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십자가의 도(道)

하나님아들 2016. 4. 9. 18:53

 

십자가의 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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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절에 기록된 이 말씀은 당시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하나님 아들이라고 자처하던 예수가 그만 십자가에서 죽어버리자, 그것을 믿고 따르는 무리들을 향하여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손가락질 하던 것을 사도 바울이 빗대어 한 말이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그들은 예수께서 그렇게 죽어야 곧 인류에게 구원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세상에 아무리 학식이 풍부하고 지혜로운 자라도 결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 땅에 속한 미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보잘것없는 인생이 이 세상의 알량한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어불 성실이다.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서 그토록 열심히 소를 잡고 양을 잡아 날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를 드렸지만,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눈곱만큼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결코 죽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율법만이 자신들을 거룩하게 하는 법이라 여기며 죽자 사자 그 법만을 붙잡고 의롭게 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율법은 누구도 온전히 지키며 살자가 없다. 어차피 지키지 못할 법이라면 그 법으로 자신들이 저지른 죄라도 깨닫고 있었더라면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기가 훨씬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고 있었다면 헬라인들(그리스)은 지혜로운 자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보다 더 지혜로운 자가 나사렛에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를 찾아 왔으나 예수께서는 그런 자들의 말에 더 이상 답변을 하기를 꺼려했다. 그들은 땅에서 진리를 찾아보려고 애쓰는 자들이었지만, 예수님 자신이 진리인데 땅에 속한 자들과 무슨 말을 더 주고받으랴! 대화를 하면 할수록 그런 자들은 하늘의 뜻을 거역하고 오히려 자기주장만 더 합리화시키려 할 것이 너무도 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아주 그럴듯하게 “십자가의 도(道)”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당시 바울이 기록한 “십자가의 도”는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과 믿지 않던 헬라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어떻게 받아들였던가 하는 것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 현실에 맞게 바꿔서 전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영적으로 바꿔서 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율법 아래 사는 백성이 아니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영적인 백성들이다. 영적인 백성이란 외모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십자가의 도(道)” 역시 겉으로 나타나는 ‘도’를 전할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이루어져야할 ‘도(道)’를 전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마음속에서 이루어져야할 진정한 ‘십자가의 도’는 약2000년 전 십자가에서 죽었던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속을 지배하고 계셔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십자가의 도’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은 영적인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십자가의 도(道)”를 새기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외모에 ‘십자가의 도’를 새기려 발버둥치고 있다. 그러다보니 부패한 마음속에 노략질 하는 이리 때가 가득 숨어있음에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말의 지식이 풍부한 거짓목사나 품삯을 받고 일하는 삯꾼 목사에게 자기 영혼을 맡기고 마는 것이다. 이런 외모 지향주의자들은 예배당 건물 또한 크고 화려하게 꾸며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 그런 곳에 계시지 않는다. 우리가 영적인 백성들이라면 예수님 또한 당연히 우리 마음속에 계셔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육체에 율법을 주어 그것을 지키며 살게 했던 것은 결코 그 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라고 주신 법이 아니다. 그 법으로 자신을 살피고 그 법을 어겼을 경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장차 아들을 보내주실 때, 아들 앞으로 나아가 자신이 율법을 어긴 죄인임을 고백하고 아들을 믿어 자신의 죄를 사함 받으라고 주신법이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하려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 것은, 기독교인들이 그것으로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속을 살펴서 자신이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 수 없는 부패한 죄인임을 깨달아, 자신을 낮추고 살다가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영적인 아들을 기독교인들 앞에 보내주실 때, 기독교인들 또한 모두 아들 앞으로 나아가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자신의 죄를 사함 받고 모두 의롭게 되라고 주신 영적인 법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에게 부어주신 성령의 법 역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은 이제 겉으로만 “십자가의 도(道)”를 외칠 것이 자신의 마음속에 먼저 ‘십자가의 도’를 심어야 할 것이다. 십자가의 도는 결코 화려하지도 않고 웅장하지도 않다. 당시 대제사장들과 예수를 비교해 보라! 그 초라함이 어떻던가? 그래서 오늘날에도 외식하는 자들은 크고 화려한 예배당과 유명한 목사를 쫓는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십자가의 도”를 심자고 가르치는 자들은 너무나 보잘것없고 초라하여 많은 이들이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땅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를 남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고, 자신을 남들이 알아봐 주기를 원한다. 인간이 처음 지음 받았을 때에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그러나 아담이 마귀에게 지고 난 후로는 이런 현상이 생기고 말았다. 따라서 이런 현상은 마귀가 인간을 조종하고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의 도’를 우리 마음에 심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눈을 씻고 찾아봐도 목사나 신학자들이 ‘십자가의 도’를 우리 마음속에 심자고 가르치는 자는 없고 오직 외모로 성공하는 것만 가르치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란 미명하에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속에 먼저 “십자가의 도(道)”를 뿌리내리지 못하고서는 아무리 이 세상에서 출세를 하고 모든 부와 명예를 다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멸망의 길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하늘의 가장 보잘것 없는 것이 땅의 가장 힘센 것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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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기독교인들앞에 오시는 영적인 그리스도 원문보기 글쓴이 : 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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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예수님이 주인된 교회를 꿈꾸며
글쓴이 : 조슈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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