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의미
눅 24:36-43
인도의 타지마할-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물인데, 인도 자무나(Jamuna) 강가에 자리잡은 궁전 형식의 묘지로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이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여 22년 동안 건축한 것인데,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국립현충원) 내에 있는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묘입니다.
예수님 당시 장사를 지내던 돌무덤입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무덤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에게도 무덤이 있습니다. 4복음서에서 분명히 가르칩니다. 그중 마가복음 15장 46절을 보겠습니다.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예수님에게도 무덤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본래 예수님은 죽으실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 된 분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죽을 수도 없고 죽음을 모르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은 사람들이 묻히는 무덤이 예수님에게도 있게 되었습니까?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아서 다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서 죽은 사람들을 내버려두실 수가 없으셔서 다시 살릴 방도를 마련하셨습니다. 그 방도가 바로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죄를 속할 제물로 십자가에 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인 사람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고난과 멸시 가운데 태어나시어, 고난과 멸시 가운데 살다가, 고난과 멸시 가운데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과 멸시를 예수님이 다 담당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대신한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처럼 우리의 죄를 위한 죽음 때문에 예수님의 무덤이 생긴 것입니다. 이 땅에 예수님의 무덤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한 죽음을 죽으셨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어 그대로 무덤에 계신 것이 아니라 무덤에서 살아 나셔서 예수님의 무덤이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6절에서 말씀합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사실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에 여러 차례 십자가에 죽었다가 3일 후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대로 살아 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이 빈 무덤이 된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지 않고 예수님이 죽은 시체로 계속 무덤 안에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듯이 우리도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기에 얼마나 기쁘고 다행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부활의 소망, 천국의 소망을 갖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40일 동안 계시면서 사람들에게 11번 나타나셨고, 이 때 남기신 네 마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네 마디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부활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의심을 이기는 부활입니다.
부활의 아침,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등 몇몇의 여인들이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무덤에 이르자 무덤의 돌문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제자들에게 달려가 ‘누군가가 시신을 치웠다.’고 말했습니다. 여인들의 말을 들은 제자들은 믿어지지 않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의 무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좀 더 젊었을 요한이 먼저 도착했지만 무덤에 들어가지 않고 들여다보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도착한 베드로가 무덤에 들어가자 요한도 따라 들어갔고 정말 주님의 시신은 없고 수의가 개켜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의미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 20: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부활이 없다’ 하거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성경에 대해 무지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많이 증거하고 있고, 신약성경에도 부활에 대해 204회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성경을 잘 알지 못한 탓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도 믿고,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사실도 믿고,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심도 믿고, 예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는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곧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이 낫는다는 사실도 믿고, 각종 능력 행하는 믿음이 있으며, 방언을 말하는 자라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20:27,29)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지구상에서 벌어진 가장 처참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유대인들의 시기와 두려움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분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약속된 부활이며, 도마를 비롯한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온전케 하는 부활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어지는 것은 구원받았다는 증거요,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믿음의 선물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2.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서의 부활입니다.
부활을 믿는 성도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있는데 ‘부활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부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부활한다면 문제는 장례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궁금해 합니다. 장사지낼 때 시신을 그대로 땅 속에 매장을 해야 하는가? 화장을 해도 좋은가? 만약 화장해서 뼈를 갈아 가루를 산이나 강에 뿌리면 어떻게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궁금해 합니다.
그리고 어린 아기 때 죽었으면 천국에서도 아기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늙어 병들고 노쇠한 모습으로 죽으면 천국에서도 늙고 노쇠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 우리들이 죽었다가 부활할 때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바위 무덤에 장사지내졌다가 안식 후 첫날 바로 오늘 주일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자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이 나타난 줄 알고 놀라고 무서워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눅 24:38-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그 때서야 제자들이 아주 기뻐하며 놀랐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하시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렸더니 예수님이 받으시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잡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문을 닫았는데도 제자들이 모인 곳으로 들어오신 것을 통해서 부활의 몸은 육신처럼 장애물에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나 장애물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면 영혼만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몸 그대로 부활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죽기 전의 몸과 부활한 후의 몸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죽기 전의 몸은 약하고 썩는 육의 몸이지만, 부활 후의 몸은 강하고 썩지 않으며 영광스러운 신령한 몸입니다. 또 죽기 전의 육신은 악의 세력에 지배를 받기도 하고 질병과 고통을 당하지만, 부활한 몸은 질병과 고통과 악의 세력에서부터 자유로운 신령한 몸입니다.
그러면 죽어 오래되면 살과 뼈가 다 썩어 흔적도 없는데, 그리고 화장하여 뼈를 가루내어 뿌리면 흔적도 없는데 어떻게 부활할까요? 이에 대한 것은 구약성경을 통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 37장에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래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죽은 사람의 뼈들이었습니다. 온 산천에 흩어져있는 뼈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시자 흩어져있던 뼈들이 자신의 뼈를 찾아가 붙고, 뼈가 붙으니 그 위에 근육이 생겼습니다. 근육 위에는 살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그 위에 피부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생기야 들어가라”고 하시니 모두 살아났습니다.
여러분, 신체의 장애를 갖고 있어도 걱정할 것 없고, 몸매나 외모가 맘에 안 들어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들은 가장 완전하고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3. 사랑을 온전히 하는 부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약속하신대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실망하고 옛 어부의 생활로 돌아가 버린 베드로를 다시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반복된 질문은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갈릴리 바닷가에서의 부활하신 주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통해 주님의 한 없이 크고 놀라운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에게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시켜 주셨고, 그리고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며 사명을 다시 위임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한없이 부족함을 느낄 따름입니다.
믿음은 없고 의지와 욕심만 살아 꿈틀거립니다.
사랑은 찾아 볼 수 없고 편가름과 비판과 정죄만 가득합니다.
용서와 화해는 애초부터 자리하지 않은 듯 그 흔적조차 없고, 불타는 분노와 엄청난 시기와 질투의 쓴 뿌리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의 말씀(약속)을 믿지 못하고 고기잡이 하는 옛 생활로 돌아가 버린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께서 사랑을 확인하시고 사명을 새롭게 위임하셨기에 우리에게도 큰 힘이 되고 용기를 찾게 됩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이해서 주님을 향한 사랑과 사명을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장에서 마지막으로 주신 명령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마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막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눅 24: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생명의 복음, 구원에 이르게 되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부활하신 주님이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나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통해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은 죽어가는 영혼의 구원에 있습니다.
요즘 우리들 중에는 ‘전도’의 ‘전’자만 나오면 부담을 갖거나, ‘나와는 상관 없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전도는 우리가 해야 하고, 또한 누구나 해야 할 사명입니다.
그러면 전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시대에 전도 방법은 다양합니다. 이 시간에 전도의 이론에 대해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만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전도는 성경지식이 많이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신앙경력이 짧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도는 이웃을 잘 섬기는 사람이면 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음식이나 경험이나 조언을 나누는데서 시작 됩니다.
전도는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도는 기도제목을 알아 기도로 도우면 됩니다.
전도는 나의 문제는 이렇게 해결했다고 간증하면 됩니다.
전도는 마음속 상처를 싸매어 줄 때 됩니다.
전도는 관계성이 잘 이루어지면 됩니다.
전도는 정신적 영적 필요를 채워주면 됩니다.
전도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약속하신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장차 입게 될 부활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의심을 이기게 하기 위함이요,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고 사랑을 확인하며, 부활의 증인이 되는 사명을 새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지 말고,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더욱 사랑하며, 주님의 분부를 따라 힘써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10. 4. 4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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