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주님만으로 기뻐하라*김인환 목사

하나님아들 2017. 12. 7. 23:30

예수가좋다오

주님만으로 기뻐하라.

빌립보서 3장 1-9절/김인환 목사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를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것들을 쓰는 것이 참으로 내게는 부담이 되지 아니하며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조심하고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며 살을 베어 내는 자들을 조심하라. 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뻐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자니라. 나 역시 육체를 신뢰할 수도 있지만 그리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어떤 사람이 육체를 신뢰할 만한 것이 자기에게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의 줄기에 속한 자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관하여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였고 율법에 있는 의에 관하여는 흠이 없는 자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 되던 것들을 곧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으며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빌3 :1-9)


■ 생각해 볼 이야기


■ 20세기 최고의 영성가인 토마스 머튼을 배출한 미국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에는 요즘 단기 수도원 체험 프로그램을 신청해 놓고 기다리는 지원자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대부분 나이가 많고 세상에서 부와 명예를 누렸던 세상말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같이 수도원에 들어오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내 삶은 공허하고 허무할 뿐이다. 세상의 명예와 부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이런 것을 얻어도 나는 늘 갈망을 느낀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어디에 있는가? 차동엽씨의 “행복선언”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성공하기만 하면 행복하게 될 거’라는 신기루를 쫓으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갑니다. 하지만 신기루일 뿐이죠. 행복하지 않습니다. 참된 기쁨이 없어요.


 - 여러분은 어떠세요? 오늘 사는 게 참 기쁘고 행복하세요? 나름 성공을 하신 분이든 아니든 간에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을 거예요. 옆 사람 얼굴을 보세요.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 성공하지 못해서, 성공한 사람은 성공 후에 밀려오는 공허함 때문에 우울해 보이지 않아요? 기쁨이 없는 얼굴이에요.


  - 왜 행복하려고 그렇게 몸부림치며 사는 데 우리는 기쁘고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요? 왜냐고요? 참된 기쁨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없는 곳에서 찾고 있으니 찾을 수가 없지요. 그렇다면 참된 기쁨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 성경 속의 진리 찾기

■ 본문 말씀 1절 앞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를 기뻐하라.”- 어디에 기쁨이 있다고요? 오직 주님만으로 기뻐합니다. 아니 목사님 또 그 얘기에요. 네, 또 그 얘기입니다. 주님만으로 있을 때만 참된 기쁨이 있으니까요. 물론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죠. 우리는 다 알고 있어요.


 - 그런데 사도 바울은 왜 또 이것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왜 또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주님만으로 기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세상에서 기쁨을 찾아요. 여행을 가고 쇼핑을 하고 오락을 즐기고 여기저기 모임에 기웃거려 봅니다. 그리고 잠깐의 기쁨 뒤에 더 큰 외로움과 우울함 속에 갇혀버리죠.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본문 1절 후반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에게 같은 것들을 쓰는 것이 참으로 내게는 부담이 되지 아니하며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 느낌이 오세요? 잘 안오시죠. 유진피터슨은 이 구절을 “메시지” 성경에서 이렇게 번역해 주었습니다. 우리 소식은 이쯤 하겠습니다. 친구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전에 편지로 한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나는 번거롭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 내용을 다시 들으면서 귀찮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 안전한 길을 택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다시 적습니다.


 - 뭐라고요? 주님만으로 기뻐하라고요. 그렇습니다. 주님만으로 기쁨을 찾지 않고 세상에서 찾는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 살수록 밀려오는 공허와 허무를 막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 안에서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다른 것에서 기쁨을 찾습니다. 행복하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만으로 기뻐해야 한다고 자꾸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른 곳에서가 아니라 주님만으로 기뻐하십시오. 주님만으로 기뻐할 때만이 참된 기쁨,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Ⅰ. 그렇다면 왜 주님만 참된 기쁨이 있는 것일까요?


■ 진리 찾기Ⅰ

■ 어떤 행복의 조건도 참된 기쁨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도 사람들이 굳게 믿고 있는 신기루가 있어요. 그게 뭐죠. 성공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공은 태어날 때의 조건이 결정한다고 생각하죠. 그것을 가리켜 일명 “수저계급론”이라고 부릅니다. 금수저로 태어났느냐 흙수저로 태어났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갈린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과연 그럴까요? 사도 바울은 전혀 아니라고 말합니다.


본문 말씀 4-5절 보세요. "나 역시 육체를 신뢰할 수도 있지만 그리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어떤 사람이 육체를 신뢰할 만한 것이 자기에게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의 줄기에 속한 자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관하여는 바리새인이요,"


- 이해가 되세요? 좀 어렵지요? 좀 더 쉽게 번역된 공동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하기야 세속적인 면에서도 나는 내세울 만한 것이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세속적인 것을 가지고 자랑하려 든다면 나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더 많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으며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입니다."


- 자, 사도 바울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금수저였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세요. 그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언약의 표시였습니다. 그 할례를 그는 태어나서 팔일 만에 받았습니다. 성년이 되어 할례를 받아 하나님이 백성이 된 헬라파 유대인과 달리 자신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 신학교를 가보니까 성골이 있더라고요.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신 분들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목회자가 된 사람을 뭐라고 부른지 아십니까? 잡골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잡골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성골이었습니다. 게다가 바울은 유대인 중에서도 가장 명문 엘리트 지파인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에요. 그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유대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혈통을 따라 태어난 금수저 중의 금수저였다는 말입니다.


 - 바울이 이 이야기를 왜 꺼냈을까요? 유대주의자들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들도 예수 그리스도만 믿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유대인들의 율법과 관습, 특히 할례를 행해야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라고 미혹하고 있었거든요. 이것은 이방인들로 구성된 빌립보 교인들에게 상당한 유혹이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고요? 당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았다는 유대인들에게 개취급을 받으며 살았거든요. 그런데 유대주의자들이 할례를 받으면 그들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요즘말로 말하면 신분의 상승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빌립보 교인들이 얼마나 흔들렸겠어요.


 - 여러분, 우리는 안 흔들렸을까요? 신분의 상승, ‘보다 높은 지위에 올라 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려는 욕망, 그러면 지금 보다 더 행복해 지게 될 거’라는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 믿음 갖고 살기에 우리는 여전히 주님으로 기뻐하여 누리는 기쁨이 아니라 세상이 주는 기쁨을 찾고자 몸부림치며 오늘을 분주하게 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 좋은 조건, 모든 유대인들이 부러워하는 혈통을 따라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난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수저이냐 흙수저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어떤 조건을 갖고 태어났다 해도 그것이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추구할 때, 신분상승을 통한 기쁨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 인생의 끝자락에서 밀려오는 허무와 절망을 극복하지 못한 채 우울함의 감혀 비극적인 삶의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기에 오직 주님만으로 기뻐하십시오.


 Ⅱ. 한발 더 나아가서 왜 주님만 참된 기쁨이 있는 것일까요?


■ 진리 찾기 Ⅱ

■어떤 인간의 성취도 참된 기쁨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사람들이 굳게 믿고 있는 두 번째 행복의 신기루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취하면 행복해 질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합격을 하면, 취업을 하면, 승진하면, 뭔가를 이루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유대주의자들 역시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성취감이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아닙니다.


본문 말씀 5-6절 보세요. "나는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의 줄기에 속한 자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관하여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였고 율법에 있는 의에 관하여는 흠이 없는 자로다."


- 자, 사도 바울이 자신의 신분, 즉 태어날 때부터 가졌던 좋은 조건을 나열하고 나서 이제 무엇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율법의 요구를 어떻게 이루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는 바리새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아니 목사님, 바리새인이 된 것이 뭐 대단한 것입니까?’라고 말하실 분이 있으실지 몰라요.


-하지만 당시 바리새인은 가장 훌륭한 신앙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많이 연구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철저하게 지킨 가장 모범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아무나 바리새인이 되는 게 아니었어요. 게다가 그는 당시 최고의 율법 선생인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SKY대학, 명문대학에 들어간 것이지요.


 - 명문 대학에 들어가려는 열정을 아시잖아요. 태어나면 부모들이 애들에게 그냥 우유는 안 먹여요. 애가 천재가 아닐까 해서 아인쉬타인만 먹입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들어가면 천재가 아닌 것을 알게 되지요. 그냥 서울대에 들어가라 해서 서울우유를 먹입니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면 서울대도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요. 그래서 연세우유를 먹입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면 연세대도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건국우유를 먹입니다. 하지만 고3이 되면 다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먹이는 우유가 저지방우유로 랍니다.^^


- 명문대 들어가기 쉽지 않지요. 그런데 바울은 졸업하고서도 탄탄대로였습니다.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처벌할 수 있는 엄청난 권세와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높은 지위까지 얻게 됩니다. 이쯤 되면 바울처럼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도 바울이 말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말씀 7-8절 보세요.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 되던 것들을 곧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으며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 무엇으로 여긴다고요? 해로 여긴데요. 황당하지요.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에요. 이게 이해가 되세요? 왜 그랬을까요? 왜 사람들이 이루고 싶어 하는 그 모든 것을 이루어 놓고 그것을 해로, 아니 배설물로까지 여겼을까요? 그것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고자 했던 그 성취와 노력이 자신을 더 우울하고 곤고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고자 했던 그 때의 심정을 로마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로마서 7장 22-24절 "내가 속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들 안에서 한 다른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내가 보도다.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 사랑하는 여러분, 성취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성취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기에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곤고하진 않으세요? 기억하세요. 어떤 것을 성취해도 참된 기쁨을 얻진 못합니다. 무언가를 우리가 성취했을 때, 그 성취는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또 이루어야할 그 다음 성취과제를 끊임없이 보여줄 뿐이니까요. 그러기에 기쁨을 얻으려면 주 안에만 있어야 합니다.


Ⅲ. 마지막으로 왜 주님만 참된 기쁨이 있는 것일까요?


■ 진리 찾기 Ⅲ.

■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 이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본문 말씀 7-8절 앞부분까지 보세요.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 되던 것들을 곧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으며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


- 자, 바울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 출생의 조건과 성취한 것들, 아니 자기 자신에게 한 때 그렇게 유익하다고 믿었던 것들을 왜 해로 여기게 되었습니까? 생각해 보면 그래도 그런 것들 때문에 우리는 잠시나마 기뻐하고 자랑하며 살잖아요. 그런데 왜 바울을 그것을 해로 여기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가 가장 큰 기쁨을 주었기 때문에 세상의 싸구려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해로울 뿐 아니라 배설물처럼 여겨진다는 거예요.


- 여러분 이게 이해가 되세요? 하나님의 예배하는 것이 신나세요? 그리스도만 생각하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하세요? 아니 설사 병들어 죽음이 찾아온다 해도 이기기 힘든 기쁨이 차오르세요? 그런 기쁨이 우리에게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싸구려 기쁨을 찾잖아요. 쇼핑을 하고, 여행을 하고, TV와 문화를 즐기고, 인간관계 속에서 기쁨을 찾아보려고 애 쓰잖아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 속에 뭔가를 더 갈망하며 살잖아요.


- 빌립보 교인들도 그랬어요. 그래서 유대주의자들이 그 틈을 타고 들어가 이렇게 말한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부족하다. 너희들도 우리처럼 율법을 지키고 제사를 드리고 할례를 행하면 온전해 질 수 있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아니었어요.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말씀 1-2절 보세요.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를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것들을 쓰는 것이 참으로 내게는 부담이 되지 아니하며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조심하고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며 살을 베어 내는 자들을 조심하라."


- 뭐라고요? 바울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개들을 조심하고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며 살을 베어 내는 자들을 조심하라." 즉 유대주의자들과 할례의식을 삼가라, 무슨 말이에요?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곳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것을 삼가고 오직 주님 만으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주님만으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세상 속에서 더 기뻐하지요. 왜요? 오직 주님 만으로 기뻐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느 날 주님을 믿으면 갑자기 우리 안에서 저절로 기쁨이 솟아 올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만약 기쁨이 그렇게 생기는 거였다면 바울은 ‘저절로 기뻐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기록했을 것입니다.


- 그런데 바울은 지금 명령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요? 이것은 적극적인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 만으로 기뻐해야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감정을 자극하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도 아닙니다. 아니 기쁘지 않은 데 기쁜 것처럼 위선을 떨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마치 이렇게요. 할렐루야~^^


 - 그렇다면 오직 주님 만으로 기뻐하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라, 주님의 인격과 주님의 구원 사역을 더 깊이 묵상하고 그분을 알아가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더해 가라. 그러면 주님 때문에, 아니 주님으로 인해 오는 하늘의 참된 기쁨, 영원한 기쁨을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 기쁨으로 인해 충만해 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직 주님 만으로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 헨드릭슨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원어성경연구 빌립보서 223)


 "솟아오르는 태양 앞에서 모든 별이 꼬리를 감추듯이, 그리고 크고 값진 진주 앞에서 모든 보석들이 광채를 잃어버리듯이 바울에게 있어 ‘내 주 그리스도 예수’와의 깊은 교제 앞에서 그 밖에 모든 것들은 빛을 잃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이 기쁨이 있으세요? 매일 매일, 평생을 알아가도 다 알 수 없는 가장 고상한 이름 주 예수, 그분을 알아가는 교제의 기쁨을 누리고 계십니까? 혹시 그 기쁨을 알지 못해 아직도 세상의 부와 명예와 권력과 재미를 추구하며 늘 부족한 기쁨, 금방 사라지는 싸구려 기쁨 즐기며 살고 있지는 않으세요?


■ 말씀따라 생활속으로

■ 1931년 미국의 보험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던 한 사람이 NBC 라디오 공개방송에서 노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전 미국 국민을 매료시켰고 그는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방송 제의가 들어오고 여기 저기에서 돈과 인기가 주어지는 길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 머리 숙여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의 어머니도 같은 때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세의 길이 열렸지만 마음에 기쁨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 책상 위에 작은 쪽지 하나를 조용히 갖다놓았습니다. 거기에는 밀러라는 부인이 쓴, 어머니가 자주 애송하던 성시였습니다. 그 시를 읽다가 청년은 갑자기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시에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멜로디를 적기 시작합니다. 그 시는 이것입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은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 이 청년이 누굴까요? 바로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평생을 동역한 조지 베르리 쉐아George B. Shea입니다. 이 분은 여든이 넘도록 수많은 집회에서 찬양을 하셨는데 한 번은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전세계 모든 전도자들이 모였을 때 특별 찬양을 했습니다. 찬양이 끝나고 장내에 운집한 수많은 사람들의 기립박수가 있었습니다. 그 때 이분이 남긴 한 마디가 장내를 오랫동안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이렇게 기뻐하라 이동원, 120-122) "감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주신 박수 갈채와 그리스도를 바꾸지 않겠습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가장 큰 소원, 가장 큰 목표는 그리스도를 더 알아가는 것, 그래서 그분으로 인한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것, 그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찬양을 하면서 설교를 끝내려고 합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기쁨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은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예수가좋다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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