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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선거만 끝나면 분노하는가? 대선후 스트레스 주의보

하나님아들 2022. 3. 29. 23:09

우리는 왜 선거만 끝나면 분노하는가? 대선후 스트레스 주의보

이병문 입력 2022. 03. 29. 
선거후 스트레스 장애
치열했던 대선 결과 인정않고
분노하는 당신 건강에 경고등
우울증·스트레스 장애 시달려
美도 우울 호소 유권자 늘어
승자에 박수 보낼 여유 필요
SNS서 자신이 본 것만 믿는
'집단적 확증편향' 빠질 위험
정치 유튜브 접촉량 줄이고
운동·취미로 스트레스 치유를
20대 대통령선거가 이달 9일 끝났지만 선거 과정이 치열했던 만큼 후유증이 여전하다. 선거 후유증 때문에 이른바 '선거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윤석열 당선인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며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이재명 후보를 비롯해 그 밖의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허탈감과 함께 분노(화)를 삭이지 못하며 신문 및 TV를 멀리하고 있다. 이 같은 상반된 명암은 최근 들어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두고 첨예한 갈등으로 확전되고 있다.

미국도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자 후유증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지 않았다. 충격적인 일을 겪은 뒤 발생하는 정신·신체장애를 뜻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PTSD)'에 빗대어 '선거 후 스트레스 장애(Post Election Stress Disorder·PESD)'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불안과 절망을 호소하는 PESD 환자들이 늘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선거 당일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미식축구(NFL) 결승전이 열리는 슈퍼볼보다 선거 당일에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

미국의학협회 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1976년(지미 카터 당선)부터 2004년(조지 부시 당선)까지 대통령 선거 당일 교통사고 사망자는 평균 158명으로 대선 전후의 134명보다 훨씬 많았다. 그 이유는 뭘까? 대선 투표 결과가 실시간 중계되는 미국은 많은 사람들이 주요 이동수단인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 대통령 및 상·하원 의원의 개표 상황을 들으며 쉽게 흥분하고 이는 과속 및 난폭운전으로 이어졌다.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된 대선에서 심리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유권자들이 크게 늘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인 폴 크루그먼 교수 조차도 '뉴욕타임스'에 '우리가 몰랐던 나라(Our Unknown Country)'라는 칼럼을 써서 대선 결과에 실망하고 유감스러워했다. 휴스턴 베일러의과대 스토어치 교수는 유권자 483명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근심·걱정, 우울감(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8%가 정치 편향증에 빠져 포털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관련 뉴스를 수시로 검색했고 스트레스, 우울증, 걱정·불안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상당수 유권자는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OCD)에 시달렸다고 했다. 이는 2018년 4월 '불안장애저널(Journal of Anxiety Disorders)'에 실린 내용이다. 조 바이든과 트럼프 후보가 박빙 승부를 펼치며 예측이 어려웠던 2020년 대선은 유권자 10명 중 7명(68%)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이는 2016년 52%보다 16%포인트나 높아졌다. 미국심리학회(APA)가 대선 투표 이전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민주당의 76%, 공화당의 67%, 무당파의 64%가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는 주로 미국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었다.

우리나라 20대 대선도 윤석열 당선인과 이재명 후보의 득표 차이가 24만7000여 표에 불과했다. 우리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선 승패가 1%포인트 이내 소수점으로 갈렸다. 승자 쪽은 짜릿한 신승이었지만, 패자는 아쉬운 역전패였다. 25만표 차이는 상대방에게서 13만표만 빼앗아오면 이기는 선거여서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 일부 유권자와 정치인들도 SNS나 유튜브를 통해 '승자에 대한 저주'를 쏟아내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승패가 0.73%포인트 차이로 갈렸지만,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선거 결과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분노는 신체적 질환 못지않게 정신적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 분노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준다. 혈압이 갑자기 오르거나, 두통과 어지럼증이 오기도 하고, 가장 크게는 기력을 소진시킨다. 각종 통증과 기능 장애에 시달리고 만성 질병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일에서 실수를 하기도 하고 업무 능률이 확 떨어지기도 한다. 대인관계 역시 점점 힘들어진다. 분노 행동은 남에게도 악영향을 끼쳐 마음의 상처를 주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불상사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건강' 하면 신체적 건강만을 생각하지만 이는 정신적, 영적, 사회적 건강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의한 개념이다. 분노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 사회는 불안하고 국가는 통합을 일궈내기 힘들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승자에게 축하와 함께 격려의 박수를 보내야 한다. 싫어도 해야 한다. 수많은 목숨과 희생을 감내하고 지켜온 민주주의를 위해 승복과 함께 격려를 보내야 한다. 그래야 5년 후 승자가 되었을 때 축하와 박수를 똑같이 되받을 수 있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했다. 선거일정이 세팅된 '정치시계'는 빠르게 흘러간다. 여야로 뒤바뀐 공수(攻守)는 언제든지 잃을 수 있고, 빼앗을 수 있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 묘미다. 선거는 총만 들지 않았지 사실상 전쟁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결과에 수긍하고 사회적 통합에 참여해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고 국가경쟁력을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릴 수 있다. 누가 이기든 선거 결과를 놓고 한 영토에 사는 국민이라면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는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분노와 화병으로 맞바꿀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화병(火病)'이라는 우리만의 단어가 있을 만큼 '한(恨)' 많은 민족이다. 미국정신의학회는 1995년 '화병'을 'hwa-byung'이라는 우리말 용어를 쓰면서 "한국민속증후군의 하나인 분노증후군으로 설명되며 분노의 억제로 인해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 며느리들이 시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마음속에 응축해 생긴 병이 '화병'의 출발이다. 화병은 사실 책임이 강하고 감정을 잘 억제하는 내성적인 사람들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화병은 오랫동안 남성 중심의 사회나 가정 환경에서 받은 억울함을 참고 지내온 중년 여성뿐만 아니라 직장 스트레스가 많거나 자신이 힘든 것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남성들에게서 자주 발생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손실로 파산에 직면한 자영업자들, 장기 불황의 그늘로 파생된 고용 불안을 겪고 있는 40·50대,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까지 화병에 노출되고 있다.

화병은 신체적 증상(두통, 심장이 뛰고 가슴이 답답함, 가슴 통증, 식욕 부진, 소화 불량, 안면 홍조, 만성피로), 정신적 증상(불면, 기억력 감퇴, 공허함, 집중력 저하), 감정적 증상(신경과민, 우울증, 분노, 근심, 걱정, 인내 부족, 불안초조), 행동적 증상(과음과 과식, 흡연 과다, 욕설·폭력 등 과격한 행동 증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또한 지식인이든 아니든 남을 쉽게 비난하고 욕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한마디로 '욕하는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유태우 전 서울대 의대 교수(닥터U와 함께 몸맘삶훈련원장)는 "한국에서는 100을 잘해도 하나만 잘못하면 그 100은 다 무시되고 욕을 먹고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5000만 한국인 중에 욕을 안 먹고 사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면서 "우리는 이르면 유치원에서 시작해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욕을 하는 것이 거의 일상화되어 간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익숙해진 욕은 어른이 돼서는 그 대상과 방법이 점점 더 넓어지고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공과가 적지 않지만 지지층 성향에 따라 '성공' '실패'로 평가받으며 가장 많은 욕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어떤 사안에 대해 분노가 치밀고 화가 나면 잠시 울분의 감정을 내려놓고 사건의 본질을 차분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혼자 속으로 부글부글하면서 허무한 무기력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제를 이성적으로 바라볼 여유가 생기면 울분의 감정은 안정될 수 있다. 문제를 공감하는 사람과 대화를 통해 울화를 털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떠한 행동과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정리해 본다. 평소의 컨디션과 감정을 잘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분하고 화가 나면 뉴스를 피하고 산책 같은 운동을 30분 이상 하면서 자신의 리듬을 되찾으려 노력한다.

우리나라보다 대선 후유증이 훨씬 큰 미국의 전문가들은 "PESD를 줄이려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SNS 검색이나 뉴스 시청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이고 독서, 친구와의 전화 통화, 산책 등 다른 일을 즐기라"고 조언한다. 자신과 비슷한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개진하는 의견을 SNS 공간에서 계속 공유하다 보면, 결국 자기가 보고 믿고 싶은 것만 신뢰하는 '집단적 확증편향'에 매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결국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의 건강을 해치게 된다.

[이병문 의료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