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거짓신앙의 실체

하나님아들 2017. 11. 27. 22:36

 

거짓신앙의 실체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와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자기 안에 진리가 없음이라. 그가 거짓말을 할 때는 자신에게서 우러나와 한 것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8:44, 한글킹)

 

거짓신앙은 하나님을 말하면서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는 죽은 신앙체계를 말한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바리새인들의 형식적인 신앙의 뿌리가 사탄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 음성을 듣지 못하는(5:37~38, 각주참조) 거짓신앙의 근원이 사탄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거짓신앙의 체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거짓신앙체계는 율법주의, 인본주의, 기복신앙에 터를 잡고 의식이 인격을 대신하고 있는 신앙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의식이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는 신앙체계인 것이다. 이 때문에 거짓신앙은 참 신앙보다도 엄숙한 예배의 의식이 있고, 헌신과 열심히 있다. 그러나 정작 있어야 하는 하나님이 그 속에 안 계신다. 여기서 나누고자 하는 것은 거짓신앙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내용이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이 부분은 회복시리즈 회복의 개요06. 회복을 위해 알아야 할 거짓신앙의 실체에서 다루었다.) 이러한 거짓신앙의 근원이 마귀이기 때문에(8:44, 각주참조) 이 거짓신앙의 체계 속에서는 사탄이 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신앙의 진수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 신앙생활에서 무엇을 감추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어떻게 말하고 정당화시키는지 그 실체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거짓신앙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1. 하나님의 인격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는다

 

거짓신앙의 실체 가운데 첫째는 기독교와 종교를 구별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격이라는 것을 모르게 만들고 경험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고 삶의 모든 것을 간섭하고 계신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느끼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생존하심에 대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말로는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고 간섭하시는지를 경험과 성경적 근거에 터 잡아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생활에서 일하신 흔적을 우리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가르치지 않는다. 피상적인 가르침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모든 것을 교묘하게 방해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지 못하게 한다. 그 이유는 그들도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모르게 하는 사탄의 계략에 속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신앙이 바리새인들과 같은 거짓신앙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더 심각한 일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가 없다는 것을 바리새인들을 질책하시는 주님의 꾸지람 속에서 알 수 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감정이 있으시다는 것이 망각되어져 있다.(5:13, 각주참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인격과 인격의 존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려져 있는 것이다. 그분의 불쾌감이 전달되지 않고, 그분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지금도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5:17, 각주참조)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언어가 무엇인가를 모른다.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를 생각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지도 못하고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 이들의 상태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하나님과 같이 모시고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들은 모른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때문에 거짓신앙은 하나님의 인격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신앙의 본질이 하나님과의 동행이라는 것을 이들은 알지 못한다. 동행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만 실제적인 동행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기본은 가르치는 사람이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알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이 모르는 것을 남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구구단을 모르는 사람이 미적분을 가르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동행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동행을 가르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진정으로 그분을 만나지 못하고, 그분을 경험하지 못하고, 그분과 동행하지 않으면 그분의 인격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자들이 하나님을 가르치고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인가를 이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인격 대 인격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신앙 자체를 논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목회자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연구해서 우리의 삶에 적용을 시키는 것으로 신앙생활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신앙은 가르침과 교훈이 아니라 실제적인 생활이다. 기독교가 교훈이 아니라는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 실제 살아계심을 그들의 삶 속에서 증명해 보일 수 없는 지금 목회자들의 실상을 드러낸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없는 삶의 구조 속에 살고 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무엇인가를 설명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사탄의 교묘한 계략에 속고 있는 것이다.

 

 

2. 구원의 생사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를 구원하시어 영생을 얻게 하시는데 있다. 때문에 성경의 모든 초점은 십자가 사건으로 모아지게 된다. 영생을 얻는 것에 초점이 모아져 있다. “마귀가 떠나가는 것을 즐거워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즐거워하라.”(10:20, 각주참조) 말씀은 우리의 궁극이 영생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사가 인간의 영생이라면 죄 가운데 있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도 강조되어야 하고 그 심각성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신앙은 최후의 심판과 지옥의 실상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다. 인간이 죽음을 맞이할 때 죄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것과, 음부가 존재하고 지옥의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7:21, 각주참조) 구원을 받는다는 것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버지의 뜻을 어떤 과정을 거쳐서 알게 되는가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살아도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어린양의 진노가 무엇인가를 말하지 않는다. 최후 심판이 있을 때 해가 검어지고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이 대풍에 무화과 과실이 떨어지는 것과 같이 떨어지고,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과 같이 말리고, 산과 섬들도 그 진노를 피하여 자리를 옮기는(6:12~17, 각주참조) 어린양의 진노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구원을 받을만한 믿음이 없는 자들은 어린양의 진노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뿐인 생명을 왜 버렸는가? 그들이 목숨을 내어놓고 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영생이다. 그러나 이들은 구원의 유무, 영생과 영멸이 얼마나 심각한 주제인가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원의 확인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거짓신앙은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죄 가운데 놓여 있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를 성령님의 조명으로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옥의 심판에 대해서 가르쳐야 하고 지옥의 실상에 대하여, 음부의 실상에 대하여 절절히 스며들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곧 닥치기 때문이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고 주님 앞에 서서 사탄의 속임수와 그 계략을 보았을 때는 이미 늦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방식을 가르치지 않는다

 

거짓신앙에서는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방식을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가면 하나님께서는 대적들을 풀어놓아 그들이 이기지 못하게 하시고 고난 가운데 있게 하신다. 그러다가 다시 회복을 위하여 하나님의 품 안으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방식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원한다면 당연히 그 방식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회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 방법을 가르치지 못하고 그들을 회복시키지 못하는 것이 이 사실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방식을 만드셨고 그것을 이천년 동안 유대 민족을 통하여 확증하셨다. 그 회복의 방식이 지금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주님께서 사역을 하실 때의 성경은 구약성경이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라고 하신 말씀은 구약성경을 폐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고, 사도 바울 또한 구약성경의 기록은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 주어졌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15:4, 각주참조)

 

이것은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방식이 구약성경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사기 350년 동안 반복되는 회복과 타락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회복의 방법은 한결같았다. 출애굽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 대한 징계와 회복의 과정도 한결같았다. 그러나 그 회복을 위한 구약의 원리들이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삶에서 사라졌고 우리는 회복의 방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회복의 비결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 회복을 위하여 제시하신 방법들은 하나님과의 개별적인 관계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회복을 위한 신앙생활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과 동행을 하면 그 속에서 우리 삶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 인간에게 제시된 방식 속에 복이 있고, 그 방식을 벗어날 때 하나님의 징계와 저주가 임하였던 것이다. 복과 저주를 받는 길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두시고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주어졌던 것처럼,(11:26~28, 각주참조) 복을 받기 위해서, 즉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 풍족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이에 대해서 자세한 것은 필자의 책 성경적 생활을 참조하라.)

 

지금 우리가 세상 속에서 세상의 방식으로 살면서 고난을 당하였다면, 이제는 세상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 회복을 바라면서 세상적인 방식을 그대로 취하고 있다면 회복은 기대할 수 없다. 세상의 방식을 취해서 실패를 하고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야 실패와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회복을 원하여 하나님을 찾았다. 그런데 삶의 방식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 세상의 방식 그대로라면 회복은 요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방식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

 

질문이 여기에 이르면 회복을 위해서 사라진 유대적 뿌리를 찾아야 하고(로마서 11, 각주참조) 풍부한 수액이 올라오는 근원을 복구해야 한다는 문제가 대두된다. 그러나 문제는 풍부한 수액이 올라오는 근원을 복구하는 구약성경의 원리들이 우리 신앙생활에서 철저하게 무시되고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모세가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서 중재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키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식을 또 말씀하신다. , “다른 신들의 단을 헐고 아세라를 찍어 깨뜨리라.”는 것이다.(34:13, 각주참조) 그 다음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34:21, 각주참조) 그리고 매년 세 번씩 절기를 지키고 남자들은 하나님 앞에 보이라고 명하신다.(34:23~24, 각주참조) 그리고 첫 열매를 바치라고 말씀하신다.(34:26, 각주참조) 그리고 모세에게 이것들을 기록하라 하시고 이 말들의 뜻대로 언약을 세웠다고 말씀하신다.(34:27, 각주참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계명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회복의 방식은 하나님의 언약의 원리에 의하여 계명을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며, 세 번의 절기와 첫 열매를 바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원리가 사라진 현실에서는 회복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언약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첫 열매와 절기가 사라진 지금의 현실에서 회복을 바라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삶 속의 기본 명령인 십일조만을 강조해서는 삶 속에서 솔로몬과 같은 축복을 받을 수 없다. 구약성경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의 손에 남아 있다.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방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자세한 것은 필자의 책 성경적 생활10. 축복의 원리와 성경적 생활을 참조하라.) 하나님께서는 성경적인 방법 이외의 것과는 타협을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길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본주의에 의해서 가미된 모든 것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회복할 방법이 없다.(상세한 것은 필자의 책 영의 원리10. 성경의 기독교와 지금의 기독교를 참조하라.)

 

 

4. 육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는다

 

23 화평의 하나님 바로 그분께서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게 보존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노라. (살전 5:23, 한글킹)

 

본문은 인간의 구성이 영과 혼과 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인간에게 영과 혼과 육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영과 혼과 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이들의 각 기능은 무엇이며 어떤 역할들에 의해서 상호 유기적으로 움직이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영적인 사람인가, 혼적인 사람인가, 육적인 사람인가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육을 이해해야 거듭남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영적인 사람이 되어 가는가를 알 수 있다. 육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중요한 주제가 거짓신앙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신앙을 형식으로 몰아가는 사탄의 계략에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육에 대한 구조의 이해는 신앙의 모든 이론적인 근거를 이해하는 것이다. 거듭났다는 것을 우리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그저 믿기 때문에 거듭났다고 말할 것인가? 나 자신이 지금 거듭난 상태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전혀 답할 수가 없는 것은 영육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육에 대한 이해 없이 성령 충만이 무엇이고 성령 세례가 무엇인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러한 모든 것들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왜 믿는 자의 표적이 나타나지 않는가? 성령 세례를 받았다면 당연히 하나님과 동행을 하는 사람일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를 도구로 사용하신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은사를 통하여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일하신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모든 내용을 다 안다는 식의 인간적인 교만과 거드름의 썩은 악취만 풍기고 있으면서 순박한 양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말한(4:6, 각주차조) 호세아 선지자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양들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복음을 접하고도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영생의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면서도 영에 대한 지식의 결핍으로 삶이 도탄에 빠진다. 이러한 영적 무지로 인해 하나님과 교제가 안 되고 자아를 통제하지 못하여 사탄과 싸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거짓신앙은 영육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는다. 거짓신앙의 근본은 사탄이기 때문에 본질에 접근하여 하나님을 만나도록 결코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

 

 

5. 귀신의 실체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는다

 

거짓신앙의 실체 가운데 가장 핵심은, 거짓신앙의 근본이 사탄이기 때문에 사탄과 그의 하수인인 귀신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탄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등장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는 것도 지옥의 사망 권세를 이기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거짓신앙은 지옥의 사망 권세가 무엇인가를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곳은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신은 사탄이다.(고후 4:4, 각주차조) 우리는 지금 적진敵陣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적은 사탄이고 그의 부하인 귀신들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의 씨름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인 것이다. 우리는 영적 전쟁터 속에 놓여 있음을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12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들과 권세들과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에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6:12, 한글킹)

 

우리는 영적 전쟁의 실제 상황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적들과의 싸움을 지휘하는 지휘본부가 곧 교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는 귀신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는다. 교회에서 귀신에 대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귀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들이 누구의 편인가? 귀신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말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편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퇴마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귀신을 쫓아내는 퇴마사를 양성해야 한다면 성경에 기록된 믿는 자의 표적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14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4:14~15, 개역)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6:17, 개역)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이는 마귀가 처음부터 죄를 짓기 때문이라. 이 목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셨으니, 곧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려는 것이라. (요일 3:8, 한글킹)

 

본문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세우신 목적 가운데 귀신을 쫓는 사역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믿는 자의 표적 속에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신다. 이렇게 분명한 사실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적에 대해서 듣기 싫어해도 가르쳐야 될 사람들이, 적에 대해서 질문을 해도 그 질문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거짓신앙의 근본이 사탄이라는 것,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들이 사탄을 적으로 생각한다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그들에 대해서 말해야 하고 가르쳐야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과연 축사의 능력이 있는가? 만약,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이 없다면 그들은 믿는 자가 아닐 것이고, 사탄을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사탄이 거짓의 아비라는 것을 모르는 자들이고 그들에게 속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4 그들 가운데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가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 (고후 4:4, 한글킹)

 

사탄이 그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이미 판단력을 흐리게 하였고, 여기에 속아 거짓신앙에 빠져 있으면서도 거기에 빠진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축사 사역은 특별한 은사를 가진 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도 망각하게 한 것이다. 마귀는 그들이 거할 사람을 찾는다는 것,(12:43~45, 각주차조) 사람 속에 들어간다는 것,(1:23, 각주참조) 병을 일으키고(13:11, 각주차조) 사람을 멸망시킨다는 것,(9:17~29, 각주차조) 사람의 마음속에 견고한 진을 만들고(고후 10:4, 각주차조) 기도 응답을 지연시키고(10:13, 각주차조) 날씨에 영향을 준다는 것(8:22~25, 각주차조) 등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거짓신앙은 마귀의 정체가 무엇이며 이들의 특성은 무엇이고, 마귀의 억압과 들림이 무엇인지, 사로잡힘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때문에 이 분야는 지금 사탄의 완벽한 독무대가 되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귀신에 대해서, 악한 영에 대해서 말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현실이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영적 전쟁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이고 죽지도 않는 존재와의 싸움을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그들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으며 영적 전쟁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고 있는가? 사탄은 우리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인간이 죽을 때까지, 70~80년의 계획을 세운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들이 어떻게 우리를 끌고 가고 있으며, 그들의 최고의 전략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이들이 어떻게 끌고 가서 멸망을 시키는지 그 전략과 전술에 대해서 마땅히 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식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마귀에 대하여 알아야 하는 당위는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등장하는 이 마귀의 실체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다면 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고 인간의 지식의 눈으로 성경을 바라본다면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귀신의 실체에 대하여 모른다면, 영적 전쟁에 대하여 모른다면 성경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다림줄, 즉 하나님이 의도하신 참된 의미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거짓신앙은 영적 전쟁의 실체에 대해서, 귀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다.(상세한 것은 회복 시리즈 믿는 자의 표적에서 논하기로 한다.)

 

 

6. 예언을 멸시한다

 

거짓신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 자체를 무시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음성을 듣는다는 것 자체를 거부하게 만든다. 자녀가 부모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생활이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상식선의 논리를 무시하게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언을 한다는 것을 무시한다. 예언을 멸시하는 것이다. “예언을 멸시치 말라.”(살전 5:20)고 한 성경의 기록은 안중에도 없다.

 

1 사랑을 추구하라. 영적인 은사들을 열망하되 특별히 예언을 할 수 있도록 하라. (고전 14:1, 한글킹)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하면 예언을 할 수 있다. 예언은 교회에 덕을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그야말로 유익하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상대방에게 가르쳐줌으로써 예수님께서 살아계셔서 우리 삶을 간섭하고 계신다는 것을 억지로 설명하지 않아도 입증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증거하는데 많은 노력과 수고를 줄일 수가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전도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면 반드시 대화를 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정보를 얻는다.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정보는 다양하다. 삶 속에서 해결해야 하는 정보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 교회에 대한 정보, 국가에 대한 정보, 세계에 대한 정보 등 참으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정보를 얻어 말해주는 것이 곧 예언이다.

 

예언은 현재 시점에서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러한 예언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러나 거짓신앙에서는 이 예언의 기능을 아예 무시한다. 물론 한 사람의 예언자가 키워지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예언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 음성을 듣는 통로가 깨끗해야 하는 등 선결되어야 할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있다고 해서 예언 자체를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예언을 사모하고 특별히 예언하기를 간구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무시하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과의 교제는 할 수 없는 것이고 신앙생활은 이미 신앙이 아닌 종교생활이 되는 것이다. 예언을 활성화하고 하나님의 언어를 가르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예언을 무시하는 것은 성령을 소멸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7. 하나님과의 동행과 거듭남을 강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인격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 구원의 생사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 하나님의 방식을 가르치는 것, 육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 귀신의 실체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 예언을 권장하는 것 등 이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수인 주님과의 동행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그러나 주님과의 동행은 거듭나지 않고는 할 수 없다. 거듭나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거듭남을 통한 주님과의 동행은 스스로 경험하지 않고는 생활에서 거듭남을 강조할 수가 없다. 뒷받침되는 행함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거짓신앙에서는 주님과의 동행과 하나님과의 실재 만남인 거듭남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는다. 거듭남이 무엇인지를 모르게 하는 것은 사탄의 핵심 전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거듭남이 무엇인지를 모르게 하면 주님과 동행하지 못한다는 것을 사탄은 잘 알기 때문이다. 마치 나침반 없이 항해를 하는 것과 같이 만드는 것이다.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하여 목적지에 달할 수 없고 난파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거짓신앙에서는 거듭남을 강조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동행을 강조하지 않는다.

[회복시리즈 02. 신앙의 본질 일부 발췌 / 박찬빈 ]

 

 

회복시리즈 제2권 신앙의 본질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과 카페(하나님만을 바라는 사람들)에서 강의를 참조하세요. 회복시리즈와 신앙의 강요는 반드시 모두 읽어보실 것을 진심으로 권해드립니다.

바로 알아야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또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은 영생이 달린 문제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동안 헝클어져 가닥을 추리지 못했던,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는 사람들 (http://cafe.daum.net/onlyjesus1924) 카페에서 강의영상 보세요.

간증들도 읽어 보시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만나주시고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셨는지,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고 있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우리도 이 하나님을 만나서 성경 속의 인물들과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책은 아래에서 구매하실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http://sundori.kr (순돌이)

http://arukah.co.kr (아루카)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바울의손수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