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나누는 친밀함
The Intimacy with Christ
존 맥아더(John MacArthur)
서론
사도 바울에게 있어,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류의 신비한 관계가 아니다. 바울은 성경이 말씀하지 않는 신비한 그리스도의 지식을 구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세미하게 들려주시는 개인적 메시지를 바라지도 않았다.
사실, 사도 바울이 간구했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결코 신비하지 않았다. 그가 알고자 했던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갖는 능력, 그의 고난에 동참함, 그의 죽으심을 본받음 같은 것이었다(빌립보서 3:10).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와 나누는 친밀함을 성경이 말씀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포함한다는 의미로 신비하고 느낌을 중시하는 신적 교제의 고상한 수준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주 큰 오산이다. 그와 같은 생각이 바로 영지주의 이단의 핵심사상이다. 그것은 진정한 기독교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나누는 친밀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말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어떻게 추구할 수 있는가? 성경은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와 나누는 친밀함을 최소한 다섯 가지 정도를 말하고 있다.
1) 믿음을 통한 친밀함
2) 진정한 예배를 통한 친밀함
3) 기도를 통한 친밀함
4) 순종을 통한 친밀함
5) 고난을 통한 친밀함
1) 믿음을 통한 친밀함(The Intimacy of Faith)
빌립보서 3장 10절의 사도 바울이 한 말을 지지하는 부분들을 주목해 보라. 그는 이미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삶이 어떠한지를 몇몇 구절에서 설명하고 있다(4절-6절). 바울은 바리새파 유대인인 자신이 누렸던 모든 영적인 유익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그 다음엔 그리스도를 위해 그런 것들을 전부 포기했다고 증언한다.
"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은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7절-8절)"
과거 바리새인 바울은 율법적인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 그러나, 그는 그 율법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리새인 바울은 마치 더러운 옷 같은 자신이 쌓은 의의 공로를 내버렸다(이사야 64:6). 물론 선한 행위를 그만둔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믿게 된 것이다. 대신 그는 그리스도를 향한 전폭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었으며, 자신의 불완전한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로움을 옷입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신칭의 교리이다. 성경은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그 죄값을 모두 지불하셨다고 가르친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받아 그 충만한 공로를 받는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우리는 결코 온전하게 거룩하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없다.
또한,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옷입는다는 의미의 이신칭의는 신자와 주님 사이에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친밀한 관계를 수립한다.
이것은 신성불가침적 연합이다. 이런 연유로 사도 바울은 종종 신자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 묘사하곤 했다.
즉, 오직 믿음을 밑바탕으로 그리스도와 진정한 친밀함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믿음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기는 불가능한 일이다(히브리서 1:1). 사도 베드로의 지점처럼, 주를 볼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다(베드로전서 1:8).
2) 진정한 예배를 통한 친밀함(The Intimacy of True Worship)
호세아 6장 6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위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배를 제사나, 번제나 다른 의식들 같이 어떤 기계적인 의례들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 진짜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에 기반을 두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원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내포한다. 반대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하나님 당신의 모습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표현해 보자면, 어떤 의식이나 예식이 아닌 건전한 교리는 우리의 예배가 열납될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리트머스지라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과 친밀함을 나누고 싶다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사고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밝혀주시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하나님에 대해 신비적인 지식을 구하지 말아야 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에 대해 명료하게 할 수 있는 모든 정보는 성경에서 설명한 것들이다. 바른 방법으로 진정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이들은 주의 말씀에 철저히 익수해져야 한다.
3) 기도를 통한 친밀함(The Intimacy of Prayer)
그리스도께서 직접 우리에게 개인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친밀함을 나누라고 가르치셨다. 기도는 예배자가 하나님께 그 마음을 쏟아놓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예수께서는 친히 개인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은밀하게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복음 6:6)."
주님은 실례로 바리새인들을 드셨는데, 그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공적으로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예수께서는 공적인 기도를 할 필요없다고 가르치시지 않으셨다. 성경은 우리에게 함께 모여 기도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친밀함을 나누기 원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열심히 자주 개인기도해야 한다. 우리 모든 기도를 하나님께서 모두 들어주신다. 우리가 주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형용못할 특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그 보좌 앞에서 더욱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우리의 속 깊은 생각, 두려움, 바람, 사랑의 표현 등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을 것이다.
4) 순종을 통해 나누는 친밀함(The Intimacy of Obedience)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다 행하면 너희는 내 친구다(요한복음 15:14)."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진정한 영적 친밀함을 위해 하나님의 절대적 요구에 순종하셨다.
그 누구도 순종하지 않고서 그리스도와 친밀함을 나누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주님을 친구로 잘 안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는 만유의 주이시므로(사도행전 10:36), 우리에게 충성을 요구할 권한이 있으시다.
사실, 세상과 벗하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친구가 아닌 원수들이다(야고보서 4:4). 왜냐하면 하나님의 신적 권위 앞에서 무조건적 복종을 하지 않고 하나님과 친밀함을 가질 수는 절대 없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이것은 그리스도와 나누는 친밀함의 문제를 신비주의 영역에서 끄집어내어 정확하고 실제적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5) 고난을 통한 친밀함(The Intimacy of Suffering)
빌립보서 3장 10절로 되돌아와서, 우리는 다시 한번 사도 바울이 구했던 그리스도와 나누는 친밀감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이 갖는 능력을 나누고자 했던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의 죽으심을 본받으려 하는가?
바울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고난 속에서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게다가, 하나님의 강함은 우리의 약함 중에서 온전해지는 것이다(9절).
하나님께서는 인내하라 요구하시는 자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신다. 다음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말씀으로, 예수께서 산상수훈의 팔복 중 하신 말씀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마태복음 5:10-12)."
이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자들만이 알 수 있는 복이다. 주님과 진정으로 친밀함을 나누고자 하는 이들은 기꺼이 주님께서 인내하신 그 고난을 똑같이 감내해야 한다.
완전한 그림을 얻기 위하여 이 모든 것을 합하라. -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와 나누는 친밀함 속에는 고난, 순종, 열심있는 기도,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 믿음의 삶 등이 들어있다.
위에 열거한 사항들은 2등급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촉진적 기술이 아님을 주의하라. 그 사항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기초적인 문제들이다. 그리스도인와 나누는 친밀함의 진리를 강조하는 것은 어떤 신비한 비밀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이 갖는 전체적인 요점들이다. 진실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주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히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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