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신령한 연합이 최고입니다.(시 133:01~03)

하나님아들 2016. 4. 24. 16:07

오늘 말씀의 표제를 보면 다윗의 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133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시를 지은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이기고 난 후부터 사울 왕이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 함으로 10여년의 세월을 도망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버리심으로 인해 길보아산에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은 블레셋과의 치열한 전쟁을 하다 죽음을 당하였습니다(삼상 31:06). 시기심에 사로잡힌 사울 왕이 그만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입니다. 다윗이 드디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기회가 왔습니다만 사울 왕의 신하들과 군대장관 아브넬은 다윗이 아닌 사울 왕의 아들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에서 왕으로 세웠습니다(삼하 02:08,09).

 

반면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유다 지파는 다윗을 헤브론에서 왕으로 세웠습니다(삼하02:04). 그런데 76개월이 지나면서 이스보셋이 세운 이스라엘은 완전 쇠퇴하였고, 다윗의 나라 유다는 점점 강성하여 갔습니다.

그러자 이스보셋을 섬기던 신하들이 2년 만에 이스보셋을 암살을 하였습니다. 이후 왕이 없는 군인 체제로 56개월 쯤 지내다 결국은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바칩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다윗은 이를 수락하고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다윗은 76개월 동안 반목과 갈등으로 나누어진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야 하는 과제를 안았습니다. 이에 다윗은 분열된 백성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 결단을 내립니다.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입니다. 11지파의 중심지는 북쪽의 마하나임이고, 유다 지파의 중심지는 남쪽의 헤브론입니다. 이 두 지역 중에 어느 하나를 수도로 정하면 상대편 사람들이 커다란 박탈감을 느낄 것을 염려하여 제 3지대인 예루살렘을 지목합니다.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기고 나니 마침내 서로를 향한 갈등과 미움이 사라지고 웃음과 화목이 왔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오늘 말씀의 제목을 신령한 연합과 동거가 최고입니다. 로 정했습니다. 함께 은혜 받는 귀한 시간되기를 축원합니다.

 

 

  1. 신령한 연합이 최고입니다.

 

0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01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형제의 연합을 놓고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라는 감탄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형제가 누구입니까? 문자적으로는 가족이지만 133편의 표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설명을 보아 같은 믿음을 가지고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형제를 말합니다.

이때 성전에서 만난 사람들, 제각기 다른 곳에서 왔을지라도 그들은 일주일 정도의 교제 속에서 찬양을 하며 말씀으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믿음의 형제들이 함께하는 모임을 최고의 기쁨으로 안 것입니다.


연합과 동거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비슷한 말 같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형제의 연합이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공통분모 하나로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형제의 동거란 무엇입니까? 부부처럼 특수한 관계에 사용되는 말로서 믿음 안에서 더욱 밀착되어 지내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께 제사 드리러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무리들이 연합하여 질서를 이루고, 성전에서 친밀한 교제 나눔을 최고의 일로 이해하였습니다.

물론 이때는 아직 화려한 성전이 지어진 때는 아닙니다. 아들 솔로몬의 시대에 가서 화려한 성전이 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영적인 시각으로 볼 때 지금 자신의 눈에 보이는 장막이 훗날 아름답게 지어질 화려한 성전으로 보이는 겁니다.

 

비록 지금은 외적으로 초라해 보일지라도(삼하 07:02) 성도들이 함께 모여 신령한 교제를 나누는 모습을 내다보니 신령한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겁니다우리는 세상을 사는 동안 사회에서의 육신적 모임들, 교회에서의 신령한 모임들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세상의 일들과 교회의 일들을 놓고 어느 것이 더 가치가 있는 일인지를 구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적인 일과 신령한 일을 잘 구분하지 못하여 믿음이 세속화 되거나 흔들리는 일을 만나지 않도록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여야 합니다.


힘들고, 바쁘고, 피곤하다 할지라도 그 모임이 성도의 모임이고, 예배의 모임이고, 신령한 모임이라면 무조건 사모하십시오. 복 중의 복이기 때문에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신령한 세계에 관한 일을 우선으로 삼자는 말입니다.

나는 교회생활에서 과연 연합과 동거가 얼마나 아름답게 이루어집니까? 나 때문에 지속적으로 신령한 모임이 잘 유지가 됩니까? 아니면 모였다 하면 나 때문에 다음 모임의 균열이 예측되고, 또 그 다음 모임이 되면 해체되는 일의 주인공은 아닙니까?

왜 행복한 모임이 잘 되지를 않는 것 같습니까?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성전 중심으로 모이지 않고 감투 때문에,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자기의 출세의 발판을 마련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잘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거 하나는 알고 지나갑시다. 연합이란 머리로 동의하고 감정적으로 하나임을 느끼는 차원이고, 동거는 실제로 하나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믿음의 형제가 서로 연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일이야말로 아름답고 귀한 일이요, 복중의 복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0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 신령한 연합은 신령한 복을 받습니다.

 

0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01절에서 형제가 연합하며 동거하는 신령한 모임을 제사장의 임직식에 사용하는 감람유에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국어문법으로는 이런 형태를 직유법이라고 합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은 어떤 기름을 말합니까? 기름의 물리적 성분은 감람유로서 주로 성전의 불을 밝히는데 사용합니다(24:02). 또한 왕이나, 제사장, 선지자를 임직할 때도 머리에 붓는 기름이기 때문에 거룩한 기름이라 합니다.

그러면 이 기름을 제사장의 임직식에 사용하였는데 구체적으로 제사장에게 어떤 식으로 부었는지를 제사장의 정결 몇 규례(30:23~25; 21:05,06)로 조명해 보겠습니다.

 

29:07 관유[灌油]를 가져다가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르고.

 

고대 애굽의 제사장들은 가까운 친척이 상()을 당할 경우 애통의 표현으로 머리를 삭발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방의 풍속이 이스라엘에 무분별하게 도입됨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믿음의 손상을 가져 오는 일이 빈번하였습니다.

그러자 율법은 이스라엘의 법도와 사회 규범(19:27) 및 제사장의 정결 규례(21:07)를 제정하여, 함부로 머리카락이나 수염 깎는 일을 하지 않는 기본 법규를 정하였습니다. 거기에 의하면 일반인들의 머리카락 깎는 법, 수염 깎는 법이 나옵니다(19~21).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의 종교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혹은 종교적 혼합주의를 여과 없이 시도해서 세속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입니다. 특별히 제사장은 머리카락이나 수염을 깎는 일을 금지함으로(21:05) 길게 늘어뜨리고 생활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은 평생토록 머리카락이나 수염을 깍지 않는 전통을 지키고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머리카락이나 수염에 칼을 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 기르다 보니 보기 흉한 부분도 있는데 그때는 가볍게 다듬는 정도만 허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머리카락이나 수염은 일반인들보다 더 길었으며, 그것을 자랑거리로 여겼습니다. 이런 제사장을 위하여 특별한 의식을 행할 때 감람유를 머리에 듬뿍 부어주는데 그러면 머리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까지 흐르고 옷깃을 적시게 됩니다


여기서 제사장의 수염을 아론의 수염이라고 합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님으로서 광야시절에 모세와 동행했던 이스라엘의 초대 대제사장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지가 몇 백 년이 된 인물인데도 다윗이 그의 이름을 등장시킵니다. 아론 대제사장이 살아서 왔다는 말입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여기서 아론은 대제사장이나, 제사장 전체를 집단적으로 상징하여 지칭하는 말입니다.

대제사장의 옷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흉배(胸背)가 있는데 그 위로 향기로운 기름이 흘러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모든 백성에게 흘러내린다는 의미입니다. 기름이 머리에서 옷깃까지 흘러내린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와 복이 한 곳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으로 가득히 전파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 면에서 성도의 연합과 동거로 인한 믿음의 향기가 가득히 흘러 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성도의 연합과 동거로 인해 나타나는 기름부음의 복이 머리에서 옷깃까지 흘러내림같이 우리교회에 가득히 흘러가기를 축복합니다. 이 기름부음의 복이 부모님에게서 자녀들과 후손들의 가정에 가득히 흘러가기를 축복합니다. 이 기름부음의 복이 여러분의 사업장이나 생업의 터전위에 가득히 흘러가기를 축복합니다.

 

 

  3. 신령한 연합을 이루는 일은 나의 몫입니다.

 

0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헐몬은 이스라엘 북쪽 레바논 산맥 최고봉(2,814m)으로서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3개국에 걸쳐 있는 산입니다. 산 아래의 눈이 조금 녹으면 이내 다시 눈이 오기 때문에 영원히 눈이 덮여 있어서 만년설이라 부릅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의 기후가 특이하여 6개월은 비가 오지 않는 건기이고, 6개월은 비가 오는 우기임을 자주 들어서 이스라엘은 그런 곳이구나 하고 짐작 하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나라의 초목들이 말라죽지 않고 잘 견디어 냅니다.

그 이유는 이 만년설에서 녹아내린 물과, 지중해의 습한 바람이 헐몬산의 찬 공기와 부딪혀 생긴 이슬이 함께 땅 속으로 흘러내려 갈릴리 호수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갈릴리 호수에서는 민물고기를 길러내고, 어부들의 생계 터전이 되고, 거기서 잡힌 고기들은 이스라엘 국민들의 식탁을 기름지게 합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흘러나온 물은 요단강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서 그 물에서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유일한 농업용수와 식수의 근원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이 생명의 젖줄 요단강 줄기는 이스라엘 국토의 중앙으로 흐르다가 마지막에는 사해바다로 들어갑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헐몬산에서 시작한 이슬의 양이 넘칠 만큼 풍성하여 이스라엘 전역에 내리게 되면 모든 생물들은 이슬을 머금고 자랍니다. 풀이 자랍니다. 곡식이 자랍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물을 제공하는 헐몬산을 오르거나 또는 바라보거나 생각만 해도 시원함을 느끼며 더위와 갈증을 잊을 수 있습니다.

만일 헐몬산이 없다면 이스라엘의 광야는 그야말로 생명이 보존될 수 없는 사막이 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헐몬산이야말로 이스라엘에는 생명의 젖줄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라는 말은 헐몬산의 눈이 녹아 내려서 온 땅을 적셔주는데 대한 시적인 표현입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거기가 어디입니까?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라고 하였으니 거기는 시온을 말합니다. 또한 133편의 표제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아닙니까? 성전에서 신령한 연합과 동거를 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 02,03절입니다.

그러므로 본편의 저자 다윗이 깨달은 거기는 바로 성전이요, 오늘 날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칭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연합과 동거를 이루어 주님을 섬기는 우리 김해삼일교회에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를 모든 복과 모든 생명의 중심지로 정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1: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5, 10년 정도 가는 그런 복이 아니라 영생에까지 이르는 복입니다. 영원토록 하나님의 눈이 항상 여러분의 기도제목 위에 있기를 원합니다. 가정위에 있기를 원합니다. 사업위에 있기를 원합니다. 직장위에 있기를 원합니다.

2016년은 여러분에게 크게 은혜가 되고 성전에서 넘치는 복을 누리는 간증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일을 이루는 일을 나에게 맡겨주셨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옛날에 흉악한 죄를 짓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가니까 임금님이 대신들에게 어떻게 벌을 주어야 백성들이 무서워 죄를 덜 짓게 될 것인지 연구하라고 명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안이 나왔는데 그 중에 제일 훌륭한 결정이 나왔습니다.

죄인을 사람이 없는 곳에 보내서 혼자 살다가 죽게 하라. 그래서 생긴 제도가 귀양살이입니다. 사람에게 사람을 만나게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죄를 지으면 교도소에 가야 합니다. 일반 사람과는 못 만나도록 격리되어 살아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공범자나 중죄인은 독방에 가둡니다. 연합과 동거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도소에서는 고독, 소외 이것이 제일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특별히 사랑할 가치가 있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으로 사랑해 주십니다. 우리도 성도를 무조건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에 있는 성도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대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에 빚진 자들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은 상대를,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니 나도 사랑하는 것은 조건적 사랑입니다. 조건적인 사랑은 조건이 달라지면 그 순간에 미움으로 바뀝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영적인 가족들임을 믿음으로 인정하고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는 맞지 않지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방법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삶에 사랑의 기적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옆에 분들에게 진심으로 인사합시다.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 이 사랑으로, 이 연합으로, 이 동거로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gsamil
글쓴이 : 김삼일과 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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