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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능한 하나님을 성경으로 맥을 잡고 믿으면 능력의 삶

하나님아들 2017. 11. 5. 15:22

전능한 하나님을 성경으로 맥을 잡고 믿으면 능력의 삶[17:1~2]

[본문 중심 단어 해석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

이는 17장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명칭이다.(엘 샤다이)()'강한 자'의 뜻으로 하나님의 보편적 칭호이나 (샤다이)의 뜻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그 배경으로 '강한 자'(샤다드) '명망시키는 자'(샤다드), '전적 충족 또는 자기 충족자', '수리아어 산의 의미', '전능자'(판토크라톨)등을 말한다. 이중 처음 두 가지가 유력하다. 그렇다면 '강한자'를 표시하는 두 낱말이 중복됨으로 '극히 강한 자, 전능자, 강하고 강한자'의 뜻이 분명하다. 이런 전능하신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아브람에게 행하여 '완전하라'(웨헤이 타밈)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전능하신 능력과 손으로 붙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 샤다이'의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결코 좌절할 이유가 없고 언제든지, 무슨 어려운 일을 만나든지 담대할 수가 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곧 '엘샤다이'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능력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이다.


[본문 중심 주제 강해]

'능력과 욕망이 평형을 이루고 있는 자는 절대 행복자이다' 이 말은 '루소'의 말입니다. 99세 때까지도 '친자손'이 없어 낙심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 '완전'히 행하라고 위로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라는 명칭은 '유력하다, 강하다'라는 뜻의 '사드'라는 말과 '' , '하나님'이라는 낱말과 합친 하나님의 별호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을 '전능자'로 증언해 줍니다(42:2;32:17). 성도들은 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뢰하기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4:13)있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1. 전능의 참된 의미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것이나 다 하시는 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전능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완전 거룩하신 뜻'과 깊게 연관된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그러기에 '전능'은 오직 '하나님의 본성'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다 하실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하나님은 이 세상의 폭군들처럼 그 가진 권세로 ''을 행하실 수 없으십니다(1:13. 딤후2:13. 6:18. 1:13). 만일 하나님께서 행하신다면 참된 의미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악을 행하는 자는 자신을 제어할 능력이 결여된 자며, 사랑을 행할 능력이 상실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전능의 힘은 오직 그 의와 사랑의 본성의 제한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처럼 모순된 일까지 행하실 수 없으십니다. 즉 창조와 섭리에 있어서 '네모가 난 원'같은 것을 만드실 수가 없으시며, '거짓을 띤 참'과 같은 가치관을 만드시고 행하실 수도 없으십니다. 물론 성경에는 '말하는 나귀'(22:28)'그리스도의 성육신'같은 '초자연적인 기적'들이 허다하게 있는데, 이러한 사건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서 기인된 일들로 증언해 줍니다. 그러나 그 모든 기적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신적인 본성'에 위배되거나 모순된 요소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속성이 잘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참된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성도들의 '영적 특권'이나 '은사'들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본성과 뜻 안에서 제한되어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7:22-23. 고전14:1,32-33).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께 큰 능력을 받았으니 아무것이나 다 행할 수 있다'라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또 큰 기적과 이적을 행한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성품과 영원한 인생 구원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면 그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님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21:8. 살전2:9-12).

 

2.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인생들에게 행하시기에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엘 샤다이'라고 부를 것을 요구할까요? '칼 발트'라는 신학자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전능성은 우리 인생의 생사를 주관하시기에 의미 있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전능하신 능력이 있다 해도 우리 인생들의 '구원 문제'와 관계가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칼빈'이라는 신학자는 바울 사도의 고백을 예로 들어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된 사역을 지적했는데, 바로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3:21) 하실 수 있기에 인생들이 '전능자'로 경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지' 라는 근대 신학자는 '엘 샤다이'라는 별호는 인생들과의 '구원의 언약'을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임을 강조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이 세상의 죄악과 자연 질서가 인생을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언약을 반대하고 방해하더라도 하나님은 능히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고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기에 '엘 샤다이'로 부를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유에서 무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죄인을 의인으로, 인생의 불행을 행복으로, 육의 인간을 영의 인간으로 변화시키실 수 있기에 그 야말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탄도 큰 기적과 이적은 행할 수 있으나 바로 그와 같은 '인생 구원'의 능력은 없기에 거짓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도

하나님은 그 전능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손을 얻으려고 했던 아브라함에게(16:1-3) '내 앞에서 행하며 완전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큰 민족'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언약만을 의뢰하라는 의미입니다(12:1-3). 아브라함은 그 후 하나님의 전능성만을 의뢰했기에 '죽은 몸'에서 '이삭'이라는 생명을 얻었고, '믿음의 조상'이라는 축복을 얻었습니다(4:18-21. 12:11-12).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구원의 언약을 의뢰합시다(4:22-25). 또 현세의 모든 시험과 환난도 하나님께서 능히 극복하게 해주실 줄로 믿읍시다(8:32). 그리고 장차 '요단 강'저편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때, 나 같은 죄인까지도 천국 백성의 반열에 속하게 해 주신 것을 발견하고 '엘 샤다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온전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1:1-6).


출처 : 영성회복훈련원
글쓴이 : 양승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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