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40년 중국은 4번 한반도에 군대를 보냈다 [노원명 에세이]
- 노원명 기자
- 입력 : 2022.02.27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20세기 이전까지는 국가간 서열이 특징인 '조공 체제'였다. 조선은 중국에 정기적으로 공물을 바치는 '봉신국'이었다. 조공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제국 앞에 복종을 다짐하는 '질서 확인'의 무대였다. 조선의 왕이 쓴 편지가 바로 도달할 수 있는 청나라 최고 관원은 예부상서였다. 지금 중국 외교부장 자리다. '황제 친전'은 상상할 수 없었다.
조선이 명과 청에 조공했다해서 '속국'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논란을 부를수 있다. 조선은 한번도 자치권을 중국에 양도한 적이 없고 중국은 한반도를 복속시킬 실력이 없었다. 조선이 중국에 '속박'돼 있었다면 그것은 외교문제에 한정된 정도였다. 다음 일화를 보자.
1845년 영국 전함 새머랭호가 조선에 무역을 요구했다. 조선 조정은 "중국의 조공국인 우리는 외국과 무역할 권한도 생각도 없다"고 거부한뒤 청나라 예부에 편지를 보내 "더 이상 영국이 배를 보내지 않게 지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청나라 대신은 영국 관계자를 만나 조선의 독특한 입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조선은 청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무역을 개방하도록 지시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독립국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무역을 개방할 수도 없습니다."(김기혁,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종막') 뭔가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사실이 그랬다. 청의 일부도 아니고 독립국도 아닌 그 무엇. 조선은 그런 '애매한' 나라였다.
20세기 이후 한국과 중국은 다같이 서구가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편입되며 베스트팔렌의 규범에 따라 교류해오고 있다. 한국은 진실로 한국과 중국이 상호 평등한 주권국가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반대할 한국인은 남북한 통털어 한명도 없을 것이다. 중국은 어떨까. 그들은 '진실로' 중국과 한국이, 중국과 베트남이 대등한 국가라고 생각할까. 유사이래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생각해 온 사유체계가 불과 100년의 속성 과외로 바뀔수 있겠는가하는 의문이 든다.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원톱 국가'가 됐을때 과연 형식일망정 만국평등의 규범이 살아남을수 있을지 나는 다소 회의적이다. 가령 그때도 한국 대통령이 중국 주석과 '형식적으로' 대등한 정상회담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양국간 무역에 이해충돌이 발생했을때 지금처럼 국제법과 국제기구에 맡기는게 그때도 의미가 있을까. 아니면 중국 당국의 온정에 호소해야 할까. 베스트팔렌이 조공체제를 대체했다면 도로 조공체제가 베스트팔렌을 대체할 가능성은 없겠는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의 독립과 국경선을 지켜내는 것이다. 최근 1000년의 중국은 한반도를 상대로 영토적 야심를 보인 적은 없었다. 미래에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가뜩이나 소수민족 분규로 몸살을 앓는판에 한반도처럼 거대한 혹을 감당할수가 없다. 명과 청이 조선의 자치를 존중한 것은 관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달리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은 명과 청이 그러했듯 한반도를 자신의 통제아래 두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쓸 것이다. 거기엔 군사력이 포함된다. 오드 베스타 예일대 교수는 저서 '제국과 의로운 민족'에서 역사적으로 중국이 한반도에 개입한 때는 다른 세력과 경쟁할 때였다고 주장한다. 16세기 명은 조선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넘어갈 경우 1년안에 북경이 위험해질 것으로 보고 원군을 파견했다. 17세기 만주의 신흥국 청은 조선이 명을 지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19세기 청은 메이지 일본을 상대로 한반도 종주권을 지켜내기 위해 모두 3차례 군사개입했는데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그리고 1894년 동학운동때 그랬다. 그리고 20세기에는 미군과 국경을 맞대는 상황을 걱정한 마오쩌둥이 수십만 중공군을 파견해 6·25를 무승부로 만들었다. 최근 140년 사이에만 중국은 4차례 한반도에 군대를 보낸 것이다.
미래의 중국이 한반도에 군사 개입하는 가장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로 베스타 교수는 북한 정권이 붕괴하는 경우를 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활력있는 민주주의국가이자 미국의 군사동맹인 남한이 한반도를 통일하고 이들과 국경을 마주하는 것을 중국은 과연 두고볼수 있을까. 중국이 북한내 위성정권 수립 및 완충지대 확보를 위해 군대를 보낸다 했을때 미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북한에 친중 위성정부가 들어섰을때 한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얼마나 커질까.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에 부여하는 가치는 더 커질까. 아니면 의지를 잃어버릴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무능을 지적한다. 그러나 대양 건너에 있는 한 강대국을 군사력으로 저지할 수 있는 '지구적 패권국'은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다. 작은 국가를 상대로 싸울수는 있다. 그러나 북한, 베트남, 아프가니스탄의 예에서 보듯 그마저도 승리는 쉽지 않다. 이걸 동아시아 상황에 접목하면 중국이 한반도에 군사력을 투사할때 미국이 저지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다음은 중국의 대만 침공이 될 것으로 걱정한다. 나는 중국군이 대만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급변을 맞은 북한에 들어가는 것이 백번 손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아직 미국 항공모함 지역방어와 대만 공군의 항공망을 뚫고 섬에 상륙할 실력이 못된다. 그러나 북중 국경은 거칠게 없다. 중국 동북과 산둥반도를 지휘하는 중국인민해방군 북부전구는 각각 20만명 이상 3개 집단군으로 구성돼 있다. 선양에 본부를 둔 제79 집단군은 중국이 한반도에 개입할때 선봉을 맡게 되는데 중국 최고 정예부대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에게 두가지를 일깨운다. 첫째 미국이 권위만 갖고 호령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이 세계경찰 역할을 위해 전면전을 할 생각도, 그 전쟁에서 이길수도 없다는 것을 잘안다. 그래서 도전하는 것이다. 둘째 러시아가 포문은 열었지만 21세기의 기본 대립 구도는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미중 대결이고 가장 위험한 공격은 중국에서 올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전장은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게 걱정이다.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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