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없는 선교(행 5:40-42)
1. 현재, 한국교회의 현 주소는 어떠합니까?
얼마 전, 중앙 일간지 신문에 교회당 사진이 나왔습니다. 종탑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런데 교회 사진을 자세히 보니까 종탑 십자가 자리에 절간 표시가 붙어 있었습니다. 놀라서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어느 교회, 교인이 줄고 줄어, 전기세도 낼 형편이 되지 않는 교회가, 결국 매물로 예배당 건물을 내 놨더니, 어느 절간에서, 십자가만 절 표시로 바꾸면 절간으로 사용하기 좋다고, 절간에서 매입 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작년에 법원에 경매로 나온 종교 시설물이, 300여 건 되는데, 그 가운데 예배당 건물이 100여 건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기도 안양시는, 인구 60만에, 555개 처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건물 옥상에 설치된 옥탑 십자가 104개 교회 십자가를, 안양시에서 예산 1억을 들여 철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안양시에서는, 교회 십자가 조명 시간도 새벽 6시에서 밤 10시까지 제한하겠다고 합니다.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는 십자가 조명을 끄라는 말입니다. 전국 232개 시군구 가운데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교회의 위상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하고, 어떻게 목회하고, 선교해야 하겠습니까?
2. 쉼표란?
(1) 쉼표란 국어에서는, 한 문장의 부호, 반점, 모점을 말합니다.
(2) 쉼표란 음악에서는, 음, 소리를 내지 않고 숨을 쉬는 것을 말합니다.(Rest) 소리 내던 것을 잠깐 쉬라는 뜻입니다. 음악에서는 이 쉼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쉼표 없는 노래는 부를 수 없습니다.
(3) 사람에게도 쉼표가 필요하기에, 휴식, 휴가, 방학, 주일, 밤이 있습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쉼표 없이 일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그들이 누구입니까?
본문 42절에, “...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쉬지 아니하니라).” 했습니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성령에 충만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쉬지 아니하고, 쉼표 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도하고 선교했습니다.
(1) 오늘 날 전 세계 251개국, 75억 명 인류가운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믿는 사람들은 대략, 24억 명이라고 합니다. 여론 조사기관, 퓨리서치 센터의 통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24억 명 가운데, 50% 12억만 명이 천주교인이고,
37% 8억 9천만 명이 기독교인이며,
12% 2억 8천만 명이 정교회 교인이고,
나머지 1% 3천만 명은 기타에 해당됩니다.
(2) 여러분! 오늘의 이 열매, 75억 명 가운데 24억 명이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는 열매가 어떻게 맺혔습니까? 2천 년 전, 예수님의 12제자들의 쉼표 없는 선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12제자 가운데 가롯유다는 빼야합니다. 예수님을 등지고 배반할 사람이 전도하겠습니까? 오히려 가롯유다 때문에 초대교회에서 전도문이 막혔습니다. 자기 제자 하나도 못 가르치고, 제자한테 배신당한 예수가 어떻게 구세주가 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의 설교로 3천 명, 5천 명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세례를 받았습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회가 성장하자, 서기관 바리세인들은 산헤드린 공회를 통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 도무지 예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고, 전하지 말라고, 협박하며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들어가고, 채찍질을 당해 만신창이가 됐는데도, 복음위해 능욕 받는 것을 마땅하게 여기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구주시오, 이 예수님 믿어야 구원받는 다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쉼표 없는 선교를 했습니다.
스데반을 보십시오. 돌에 맞아 죽어 순교하면서도, 쉼표 없는 선교를 했습니다.
5천 명 이상 들어가는, 로마의 원형극장 안에서, 굶주린 사자 떼들이 달려들었습니다. 소스라치며 놀라는 어린 딸을 껴안고 어머니는, “조금만 기다리자. 조금만 기다리면 우리는 예수님 품안에 안기는 거야.” 하면서,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면서도, 믿음을 지키고 순교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쉼표 없는 선교 아니고 무엇입니까?
(3) 우리나라는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셀라 선교사가 복음의 씨앗을 뿌린 이래, 지난 132년 동안 2,600여 명의 순교자가 있었습니다. 순교하면서까지, 쉼표 없는 선교를 했습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전 세계 171개국에 2만 7천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쉼표 없는 선교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 교회 숫자는, 들쭉날쭉합니다만 55,000여 교회, 기독교 교단 숫자는 208개, 그 가운데 장로교단은 157개여 개, 목사 숫자는 20여만 명 이상입니다. 이 쉼표 없는 선교가, 오늘 이러한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한 것입니다.
4. 여러분! 우리는 인도를 방문 중에 주일을 맞이하여 바라나시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50주년 기념주일이요, 힌두교와 불교의 본산지 바라나시에서 의미 있는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어떻게 쉼표 없는 선교를 할 수 있습니까? 쉼표 없는 선교를 하다가 주님 앞에 설수가 있겠습니까?
(1) 내 자신이 먼저, 기독화, 복음화, 예수화 되어, 내 자리를 굳게 지키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선교입니다.
신앙생활의 단계를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고, 주일 성수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신앙인가만, 예수님 믿고 주일성수하는 신앙은, 학교로 비유하면 초등학생 단계의 신앙입니다. 십일조하는 신앙은, 중학생 단계의 신앙입니다. 새벽 기도하는 신앙은, 고등학생 단계의 신앙입니다. 대학생 단계의 신앙은, 비로소 전도하고, 선교하는 신앙입니다. 주일성수, 십일조, 새벽 기도하는 자라랴 선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내 신앙의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런데, 식사 시간에 밥그릇 앞에서, 예수님 시인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선교하랴! 주일날 11시 예배시간에, 예수님 시인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선교하랴! 소득이 생겼는데도, 소득 앞에서 예수님 시인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선교하랴! 직장 신우회에서, 월회비 2만월씩 내자고 했더니, 절반이 결석했다는데 이래가지고 어떻게 선교하랴! 이런 수준의 신앙이라면, 예수님 믿는 것 흉내는 낼 수 있어도, 선교할 수 없습니다.
지난 달 9월 15일, 윤영호 목사님이 섬기는 한마루교회에서, 인도교회 건축 후원현황 보고시간이 있었습니다. 첫 상견례라 맘 먹고 참석했습니다. 11개, 17개 교회를 건축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벽돌교회 17교회, 대나무교회 48개, 어메이징 그레이스 신학교 등, 70여 교회를 건축 중에 있다는 보고를 듣고 놀랐습니다. 많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부러웠습니다. 뿐만아니라 빈틈도 없고, 쉼표도 없이, 인도에 교회 건축을 추진해 가는 문영용 목사님의 인도교회 건축 열정에, 또 한번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최의숭 장로님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전 세계 예배당 없는 오지에, 예배당 100개를 건축하겠다고 서원하고, 얼마 전까지 전 세계 40개국에 106개 예배당을 건축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도선교를 시작한지 3년 만에 어떻게 70개 교회를... 그러면서, 대나무교회 하나 지어놓고, 헌당식에 참석한다는 것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래도 되겠는가? 이래도 될까? 그날 느낀 내 심정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총회에서 아프리카 오지에 파송한, 젊은 선교사가, 현지에서 죽었습니다. 총회장은 정중하게, 이 비보(悲報)를, 죽은 선교사 어머니에게 전하고, 위로했습니다. 그러자 그 어머니는 신학교를 졸업한 둘째 아들을, 큰 아들이 선교하다 죽었던 그 선교지로 또 보냈습니다. 동생 선교사는 형님이 일했던 선교지에서 열심히 선교하다가 또 죽었습니다. 총회장은 슬픈 기색으로 이 비보를 전하고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첫째, 둘째가 선교하다 죽었던 그 자리에, 신학교를 졸업한 셋째 아들을, 선교사로 또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걸 어떠하면 좋습니까? 셋째가 또 죽었습니다. 비보를 전한 총회장에게, 그 어머니는, 한참 후에 “총회장님! 후회가 됩니다.” “집사님!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하던가요? 셋째는 대를 이어 가야 할 아들이기에 보내지 말자고 하지 않던가요?” “총회장님! 세 아들이 선교하다가 죽어서 후회가 되는 것 아닙니다. 우리 영감 살아 있을 때, 넷째 아들 안 낳은 게 후회가 됩니다. 넷째 아들 낳아 놓았더러면, 그 넷째도 선교사로 보냈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후회가 됩니다.” 이게 제대로 된 집사 모습이 아닙니까?
권사인 내가, 제대로 권사만 되어 있어도 전도입니다. 권사가 권사화, 기독화 되어가는 것 자체가 전도입니다. 장로인 내가, 제대로 장로만 되어 있어도 선교입니다. 장로가 장로화, 복음화 되어가는 것 자체가 선교입니다. 목사인 내가, 제대로 목사만 되어 있어도 선교입니다. 목사가 목사화, 예수화 되어가는 것 자체가 쉼표 없는 선교입니다.
(2) 맡은 일,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심한 자폐증(발달 장애)을 앓은 아들 위해, 부탁받고 심방가서, 예배를 막 드리려는데, 형광등이 가버렸습니다. 알고보니 3개월 째 전기료를 못 냈더니, 한전에서 전기를 끊어버린 것입니다. 전기료 내겠다고 연락하려고 전화기를 들었더니, 전화기 끊겼습니다. 3개월 째 전화요금을 못 냈더니, 한국통신에서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촛불 켜 놓고, 예배를 드리고 났더니, 장롱 밑에서 신문지로 쌓아 놓은, 500만 원을 내 놓으면서, “목사님, 아들 수술하려고 수술비 모아놓은 돈인데, 선교비로 내 놓습니다.” 받아와야 하랴? 돌려줘야 하랴? “목사님! 그럴까봐 이 문제 놓고, 3일 동안 작정기도 했습니다. 받아가세요.” 간절히 기도하고, 이 목사님은 그 돈으로 선교비를 잘 썼습니다. 이 집사님은, 그 후에 복지학 공부를 해서, 1급 복지사가 되었고, 복지관에서 관장으로, 자폐증 아이들, 수십 명을 키우고 있습니다.
여러분!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몸 바쳐, 마음 바쳐, 젊음 바쳐, 물질 바쳐, 복음에 목숨 걸고, 맡은 일,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쉼표 없는 선교입니다.
(3) 사랑하되 예수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35년 전입니다. 서울 광림교회에서 부목사로 시무하고 있는 최이우 목사님께, 시골에서 목회하고 있는 친구목사가 찾아 왔습니다. 사연인즉 시골에서 아주 어려운 중에 아담하게 예배당은 건축했는데, 건축비가 부족해서 종탑을 못 세웠으니, 종탑을 세우게 당시 돈 200만 원만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그 때 최이우 목사님이 “친구야! 미안해. 모처럼 부탁 했는데, 사실 나도 돈이 없거든. 못 도와줘서 미안해.” 그리고 저녁을 대접하고 아쉽게 헤어졌습니다. 집에 돌아온 목사님, 마음에 걸려, 사모님한테 친구 이야기를 털어 놨습니다. 그러자 사모님이 “여보! 그 돈 200만원, 내가 주면 안 될까요?” “당신한테 무슨 돈이 있다고...” “사실은 당신 몰래 적금을 들었는데, 지금 탈 때가 됐어요. 아마 200만 원쯤 될 거예요.”
그 다음 날, 친구 불러, 종탑 세우라고 35년 전에, 200만 원, 교통비 2만원, 모두 202만 원을 주었습니다. 친구는 그 돈으로, 종탑 세우고, 성황리에 예배당 헌당식까지 잘 마치고, 신바람 나게 목회했습니다.
얼마 지난 후, 서울 광림교회에서 안산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예배당까지 다 지어 놓고 초대교역자를 파송하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담임 목사님이 그 많은 부목사님 가운데 최이우 부목사를 담임 목사로 파송했습니다. 나중에 최이우 목사님이, 안산광림교회에 부임해서, 회계에게 건축비를 물어 봤더니, 35년 전 당시 돈 2억 2백만 원 들었다고 하더랍니다. 202만 원의 딱 100배가 아닙니까? 100배의 열매! 사랑하되 예수님을, 몸으로, 물질로 제일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쉼표 없는 선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빈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공치사를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니면 말고, 대충대충, 외상도 없으십니다. 할렐루야!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1-42)
'은혜 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하나님의 기쁨되게 하소서!(빌 4:1-3) (0) | 2017.11.25 |
|---|---|
| [스크랩] 영광스러운 언론인(고후 3:7-9) (0) | 2017.11.25 |
| [스크랩] 예수님의 7가지 ‘자기 선언’ (0) | 2017.11.23 |
| [스크랩] 탈무드 인맥관리-인생지혜 (0) | 2017.11.14 |
| [스크랩] 성도의 삶과 목적*이성희 목사 (0) | 2017.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