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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생명의 탄생, 십자가 고통⑤

하나님아들 2017. 12. 17. 21:41

예수가좋다오

생명의 탄생, 십자가 고통⑤

이사야 66장 5-9절 / 누가복음 22장 44절


“5. {창조주}의 말에 떠는 자들아,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를 미워하고 내 이름으로 인하여 너희를 쫓아낸 너희 형제들이 이르기를, {창조주}께서 영광 받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서 너희의 기쁨이 될 것이요, 그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6. 떠드는 소리가 도시에서 나오며 소리가 성전에서 들리니 곧 자신의 원수들에게 보응하는 {창조주}의 소리로다. 7. 그녀가 진통을 겪기 전에 해산하고 자기의 고통이 임하기 전에 사내아이를 낳았으니 8. 누가 그러한 일을 들었느냐? 누가 이러한 일들을 보았느냐? 땅이 하루에 만들어져서 열매를 내겠느냐? 혹은 한 민족이 순식간에 태어나겠느냐? 시온은 진통하자마자 자기 자녀들을 낳았도다. 9. 내가 태어나게 하고는 낳지 못하게 하겠느냐? {창조주}가 말하노라. 내가 낳게 하고는 태를 닫겠느냐? 네 [하나님]이 말하노라.”(사66:5-9)


“그분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그분의 땀이 큰 핏방울같이 되어 땅에 떨어지더라.”(눅22:44)


성도가 십자가를 지는 삶이 당연한 이유는, 생명을 탄생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탄생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생명의 탄생이 없다면, 심판대에 하나님 앞에 서서,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평생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생명의 탄생 하나 없었으니까요. 그럼 왜 생명의 탄생이 없었던 것일까요? 살면서 십자가의 고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메시야가 태생할 것을 말씀하시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1. 십자가의 고통이 없으면, 열매도 없습니다.
 
이사야 66장9절 “내가 태어나게 하고는 낳지 못하게 하겠느냐? {창조주}가 말하노라. 내가 낳게 하고는 태를 닫겠느냐? 네 [하나님]이 말하노라.” 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데도 해산의 고통이 따릅니다. 산모가 눈물과 땀과 피까지 쏟아야, 한 생명이 태어나듯이, 한 영혼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까지는 말할 수 없는 해산의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에게 만 명의 스승이 있다 해도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낳았느니라.”(고전 4:15) 복음을 전해서, 한 생명을 구원하기까지 해산의 수고가 따를 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에 가서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그곳에 교회를 세웠는데,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그 일을 ‘해산의 수고’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나의 어린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께서 형성되실 때까지 내가 다시 너희를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겪노라.” (갈 4:19) 그렇습니다. 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는 반드시 해산의 고통이 요구됩니다. 해산의 수고 없이는 새 생명의 출산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임신하게 하시고, 또 아이가 태어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 직접 또는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알겠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그 생명의 탄생은, <고통을 반드시 동반>합니다. 즉,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그런데 만약, 오늘 내 주위에 영적 자녀가 태어나지 않는 것은 십자가의 고통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만약, 오늘 내 주위에 많은 고통이 있다면 영적인 자녀가 태어나고 있다는 신호가 됩니다.


이것이 이 설교문의 주제입니다. 우리 기독교 또는 교회에서 하는 일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을 새롭게 탄생 시키는 일입니다. 육신의 탄생도 중요 하지만, 영혼의 탄생은 더욱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영혼의 탄생은 영원히 그가, 억만년의 세월을 더 사는 것이기 때문에 약 길면 백년을 사는 육신의 탄생보다 훨씬 더 영혼의 탄생이 중요합니다.


육신의 탄생에는, 반드시 산고의 고통을 동반하듯이 영혼의 탄생에도, 반드시 산고의 고통을 동반하며, 내 십자가의 고통(고난)을 통과해야, 영혼의 탄생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오늘날 대부분의 신자들은, 자신에게 십자가의 고통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게 좋아할 일이 아니라, 생명의 탄생도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세상이 변하여 애를 안낳고도 당당합니다. 시집도 안가고 개를 안고 다닙니다.


십자가, 그거 내가 안 질수록 편하고 좋을 것 같지만, 영혼의 탄생(전도, 구령) 한 명도 없는 사람이, 천국 심판대 앞에서 편안할까요? 무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한 학생이 산부인과를 하는 친구(의사 아들)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1층에서 4층은 병원과 입원실이었고, 5층은 살림집으로 꾸며진 곳이었습니다. 그가 5층 친구의 집에, 잠시 한 시간 머무르는 동안 그는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산모들의 비명소리를 쉴새 없이 들어야 했습니다.


 입원한 수십 명의 산모들 가운데, 적어도 서너 명은 진통을 하니까 그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은, 서둘러 산부인과 병원을 빠져나오면서 혼잣말을 이렇게 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생지옥이 따로 없구만!’ 그랬습니다. 생명이 탄생되는 곳에는 그저 웃음만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생살을 찢는 듯한 고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통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생명의 탄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126편5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말씀처럼, 오늘 여러분이 정말 눈물을 흘리고 싶은 마음, 또는 ‘정말 울고 싶다’는 이런 마음이 들면, 기대하시라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고난 뒤에는, 반드시 생명의 탄생의 기쁨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쉽게 예수님을 영접하지만, 때가 되면, 회개하여 거듭나는 체험, 새 생명의 탄생을 체험하게 됩니다. (radical conversion이란?) 쉽게 지적 동의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이, 성령의 변화의 역사로, 한 번 뒤집히는 때가 있는데요. 요한복음 3장5절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물’은, 말씀을 뜻합니다. 에베소서 5장26절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에서 ‘성령’은 무엇인가 하면, 내가 원해서 거듭 나는 것이 아니고, 위에서 성령으로 하나님이 그 사람을 변화 시켜 주셔야 그 사람의 본성을, 죽은 생명을, 살아있는 생명으로 변화 시켜 주셔야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다 예정하시고, 택하셨지만 ‘물’은 자기가 동의해야 되는 거지요. 물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배우고, 연구하고, 전도를 받든지, 자기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 ‘성령’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 쪽에서 해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의 심령과 영혼을 확 변화시켜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radical conversion’ 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회심시켜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보통의 경우에 회심의 눈물을 동반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 내가 죄인이지’ 하는 단순한 참회가 아니라, 마치 땅바닥을 뒹굴며 하는 듯한, 그것도 참회의 시간이 일 분만에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동안을 두고 참회를 하는 것이 동반되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이 설교의 포인트는 그렇게 예수님을 믿고 새 생명을 탄생하는 그 순간에는 “큰 고통이 동반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처절하게 참회하는 그 자체가 고통이지요. 요지는, 자기 자신이 고통을 당하든지 아니면 그를 위해서 타인이 고통을 당하든지, 그를 위해 기도를 해 주는 고통을 당하든지 그 영혼을 위해 계속 전도를 하든지, 그가 깨닫지도 못하는 말씀을, 계속 가르치든지, “생명의 탄생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 고통 후에, 생명의 탄생, 인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2. 생명의 탄생에는 고통이 따른다.


이것은, 자연 법칙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가르치신 십자가의 신앙이기도 합니다. 오늘 내 주위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만약에 생명의 탄생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생명의 탄생’이 뭐라고 했나요? 중생의 역사,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거기에는 고통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고통의 대가를 치루지 않았다. 누군가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 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지금 당신이 고통을 당하고 있고,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눈물이 흐르는 만큼의 고통을 당하고 있고, 체면상 대놓고 울 수는 없지만, 울고 싶은 정도로 마음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오늘 십자가를 지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곧 생명의 탄생, 영혼의 중생이 일어날 것이므로 슬픔 가운데,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마지막 순간에 승리하셨다고 ‘웃으셨다’ 상상하는 분도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결과를 내다볼 때,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3.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십자가


하나님의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은 수치요, 부끄러움입니다.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났는데도, 자녀를 낳지 못하는 여인은, 첫째 남편에게 미안하고 양가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게 됩니다. 손이 귀해서 자녀를 잔뜩 기대하는 집이라면, 죽을죄를 지은 것 같은 부담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지 벌써 5년, 10년이 지났는데도, 영적인 자녀를 하나도 생산하지 못했다면, 예수님의 신부인 우리는 수치심을 느껴야 하고 영적인 부담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다면,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영적으로 신랑과 신부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신부 된 우리가 예수님의 그 큰 사랑을 입고도 영적인 자녀를 낳지 못한다면, 먼저는 예수님께 부끄럽고 하나님 아버지께 면목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혹시 영적 불임증 환자인가”, 검사를 받아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읽은 본문 이사야서 66장9절 말씀을 보면 “내가 태어나게 하고는 낳지 못하게 하겠느냐? {창조주}가 말하노라. 내가 낳게 하고는 태를 닫겠느냐? 네 [하나님]이 말하노라.”그러니 이러한 모든 일을, 하나님이 주도권 initiative 을 쥐시고 하나님이 임신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또 해산하게 하신 다는 것입니다.


주어와 주체가 “내가”입니다. 자기가 원해서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하나님의 종들로 하여금, 임신하게 하시고, 해산하게 하시고. 즉 해산의 고통을 겪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원래 잉태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산고의 진통을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해산의 고통을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내게 십자가를 강권적으로 지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산모가 애를 낳다가 중단하면, 큰일이 일어난다고 하지요? 산모나 태아의 생명이 위험해 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애를 낳다가 중단하시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에게 임신케 되는 역사, 해산의 고통이 반드시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고통을 참고 견디는 사람만이, 자기를 통해서, 영혼들이 구원 받는 그러한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기쁨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를 낳다가, 중단케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종들도, 십자가를 지다가, 중단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중단하면 더 위험하다니까요. 그런데 자기가 끝까지 불순종하면 가룟 유다처럼 되겠지요.


이러한 산고의 고통을 치르신 대표적인 분이신 예수님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22장44절 “그분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그분의 땀이 큰 핏방울같이 되어 땅에 떨어지더라.” 이 단락은, 맥스루케이도 목사님의 설교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실 때, 그분의 기도의 중얼거림 속에, 2천년 후의 내가 그 기도 속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기도하실 때, 그분이 바라보는 환상가운데는, 2천년 후에 내가 거기 들어있었다는 것입니다. 구원 받을 모든 인류가 거기에 들어가 있었다는 뜻이지요.


예수님은 그 동산에서 기도 하실 때, 먼 훗날을 꿈꾸듯 바라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진 고통을 당하실 때, 모든 인류가 구원받는 꿈을 바라보신 것입니다. 주님 계신 천국에, 내가 주님과 함께 있는 그 행복한 날을 꿈꾸시면서 그 모진 십자가를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을 기꺼이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최후의 기도는 바로 나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고통과 십자가 수난도 바로 나의 구원을 위해, 견디시고 참으시고 당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시면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막14:34) 말씀하시면서 깨여 기도 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기도 하시면서 저 천국에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모습만 바라보신 것이 아니라 또 예수님은 지옥 구덩이에서 신음하고 있을지도 모를 우리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신 것입니다. 내가 누구 아무개를, 또 인류 모두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야하는데 아니면 저들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할 것인데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 두 가지 모습을 교차적으로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기까지기도 하시면서 바라 보셨다는 것입니다. 내 고통을 바라 보셨습니다. 내 영원한 지옥에서부터, 그 뜨거운 불로부터 고통당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시니까 예수님은 그 험한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4. 자녀 생산을 위해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자녀를 낳지 못한 여인들의 경우, 한결같이, 간절한 사모함과 안타까운 기도로, 잉태와 해산의 기쁨을 누린 것을 봅니다. 우리도 전도의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야곱의 아내였던 ‘라헬’ 역시 자식을 낳지 못하는 한을 품고 살다가, 하나님이 태를 열어 주시니 민족을 위기에서 구하는 지도자, 요셉을 낳은 것입니다.


 사무엘서를 보면, ‘한나’라고 하는 여인이 자식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과 슬픔가운데 살았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한나를 무척 사랑하였지만, 자식을 낳은 또 다른 부인, 브닌나가 한나를 멸시했습니다. 그럴 때면, 남편의 사랑도 결코 위안이 되질 못했습니다. 이때 한나는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애절한 마음을 알게 되어서 암울한 시대에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녀가 혼이 쓰라린 가운데 {창조주}께 기도하고 심히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오 만군의 {창조주}여, 만일 주께서 참으로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주의 여종에게 사내아이를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토록 그를 {창조주}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삼상 1:10-11)


 절망적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가져가서 기도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절망적 상황이 아니라, 믿음의 상태입니다. 여기서도 ‘90:10의 법칙’이 나옵니다. 절망의 문제를 하나님께로 가져가는 것이 정답입니다. 한나는 어떻게 기도했나요?


“그녀가 {창조주} 앞에서 계속 기도할 때에 엘리가 그녀의 입을 주시한즉 이제 한나가 마음속으로 말하매 그녀의 입술만 움직이고 그녀의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녀가 취한 줄로 생각하니라. ”(삼상 1:12-13)


한나는 오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속으로’ 기도했다는 것은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마음은 심장을 가리킵니다. 한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때 입술만 움직이고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한나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한 기도였음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우리가 육신의 자식을 낳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이 심정을 영적으로는 적용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전도를 못해도 그게 부끄럽거나 괴롭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출산을 위하여, 사모하며, 뜨겁게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해산의 수고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저 내나 믿으면 됐지’ 하고 불신 가족도 생각하지 않고 이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영적 자녀가 출산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한나는 창조주께 그 심정을 통하는 기도를 드림으로, 마침내 훌륭한 선지자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해산하게 하셔서, 자녀를 낳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를 위해, 나의 미래의 천국 생활을 위해 또한 나의 지옥생활을 피할 수 있도록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것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보다 더 큰 고통이 없다고 하지요. 우리도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시기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은 기도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통하여서만 반드시 영혼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깊이 명심하십시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지옥 불에서 영원히 고통 받을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면, 오늘 우리가 십자가 지며 당하는 고난을 기꺼이 참을 수 있겠지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임신하기 싫은데 임신케 하시고, 나는 해산하기 싫은데 예수님께서 해산의 고통을 주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벌써 그 길을 가셨고 또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도, 다 그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강권적으로 그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 때,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의아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딜레마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신앙이 없으면, 딜레마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길에 있어서, 십자가의 길을 영광으로 여기고 감사함으로 여기고, 묵묵히 인내하며 나가시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영혼들이 구원 받지요. 그게 없으면, 영혼이 한사람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 주변에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고 있다면 십자가 지는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내게 강권적으로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해산케 하신다.> 라는 사실을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나는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들을 쓰지 아니하며 다만 나의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하듯 너희를 타이르려 하노라.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에게 만 명의 스승이 있다 해도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낳았느니라.”(고전 4:14-15)


 무엇보다 영적 산모인 나의 신앙생활이 중요합니다. 건강한 산모라야 건강한 자녀를 출산할 수 있습니다. 전도하려면 먼저 자신의 영적 건강부터 챙기십시오. 매일 태신자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최대한의 사랑과 친절을 베푸십시오. 애경사를 챙기십시오. 전도 문자를 일주일에 한번 씩 보내십시오. 자주 만나 같이 시간을 보내십시오.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하나님의 자녀가 출산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한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게 십자가 지는 삶을 사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십자가의 삶을 살게 하시고 또 영혼을 해산케 하시는 그러한 길을 가게 하실 적에 지옥에 갈수밖에 없는 영혼들의 구원을 생각하고 영혼들이 영벌에 처할 상황을 내다보며,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갈 수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영혼들이 구원 받는 역사가 내 주변에서 일어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가좋다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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