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사람과 모든 생물, 곧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생물은 모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들이다. 그렇지만 사람과 모든 생물이 동격의 피조물은 아니다. 그 차이는 인격이 있고 없고다. 지성(知性)과 감성(感性)과 의지(意志)를 가진 것이 인격이다. 하나님의 피조물들 중에 이 세 가지 품격을 모두 가진 피조물은 오직 사람뿐이기에 모든 생물과 차별되는 것이다. 인격은 달리 말하면 사람의 됨됨이, 즉 하나님의 형상(靈)이다.
오늘날 이 세상은 온갖 혼란과 무질서가 난무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질서를 따라 창조하셨다. 그런 세상이 왜 온갖 혼란과 무질서가 난무하게 된 것일까? 사람들이 됨됨이를 잃어버린 까닭이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첫 명령을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사람의 범죄가 사람의 됨됨이를 잃어버리게 했고, 그것이 더욱 심화되어 오늘과 같은 세상이 되고 말았다.
잃어버린 사람의 됨됨이를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가 회복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할까?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 즉 지정의의 품격을 두루 갖추신 완전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잃어버린 사람의 됨됨이를 회복시키시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가 회복되어야 온갖 혼란과 무질서로 난무한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을 품을 것인가?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셨다. 온유와 겸손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이다. 온유란 '온화하고 부드러움'이요,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마음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어 온화하고 부드러움으로 대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런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첫째, 기도자 세리와 같아야 한다. 어느날 예수님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 두 사람에 대해 말씀하셨다.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다른 하나는 세리였다. 바리새인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말로 오만방자한 기도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세리는 달랐다.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탄원했다.
예수님은 이 둘 중에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랬다. 세리는 하나님 앞에서 온유하고 겸손한 기도의 사람이었다. 자기가 죄인임을 인식하고 눈물로 회개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려면 이와 같아야 한다. 스스로 죄인임을 인식하고 온유와 겸손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둘째,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해야 한다. 어느날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아이에게는 사사로운 욕심이나 불순한 생각이 없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려는 자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순수하게 믿고 순종한다. 순수한 믿음과 순종이야 말로 예수님의 마음인 온유와 겸손이기 때문이다.
셋째, 자기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이스라엘 왕국의 세 번째 왕 솔로몬은 자기 한계를 아는 사람이었다. 본디 그는 선왕 다윗의 뒤를 이어 왕권을 계승할 자가 아니었다. 그는 다윗의 장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다윗왕의 후계자가 되어 왕권을 계승했다. 그런 솔로몬은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여 왕으로 즉위하면서 바로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받으셨다.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가?'고 물으셨다. 솔로몬은 자기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했다. 이런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저가 구한 지혜는 물론, 구하지 않은 부귀공명도 함께 주셨다. 그렇다. 이렇게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온유하고 겸손한 태도다. 이런 태도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려는 자의 자세이다.
넷째, 하나님의 의를 깨달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당시 최고의 석학에게 배운 엘리뜨였다.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이었고, 태어날 때부터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왜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이라며, 주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로 말미암았다고 증거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증거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가노라'고 고백한다. 그렇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놀랍게 변한 것이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온유와 겸손의 사람이 되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의를 깨달은 때문이었다.
다섯째, 하나님께 항상 '예'의 삶을 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권면한다.
그렇다. '예'의 삶은 곧 '아멘'의 삶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그 말씀에 토를 달거나 조건을 달지 말고, 오직 '예'로써 순종하는 삶은 예수님의 마음인 온유와 겸손을 가지려는 자의 삶이다.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일지라도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순종할 수 있어야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이야기하려 한다. 예수님의 마음인 온유와 겸손은 우리가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바르게 이해해야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종이되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주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종이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섬기러 왔다'고 하시지 않으셨던가! 주님이시요, 선생이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섬김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하신 예수님은 '너희도 이같이 하라'고 당부하지 않으셨던가! 그 예수님은 더 나아가 당신의 육체를 우리 모두의 죄값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 사랑하시기에 가능한 섬김의 극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여전히 온갖 혼란과 무질서가 난무하고 있다. 이런 세상을 언제까지 방치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면서 결코 방치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세상을 변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가 회복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과연 우리가 그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혹여 우리도 세상의 온갖 혼란과 무질서의 탁류에 동화된 채 무기력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녕 세류를 따라 이 세상이 어떻게 되든 무관심하게 방치한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먼저 사람의 됨됨이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이다. 세상이 제아무리 온갖 혼란과 무질서가 난무할지라도,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변하게 하여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를 회복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가르치신 이유가 아닐까?
진실로 세상에서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는 회복되는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어떻게? 비결은 오직 하나다.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한다.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그리하면 변할 수 있다. 이런 변화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가 회복되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 사람의 됨됨이를 회복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 원하는가? 그렇지만 어찌 우리 혼자의 힘으로 가능할 수 있으랴.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다른 보혜사 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라. 응답하심은 간구하는 자에게 임한다.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참으로 온갖 혼란과 무질서로 난무한 이 세상의 변화를 원하는가?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됨됨이 곧 하나님의 형상(靈)을 회복하는 것이요,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회복한 자를 통해 세상을 변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라.
사랑하는 이들이여. 지금 곧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엎드려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지 않으려는가? 망설이가나 주저하지 말고, 지금 당장에 엎드리지 않으려는가? 간절한 소원을 두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으려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기도를 기쁘게 응답하실 것이다. 그리하면 세상은 변하고 하나님의 질서는 회복될 수 있으리라.
2013년 5월 27일 (월)
글 / 불꽃 石 一 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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