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강 오중복음의 진원지를 찾아서
Ⅰ. 오중복음의 정의
복음이란 헬라어 '유앙겔리온'을 번역한 말이며 '유앙겔리조'에서 파생된 것으로 '복된소식', '좋은 소식', 혹은 '좋은 소식에 대한 보상'을 뜻하고 있다.
성경 기자들은 이 낱말을 구약적인 배경속에서 사용하였는데
구체적으로 메시야로 인해 임하게 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정시켜서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복음이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기쁜
소식을 의미한다.
오중복음이란 실천적 삶에 있어서의 삼중축복, 즉 영적 , 육적, 생활적 축복을 가능케하는 순복음의 이론 신학적 근거로서 중생의 복음, 성령충만의 복음, 신유의 복음, 축복의 복음,
재림의 복음을 말한다.
이 다섯가지 강조점이 바로 복음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조용기 목사는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40년간 지탱해온 신앙의 근간이요, 조용기 목사 목회철학이기도 한 '오중복음'은 과연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그 미지의 근원지를 찾아보는 것은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신앙인으로서 매우 의미있는 일임에 분명하다.
Ⅱ. 오중복음의 태동배경
오중복음이 나오게 된 첫째 배경으러서는 존 웨슬리와 알마니안 계통의 신학이 그 근저를 이루는 오순절신학이라 할수 있으며, 둘째로는 어거스틴의 사상 및 청교도인적 칼빈주의 사상이 근저를 이루는 복음주의 신학이라 할 수 있다. 조용기 목사의 전인구원의 신학의 이론적 틀을 형성하는 오중복음의 신학은 위의 두 신학적 흐름을 통합 발전시킨 통전적 신학으로서 복음적 은사주의 신학(Evangelical Charismatic Theology)이다.
A. 복음주의 신학
1. 어거스틴(St.Augustinus)의 신학 전통
1) 하나님의 예정과 하나님의 자유의지에 대한 통합
어거스틴의 심오하고도 광대한 사상은 신, 구교인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종교개혁자들의 사상도 결국 어거스틴을 원조로 하고 있다. 그의 사상은 양면적이고 통합적이다. 그는 마니교도와의 논쟁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장했으나,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에서는 하나님의 예정을 강조했다. 어거스틴은 사람이 지닌 자유의지는 사람의 도덕적인 책임이 주(主)가된 자발적인 선택의 자유를 그 본성으로 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에 있어서 참된 자유는 선, 악에 대한 선택이 죄에 봉사하게 되지 않을 때에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즉 그에게 있어서 참된 자유란 선택의 자유를 초월해 있는, 보다 근원적이고 원초적이며 전체적인 의지 현상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예정과 은혜가 선택의 자유와 모순되어 보이나 실은
선택의 자유를 넘어서 있는 자유, 즉 선에 대한 적극적 자유요, 참된 자유로서 이 자유는 하나님이 선하신 한 모순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없이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없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Qui fecit nos sine nobis, non solvabit nos
sine nobis)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기게 되었으며, 특히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참된 자유를 병립시킨 어거스틴의 자유의지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절대
순종에서만 인간이 참된 자유를 얻을수 있다고 간파하는 조용기 목사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2) 전적인 은혜로 인한 구원, 그러나 구원에의 동참(Impartation 강조)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은총(은혜)이란 전적으로 우리 인간의
밖에서(extra nos) 우리에게 전가되는(Impartation) 하나님의
의(義)라고 강조함으로써 '오직 은총'(sola gratia)이란 개신교주의의 기틀을 굳게 확립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된 이후에도 인간의 욕망은
계속 남아 있으므로 인간은 회복된 자유를 통하여 성화에의
자발적인 노력을(Impartation)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 웨슬리에 의해 계승 발전된 어거스틴의 통전적 신학사상
하나님의 은총과 예정 및 인간의 자유의지의 통합적 입장에
관한한 루터나 칼빈은 인간의 노예 의지적인 측면만을 강조함으로써 이 둘의 올바른 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한 반면 웨슬리는 중생과 성화를 모두 적절히 강조했다.
B. 오순절 신학
오순절 신학은 오순절 운동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오순절 운동은 새로운 종교적 혁신이 아니라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며, 이성 중심적 신학에 치우친 현대 신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말씀 교육과 성경적 체험을 중시하는 운동이다. 오순절 운동의 기원은 일반적으로 초대 교회 오순절 성령 강림(행
2:1-4)에 두고 있다. 이 운동이 신약의 열정적인 교린도 교인들(고전 12-14)을 비롯하여 17-18세기의 경건주의 및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 19세기 초의 어빙(Edward Irving)과 피니(Charles Finney)의 부흥 운동, 19세기 후반의 성결 운동 및
경건 생활(higher-life)운동 등을 거쳐 20세기의 오순절 성령
운동으로 연결되어졌다.
미국의 감리교의 팔함 목사(Charles F. Parham)에 의해 소도시 토페카에서 일어난 부흥 운동은, 윌리암 시무어 목사(William J. Seymour)에 의해 주도된 로스엔젤리스 아주사 거리의 부흥 운동으로 국제적인 부흥 운동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이 운동이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초대 교회와 같이 성령 세례를 받고 방언을 말했다. 현대 오순절 성령 운동은 초대
교회와 같이 a) 간절한 기도와, b) 약속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그 성취, c) 선교에 대한 적극적인 헌신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성령 운동의 생명이 어떤 감정적 체험에 치우치거나 기적에만 국한된 운동이 아닌 '기도와 말씀을 통한 전인적 변화와 세계를 변화시키는 뜨거운 선교 열정에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1. 오순절 신학의 태동
1) 요한 웨슬리의 제2의 축복사상
여러 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사역이 중생에만 한정되는 것인지 아니면 중생이후의 또 다른 복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그 중 루터(Martin Luter)는 의인화의 은총만 강조했고, 칼빈(John
Calvin)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주는 '의인화'와 '성화'의 두가지 차원의 은총을 말했으나, 웨슬리는 의인화의 은총을 제1의 축복이라고 보았고, 성화는 또 하나의 축복과 은총임을 강조하였다.
즉 웨슬리는 예수그리스도 은혜의 사역이 결코 중생에만 머무르지 않고 죄의 잔재를 청산해 버리는 또 다른 제2의 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중생이후에 있어서는 순간적이고도 체험적인 성화의 관계에 특별한 가치를 두었으며, 이는 정화와 정결의 순간을 시사하는 성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2) 심슨의 사중복음
심슨의 제3의 축복주의는 웨슬리적인 성화의 신학에서 진일보한 것이었다. 심슨의 사중복음은 중생, 성화, 신유, 재림의
네가지로 정의된다. 이러한 심슨의 입장은 성화와 권능을 별개로 보는 제3의 축복주의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성화를 신자들이 추구하고 체험해야 할 복음에 있어서의 개별적인 하나의 차원으로 파악하는 것으로서 웨슬리적인 성화의
신학과 그 맥을 같이하되 웨슬리적인 입장에 대해 새로운 '능력'의 차원을 첨가시킴으로써 웨슬리의 신학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전인구원을 강조하였으며 또한 신유의
역사를 강조했다.
3) 팔함의 오중복음
은혜의 사역에 대한 웨슬리의 이중적인 이해가 일군의 오순절
주의자들에 의해 삼중적인 이해로 발전하게 되었다. 즉 중생,
완전한 성화. 봉사에의 능력을 위한 성령세례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삼중적인 이해는 복 아메리카 오순절 연합(Pentecostal Fellowship of North America, PFNA)에 의하여
계승 발전되었는데 PFNA는 이러한 삼중적인 이해에 신유와
재림의 두 가지를 덧붙여 다섯 개의 주제로 복음의 내용을 요약하게 되었다. PFNA는 이것을 'Full Gospel'(순복음)이라고
불렀다. 이는 챨스 팔함(C.F.Parhham)의 베델 성서 대학에서의 가르침과 유사하다.
4) 덜함의 사중복음
또 다른 오순절적인 운동은 성화를 점진적인 것으로 보면서
중생과 성화를 하나로 묶어 은혜의 사역을 중생, 봉사에의 능력을 위한 성령세례의 이중적 이해로 발전시켰다. 이와 같은
견해는 웨슬리와는 다른 전통, 즉 기독론 중심의 개혁주의적
입장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으로써 덜함(W.H. Parham)은 팔함의 입장과 달리 이러한 입장을 견지했다. 이러한 입장은 결국은 'Full Gospel'을 중생, 성령세례, 신유, 재림의 네가지 주제로 복음의 내용을 요약하는 'Foursquare Gospel'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Ⅲ. 오중복음의 신앙과 신학의 특성
A. 통합적 신학으로서의 오중복음
1. 웨슬리적 성결 신학과 개혁신학적 입장의 통합
조용기 목사의 오중복음은 성화를 분명히 중생과는 구별되는
체험으로 주장하고 있는 까닭에 이점에서 심슨과 팔함의 견해를 따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화는 능력을 위한 성령세례의 전제조건으로 보기보다는 성화와 능력을 위한 성령세례를 동시에 추구하되 성화는
순간적일 뿐만 아니라 점진적인 것이어서 우리의 삶 끝까지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로도 보고 있으므로 덜함의 입장도 통합하고 있다.
오순절 신학의 '성화'와 '능력'에 대해 웨슬리적 성결신학의
요소와 덜함의 경우에서 보듯 기독론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의
두 흐름 사이에서 아직도 분명한 입장을 확고히 하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 조용기목사의 오중복음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통합하고 있는 것이다.
2. 오순절 신학과 복음주의 신학의 통합
앞에서도 설명하듯 오중복음의 신학은 오순절 신학에서뿐만
아니라 복음주의적인 신학의 입장도 갖고 있다. 조용기 목사는 바울, 어거스틴,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이어받아
이를 스콜라적인 방법으로 정형화한 개신교 전통주의 신학에서의 교리적인 명제들을 복음주의적이며, 오순절적인 역동성으로 해석하였다.
성령주도의 사역을 강조하는 오순절적인 기조에 근거하는 오중복음의 신학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에 대한 신학적
입장들을 성령론적으로 통합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오중복음의 기저에 깔린 복음주의적 정통성과 성령론적 역동성은 이 시대와 다가오는 시대를 위해 열린
신학으로서 이러한 통합과 발전을 위해 성공적으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3. 개신교, 카톨릭 외 제3의 통합적 세력으로서의 오순절 신앙
반 듀젠(H.P.Van Dusen)박사는 1958년 오순절 은사 운동을
전통적 개신교와 카돌릭에 버금가는 '제3의 세력'이라 지칭하였다.
1960년대에 이르러 오순절 성령 운동은 각 교파로 파고들면서 '신오순절주의' 내지는 '은사 운동'이란 개념을 낳게 되었다. 이들은 정통 오순절주의와는 달리 성령세례의 증거로 방언의 절대성을 주장하지 않으며 성령의 각종 은사를 강조하면서 자기가 속한 교단 내에서 성령 운동을 고수하는 자들이다.
그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 힘입어 카톨릭에서도 성령 쇄신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최근에 이르러 성령의
역동적인 역사를 강조하며 특히 신유와 축사를 중점으로 하는
제3의 물결이 대두되면서 오순절 성령 운동은 마지막 시대를
위한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제3의 물결은 초기의 정통적 오순절주의(제1의 물결)와는 달리 성령세례보다는 성령충만을 강조하는 한편 정통 오순절주의자들이 주장한
성령세례의 대표적 증거로서의 방언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또한 '제3의 물결'은 복음주의자들과 다른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오순절 교인이나 은사주의자들이 되지 않고서도 오순절 교인이나 은사주의자들이 체험한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다.
B. 토착화된 신앙으로서의 오중복음 신앙
교회가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그 지역의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복음은 그 지역의 문화권에서 그
문화의 수단을 통해서만 전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토착화란 역사적으로 각 나라의 문화적 배경과 전통이 다르기에 복음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복음이 거부당하지 않고 수용되도록
그 문화와의 동일화를 모색하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1. 민초들의 한(恨)을 달래고 한민족의 복에 대한 사상을
창조적으로 완성시켜주는 신앙
역사상 한국인들은 끊임없이 외침을 당하면서 살아왔다. 급기야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모진 압박과 설움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해방의 기쁨도 잠깐 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되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고 동족간의 전쟁으로 인해 살 소망마저 꺼져가는
쓰라린 비극의 경험을 해야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한국인의 마음에는 깊은 한(恨)이 맺히게 되었다.
조용기 목사의 '오중복음' 메시지는 한국인들의 마음속 깊이
맺혀있는 한을 내세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 현실속에서도 풀어주는 하나님을 전파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만나게 했다. 그
하나님은 전인구원의 하나님이다. 즉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일뿐 아니라 현재의 삶에 복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는 하나님이다. 이런 복음은 당시 한국 사람들의 심성이 옥토인 것으로 인하여 놀라운 결실을 맺게 되었다.
2. 샤머니즘적 기복주의신앙에 대한 비판적 극복으로서 축복신앙
한편 이러한 오중복음에 대해 비판의 소리도 높았다. 즉 십자가 없는 샤머니즘의 기복신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조용기 목사의 오중복음의 메시지나
중점적인 목표가 첫째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요, 둘째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며, 셋째 신자들이 삶 가운데서 지금도 살아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번째 것이 가시적인 표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났기
때문에 그것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게 된 것이다. 그것을 기복신앙으로 몰아서는 안된다. 오히려 토착화의 시각에서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Ⅳ. 오중복음의 7대 신앙적 기초
1. 갈보리 십자가의 신앙(중생에의 확신)
순복음 신앙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로부터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이루신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얻는 중생의 복음이 곧 갈보리 십자가의 신앙이다. 이 갈보리 십자가의 신앙은 복음의 중심이요, 핵이며, 순복음 신앙의 기반이요, 출발점이다.
2.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성령의 은사 및 열매)
갈보리 십자가의 신앙은 오순절 다락방의 사건에 이르러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위력으로 폭발하게 된다 순복음의 신앙은 바로 이와갇은 성령 충만한 초대 교회의 신앙을 오늘날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재현시키고자 하는 신앙이다. 즉 성령세례를 통하여 무기력한 신앙을 생동감 넘치고 생활화된 신앙으로 바꾸고 ,성령은사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사도적 신앙을 갖는 것이 그 목적이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삶을 더욱 거룩하게 성화시키고 생활 속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이다.
3.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전도와 선교)
순복음의 신앙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순복음 신앙인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받들어 복음 전파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거듭나고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진 성도는 복음의 증인이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야만 한다.
4. 좋으신 하나님(축복과 부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롬 5:8)
순복음 신앙은 이와 같이 우리에게 구원과 축복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철저히 믿는 신앙이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못된 길을 갈 때 사랑의 채찍을 아끼지 아니하신다.(히 12:5-14)
5.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신유)
하나님께서는 죄의 문제만 대속하신 것이 아니라, 질병과 고난, 슬픔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을 통하여 모두 대속하셨다.(사 53:4,5,11,12) 질병의 치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위이며, 그리스도인들이 간구하고 소유해야 할 은총이다.
순복음 신앙은 성경에 약속된 그대로 오늘날에도 살아 계셔서
치료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다.
6. 다시 오실 예수님(재림에 대한 소망)
재림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시고 이
세상에 다시 강림하시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는 신약 성경은 물론이고 구약 성경에도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렘 46:10; 단 7:13; 욜 2:1; 미 4:6). 예수님 자신도 재림을 약속하셨으며, 천사들도 예수님의 승천시 제자들에게 재림을 증거하였다.(행 1:11). 그 날과 그 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므로 아무도 알 수 없으나, 현재 이 세상에 나타난 모든 징조를 볼 때 그때가 심히 가까웠음을 믿는다.
순복음의 신앙은 임박한 종말을 믿을 뿐 아니라, 나아가 신천신지와 영원한 나라를 소망한다. 이 같은 신앙을 가지고 주께서 언제 재림하시는지 기쁨으로 그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하여 주를 섬기는 것이 순복음의 종말신앙이다.
7. 나누어 주는 신앙(봉사)
나누어 주는 신앙이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을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선물로 드리며, 또 이웃에게 나누어 구제하는 신앙을 말한다. 이러한 것의 일환으로 순복음교회에서는 각종 사회사업을 실천하고 있는데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심장병 어린이 무료 수술 사업, 직업이 없는 청소년을 위한 직업학교와 자녀가 없는 노인들은 위한 양로원을 운영하는
엘림 복지원, 헌옷 나누어 갖기 운동 등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교단과 많은 교회들이 존재한다. 여러 교단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각 교단마다 교리적인 특색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회'는 현재 2억 5천만의 달하는 오순절
및 은사주의자를 대표하는 세계 최대의 오순절 교단으로서 신본주의에 입각한 보수적인 성경 교리를 가지고 있으며, 특별히 성령의 역사에 대한 강조와 선교에 대한 열정에 그 특징이
있다고 하겠다.
Ⅴ. 오중복음의 핵심과 본질
1. 중생의 복음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는 자의 중생 체험이 서로 합할 때에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2. 성령충만의 복음
성령충만은 성화를 위한 것이고 동시에 능력을 위한 것이다.
성화없는 능력은 맹목적이고 능력 없는 성화는 허무하다. 오중복음의 성령충만은 성령세례로 인한 성령의 은사와 그 결과로 인한 성령의 열매를 모두 다 포함한다.
3. 신유의 복음
신유는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처음부터 시작하여 행하신 것이며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우리를 위해 채찍에 맞으심으로 완성하신 것이다(사53:5, 벧전2:24). 십자가에서의 사역은 신유의 완성으로서 병 자체에 대한 승리이며 병의 근원과 대결하여 이기신 것을 의미한다.
4. 축복의 복음
예수님께서는 그의 성도들을 위해 모든 가난과 저주를 속량하셨다(갈3:13-14, 고후8:9).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받고자 하는
인간의 자연적인 욕구를 결코 파괴하지 않으신다. 또한 그 욕구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완성시켜 주신다. 완성될 때의 축복이 바로 진복이며 이 진복은 다름아닌 사랑이다. 자연적 욕구를 파괴하지 않고 일단 수용하는 데서 순복음은 샤머니즘적
기복을 비판적으로 극복해 낸다. 또한 축복을 향한 자연적 욕구를 완성시켜 주기 위해서는 순복음 신앙이 하나님과의 바람직한 신비적인 연합을 성령체험의 진수로서 고려해야 한다.
5. 재림의 복음
오중복음에서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본질적으로 보아
묵시론적(apocalyptic)이지 않고 종말론적(eschatological)이며 따라서 공포보다는 희망이 우선한다. 그러므로 재림에 대한 소망이 오히려 건설적이고 적극적인 세계관을 유도해 낸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시간과 공간을 새롭게 창조하며(계21:1, 22:5) 이로 인한 부활과 새로운 삶의 성취를 이루어 낸다(살전4:16-17).
Ⅵ. 결론
A. 내용요약
절대 절망적인 인간은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절대
희망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 밑에 숨겨진 중생, 성령충만, 신유, 축복, 재림의 오중복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생애 속에서 끊임없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와 결국 하나님께서 종국적으로 원하시는 것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믿은 복음의 핵심이다.
B. 제언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8)
하나님의 법칙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다. 부지런히 당신의
삶에 오중복음을 심으라. 잃어버린 기쁨과 감사와 감격을 얻게 될 것이다. 철저히 오중복음으로 무장하고 의식화하는 신앙인의 삶! 최상급의 삶을 사는 비결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