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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과 신적 작정 교리

하나님아들 2024. 9. 18. 16:53

하나님의 속성과 신적 작정 교리

배현주 목사, 주교개혁장로교회 (2016.8.2)

 

“자신의 행위 공로를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 교리에 배치되는 오류”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는 제2장 2절에 “그가 피조물 위에 절대 주권을 가지시고 그 스스로 기뻐하시는 무엇이든지 그들에 의해서 그들을 위해서 그들 위에 행하신다”고 고백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절대 주권으로 만물 위에서 만물에 의해서 만물을 위해서 행하신다고 진술한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 계시록에 관련하여서 이러한 말씀이 증거되고 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헬라어 원문을 직역하면 이러하다. “당신은 합당하십니다. 주님 곧 우리의 하나님이시여 영광과 존귀와 권세를 받으시옵소서. 당신이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만물이 당신의 뜻을 인하여서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합당하시다”고 할 때 헬라어 “앜시오스”를 쓰고 있다. 이것은 “어울리는” 혹은 “-하기에 만족한”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러한 영광을 받으시기에 가장 잘 부합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신앙고백서는 이어서 계속 진술한다. “만물이 그의 눈앞에 모두 개방되어있고 드러나 있다. 그의 지식은 무한하시고 무오하시며 피조물에 대하여서 독립적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야 할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신다. 그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앞에서는 만물이 벌거벗겨 지듯이 다 드러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우리를 모두 제대로 아신다. 그는 우리의 체질과 본질을 다 아신다.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거짓을 은폐하고 선한 척 하는 외식은 실로 혐오스럽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 폐부까지 드러난 죄인들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전혀 없다. 어떠한 행위와 공로도 자랑할 수 없다. 신자가 자신의 행위의 공로를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 교리에 배치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신자들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공로를 내세울 수 없다. 인생들은 모두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장 2절 후반부에는 “그래서 그에게는 우연적인 것이나 불확실한 것이 없으시다”(nothing is to him contingent or uncertain)고 진술한다. 이것은 어거스틴의 말을 따라서 해석할 수 있다.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De Trinitate)에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변화시키시지만(mutabilia facientem) 자신은 홀로 변하지 않는 분(sine ulla sui commutatione)이시라는 진술이 있다. 또한 어거스틴은 그의 저서 삼위일체론(De Trinitate)에서 하나님께는 관계적인(relativus) 표현과 본질적인(substantia) 표현은 있으나 우연적인(accidens) 표현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는 우연에 따라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분 안에는 변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말이 본질에 대한 것은 아니다. 관계에 대한 말이 있기 때문이다”(De Trinitate.Lib.5.cap.5. ver.6).

우연성은 피조물에게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는 모두 필연적이다. 인간이 인식하는 우연성은 인식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는 필연적이다. 다만 하나님의 절대적 섭리의 비밀을 인간은 다 알 수 없기에 하나님께는 필연적인 것이 인간에게는 우연적이다. 그 만큼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어두운 자들이며 무지한 자들이다. 여기에 신자들의 겸손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찬송함이 마땅히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은 그 자신은 변함이 없으면서 만물을 변화시키시고 그 자신은 시간 안에 동작이 없으시면서 피조물을 시간 안에 창조하시는 그자체로서 불변하신 속성이다(De Trinitate. Lib.1. cap.1.ver.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장 2절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계획, 그의 모든 행사 그리고 그의 모든 명령들에 있어서 가장 거룩하시다”라고 진술되어있다. “거룩하다”라는 의미는 히브리어로 “콰도쉬”이다. 이것은 “구별된다”라는 의미도 있다.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계획과 행사와 그의 모든 명령들이 다른 피조물들의 그것과 구별이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의 계획과 행사와 명령들을 완전하고 불변하게 반드시 성취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신적 작정”의 교리를 다룬다.

하나님의 영원한 신적 작정은 역사 안에서 변하는 것이 아니다. 항상 변함없이 그렇게 만물에 대하여서 역사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의 신적 작정의 교리는 그의 속성의 교리로부터 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행사와 명령들은 사람의 계획과 행사와 명령들과 달라서 반드시 성취하신다. 이에 신자들은 그의 계명을 경외하며 그것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시 1:2). 실로 여호와의 계명은 완전하고 순전하다. 그의 계명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복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장 2절 맨 마지막 구절은 “마땅히 모든 천사들과 사람들과 모든 다른 피조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즐거이 요구하시는 무엇이든지 예배, 섬김 혹은 순종을 그에게 드려야 한다”라고 되어있다. 이 본문은 요한계시록 5장 13절과 연결된다.

요한계시록 5장에 보면 모든 만물이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장면이 나와 있다. 요한계시록은 1-3장까지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거하시는 형태로 되어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 4-5장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 영광으로 충만한지를 계시하고 있다. 그때에 요한 계시록 5장 13절에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충만한 상태를 서술하고 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사도 요한은 장대한 대 서사시를 기술하듯이 그렇게 매우 장엄하게 이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영광스러우며 이렇게 거룩하고 이렇게 장엄한 장면은 이 세상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그 영광된 하나님 나라의 온전하게 거룩하고 찬송할 만한 고귀함을 노래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기술을 통하여서 신자들에게 마땅히 영광과 찬송을 돌려드려야 할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다.

요한계시록이 증거하는 하나님 나라는 어떠한 영역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통치의 개념이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이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냐고 질의했을 때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다(눅 17:20-21).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영역의 개념으로 간주하고 하나님 나라의 위치를 물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증거하시면서 주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서 말씀하셨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 나라의 통치 아래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신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들은 요한 계시록이 증거하는 그 영광된 나라를 현재적 실존 가운데 경험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는 여전히 모든 신자들에게 완성을 향하여서 달려가는 하나님 나라로서 이루어져 가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자에게 충만하게 임재하는 실재적인 나라이다(마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