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30일 주일 오전 설교
본 문 / 막 16:1~20
제 목 / 부활을 확신하는 사람이 제자이다.
할렐루야! 오늘은 부활을 확신하는 사람이 제자이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면 그대로 자멸하고 맙니다.
런던의 랍비인 휴고 그린 씨는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집단 수용소에서 겪었던 뼈아픈 고난의 체험담을 전후 독일의 [데르 모르겐]잡지에 이렇게 기고했습니다.
[그날은 1944년 몹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사실 집단 수용소에 달력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 감금되어 있었던 저의 아버지께서 저와 몇 친구 분들을 데리고 수용소 건물 한 구석으로 모이게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날이 유대인의 명절인 [하누카의 저녁]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우습게 생긴 진흙 주발을 내어 놓으시더니 수용소에서 좀처럼 구하기 힘든 귀한 버터기름을 녹여서 심지를 적셔 촛불을 대신하여 불을 켰습니다.
아버지가 송축 기원을 말씀하시기 전, 저는 아버지께 그 귀한 버터기름을 먹지 않고 낭비하는 데에 대하여 항의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가만히 보시더니 버터기름을 가지고 초를 만들어서 붙여 놓은 불빛을 보신 후에 [네가 알고 내가 알듯이 사람은 밥을 먹지 않고도 3주간을 살 수가 있어, 우리는 한때 물을 먹지 않고 3일 동안 살아 있었다. 그러나 너와 내가 알다시피 사람은 희망이 없이는 살 수가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그 어떤 절망적인 환경 가운데서도 희망을 찾아 몸부림칩니다. 사람은 가슴 속에 희망이 있으면, 어떠한 역경과 고난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에게 영원한 희망을 준 사건 입니다. 이 지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희망을 상실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 역사는 깊은 어둠의 수렁에 빠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신하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부활을 확신하는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1. 의심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본문 11절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진리입니다.
유교는 혼비백산(魂飛魄散) 이라고 하여 혼(魂)은 신(神)으로 화하여 하늘로 날아가고 백(魄)은 귀(鬼)로 화하여 땅으로 흩어진다고 합니다. 즉 내세관도 부활도 없습니다. 특히 공자는 마지막 임종 때 후생(後生)이 가외(可畏)라 하여 죽은 다음에 어디로 갈지 몰라 두렵다고 했습니다.
불교의 윤회도 부활과는 전혀 다릅니다. 유일하게 기독교만 부활을 믿는데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는 희대의 사기극이 됩니다. 그런데 제자들마저도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두 제자는 낙향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들과 함께 가면서 [당신들은 왜 그렇게 슬퍼합니까? 왜 그렇게 절망적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아니 여보시오, 오늘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 못 들었소? 예수님께서 사흘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 어떤 여자들은 말하기를 [천사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죽은 자가 어떻게 부활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같이 가던 분이 성경 말씀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시는데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분에게 여관에 함께 유숙할 것을 청해 같이 지내기로 했습니다. 저녁식사를 함께하는데 이 분이 음식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는데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보니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이란 것을 알자마자 예수님께서는 홀연히 사라지셨습니다. 이 두 제자는 엠마오로 가던 길을 멈추고,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해서 보니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 흥분하여 들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이 놀라 무서워하자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 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8,3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라지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는 제자 도마가 없었는데 나중에 들어와 이 이야기를 듣고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여드레 후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고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도마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 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있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20: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 하는 제자들은 하나같이 낙심하고 좌절하고 마음이 굳어있습니다. 그래서 말씀도 부활의 사실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실제사건입니다.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부활이 진정으로 내 마음에 믿어지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또 어떻게 부활을 확신하는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2.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합니다.
본문 9절입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우리는 흔히 교회에 오래 다니면 믿음이 좋은 줄 압니다. 그러나 이것이 착각일 수 있습니다. 지식만 있고 믿음은 없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체험이 있어야 믿음이 생기고, 체험이 있어야 믿음이 강해집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이태리에서는 연합군과 독일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절 아침이 되자 양측은 전쟁을 그치고 각각 부활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 미군 중에서 클로웰이라는 예배 인도자가 성경을 영어로 읽고 독일어로도 읽고 나서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부활주일 아침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우리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하고 기원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참 화해의 교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엠마오 도상'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는데,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램브란트(Harmensz van Rijn Rembrandt)라는 화가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그림을 잘 그려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부족한 것 없이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이 하루아침에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버린 것입니다. 램브란트는 붓을 내던지고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엠마오로, 엠마오로 내려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서 그린 것이 '야경(Night Watch)'이라는 그림이었습니다. 이 그림이 암스테르담 박물관에 전시되었는데, 많은 사람이 그 값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그림은 아내의 죽음을 통해 참 생명이 무엇인지를 체험하면서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값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서 그가 그린 그림은 바로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이었습니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무려 18종류의 번역 성서를 읽었습니다. 그 그림을 보면 대화하는 제자들의 모습이나 나무의 모습들에서 부활의 약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그림을 완성하고 그는 '나는 위대한 생명의 비밀을 깨닫고 이 그림을 그렸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행복했을 때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으나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인생의 허무함과 좌절감을 느끼는 절망의 길목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엠마오 도상의 그리스도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을 때 부활의 주님은 우리와 함께 걷고 있습니다.
레티 그랜트라는 여자는 소아마비로 전신이 마비되었습니다. 죽지 못해 살고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말하고 듣는 것뿐이었습니다. 자살하려 해도 어린 딸 때문에 죽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좌절 중에 살다가 자신이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발가락 한 개를 가지고 전화국에 전화를 해서 자신을 전화 교환수로 취직시켜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녀는 16년 동안을 전화 교환수로 일을 했습니다. 그녀는 딸을 대학에 보내고 마침내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은퇴하는 자리에서 그녀는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나의 하나님,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녀는 저주스런 삶 속에서도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엠마오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사람은 피곤하지 않습니다. 삶의 의미를 깨닫고 오늘도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현대인은 희망도 없이 좌절 가운데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으나 부활의 주님은 오늘도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주님을 기다리는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이 주님을 만나고 예루살렘으로 뛰어 올라가서 주님이 살아나셨다고 전하는 산 증인이 된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부활의 산 증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또 어떻게 부활을 확신하는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3. 부활의 소식을 전파해야 합니다.
본문 20절입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가장 쉽고 확실하게 배우려면 누군가를 가르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학교 다닐 때 영어성적이 불만이 많았습니다. 100점 만점에 80점을 넘긴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학원에서 강의를 하는데 수학교사로 가서는 영어를 5년 정도 가르치니까 그 당시에는 잘 가르치는 선생으로 소문도 났었습니다. 가르치다 보니까 다시 말해서 전하다 보니까 실력이 늘었습니다. 모르던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의 부활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부활이 알아지고 믿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설교 때 마다 전도하라니까 부담스럽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왜 전도해야 되는지. 그 이유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1. 주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막 16:15을 보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마 28:19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유언으로 남기신 가장 중요한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강조하신 것은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받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눅 15:7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중국 스촨성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었습니다. 우리나라 삼풍백화점이 만화처럼 무너졌었습니다. 그때 구조현장의 실황이 뉴스시간마다 중계되었습니다. 그 참혹한 붕괴 현장 속에서 인명구조가 될 때마다 사람들은 마치 자기의 가족인양, 자기 일처럼 환호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바로 생명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이 세상에 보내신 119 인명구조대원입니다.
2. 죄인이 사는 길은 오직 예수 믿는 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모르고 지옥으로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기만 하면 예수 믿고 구원받을 사람이 안타깝게도 복음을 듣지 못해서 믿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약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소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복음은 죄인을 살리는 명약입니다.
왕하 6:24 이하를 보면, 아람왕 벤하닷이 큰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포위했습니다. 결국 사마리아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아이들을 삶아먹는 일까지 생길 정도로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사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람군대로 하여금 병거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셔서 그들이 지레 겁을 먹고 자신들의 목숨을 위해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이때 성문 어귀에 있던 네 명의 나병환자가 굶어 죽으나 맞아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아람 진영으로 몰려갔습니다. 아람군인들이 다 도망가고 아무도 없는 적진에서 실컷 먹고 금은보화와 의복까지 챙겨 나왔습니다. 이윽고 배불리 먹고 정신을 차린 이들은 지금 사마리아 성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 동족들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하고 달려가서 성문지기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습니다(왕하 7:9). 이들의 정직한 보고로 인해 굶어 죽어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듣지 못해 죽어가고 많은 사람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3. 이 나라가 잘되는 길은 예수 믿는 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가 잘되려면 모두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래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길을 막으시고 유럽의 마게도니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유명한 역사학자 토인비 교수는 “바울이 유럽으로 갈 때에 아시아의 복을 다 유럽으로 옮겼다.”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따라갑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회 의사당의 제일 높은 둥근 천장 안에는 방문객들이 좀처럼 들어가 볼 수 없는 밀실이 있습니다. 이곳은 상, 하원 의원들을 위한 개인 기도실입니다. 미국을 건국하던 때에 헌법을 제정하기 위한 헌법제정회의가 필라델피아에서 열렸습니다.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였으나 서로가 분열하여 어느 한 가지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로 해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벤쟈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나서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잠간만 기다리십시오. 이 나라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기초위에 탄생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기도의 응답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 다 같이 무릎을 굻어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드립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이 어려운 궁지와 문제에 해답을 주시기를 기다립시다." 이 말에 모두가 동의하여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 드렸습니다. 기도 후 모두의 마음이 열려 미합중국 헌법을 제정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로 세운 헌법이었기에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우선적으로 보장하였습니다. 기도로 세운 헌법이었기에 그 헌법의 기반 위에 나라가 번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 전통을 이어 지금도 미국의 국회 의사당 안에 기도실이 마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기도가 이어지는 한 미국은 번영을 이루어나갈 것이고 기도가 그쳐지는 때에 미국은 힘을 잃어 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점점 더 악해지고 음란해지고 있습니다.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로도 교육으로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백성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고 진정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열심히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 12:3을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직장이든 동네이든 아니면 집에서 열심히 전도하여 주의 전을 채워 가십시다. 천국에서 잔치가 난리가 나도록 해서 하늘의 보물창고가 터져 우리에게 쏟아지도록 만듭시다. 축복의 벼락을 맞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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