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예수에서 구세주 그리스도로
실패한 유대인 선지자는 어떻게 메시아가 됐을까.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그의 희생과 부활은 사실인가. 기독교는 어떻게 2천 년 이상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From Jesus to Christ
이야기는 거기서 끝난 것처럼 보였다. 나사렛 예수는 선동죄로 십자가 처형 선고를 받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다. 예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죽어가는 예수는 고통 속에서 임종에 다다르면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쳤다. 그것은 시편 22장의 첫 대목으로 1세기 유대인들의 귀에 익숙한 구절이었다.
예수는 마지막 큰 소리를 지른 후 숨졌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것은 예수의 제자들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예수의 체포와 십자가 처형의 혼란 속에서 초기 신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이 예루살렘의 봄에서 패배가 아니라 승리를 기대했었다. 그들은 예수가 유대인 메시아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그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위업을 달성해야 했다. 악이 사라지고, 정의가 실현되며, 이스라엘의 회복과 죽은 자들의 부활이 이뤄지는 시기를 말한다.
그러나 유월절의 금요일,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 예수는 빛의 세력을 승리로 이끌기는커녕 범죄자로서 처형당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뒤 세마포 수의에 싸여 언덕의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안치됐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 중 여성들만이 자리를 지켰다. 무덤은 큰 돌로 봉해졌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이틀 뒤 일출 직후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두 명의 여성이 시신에 향료를 바르기 위해 무덤을 찾았다. 그들의 걱정은 실질적이고 평범했다.
여자의 힘으로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을 굴릴 수 있을까? 그러나 그들이 다가갔을 때는 무덤이 이미 열려 있었다. 놀란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오른편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마가복음은 그 말을 들은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라고 적고 있다.
기독교의 이야기는 이처럼 명쾌하지 않고 모호하게 시작된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제자들은 처음에 텅 빈 무덤에 관해 여자들이 하는 말을 듣고는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않았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이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라고 적고 있다. 이번 성주간(고난주간)에 교회를 찾는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재연하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묵상하고, 부활을 축하할 것이다.
그들에게 기독교는 한결같고 불멸하며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최신 뉴스위크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78%는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믿었다. 75%는 예수가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이 세상에 보내졌다고 생각했다. 81%는 자신들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했다. 기독교는 현재 세계 최대의 종교로 신자 수가 20억 명에 이른다(세계 인구의 약 33%).
그러나 골고다에서 콘스탄티누스에 이르는 여정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AD 4세기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으로 기독교가 공인돼 서양 세계에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웰링턴 공작이 워털루 전투에 대해 “평생 경험한 전투 가운데 가장 아슬아슬했다”고 말했듯이 기독교의 번성도 천신만고 끝에 이뤄졌다.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맡은 예수의 임무를 이해하려고 애써왔다. 그러는 가운데 수난에서 부활, 구원의 본질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기본 교리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예수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칭호다(히브리어로 ‘메시아’, 그리스어로 ‘크리스토스’이며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부활이 없었다면 AD 1세기의 첫 몇십 년 동안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 운동이 이토록 오래 지속되리라고 상상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소수의 열성 신봉자들이 한동안 그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심지어 그를 그리스도로 부름으로써 메시아라고 주장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1세기 유대교의 많은 분파 가운데 하나로 남았을 뻔했다. 당시 유대인들의 세계는 로마와의 전쟁(66∼73년)에 의해 혼란에 빠져 붕괴했다. 그 전쟁으로 예루살렘은 멸망했다.
그렇다면 동시대 사람들 다수가 실패한 선지자로 간주했던 예수를 어떻게 수십억 명이 지금 그리스도로 여기게 됐을까? 그리스도란 니케아 신경(信經)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한 분의 주 예수 그리스도… 신 중의 신이며 빛 중의 빛이고 참 신 중의 참 신…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을 말한다. 또 다른 많은 종교와 영적 운동이 실패한 곳에서 어떻게 기독교가 성공할 수 있었을까?
거의 2천 년이나 된 질문들이다. 현재 깊게 양분된 미국 사회에서 신자들은 곤경에 빠졌다고 느끼고 회의론자들은 포위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가 유대인 선지자에서 기독교의 구세주로 변해가는 여정을 재구성해 보면 신앙은 역사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보기보다는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앙이 깊은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예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인 것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 초기 교부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는 “단지 신앙만이 아니라 이성과 지혜로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또 일반인들은 기독교가 2천 년 동안의 창의적인 사고와 혁신의 산물이며, 역사와 신학적 논쟁의 혼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신자들이 미신에 사로잡혔다거나 단순하다고 폄하하려는 생각을 자제할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 처형이 있던 금요일 해가 질 때 예수는 실패자로 비쳤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의 약속은 도발적이긴 하지만 무력한 수사(修辭)로 보였다. 예수가 생애 동안 희생과 부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했든 간에 제자들은 예수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무덤에 있던 여자들은 말을 못할 정도로 놀랐다. 도마는 부활한 주님을 보고 자기 눈을 의심했다. 마태복음 마지막 부분에는 제자들 가운데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적혀 있다.
그들의 회의는 당연하다. 당시 지배적인 유대교 성전(聖傳)은 하나님이 순순히 죽음을 맞이한 사형수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메시아는 적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전투를 치른다. 이 ‘호전적인’ 메시아가 전쟁에서 영웅적으로 전사한다고 해도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문서에 따르면 또다른 ‘성직자 다운’ 메시아가 세상을 평정할 것으로 돼 있다. 보스턴대 아우렐리우스 성서 교수 폴라 프레드릭센은 1세기 유대인들의 기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메시아는 다윗처럼 용기·경건·무용·정의·지혜, 그리고 토라에 대한 지식을 골고루 갖춘 인물일 것이다. 평화의 왕자는 처음에는 전사여야 한다. 그의 의무는 악의 세력에 최후의 패배를 안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를 사하고 신자들에게 영생을 가져다 주는 메시아를 기대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 신자들이 믿은 것은 바로 예수가 세상에서 희생적으로 죄를 대신한다는 역할이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예수의 임무에 대한 이런 해석은 어디서 나왔을까? 신약성서 집필자들처럼 보수적인 신자들은 종종 “구약성서에 의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 유대교 경전은 실제로 아담의 죄를 사해주는 메시아적인 희생양을 예언한다. 성서의 역사는 모두 십자가 처형과 부활로 이어진다는 게 일반적인 주장이다. 또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사야서·다니엘서·예레미아서·에스겔서·호세아서 등에서 예수의 생애와 임무에 대한 전조를 발견했다.
학자들은 이런 성서들을 ‘증거 문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비기독교인들은 그런 고대 이스라엘 문서들을 반드시 신약성서의 서문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성서들은 나름대로의 역사를 갖고 나름대로의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한편 기독교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의 계약을 부인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정전(正典)의 가르침에도 반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선택한 것은 영구하다고 말했다.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기독교가 신경(信經)의 기본 요소들을 유대교 성전에서 따온 것은 사실이다. 속죄를 위한 희생, 메시아, 죽은 자들의 부활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있기 전에는 아무도 그런 요소들을 한데 엮지 않았던 것 같다(‘메시아’가 구약성서에 언급된 횟수는 40회 미만이며, 언급될 때도 이승의 왕이지 인간을 죄악에서 구원하는 신의 화신을 일컫지 않는다). 핵심은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말한 내용이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
기독교 비판자들은 처음부터 부활을 신학적 조작으로 일축해왔다. 그러나 역사의 문제로서 학자들은 신약성서의 가장 오래된 두 이야기가 예수의 부활을 말해준다는 데 동의한다. 첫째, 예수가 처형된 뒤 시신이 안치된 묘지가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기독교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의 유골을 증거로 제시했을 것이다. 마태복음도 대제사장들이 로마군 경비병에게 뇌물을 주며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라고 말한 것으로 적고 있다.
그것은 시신이 실제로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은 부활한 예수가 자신들 앞에 나타났다고 믿었다. 바울은 예수가 처형당한지 몇 년 후 쓴 복음서에서 실존 인물들을 예수 부활 목격자로 제시했다. 의심하는 사람들은 직접 증인을 찾아 사실 여부를 확인해도 좋다는 뜻인 듯했다. 그러나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무덤을 발견한 것과 부활한 예수가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에 관한 복음서의 엇갈리는 진술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예수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육신의 모습으로, 때로는 신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그를 쉽게 알아본 때도 있었지만 본인이 밝히기 전까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예수의 부활 이후에 관한 이야기들은 초기 기독교의 각기 다른 파들의 해석을 대변할 가능성이 높다. 세부 사항에 관해 서로 엇갈리는 진술은 기독교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복음서에는 분명 무덤이 비어 있었고, 신자들은 부활한 예수가 한동안 자신들 중 몇 명 앞에 나타났다고 믿었다고 써있다.
바울 이후에 쓰인 복음서들은 희생·구원·부활 등을 다룬다. 그러나 제자들조차 처음에는 예수의 부활을 의심했다. 제자들은 어떻게 두려움과 의심을 버리고 빈 무덤과 그것이 구원의 역사에 대해 가지는 의미(죽음과 부활을 통해 예수가 인류를 구원했다는 사실)를 믿게 된 것일까. 예수가 생전에 했던 말들을 다시 떠올린 걸까. 많은 학자들은 복음서가 묘사하는 예수 모습의 역사적 가치에 중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사도들은 예수의 메시아적 임무에 관해 그들 나름의 정의를 내려야 했다.
그리고 예수가 생전에 실제로 그런 것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예수 부활의 충격이 가라앉자 제자들은 과거 그가 했던 말들이 생각났을 것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는 우화가 아니라 예수와 그 제자들이 살던 시대의 구전, 혹은 기록 가운데서 비롯된 신앙이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라고 말했다. 마가복음은 당시 제자들이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라고 덧붙였다.
사도들이 아무런 근거 없이 그런 생각들을 지어냈으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그들의 이야기와 메시지는 당시에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바울도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이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라고 인정했다. 범죄자로 처형당한 유대왕? 죽음을 이긴 개인의 부활? 인간 속죄양?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남침례신학교 교장 R. 앨버트 몰러 주니어 박사는 “예수를 홍보하고 싶었다면 그런 얘기들을 만들어냈을리 만무하다. 구원의 메시지가 그만큼 복잡하고 특이하다는 것은 복음서와 신약 전체가 진실일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이 떡과 포도주는 내 살과 피’라고 말한 것도 지금 와서는 더욱 일리가 있다. 초대 교회의 주장대로 예수가 고대 이스라엘 성전(聖傳)에 나오는 속죄양이었다는 것이다. 사도들은 구약성서에서 예수가 완수한 예언이 무엇이었는지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사야 53장을 읽고 나서 십자가 처형이 보다 영광스런 날로 가는데 필요한 관문이라고 해석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당시에는 기독교에 대한 회의가 널리 퍼져 있었다. 1세기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유대인의 관점에서 이렇게 적었다. “당시 예수라는 현명한 사람이 살았다. 그는 놀라운 일을 행했고 선생이었다 … 그는 많은 유대인과 그리스인들의 마음을 얻었다 … 그리고 그를 따르던 기독교인들은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테네의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 철학자들은 바울에게 그의 메시지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청한다.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그들은 바울의 말을 자세히 듣지만 부활은 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일 뿐이었다.
2세기 반기독교 비판가 켈수스는 부활을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하면서 부활 목격자들의 증언을 의심했다. “예수는 살아 있을 때도 자신을 구하지 못했는데 죽은 뒤 다시 살아나 자신의 몸에 난 창자국과 손에 못 박힌 흔적들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가? 한 미친 여자, 그리고 같은 마술에 현혹된 한 무리의 사람들 아닌가. 그들은 환상을 보았거나 환상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역사적 근거가 있지 않았다면 왜 예수가 생전에 했던 말들이나 무덤에서 신도들이 본 것,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들을 지어냈겠는가?
아이스킬로스가 쓴 책에서 아폴로는 “사람이 한 번 죽어 흙이 그의 피를 빨아들이고 나면 부활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학자 겸 영국 성공회 주교인 N. T. 라이트는 그 말을 인용하며 고대인들이 영혼의 불멸과 신비한 사후 세계를 믿었을 수도 있지만 예수의 이야기는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유대인들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부활한다고 믿었지만 “이교도 신앙은 물론 유대교의 어느 곳에도 특정 개인에게 부활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기록은 없다”고 라이트는 말했다.
예수의 부활에 관한 이런 특이성은 그것이 신학적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다시 살아난 예수의 ‘계시’로부터 혹은 신자들의 증언으로부터 바울은 예수의 부활이 앞으로 다시 없을 역사의 전환점이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라고 적었다.
예수에 관한 이야기는 여전히 혼돈스러워 초기 신자들은 그때그때 설명을 만들어가야 했다. 우선 예수가 처형당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세워지지 못했고 제자들은 몸을 숨겨야 했다. 그리고 부활 사건이 발생했다. 그 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예수의 이름으로 전파된 주요 예언인 ‘영광의 구름을 타고 오는’ 예수의 재림도 실현되지 않았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1세기가 지나는 동안에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계속됐다. 복음서가 쓰이고 2, 3, 4세기에 교회 교리가 성립되는 동안 신도들은 예수의 재림 예언이 실현되지 않은 점에 대해 훌륭히 대처했다. 자신들의 신학적 관점을 역사적 경험의 견지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지 않았으니 예수의 생애·죽음·부활은 다른 의미를 가져야 했다. 그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는 실제 오신 예수와 달랐다.
그들은 예수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교회, 성사(聖事), 최후 심판의 날의 구원의 약속과 같은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고 믿었다. 중점을 단기에서 장기로 옮긴 것이 주효했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이 천국의 열쇠를 주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의 재림 시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요한은 계시록에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라고 적었다.
모두가 같은 비전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영지주의(그노시스)파 신자들을 포함해 다른 관점을 가진 파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예수가 인간보다 신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예일대 역사가 자로슬라브 펠리칸에 따르면 영지주의 교리는 “구세주가 보고 만질 수 있는 육체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했다.” 2세기 안디옥 교회 교부였던 이그나티우스 주교는 그 반대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예수가 “실제로 (인간으로) 탄생했고, 먹고 마셨으며, 실제로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됐으며, 실제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 실제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라고 적었다.
그런 견해가 사실이라면 예수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태어나셨다”는 바울의 기록과 부합한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현신해 몸소 고통과 죽음을 겪는다는 생각이 신자들에게 순교와 고난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네로 치하의 로마에 관한 저술에서 타키투스는 “기독교인들이 십자가형에 처해지거나 화형을 당했고 어둠이 내릴 때 암흑 속의 횃불처럼 불타올랐다”라고 기록했다.
그런데도 일편단심 예수에게 집중돼 있던 기독교 신앙은 지속됐다.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는 저서 ‘기독교의 번성’(The Rise of Christianity)에서 AD 40년에 약 1천 명(로마제국 인구의 0.0017%)이던 기독교인들의 수가 350년에는 약 3천4백만 명(56.5%)으로 증가한 것으로 추산했다. 일단 초기 교회가 “개종자들에게 [유대] 율법을 준수하도록 강요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민족을 탈피한 종교가 탄생했다”고 스타크는 주장한다. 이교도들 뿐 아니라 로마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종교가 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펼치는 자선사업도 도움이 됐다. 역병이 만연하던 시기에 그들은 병자들을 돌봤다. 여성들을 존중하기로 한 교회의 결정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 전도사업은 개종자들을 끌어들였다고 스타크는 말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낙태와 여아 살해를 금지함으로써 기독교는 결과적으로 신자 자녀들을 가질 수 있는 여성 신도 수를 늘렸다.
숫자로 알 수 있는 것은 전체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기독교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든 예수에 관한 기록은 인간 생명의 기원과 운명에 관해 새 비전을 낳았다. 그 비전은 기독교의 뿌리깊은 유대주의에 기초한 것이었다. 모든 인간은 바울의 말처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됐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특별하며 소중하다. 기독교의 세계관에서는 “인간이 우주 먼지의 결빙이나, 우주 화학작용의 우연한 부산물이 아니다. 우리는 단순히 그 어떤 존재가 아니라 특별한 인간”이라고 로마 가톨릭 신학자 조지 와이젤은 말했다. 4세기의 교부 아타나시우스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우리가 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셨다”고 말했다. 기독교의 핵심을 이루는 약속이다.
신학적인 의문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예수가 지금 기독교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이해했을까. 누가는 그렇다고 주장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예수는 자신이 대속자의 역할을 맡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요한의 주장은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이중 어디까지가 기억에 의한 역사이며, 어디까지가 진심에서 우러났지만 비사실적인 신학인가. 그것을 알 방법은 없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바울은 적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울의 말을 빌리자면 신도들이 하나님과 ‘직접 대면’할 때까지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즐겨 인용하는 문장의 가르침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시편 105장)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길을 따라 그렇게 계속 모색하는 과정에서 바울은 위안으로 삼을 말들을 우리에게 던졌다.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라.” 어떤 의구심을 갖고 있든, 어떤 신앙을 갖고 있든 우리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