다고 하는 적정한 커트라인은 없습니다.

 

끝까지 하는 겁니다.

 

그 끝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는 겁니다.

 

때문에 우리의 오늘 신앙생활이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에 머무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5:1717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곧 우리에게도 그대로 해당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곧 우리의 일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만 하는 예수님의 바로 그 희생의 일은

 

오늘 본문에 특별히 19절에 아주 확실하게 말씀이 되어 있습니다.

 

 

 

19절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주의 은혜의 해”, 곧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의 날이 왔다는 것을 알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주의 은혜의 때가 왔음을 알리시려고

 

이 세상에 희생의 삶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혹시 그것이 우선 가장 먼저 주의 은혜를 더욱 깊게 체험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요?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는 그릇된 편견과 속 좁은 오해와

 

꽉 막힌 가치의 울타리를 벗어나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요?

 

말씀의 시작에서 이야기를 했던 맥추감사주일을 오해하고 찾아온 남편과

 

그의 친구들에게 교회에서 맥주 한 잔 대접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더 큰 감동과 은혜로 그들에게 자리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서 이 세상에 오시는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은혜로 받은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더 무엇을 아낄 수 있겠습니까?

 

몽땅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