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의 일곱가지 세례 고린도전서 10장1-4절/강문호 목사
하나님은 7로 일하십니다. 그런데 세례도 7가지가 성경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로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엡 4;4-6) 세례가 아니라 침례로 주장하는 이들이 침례교입니다. 그 중에 재침례 교인들은 더 강력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유아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미국 어느 침례 교회에서는 물속에 세 번 잠기게 합니다. 첫 번 물속에 들어 갔다가 나오면 주변에서 말해줍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두 번째 들어갔다 나오면 외칩니다. “할렐루야!” 세 번째 물속에 잠겼다가 나올 때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자기들도 모르게 외쳤다고 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런데 성경에서 세례에는 7가지 종류가 있었음을 성경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1. 모세의 홍해 세례 성경에서 세례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고린도전서 10장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 하기를 원하지 아니 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 속하여 다 구름과 바가에서 세례를 받고 다같이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라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1-4) 첫 세례는 민족적인 세례였습니다. 민족이 모두 물속을 통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시 70 개국 중에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선민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특별한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민족적으로 세례를 준 것이 첫 세례입니다. 민족을 구원하신 세례입니다. 2. 요한 세례 두 번째 세례는 마태복음 3장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이 외쳤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플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 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플 것이요”(마 3:11) 요한은 세례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29-30) 요한 자기는 예수님의 신부가 아니라 친구라고 말했습니다. 마태복음은 확실하게 증언하여 주고 있습니다.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마 11;13) 요한까지 그리스도의 신부에 포함되지 않고 친구에 반열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이렇게 구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마 11;11) 세례 요한이 세례를 준 목적이 있습니다. 그 세례의 목적을 확실하게 정의하여 주고 있습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 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프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요 1;31)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수님을 보여 주려고 세례를 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례받은 이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면서 세례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세례를 주면서 오직 예수님만을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 때 모습을 마태가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받으로 가셨습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 3;14)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이 때 요한에 세례를 허락하였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리고 예수님이 지나사실 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말했습니다. 구약에서는 원죄는 양피로, 자범죄는 보통 비둘기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때부터 예수님은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원죄와 자범죄를 모두 전가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는 십자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죄사함을 주는 지금 우리의 세례가 아니라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리는 세례였습니다. 3. 죽음의 세례 또 다른 세례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기록입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 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막 10;38-39) 이는 죽음의 세례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는 것도 세례라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코 죄사함의 세례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세례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12명 제자들은 그 세례를 다 경험하였습니다. 주님의 아픔과 십자가 고통을 받는 것도 세례입니다. 4. 유대인의 세례 사도행전 2장 내용은 모두 유대인들을 향한 멧세지입니다. 베드로 설교가 2장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저지른 실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를 책망하는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그 다음 말씀이 이어집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이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시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유대인들은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이런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에게 베드로가 책망하자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그 때 베드로는 회개하고 침례를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는 세례가 아닙니다. 회개를 위한 유대인의 세례입니다. 사도행전에 세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 질문 구원받지 못 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유대인을 베드로가 책망하였습니다. 이들이 물은 질문이 첫 질문입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두 번째 질문 사도행전 9장에서 바울이 다마서커스로 가다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바울이 질문하였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행 9;5)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세번째 질문 바울이 갇혀 있는 옥문이 지진으로 열렸습니다. 바울이 도망친 줄 알았습니다. 죄수가 도망가면 간수가 대신 사형입니다. 죽은 줄 알았습니다. 자살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를 본 바울이 죽지 못 하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들이 물은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행 16;30) 바울이 대답하였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2장의 세례는 유대인들의 죄를 씻어주는 세례입니다. 5. 이방인의 세례 가이사랴에 살고 있는 고넬료 집에서 있었던 베드로 집회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성령이 그 곳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이방인으로서 최초로 성령받는 순간입니다. 베드로와 같이 와서 참석하였던 유대인들은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랐습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플라 하니라”(행 10;47-48) 이것이 죄사함과 구원을 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례입니다. 우리가 받고 있는 세례입니다. 6. 영적 세례 성령세례라고도 하고 영적 세례라고 하는 세례가 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하나가 되는 세례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말했습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다시 말하면서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모두 그리스도 예수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주님안으로 들어오게 하셔서 하나가 되게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그 안으로 들어와 하나로 녹아지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 세례입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다 사도이겠느냐?” “아니요.” “다 능력행하는 자이겠느냐?” “아니요.” “다 방언을 말하겠느냐?” “아니요.” “다 병고치는 자이겠느냐?” “아니요.”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아니요.”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성령 세례는 주님과 하나가 되는 세례입니다. 7.저주의 불 세례 불 세례는 성령 세례가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불달라고 기도합니다. 실제로 불받아 뜨거지고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간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병고침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이 오해가 된 것입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플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 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프실 것이요”(마 3;11) 이 말씀 때문에 성령세례와 불세례를 동일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구절을 보면 불이 무엇인지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11;12) 12절은 11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불은 심판의 불입니다. 지옥의 불입니다. 불을 달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불에 태워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뜨거움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좋습니다. 예레미야가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다시는 하나님을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아니 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여기에서 불은 불의 뜨거움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불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불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도 불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2-15)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잘라 버리라. 두 손 가지고 결코 꺼지지 않는 불속인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그 곳에는 그드르이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 하느니라”(막 9;43-44) 요한도 계시록에서 불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각자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 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0;13-14) 불 세례는 불신자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심판의 세례입니다. 저주스러운 세례가 불 세례입니다.-ⓗ.
|
'은혜 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성경의 일곱 비밀*강문호 목사 (0) | 2017.09.16 |
|---|---|
| [스크랩] 성경의 일곱 비밀*강문호 목사 (0) | 2017.09.16 |
| [스크랩] 이마에 표하라* 강문호 목사 (0) | 2017.09.16 |
| [스크랩] 마음의 눈을 떠라*강문호 목사 (0) | 2017.09.16 |
| [스크랩] 지키면 지켜 주리라*강문호 목사 (0) | 2017.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