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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747 법칙 누가복음 7장 47절 / 김병삼 목사 [누가복음 7장 47절]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으로 말씀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까지 말씀에 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나옵니다. 첫 번째 열매가 ‘사랑’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본래 성경에서 말하는 의미가 순서로서 9가지 열매를 나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고 나머지 8가지의 열매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파생되는 것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고 시기하지 아니하고 자랑하지 아니하고 교만하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성내지 아니하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모든 것을 참고…. 결국, 이 모든 것이 사랑을 설명하는 것이고, 진정 우리 속에 있다면 이런 사랑의 실천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죠.
오늘은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알아야 할 중요한 원리를 함께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만나 교회를 담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있었던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 가운데 이 여인의 모습도 예수님의 모습도 “그 무엇”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행동은 여러 가지 면에서 사람들에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물 대신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다고 되어 있지요. 어떤 번역본에는 이 부분을 “그녀의 눈물이 비 오듯 내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가운데 단순히 수군거리고 오해할 수 있는 상황 말고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갑자기 출현한 이 여인 때문에 잔치의 초청자였던 바리새인 시몬의 심기가 무척 불편해진 것입니다. 그의 불편함은 시몬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말씀의 주제인 “747 법칙”이 나오게 된 설명이기도 하죠. 누가복음 7장 44~46절입니다.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시몬아! 너는 나를 초청했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 같다. 네가 하지 아니한 일들을 저 여인이 하지 않았느냐?” 시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그것이 무엇일까요? 분명히 자신이 잔치를 베풀었고 이 상황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주변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있지만, 바리새인 시몬에게는 없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잔치를 만들고 초청했지만, 예수님의 발을 씻을 정도로 겸손하게 사랑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시며,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41-42절)
오늘부터 우리가 ‘사랑’에 대한 말씀을 나누게 될 텐데, 얼마나 부담스러운 시간이 되겠습니까? 참 신기한 것은 멀리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이나 동남아시아에 있는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되는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가 힘든지 말입니다. 그냥 사랑하는 것은 되는데, 용서하면서 사랑해야 하는 것은 정말 힘들지 않습니까? 종종 우리가 듣는 말이 있습니다. “저런 남자와 사는 여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소리를 듣는 여자는 속으로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런 남자와 살아봐라. 행복한가?” 종종 우리는 남의 교회 목사를 칭찬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저런 목사님과 신앙생활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 소리를 듣는 교인들은 속으로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저런 목사님과 신앙생활 해봐라. 행복한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씀의 도전이 무엇인가요?
오늘 예수님께서 바로 그 사랑에 대하여, “747 법칙”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사랑의 첫 발자국은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랑은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배우는 747 법칙에 의하면 사랑을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용서함을 받는 것이 먼저입니다.
요한 1서 4장 19절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으시나요? 에베소서 4장 32절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없다면, 우리도 시몬처럼 예수님께 문을 열어주고 잔치를 베풀 수는 있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 못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서 사랑의 열정이 식었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잃었다고 생각하면 옳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말씀은 우리가 흔히 하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사랑을 받아 본 자가 사랑한다!”라는 것이죠.
요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처럼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모든 영화와 드라마, 제품을 광고하는 CF조차도 사랑을 모티브로 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얼마나 많은 사랑이 있나요?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시대!
맥스 루케이도의 책 [사랑]에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순서가 분명하지 않나요? 요한 일서 4장 11절에서 더욱 분명해지는데요.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며 준비하는 시간이 12월 24일입니다. 제 방에도 작은 나무이지만, 크리스마스 장식이 빛나고 있습니다. 지금 밖에는 가장 아름답게 장식된 나무들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2월이 지나가면 하나씩 나무들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왠지 아시나요? 아무리 아름답게 보여도 생명력이 없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나무에서는 소나무 잎이 떨어질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럴듯하게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생명력 없는 것은 드러납니다. ‘먼지’가 쌓입니다. ‘색’이 바라게 됩니다. 흉내는 내지만, 생명력이 없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살짝 건드려도 넘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력을 공급받을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그 어떤 사랑도 쉽게 넘어지고 깨어지고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랑하라는 말을 참 많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렇게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십시오!” 이제 한 주간 동안 그 유명한 고린도전서 13장인 “사랑 장”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한 번 이 사랑에 도전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처음 이 말씀을 읽으면서 “참 좋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시나요? 그런데 자기의 이름을 넣고 읽으면 너무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을 넣고 읽으면 가능해 보이지 않나요? 우리가 만들어낼 수 없는 도저히 불가능한 사랑, 그러나 그 사랑을 가능케 만드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 말이죠.
오래 참는다는 것은 순진하게 상황을 모른다거나 잘못된 행동을 모른 척하고 참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불꽃을 약하게 내려놓고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물이 끓도록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대하여 분노가 일어나고 사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분노의 불꽃을 약하게 하고 기다리는 것이죠. 그러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만일 주께서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았다면 오래 참으실 이유가 있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하셨던 말씀과 아주 유사한 구절이 마태복음 18장에도 나와 있습니다. 빚진 자와 회계를 하는 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 그의 식솔들을 다 팔아서 빚을 갚으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그 사람은 빚을 갚을 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기 가운데서 왕께 나아와 애원합니다.
이 이야기의 반전은 그가 법정을 나서자마자 집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에게 단지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자 목을 틀어쥐고는 빚을 갚으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의 동료가 똑같이 엎드려 구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왕이 베푼 은혜를 이 사람이 정확히 이해하지도, 그리고 그 사랑을 누리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랑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인가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인내를 경험했다는 증거는 다른 사람을 통해 그의 인내가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747 법칙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 18장의 이야기를 통해서 보았지만, 왕이 베푼 인내를 가슴으로 깨닫지 못하면 그 인내의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인내하는 사랑을 살고 싶다면 하나님께 구해야 할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깨닫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오래전 인터넷에 떠돌던 [3초만 기다려 보자]라는 글이 있습니다.
출발신호가 떨어져 앞차가 서 있어도 크락숀을 누르지 말고 3초만 기다려 주자. 내차 앞으로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3초만 서서 기다리자. 그 사람 아내가 정말 아플지도 모른다.
친구와 헤어질 때 그의 뒷모습을 3초만 보고 있어주자. 혹시 그놈이 가다가 뒤돌아 봤을 때 웃어 줄 수 있도록,.. 길을 가다가 아침 뉴스에서 불행을 맞은 사람을 보면 잠시 눈을 감고 3초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 언젠가는 그들이 나를 위해 기꺼이 그리할 것이다. 정말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을 때라도 3초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다가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3초만 그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자. 죄짓고 감옥 가는 사람을 볼 때 욕하기 전 3초만 생각하자.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 울상을 하고 있을 때 3초만 말없이 웃어주자. 아내가 화가 나서 소나기처럼 퍼부어도 3초만 미소 짓고 들어주자. 우리를 참아주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가 조금만 참아 준다면, 조금만 주전자가 천천히 끓을 수 있도록 분노의 불꽃을 줄이기 시작한다면 참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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