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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바울의 간절한 기도(엡 3:14-21)

하나님아들 2016. 4. 27. 15:09
바울의 간절한 기도
(엡 3:14-21)

하늘의 비밀을 아십니까? 복음을 아십니까? 복음의 능력을 아십니까? 바울 사도는 이 복음의 능력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스스로 갇힌 자가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되었다고 선포했습니다. 또한 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내용이 달라집니다. 사도 바울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하늘의 비밀과 경륜을 말씀하다가, 너무나 벅차고 감격스러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여러분! 하늘의 진리를 깨닫고 나면, 사람은 할 말을 잃게 되고, 겸손하게 되며, 조용히 몸과 마음을 다 드려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무릎 꿇고 두 손을 들고 기도하게 됩니다.

사람이 부분적으로 지식을 알 때, 그리고 그 지식이 전체적인 지식이 아니라. 얇은 지식일 때 쉽게 교만해지고 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세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성숙해질수록 거룩하고 높으신 하님 앞에서 겸손해지고 순순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깨달을 때 더 이상 인간이 주장하고 싶은 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바울은 높은 하늘의 비밀을 깨닫고 그것을 말하다가 갑자기 기도로 이야기를 바꿉니다. 더 이상 그 진리를 말하기보다는 기도와 간구가 바울에게는 더 적합했습니다. 우리가 이미 생각한 바 있는 에베소서 1:17절 이하에도 바울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알게 해 달라고, 그리고 성도의 소망이 무엇이며, 그 기업의 영광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먼저 드린 기도는 주로 성도들의 영안이 열려서 하나님 세계의 능력을 알게 하는 것이었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는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14-1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사도 바울은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말합니다. 무릎을 끊고 기도하였다는 것은, 기도의 외형적 자세에서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자기의 중심을 하나님께 모으고, 겸손의 기도를 드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는 성전 뜰에서 자기의 가슴을 치며 통회하는 세리의 기도입니다. 자기를 내세우는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진실한 기도, 자기를 낮추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그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데,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부르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역사에 개입하셔서 모든 잘못을 여지없이 드러내시며, 심판하시며,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구약의 하나님은 피의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며,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의 그 분노를 달래기 위해서 제사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잘못했을 때 서슴없이 징계와 심판을 내리시고, 죽이시며,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 앞에 합당치 않으면, 전쟁에 패하게 하시어, 포로로도 만드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두렵고 무서운 존재로 나타났습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자는 죽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대화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 이름이 너무나도 거룩하고 완전하시기 때문에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완전하시고 의로우시지만 멀리 계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분 앞에서는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긴장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좋으면서도 가까이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으면서도, 그 품에 안길 수 없는 것이 구약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모습에 혁명이 왔습니다. 심판과 진노와 거룩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짜 모습은 바로 사랑과 긍휼하심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공의롭고 거룩하셔서 죄를 용납하시지 않지만,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고서라도 그 죄를 용서하고야 마는 하나님, 그리고 자기의 자녀를 삼으시며, 사랑과 긍휼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죄보다 크고, 하나님의 인내는 인간의 불순종보다 깊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인간의 어떤 교만보다 높고, 하나님의 품은 어떤 죄인도 품을 수 있을 만큼 넓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확증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바로 내 하나님이요, 내 아버지라고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바울의 기도는 세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기도의 내용입니다, 1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바울 사도가 우리를 향하여 기도해 주는 기도이기도 하며, 앞으로 우리가 무슨 기도를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이 기도는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합니다. 우리의 삶과 가정과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강건함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어떤 기도보다도 먼저 우리의 속사람의 강건함, 심령의 강건함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가장 모범적인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것은 돈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으며, 학식과 명예와 세상에서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어떤 세상적인 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그런 세상적인 힘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죄악과 유혹이 넘실거리는 이 어두움의 세상을 살아가려면, 세상 사람들이 갖는 능력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강건한 능력을 가져야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능력을 어떻게 우리가 가질 수 있습니까? 마가복음 9장을 보면, 벙어리 귀신 들린 한 아이를 고쳐주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제자들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놀라운 모습으로 변화되셨을 뿐만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 변화산에서 내려왔더니, 산 아래 남아있던 제자들이 벙어리 귀신들린 한 아이를 고치지 못해서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아이의 아비의 부르짖음을 듣고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선포하심으로, 그 아이의 병을 곧 고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조용히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물었을 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믿는 자에게. 그리고 믿고 의심없이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납니다.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기도할 때 치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육신의 문제, 자녀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영적인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그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을 믿습니까?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능력의 역사가, 치료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성도들에게 임하는 통로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기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는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세상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살아가되 세상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방식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없이는 결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 거짓된 세상에서 진실 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이기주의적 세상에서 이타주의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 또한 하나님이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모든 죄악으로부터 자유하며 기쁨과 즐거움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육신의 모든 질병을 물리치며, 상한 마음과 감정으로부터 회복되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나라 전체가 병들었을 때 누가 과연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경제적인 회복을 위하여 힘써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 땅의 죄악과 황무함을 회복시켜주시고,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고, 서로 사랑하며, 신뢰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함께 읽겠습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우리는 기도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질병이 치료되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죄악으로부터 자유하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 한믿음 교회가 말씀이 왕성한 교회, 은혜가 충만한 교회, 사랑이 넘치는 교회, 예배가 살아 움직이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의 기도처럼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의 속사람이 언제나 강건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힘을 의지하여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령으로 기도하십시오, 성령 충만함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사마리아성에서 마술을 행하던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술사 시몬은 빌립에게 복음을 듣고, 그에게 세례를 받고 빌립을 따라다니면서,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참 신기해 했습니다. 그때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전파되었다 하는 말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와서 보니, 아직 이들이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안수를 하매, 그들에게 성령이 내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마술사 출신의 시몬이 돈을 내면서 ‘이러한 권능을 내게도 좀 팔으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때 사도들이 말하기를, 성령의 능력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바울의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찬양으로 뜨겁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한 삶을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바울의 두 번째 기도입니다. 1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하려면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 들어와 계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려면,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은 절대로 강제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지 않으십니다.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습니까? 믿음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주님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 계실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여러분의 심령이 강건해져 어떤 시험과 유혹이 있다 할지라도 능히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순간 순간 믿음의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고 성경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도, 잘못된 사고방식과 죄악이 그대로 다시 나옵니다. 이것을 조절하지 않으면 사람은 이전 상태로 되돌아갑니다. 성령의 도우심,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새사람으로 지어졌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 계속 지어져 가는 것이다. 중단하지 말아라. 포기하지 말아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옷을 계속 입고 순간 순간 한 눈 팔지 말고, 경계를 늦추지 말고 믿음으로 결단하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가나안 점령입니다. “네가 밟는 땅을 내가 너희에게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닻을 조금만 느슨하게 하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주일 예배 한번 빠지게 되면 두 번 빠지게 되고, 한번 게으름 피우면 계속 게을러집니다. 이런 저런 변명으로 자꾸 안일하게 가다 보면, 사람의 육체는 끝없이 편안을 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점 해이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꾸 챙겨야 합니다. 힘들어도 추슬러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자기를 위해 끊임없이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이 아닙니다. 어떤 인위적인 선한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께 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순간 순간 믿음의 결단을 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자기의 결심, 결단을 내포합니다.

여러분!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십시오. 정욕을 물리치십시오. 자기의 모든 인간적인 생각을 쳐버리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지배하게 됩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억지로 지배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마음 속에, 주님을 언제나 모시고자 하는, 믿음의 결단을 내리기 원하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의 결단을 통하여 여러분 마음 속에 그리스도께서 항상 계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7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게 해달라고 기도한 다음에, 이제는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뿌리가 박힌다’는 말은 나무를 두고 한 말이고, ‘터가 굳어진다’는 말은 집을 두고 한 말입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처럼 튼튼히 서고, 터가 굳어진 데 세워진 집처럼 견고히 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사랑한다고 하지만 언제나 흔들립니다. 젊은이가 서로 사랑할 때는 추운 겨울 날씨에도 추운 줄을 모를 정도로 뜨겁게 서로 사랑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합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자기네만 결혼한 것처럼 행복해 합니다.
밀월이 지나고, 얼마를 살고 나면, 서로 모르던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에 천사는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툭탁거리며 다툽니다. 신부는 친정집에 온다 간다 합니다. 그러면서 세월이 지나 애를 낳습니다. 그렇게 되면 애들을 보아서라도 싸우고 싶어도 못 싸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면 정이 듭니다. 가만히 앉아서 쳐다보기만 해도 좋습니다. 사랑의 뿌리가 박히게 되고 터가 굳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흔들리는 사랑이 아닙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온전한 성도, 강건한 성도가 되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가 박혀야 합니다.
시편 1편의 말씀과 같이, 복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뿌리가 튼튼히 박혀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흔들리지 아니할 뿐더러,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합니다. 생명의 강이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박고 있을 때, 우리의 심령은 튼튼히 서 있는 나무와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믿음의 터가 굳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좋은 집을 짓는 데는, 기술 좋은 건축가가 필요하고, 질이 좋은 건축 자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견고한 기초입니다. 63 빌딩처럼 높은 집을 짓는 데는, 그 기초 공사를 얼마나 공들여 하는지 모릅니다. 암반이 나올 때까지 깊이 파고, 그 암반을 뚫어서, 거기서부터 집을 세워 간다고 합니다. 반석 위에 세운 집은 쉽게 무너지지 아니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반석이십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건축자 같아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부딪쳐와도 무너지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여러분의 심령의 나무가 뿌리를 튼튼히 박아 죄악의 바람이 태풍처럼 심하게 불어닥친다고 하여도,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믿음의 장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심령의 집이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세워져서 환난의 폭우가 쏟아지고 역경의 창수가 부딪쳐와도 무너지지 않고, 우뚝 서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세 번째 기도입니다. 18-1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주님의 사랑을 알고 믿으면 더욱더 잘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모르면 그 믿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남편이 아내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행복한 부부라 할 수 있습니까?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부모가 자식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좋은 부모와 자식 관계라 할 수 있습니까? 목사가 성도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성도가 목사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행복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까? 제자가 스승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스승이 제자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좋은 사제지간이라 할 수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이면서까지 여러분을 구원하신 그 큰 사랑을 아십니까? 여러분을 건강하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여러분의 병을 짊어지시고 채찍에 맞으신 사랑을 아십니까?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고 부요하신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신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을 축복된 삶을 살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저주를 속량하신 그 사랑을 아십니까? 여러분을 살리시려고 십자가를 지고 못 박혀 죽으신 그 사랑을 아십니까? 성령님이 지금도 여러분의 삶의 죄악을 탄식하시면서 여러분의 모든 삶을 거룩하게 인도하시는 그 사랑을 아십니까?
여러분! 주님의 사랑을 분명하게 아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받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이 시간 함께 소리 내어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진심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총이 더 풍성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의 마지막 마무리입니다. 20-2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간절히 소망한 것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나타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능력이며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 기독교 가정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지 못한 것을 가정해 보십시오. 얼마나 어둡고 황폐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4장에는 엘리 제사장 가문의 멸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했던 엘리 제사장, 그 가문의 멸망이 진행되는데, 그 과정이 너무 참혹합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두 아들이 전쟁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겼습니다. 두 아들의 죽음과 법궤에 대한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가 그 소식을 듣고, 죽어가면서 아이를 출산하는데, “이가봇”이라고 아이의 이름을 지어줍니다. ‘이가봇’이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린 가문의 멸망은 너무나 참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떠나버리기 전에 가던 길을 돌이킬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이 아닙니까? 따라서 그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없는 개인, 가정, 교회의 모습을 조금만 깊이 살펴보십시오. 인간적인 방법과 어둠의 연속이며 감격과 기쁨, 은혜와 평강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과 영광을 소유하셨습니까? 우리들이 가져야 할 것은 세상의 부귀 영화, 세상적인 능력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하고,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한믿음 교회 안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항상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자녀들의 삶 속에, 특별히 새벽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의 삶 속에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가득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 설교와 예화나라 3
글쓴이 : 희&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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