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진리에 대하여

하나님아들 2021. 7. 17. 20:15


 진리에 대하여
 


 






 
 
     진리의 낱말 뜻
  1. 히브리어
에마트 - 안정성, 확실함, 진리, 진실, 확립, 참되다.
  2. 헬라어
알레데이아 - 진리, 참되다, 참되게, 진실성
알레듀오 - 진실되다, 진리를 말하다.






 
      진리에 대한 성구
  1. 무엇이 진리인가(진리의 정의)
시119:142 - 주의 법이 진리이다. 시119:151 - 주의 계명이 진리이다.
요1:14 - 예수님께서 진리가 되신다 요14:17 - 성령의 진리
요14:16 - 보혜사 진리 갈2:5 - 복음이 진리
딤전3:15 - 교회가 진리
  2. 성도가 진리에 거하려면(방법)
잠14:22 - 선을 경영함으로 전12:10 - 진리를 구하여야 함
요18:37 - 진리 안에 거하므로 고전13:6 - 사랑하는 자
엡4:24 - 새 사람을 입어야 딤후2:25 - 회개하는 마음이 있어야
요일1:8 - 죄를 인식함으로 엡6:14 - 띠를 띨 것
딤후2:15 - 선하게 분별할 것 요일2:4 - 계명을 지켜야 함


  3. 진리대로 산 자의 결과
잠12:17 - 의를 나타내는 생활을 함 요3:21 - 빛 가운데 있게 됨
고후11:10-11 - 길을 막을 자가 없음 딤전4:3 - 식물의 제재가 없음
딤후2:25-26 - 진리의 종이 됨 딛1:1 - 진리의 지식을 가짐
벧전1:22 - 영혼이 깨끗하게 됨 요일3:19 - 주 앞에 견고케 됨






 
      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
 헨드릭스 교수는 어느 날 가족을 데리고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여행을 간적이 있었다. 공원 정문에서 안내원이 전단을 한 장 주기에 받았더니 “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란 글이 쓰여 있다. 공원 속으로 몇 킬로 운전해 들어가니까, 큰 간판에 같은 경고가 쓰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헨드릭스 교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곰에게 빵 한 조각, 아니 과자 한줌 던져준다 해서 그게 뭐 그리 위험할까?’ 인쇄물과 간판 내용이 의아했던 헨드릭스 교수는 경비원에게 물었다.
“곰들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는 게 왜 위험합니까? 저 곰들은 우리 인간을 증오하는 그런 특종 곰입니까?” 그러자 경비원은 펄쩍 뛰며 헨드릭스 교수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아직 이해 못하셨군요. 사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매년 이때쯤이면 죽은 곰들을 공원에서 끌어내야 합니다. 스스로 먹는 능력을 상실한 곰들로 남이 먹여주는 것에만 의존하는 곰들 말입니다. 자, 이제 왜 그런 경고가 나붙었는지 아시겠지요? 바로 곰들 자신을 위해섭니다!”
 영국의 성경학자 윌리암 바클레이는 “진리란 스스로 발견했을 때에만이 유용한 것이다. 스스로 발견한 진리가 아닌 것을 단지 전달할 때에는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쉽게 잊혀 진다. 그러나 스스로 발견한 진리일 때는 자기의 한부분이 되어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찰을 통해 말씀(본문)속에 숨겨져 있는 진리의 보화들을 발견해내야 한다.






 
     과학을 초월하는 진리
 파스칼은 위대한 수학자 과학자 철학가였다. 그는 16세 때 투영기하학에 관한 책을 펴냈으며 청년 때에는 계산기, 수압기 등을 발명했다. 그는 이성과 과학의 차원 너머에 인생의 깊은 진리가 있다는 것,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1654년 11월 23일 밤 성경 요한복음 16장을 읽다가 깨닫고 진리를 탐구, 저 유명한 [팡세]를 썼다.
 이날 그는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요 과학의 하나님이 아니다]






 
     거꾸로
 어느 고등학교 교목이 학생들에게 예배 출석을 열심히 권고하는데 한 학생이 도무지 응하지를 않는다. 답답해진 교목은 그 학생을 불러 사유를 물어보았다.
"군은 왜 그렇게 예배출석을 거부하는가?" 학생 대답이,
"목사님, 저는 기독교가 어떤 것인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예배에도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제법 당연한 논리다. 묵묵히 듣고 있던 그 목사는 조용히 입을 열어 하는 말이,
"학생! 지금 군이 한 말을 거꾸로 한 번 해 볼 수 없겠나?" 잠시 머뭇거리던 그 학생은 급기야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습니다.
"예배에도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알 수가 없습니다."


교목 대답이, "바로 그걸세." 세상에서 흔히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정반대의 일이 진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불변의 진리
 이태리의 천문학자요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었던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지구는 둥글고 태양 주위를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선포함으로 인해 17세기 로마 가톨릭 교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교회는 그를 이단자를 탄핵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그가 가르치는 특권을 빼앗긴 후에 그의 주장을 철회했다고 하지만 그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렸다는 것이다.
 비엔나의 대주교 쾨니히 추기경은 지금이라도 갈릴레오에게 내려졌던 정죄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에 와서야 로마 가톨릭교회가 그에게 내려진 정죄를 철회했다. 물은 가장 낮은 곳을 따라 흘러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듯 진리는 공감하는 인간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흘러 그것이 진리임이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다. 원수들은 그리스도의 진리를 흐르지 못하게 막으려 했으나 20세기의 강을 흐르고 있다.






 
      사수해야 할 최대의 것
 유명한 사부 바실은 사랑의 사람이었고 겸손의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의 재산을 다 기우려서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었다. 문둥병자들을 자기의 친형제처럼 여겼다. 그가 별세한 때에 불신자들도 슬피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진리 문제에 있어서는 불타협의 인물이었다.
 아리우스(Arius) 이단자들이 발렌스(Valence) 황제에게 아첨하여 그 황제의 힘으로 바실의 교리를 압박하였다. 발렌스 황제가 바실에게 협박하기를
"재산을 몰수하고 귀양살이 보내고 또 죽이겠다" 고 하였다. 그 때에 바실은 말하기를
"그 이상엔 무슨 벌이 없느냐? 귀양살이도 좋다. 나는 어디서나 하나님의 객이 아닌가? 어디서나 다 나에게는 타향이 아닌가? 죽음으로 말하면 나는 죽어도 순교의 죽음이라고 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죽음은 나를 하루라도 빨리 천국에 들여보내는 은인이다"라고 하였다. (마18:1-
14)






 
      신앙의 진리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은 일 년 내내 세계의 피서객들이 모여서 해수욕을 하는 유명한 휴양지입니다.
그런데 하와이 해변가에서 많은 사람이 해수욕을 하면서 수영을 즐기다 보면 모래밭에 귀중품들을 떨어뜨려 잃어버리곤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다 가버리고 난 다음에 금속 탐지기를 가지고 그 모래사장 위를 왔다 갔다 하면 그 속에 감춰졌던 다이아몬드 반지가 발견되고 롤렉스시계가 발견이 됩니다. 그건 찾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주인이 없습니다.
 신앙도 보화와 같이 찾는 자만이 얻을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도 구하는 자만 얻지 우연히 잠을 자다 보니까 찾아지거나 솟아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진리는 우리 곁에 있습니다. 구하고 찾을 때 발견됩니다.






 
      영원한 진리
 다시 한 번 문명을 최초에서부터 새 출발할 필요는 없을까. 모든 것을 회개하고 "뒤로 돌아!" 다시 "앞으로 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새로운 방향으로 새 출발을 할 필요를 느낀다. 2천 년 전의 그리스도 예수를 듣기 싫을 정도로 부르짖음은 "뒤로 돌아! 앞으로 가! "의 구호를 잘못된 문제에 대하여 호소하기 위함인 것이다. 2천년이라고 하면 낡은 것 같으나 인류의 문명이 그간 몇 번의내리막 길을 향하여 그 줄기를 따라 오르락내리락 반복하여 무척 먼 감이 드나, 영혼의 정상을 향하여 곧장 걸어간다면 그 거리는 너무도 가까운 것이다.
 유크리히트의 기하학은 2천 년 전의 옛 발명이지만,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오늘에도 역시 2직각에는 틀림없다. 에디슨이 발명한 전기는 몇 천 년이 지나도 여전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사람을 선으로 인도하여야 한다는 법칙에도 고금에 구별이 없다. 정신상의 발견은 어제도 오늘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2천 년 전의 그리스도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를 명확히 해석하고 그 해결을 쥐어준다. 따라서 우리들은 어제의 것을 오늘의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존경하고, 그 종교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이 이유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행부족
 몇 년 전에 나는 연극배우 친구를 가진 어느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배우는 연극이 상연될 때마다 많은 관객을 끌었으며 목사님은 대조적으로 교회에서 몇 사람 되지 않는 교인들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목사님은 배우인 그의 친구에게 "자네는 관객을 많이 끌어들이지만 내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네. 그 이유가 뭘까? 자네 말은 꾸며낸 이야기이고 내 말은 불변하는 진리이기 때문일거야"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배우 친구는 "나는 꾸며낸 이야기를 진리인 것처럼 말하고 자네는 진리를 꾸며낸 이야기처럼 말하고 있다네 " 하고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생활태도나 방식을 통하여 또는 주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행부족으로 진리를 꾸며낸 이야기로 알리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진리는 하나
 인도에서 힌두교 학자로 유명했던 어느 대학교수가 미국에 초빙되어 와서 신앙 간증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교수는 젊었을 때에는 힌두교에 매력을 느끼고 깊이 파고들었으나 날이 갈수록 힌두교에 대해 공허감을 느끼고 뚜렷한 확신을 가질 수 없어서 번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자매로부터 예수님을 소개 받았으나 여전히 갈등을 겪다가 어느 날 중대한 결단을 내리고 예수님을 알기 위해 교회를 찾아 나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열어 주셔서 그는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는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하루는 뉴델리에서 택시를 탔는데 운전수까지 모두 4사람이 제각기 종교가 다 달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손님 중의 한 사람이 "우리들은 종교가 제각기 다르지만 같은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지요. 도달하는 길이 조금씩 다르지만 목적지가 같은 사람들이오. 결국 우리는 한 배에 타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며 동의를 구하듯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웃었습니다.
 이때 가만히 앉아있던 그 교수가 버럭 고함을 쳤습니다. "아니오, 당신들은 같은 배를 탔는지 모르지만 나는 다르오, 나는 다른 배를 탔소!" 진리는 거짓에 대해서 관용할 수 없습니다. 타협할 수도 없습니다. 새롭게 태어난 인도 교수의 말처럼 진리는 하나뿐입니다.






 
      진리를 간구하는 삶
 진리를 찾기 위해 오랫동안 순례의 길을 걸어온 한 젊은이가 수도자를 만났습니다. 젊은이는 수도자에게 어떻게 하면 인생의 참된 길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수도자는 젊은이를 연못으로 데리고 가더니 갑자기 물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었습니다.
 젊은이는 물에서 올라오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수도자는 계속 이 젊은이를 물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젊은이가 허우적거리다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자 수도자는 그를 끌어내놓고 물었습니다.
"물속에서 가장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가?"
"숨 쉬는 것이었습니다."
"자네는 진리를 찾기 위해 그렇게 갈급하게 노력해 보았는가? 진리는 그렇게 간절하게 찾는 자만이 얻게 되는 것이라네."






 
     진리와 수난
 번연의 천로역정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기독도와 같이 천성을 향해가던 '신실'이란 이가 헛된 전람회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곳은 헛된 사치물 즉 집,땅,직업,장소,영광,관직,소유권,나라,왕국,정욕의 대상들, 쾌락의 대상들, 기생, 창녀, 주인, 종, 생명, 피, 은금, 진주와 보석들을 파는 곳이었다. 어떤 사람이 기독도와 신실을 향해 "너희는 무엇을 사겠는가?"고 물었다. 그때에 이들은 엄숙히 대답하기를 "우리는 진리를 사렵니다"라고 했다. 그 전람회의 상인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두 사람을 잡아서 때리고 가두었다. 신실은 핍박으로 인해 마침내 그곳에서 죽고 말았다.
 이것은 진리를 쫓다가 수난당하는 성도의 모습과 같은 것이다.






 
      진리의 매매
 헬라 정통 교회의 소식을 들으면 톨스토이의 글 가운데도 톨스토이가 살고 있던 지난 19세기까지 헬라 정통 교회에서는 신부들이 믿는 사람의 집을 심방하러 돌아다닐 때에 제단위에 놓았던 신부가 기도한 그 물을 물병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앓는 사람에게 그 물을 먹였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는 진리를 미신으로 바꾸는 것이다.
 오늘 이런 사람은 없는가? 예수만 진리다. 진리를 사고팔아서는 안 된다. 또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거짓되게 해서 거짓된 진리로 팔아 바꾸어서도 안 된다.
 주후 2세기에 제일 큰 이단으로 나타났던 몬타너스 운동이 그와 같은 운동이었다. 몬타너스라는 사람이 맨 처음에는 기도를 많이 한다고 소문이 났지만 그 다음에 계시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는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내가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겠다"는 말을 했는데 이 말을 해석하면서 "이 보혜사는 나를 가리키며 내가 보혜사다"라고 해석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 사람을 따라갔다.(잠23:19-35)






 
       진리의 사형식
 프랑스의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인 끄로드. 모르강의 "인간의 증거"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세계 제2차 대전에 참전하여 독일군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폐결핵으로 석방이 되었으나 계속하여 지하 저항운동에 참여하여 활약하다가 독일 비밀경찰에 의하여 다시 체포되어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동료들과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조국 프랑스의 국가를 힘차게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인간을 죽일 수는 있다. 그러나 진리는 영원히 죽이지 못한다" 는 말을 남겼습니다. 진리는 죽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들은 [진리 사형식]을 계속하여 집행합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진리의 외침을 계속 외면하면서 진리를 부정하고 거짓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갑니다. 하늘을 향하여 대포를 쏘아대면서 "하나님은 죽었다"고 외쳐대는 무리도 있습니다. 그래도 진리는 죽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 필요한 것
 제가 어느 친구에게 전도를 했는데 암으로 죽어 가는 친구였습니다. 젊었고, 돈도 몇 억 대가 있었던 사람이고, 문학도 하던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인생이 고달프고 무거웠고 이렇게도 괴로웠던 것은 주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을 알았기에 암이란 것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으며 죽음을 아주 기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찬송하고 감사 기도를 하면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았을 때 그에게 무엇으로 그 이상의 사랑을 줄 수가 있겠는가를 생각했습니다.
C.C.C.를 다닌 여학생이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들만 입원하는 무료 환자 수용소에서 두 달 동안 외롭게 입원을 했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만나는 사람에게 마다 감사와 기쁨과 찬송으로 전도를 했습니다. 자신도 아프고 괴롭지만 찬송과 기도로 사람들을 위로하며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퇴원을 하게 되자 그 환자들이 손을 붙잡고 울면서 의사보다 간호사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이니 우리와 같이 있어 달라고 했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면 병이든지 죽음이든지 천국으로 변합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
 설익고 건방진 공대 4학년생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대는 모든 것을 아는가?" 했더니 조금은 안다고 했다. "10%를 아는가?" 했더니 100만분지 1도 모른다고 했다. 그럼 그대가 모르는 99%속에 하나님이 존재할 수도 있지 않는가? 했더니 그 다음에는 존재하는지 않는지 그것도 모른다고 했다. 그럼 그 모른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했더니 그것도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는 전 공간과 시간, 그리고 모든 존재를 다 뒤져볼 수 없다. 하나님을 철학 속에서, 비교종교 속에서, 역사 속에서, 이성과 양심 속에서, 실험관 속에서, 자연 속에서 찾아봐도 확실치 않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면 하나님을 안다. 그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다. 그 말은 하나님의 말이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 되어 내게 오신 분이다. 그 밖에 하나님을 알 길이 없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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