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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천후 신앙(삼상17:41-49)

하나님아들 2016. 5. 28. 17:57

2008.08.17대민(주일낮)

 

*전천후 신앙(삼상17:41-49)

 

신앙생활은 우리 삶 속에 가장 중요시 할 일입니다. 어떤 신앙으로 살아 가는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현실을 돌아보면서 조금 잘 살게 되었다고 너무 큰소리 치면서 우리의 생활을 한껏 부풀렸다가 경제 위기가 닥치니까 또 이제 다 망할 것처럼 죽는소리를 내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요동치는 까닭은 우리의 삶의 중심을 요동치는 물질에 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쉽게 변하지 않는 가치를 바라보고 나가지 못하고 금방 있다가도 금방 사라지곤 하는 물질을 제일 중요한 가치로 받아 드렸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이 물결처럼 요동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런 요동치는 삶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신상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기에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각자의 신앙에 만족하며 신앙을 통하여 힘을 얻고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다 같은 신앙생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이란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를 믿고 받드는 일.이라고 사전에는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종교 생활이라고도 하는데 종교는 사람이 자기가 지존자 혹 최상자라고 믿는 대상에 대하여 가지는 숭경(崇敬)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반적으로 모든 종교는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는 모든 종교를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참된 길을 제시하는 종교는 단지 기독교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불교나 유교나 회교나 힌두교를 믿고 다른 종교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천하 인간에 다른 종교나 다른 사람을 통하여서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은 헛된 것이며, 다른 종교를 통하여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믿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생활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천국까지 가는 길이 결코 쉽지 많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변덕이 많은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유혹이 없을 때는 교회도 열심히 나오고, 성경도 읽어보려고 애를 쓰고, 안 믿는 사람을 만나면 전도도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어떤 유혹이 와서 자신도 모르게 실족을 하거나 시험을 당하여 쓰러져 버리면 성경도, 기도도 팽개쳐 버리고 나중에는 술도 한 잔 마셔보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버립니다.

한 마디로 신앙생활에 일관성이 없어져 버립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살필 것은 “한결같은 신앙”은 평소에 준비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이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에 신앙의 힘을 발휘하려면 평상시에 그 신앙을 준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은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의 생활을 통해 자기 영성을 개발하며, 그 말씀을 따라 역사를 살피며,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가질 때 신앙은 점점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전천후 신앙을 늘 지녀야 합니다.

전천후 신앙이란 “고난이나 역경에 굴하지 않고 언제나 한마음으로 충성을 다하는 신앙, 오직 주만 바라보고 전진하는 신앙생활을 의미”합니다.

농업에도 전천후 농업이 있습니다. 가뭄이나 수해에도 굴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은 환경을 극복해야만 할 것입니다.

【 1960년 에디오피아 근위대 중위 아베베는 맨발로 올림픽에서 우승하여 금메달을 땄고 4년후 1964년 동경 올림픽 때는 신발을 신고 다시 우승하여 금메달을 땄습니다. 아베베는 그 후에 나라에서 그에게 차를 선물로 주었는데 교통사고를 당해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4년후에는 아베베는 다시 런던 장애자 올림픽 대회에 또 참여하여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에도 좌우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전천후 신앙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전천후 신앙이란 어떤 신앙입니까?

 

1. 하나님으로 무장하는 신앙을 말합니다.(45)

 

“다윗이 불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본문을 먼저 살펴봅니다.

이스라엘을 침략한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비교해 볼 때 호전적이었으며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시시때때로 침략하는 블레셋과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은 블레셋을 대표하는 무서운 장수였습니다. 이 골리앗이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삼상17장8-9) 골리앗의 이런 도전은 무려 40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는 어떻게 반응을 했습니까?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삼상17:11) 나아가 24절에서는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누구든지 골리앗을 이기는 자는 자기 딸을 주겠고 많은 재산을 주겠다는 제안까지 했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골리앗이 얼마나 무서운 적이었기에 그토록 오만하게 굴고 이스라엘을 모욕해도 누가 나서지 못했을까요?

이 사람의 체구가 4절에 보면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라고 했습니다. 여섯 규빗 한 뼘이면 약 3m 가까이 되는 키입니다. 그가 입고 있는 갑옷도 약 80-90kg이 됩니다. 골리앗이 들고 있는 창 자루는 얼마나 길고 큰지 마치 배틀 채 같았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큰 창날은 철로 되어 있었는데 그 창날만도 약 7kg이나 되었다고 하니 보통 사람으로서는 그 거대한 창을 들기조차 힘들 정도였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덩치만 컸던 것이 아니라 많은 전쟁을 치루면서 그 이름을 떨친 용사였습니다.

이런 골리앗 장군이 앞으로 나와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1대1로 싸움을 하자고 제안을 하였으니 이스라엘 군사 중 어느 누구도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골리앗과 같은 대상과의 싸움이 있습니다. 도저히 우리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렵고 힘겨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골리앗입니다.

 

우리가 골리앗과 같은 대적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극복해야 할 것이 두려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골리앗을 두려워함으로 감히 그에게 대항할 마음조차 갖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우리의 문제들을 너무 크게 생각함으로 전의를 상실할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다윗이 등장하게 됩니다. 다윗이 아버지 심부름 차 와 보니 그 형편이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이 하나님을 욕하는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울과 모든 군인들이 그 하나님을 욕하는 골리앗을 보고도 그냥 속수무책으로 있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느꼈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지독하게 욕을 당하고 있는데도 모두들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자청해서 사울 앞으로 가서 “내가 나가 싸우겠다”고 말합니다.

당시의 전쟁의 특징은 우선 신들의 전쟁이었습니다. 어느 나라의 신이 더 세냐? 하는 것을 전쟁에서 승리하므로 승리하는 쪽의 신이 더 세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따라서 전쟁을 하게 되면 상대방의 신의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모독함으로서 기선를 제압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면 신들의 이름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 그들의 종이 되고 그들의 신들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블레셋이나 이스라엘의 왕이나 백성들 모두가 전쟁은 힘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 힘이 자기들이 섬기는 신에 의해 주어진다고 생각했고 전쟁을 수행하는 왕은 신의 대리자 혹은 신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힘있는 왕을 원했던 것이고 자기네들이 원했던 힘센 왕이 바로 사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 보다 더 힘센 적이 앞에 나타나게 되자 어쩔 줄 몰라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들의 욕심과 탐욕 앞에 우뚝 선 적장 골리앗은 적이 아니라 자기네들이 평소에 원했던 무시무시한 힘이었던 것입니다. 즉 탐욕의 덩어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눈치채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 전쟁을 통하여 인간의 탐욕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원하던 힘센 왕 사울 앞에 더 힘센 골리앗 이들을 몽땅 한 통속으로 여기고 그들 앞에 내세운 하나님의 용사는 인간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그야말로 보잘것없는 어린 소년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무시할만한 인물입니다. 다윗의 형들도 전쟁터에 나온 다윗을 보고 심히 교만하다느니 완악하다고 하면서 전쟁이 무슨 어린애들 장난인줄 아느냐고 다그쳤던 것입니다. 사울 왕 역시 너는 소년이며 적은 어려서부터 용사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상대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 앞에 가서는 벌벌 떨고 있는 사울 왕에게 골리앗 때문에 낙심하지 마시라고 합니다.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리다고 무시하는 사울에게 자신이 아비의 양을 칠 때 겪었던 실제 이야기를 들려주고선 여호와께서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리이다 라고 하면서 당당하게 나섭니다. 사울은 그의 말이 가상해서인지 자신의 갑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입혀 내 보내려고 하지만 맞지 않아서 무장 해제하고 막대기 하나 물맷돌 다섯 개로 나서게 됩니다. 이것은 골리앗의 엄청난 무기에 비하면 다윗에겐 무기 없음이 됩니다. 다만 다윗의 무기는 눈에 보이는 무기가 아니라 골리앗이 무시하는 바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 무기였던 것입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출15:3)

다윗이 비록 어린 몸으로서 전쟁에 출전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윗 개인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의 자격으로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 과거에 사사를 보내듯이 하나님께서 친히 보내시는 사사의 자격으로 나선 것입니다. 실제 이스라엘에는 사울이라는 왕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허수아비에 불과할 뿐 하나님이 인정하는 진짜 왕은 다윗인 것입니다. 이미 삼상16장에서 사무엘에 의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고 그 기름 부음 받은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골리앗과의 전투였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번 전쟁을 통해 온 세상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구원하심은 칼과 창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으로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만방에 드러낸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되 힘으로서 아는 차원이 아니라 언약의 차원에서 하나님을 이해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보여주었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우리 손에 붙였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47절). 즉 붙이시매 이기게 하는 전쟁에 다윗은 도구로 쓰여지게 된 것뿐입니다.

이로서 힘만을 추구하던 어른들(사울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 앞에 정말 힘없는 어린 소년 다윗을 내세우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소년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만방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윗의 참 신앙은 힘들고 어려운 난제와 위기속에서도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인생의 여정에서 힘들고 어렵고 이룰 수 없는 것들이 보인다 할지라도. 좌절하고 절망에 빠져 포기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힘차게 전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바랍니다.

 

2. 전천후 신앙은 자기에게 주신 능력을 다 발휘하여 최선의 삶을 다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목동으로 양떼를 지킬 때에 곰이나 사자가 나타나면 도망쳐 버린 것이 아니라 양 새끼 한 마리라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생명걸고 나가서 싸워 이긴 승리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일상생활에 서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그 큰 승리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적은 일에 승리하는 것을 보셔야 큰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적은 일에 충성하는 것을 보셔야 큰 일도 맡기시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적은 일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자기를 이기고 헌신하는 생활을 한 다음에야 큰 일을 맡기시는 법입니다. 다윗은 일상생활에서 승리하는 평소에 생활의 준비가 있었던 것입니다. 생활의 준비가 없는 사람을 하나님이 들어 쓰시거나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일상생활의 적은 문제를 소홀히 여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일상생활에서 적은 것부터 진실하고 정직하고 헌신적인 생활을 할 때 큰 일도 맡기시고 축복도 해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각자의 능력에 맞게 재질과 재능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첫째는 정신적인 능력을 배양해야 하며, 둘째는 자기에게 있는 능력을 발휘하여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에게도 하나님께서 음악적인 재능과 물맷돌을 잘 돌리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평상시 그는 양치기의 본분을 다하면서 사나운 곰이나 늑대 또는 사자들과 싸워서 이겼고 양들을 지켰습니다. 이와같은 작은 충성들과 성공이 그에게 있어서 이렇게 큰 국가간의 전쟁에서도 담대하게 전진하는 믿음을 준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탓하거나 재능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하면서 핑계를 대면서 게으름을 피울 때가 아주 많았습니다. 우리가 진정 전천후 신앙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닥처 온 난관들에 대하여 겁을 먹거나 쉽게 좌절하고 절망하고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항상 준비된 자만이 전천후 신앙으로 무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귀중히 쓰임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잘 할용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순간에 달란트는 부여됩니다. 이것은 선택의 사건이 아니라 필수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것으로 거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 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달란트는 복음사역입니다. 그런데 각각 그 재능대로 다르게 받았습니다.

즉 각자 다른 복음의 사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5장15절에 "각각 그 재능대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달란트를, 두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성도들은 누구나 세 가지를 받았습니다. 재능, 직업, 직분을 받았습니다.

첫째, 재능입니다. 미술을 잘 하는 것, 음악을 잘 하는 것, 말을 잘 하는 것, 봉사하는 일을 잘 하는 것, 가르침을 잘 하는 것, 그 외에 개인적으로 재능을 타고 납니다.

둘째, 직업입니다. 공무원, 교사, 상인, 농부, 군인, 그 외의 직업들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직업입니다.

셋째, 직분입니다. 교회에서 집사, 교사, 찬양대원, 권사, 장로 등으로 각각 모두 직분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재능, 직업, 직분의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원래 종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이 자신의 소유를 맡긴 것입니다. 즉 주님의 사역을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25장14절에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따라서 각각 사명의 종류는 다르지만 동일하게 하나님의 사역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사명과 타인의 사명을 비교해서도 안되고, 자신의 받은 것에 대해서 항의 할 수도 없습니다. 여기에 불만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원금은 까먹지 않았습니까? 내 잘못은 무엇입니까? 달란트는 재능, 능력입니다. 내가 가진 달란트는 무엇입니까? 음악, 미술, 학식, 재산, 건강, 성격, 언변, 운동 등, 우리는 내가 가진 달란트를 활용하고 있습니까? 재능을 활용합시다. 우리는 보존하라고 달란트를 주신 것이 아니라 활용하라고 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도의 신분, 재능, 직업, 직분을 보존하지 말고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성도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편할 때만 아멘이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속에서는 아멘이 안될 때는 우리는 전천후 신앙인이 아닌 것입니다. 이제 이후로 우리 대민교회 성도님들은 전천후 신앙인이 되어 각자에게 주어진 능력을 가지고 어떤 상황속에서도 충성을 다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전천후 신앙은 승리를 보장 받습니다.(49)

 

오늘 본문의 결론은 다윗의 물맷돌에 의해서 골리앗이 죽는 장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적장의 죽음으로 인해 정해집니다. 적장이 죽게되면 나머지 군사들은 오합지졸이 되어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이번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이 항상 살아계셔서 자기와 함께 해 주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골리앗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그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온전히 믿었기에 자기가 패배한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습니다. 승리의 확신이 넘쳐흐릅니다.

오늘 본문 46절을 보면 "오늘 여호와께서 너(골리앗)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어떻게 이같은 강력한 확신이 그에게 있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자기의 실력 때문도, 조건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승리의 확신이 단번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믿음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고난 가운데서 넘어져 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하나님이 도와주신 승리한 체험들이 쌓일 때, 그것이 영적인 힘이 되고, 우리로 하여금 승리의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권투 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스파링을 합니다. 상대방 선수와 비슷한 선수를 골라서 여러 번 싸워 봅니다. 그런 후에는 자신감을 가집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에 큰 믿음이 생기는 게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다윗이 이런 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목동으로 일하면서 수도 없이 위험에 처하면서, 맹수들과 싸운 체험이 있습니다. 어쩌면 처음엔 그도 벌벌 떨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계시며 도우시는 것을 체험하고는, 갈수록 큰 용기와 확신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웬만한 상대쯤은 거뜬한 마음이 드는 겁니다.

골리앗도 식은 죽 먹기라는 식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오늘 이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도 있어 하겠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움을 겪고 계십니까?

이 고난이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연단이요, 본 시합을 대비하는 영적 스파링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고난기간 믿음으로 잘 인내하면 장차 우리에게 더 어려운 문제가 닥쳐와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더 큰 승리의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보면, 육신적인 힘만 갖고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영력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육신적인 힘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정당하게 노력해서 힘을 기르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힘만 갖고는 인생을 승리할 수 없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은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문제만으로 되어 있는 게 아니고, 배후에 영적인 문제까지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가 있고, 마귀의 유혹과 도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생을 가리켜 선한 싸움이라 하고, 에베소서6장12절에 의하면 영적 씨름을 하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려면 하나님의 영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력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에서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신앙에서 주어집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승리를 확신하는 신앙에서 주어집니다. 이 하나님의 영력이 있을 때에, 우리에게 비록 인간적으로 연약한 점이 있더라도, 우리는 다윗처럼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전천후 신앙으로 무장하면 골리앗 같은 숱한 인생의 문제와 마귀의 도전도 넉넉히 이길 줄로 믿고 모든 생활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대민성결교회
글쓴이 : 진리수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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