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19장 영적 생명의 네 단계

하나님아들 2014. 4. 4. 15:06

 

 

 

 

 

 

 

간단히 말해서 믿는 이들과 일꾼들의 영적 생명에는 네 단계가 있다.

1. 복음의 단계

이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거듭남 곧 스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구원을 전파하여 사람들을 죄의 형벌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그리스도께로 이끈다. 이 단계에서의 주된 목적은 그리스도를 위해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복음을 충성스럽게 전파하는 것이다.

 

 

2. 부흥의 단계

이 단계에서 믿는 이는 성령의 충만을 체험한다. 또한 그는 하나님을 알고 좇으며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께서 일하시기를 앙망하고 그분과 동역하는 것을 배운다. 또 다른 사람들을 성령 충만의 체험 안으로 이끄는 데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

 

 

3. 십자가의 단계

이 단계에 있는 믿는 이는 체험에서 자기가 로마서 6장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 3:10) 주님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배운다. 이들은 성령께 이끌려 십자가의 길을 가고 사람들을 체험안으로 로마서 6장과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을 인식하도록 이끈다.

 

 

4. 영적 전쟁의 단계

이 단계에서 믿는 이는 자기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으며 '정사와 권세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안다. 그가 하는 일은 흑암의 권세를 침공하고 정복하며 영적인 분별력을 기르며 이로써 마귀의 일을 꿰뚫고 그리스도의 권위를 깊이 알며 원수의 능력을 넉넉히 이기는 것이다(눅 10:19).

 

 

 결론적으로 말해서 첫째는 구원의 단계 또는 새 생명의 단계이고, 둘째는 성령의 단계이며, 셋째는 죄를 이기는 단계이고, 넷째는 흑암의 권세를 이기는단계이다.

만일 믿는 이가 자신의 그리스도인 생활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앞으로 전진하려 한다면,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인도될 것이다.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으며',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다.' 결국은 원수의 모든 능력을 이길 수 있는 권위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꾼에게도 다음 네 단계의 일이 있다.

①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 ② 성령 충만을 얻도록 인도 ③ 십자가의 도를 전파

④ 마귀의 궤계와 일을 분별하고 보좌 위에 계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원수의 모든 능력을 이길 수 있는 권위를 얻는다.

 

 

귀용 여사의(Maeame Guyon)는 영적 생명의 각 단계에는 하나의 시작과 나타남과 결과가 있는데,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그 다음 단계로 인도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다음 단계에서 당신이 배우는 것은 다 같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지로 다시 배우는 공과는 더 깊은 것들이다. 예를 들어 첫 단계에서 당신이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믿는 것을 배운다면 그 다음 단계에서 다시 믿음을 사용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당신이 넷째 단계에서 배우는 확증된 믿음의 공과는 첫 단계와 다름없이 배우기가 어렵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첫 단계에서 어려웠던 공과들이 이제는 아주 단순하고 쉽다고 느껴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믿는 이들 중에 한 단계의 체험을 갖는 데 수 년을 거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새로운 단계로 들어갈 때마다 새롭고 만질 수 있는 축복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풍성한 체험들을 얻게 된다.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그 단계를 미기 '맛보도록' 당신을 위해 예비하신 것들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승천의 생명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것에 관한 새로운 계시를 얻는다면 그 기쁨과 영광은 아주 확실할 것이다. 그때 당신은 결코 그전 단계로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몇 주 혹은 몇개월 후에 소위 만져지던 축복이 사라져 버린다면 당신은 당신이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되찾으려고 분투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처할 때 당신은 확증된 믿음으로 싸워 당신이 얻은 위치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그때 소위 말하는 '터널'의 체험하게 된다. 즉

한 번의 부흥과 한 번의 시험을 거칠 때 당신은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겪은 후에 당신은 자신이 더 진보했음을 느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영적 생명의 결과에 이를 때 당신은 비로소 그 안에 머무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터널'의 체험 안에 당신으로 하여금 그분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을 제거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롬 5:2-5).

하나님께서 어떤 메시지를 당신에게 주시기 원하고 또 실제로 당신에게 그것을 주셨다면 당신이 그것을 잃어버린다해도 그분은 반드시 당신을 붙잡으실 것이고 또한 당신에게 주신 말씀이 당신을 붙잡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명령과 능력이 있어서 당신을 견고하게 붙잡을 수 있으며 당신을 그분께 가까이 하게 할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당신의 동역을 원하신다. 그러므로 당신은 마땅히 확증된 믿음으로써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실 때 그 능력은 그 말씀 안에 들어있다. 만일 주님께서 당신에게, "원수의 능력을 이길 권위를 주노라"라는 말씀을 주셨다면 당신은 마땅히 주님과 동역하여 그분께 "제가 이 말씀을 취하고 받겠습니다. 주여, 내게는 이러한 말씀을 붙잡을 힘이 없으니 이 말씀으로 나를 붙잡아 주소서"라고 답해야 한다.

그렇다. 만일 당신이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린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에게서 멀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확증된 믿음으로 전진한다면 결국 당신은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터널의 역사로 말미암아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빛을 주셨다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보게 될 것이고 당신이 이미 잃어버렸다고 여긴 것이 이미 당신의 생명의 일부가 되었고 당신의 영적 생명 안에서 깊이 조성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만일 믿는 이가 모든 단계에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과 동행하고 전진함으로 공중의 권세 잡은 자와 싸워서 이기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면 그는 사람들이 마땅히 들어가야 할 단계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영적 생명의 완전한 결과에 이르지 않고 다만 어느 단계에 도달했다면 같은 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의 상태와 체험을 말해 줄 수 있다. 최종 완결에 도달한 후에야 믿는 이는 본인이 지나온 단계들에 있는 사람들을 자유롭고 쉽게 다룰 수 있게 된다. 모든 단계마다 하나의 과도기가 있다. 이 과도기에서 당신이 본 것만을 사람들에게 알려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당신은 주님의 일을 오로지 당신과 같은 단계에 있는 사람들 안에서 할 수 있다. 당신은 그들에게 당신이 현재 체험한 것을 알려 줄 수 있을 뿐이다. 당신은 오직 당신이 그 단계에서 체험한 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당신은 그들을 섬길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전한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로 말미암아 근심할 것 없다. 왜냐하면 당신의 메시지가 너무 높거나 너무 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당신이 다른 메시지를 전할 수 없고 그 메시지를 전해야 하므로 전했겠지만 당신의 도음을 받은 사람이 적을 수도 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을 도울 방법이 없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이 모든 단계를 다 통과한 후에야 당신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울 수 있음을 기억하라. 주님의 일꾼은 마땅히 바울이나 다른 사로들과 같아야 한다. 영적 생명에 있어서는 완전히 성숙한 사람만이 빛과 진리로 모든 성도들을 도울 수 있다.

 

 

 

 

만일 믿는 이가 여러 단계를 통과했다면(수년의 시간이 필요함) 그는 흑암의 권세를 이길 능력을 가진 최고봉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믿는 이는 이미 의의 말씀(히 5:14)을 체험하여 충만한 공급과 지식과 자유를 가진 사도들의 단게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슴의 청지기가 된 것이다. 또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 단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다, 당신이 이미 성숙하였다면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혼에 전달하는 선한 일을 하기 위해 이미 성경의 진리로 무장되고 그것으로 완전히 구비된 사람일 것이다. 이것이 참된 예비요, 성숙 중의 성숙이다. 이러한 사람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주님의 일을 하기에 합당한 사람이다.

또 한 가지 영적 생명의 모든 단계와 체험의 모든 단계에서 그리스도인이 깨달아야 할 것은, 마땅히 골고다가 흑암의 권세를 이긴다는 것이다.

 

(1) 전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사람의 혼을 붙잡고 있는 마귀를 결박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선포된 흑암의 권세를 이긴 승리에 관한 진리는 전도자가 마땅히 구비해야 할 무기이고 장비의 일부이다.

(2) 성령의 침례를 받은 자는 흑암의 권세를 이긴 승리를 알아야만무엇이 거짓된 것인지를 구분하고 그것을 거절할 수 있다.

(3) 무릇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사람은 속이는 악한 영의 궤계를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속이는 영의 단계적인 저지는 당신이 십자가의 완전한 지식을 얻지 못하게 하고 또한 최선을 다하여 자기의 일을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섞어 놓기 때문이다.

흑암의 권세에 대한 진리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영적 생명의 각 단계와 수준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오늘날 한 가지 긴급하고 중요한 일은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앞선 이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다. 이로써 교회에서 앞선 이들은 영적인 느낌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단단한 음식'을 소화하여 강건한 이들을 위해 예비해야 하며, 영적 음식을 '젖'과 같이 하여 어린 믿는 이들을 양육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도울 때 만일 믿는 이가 기도로 싸우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면 당신은 그에게 십자가를 알고 있는지, 로마서 6장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의미알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이것을 모른다면 당신은 그에게 성령의 침례를 아느냐고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체험하는데 필요한 능력은 오직 성령만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성령의 침례를 아직 모른다면 다시 한 걸음 물러나서 그에게 그리스도의 새생명을 얻었느냐고 물어야 한다. 만일 그가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주이심을 모르고 그가 위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을 모른다면 어찌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주의 일을 하는 우리들은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물러서면서 어느 단계가 그의 필요를 채우는지 알아야 한다. 또한 그가 자신이 속해 있는 단계를 알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성령의 참레와 십자가의 길을 아는 믿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탄과 싸우는 법을 아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성령의 침례에 대한 체험적인 지식이다. 많은 믿는 이들이 아직 이것을 모르고 십자가의 두 방면을 모르기 때문에 싸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영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해야 하는 필요성을 깨닫지 못한다. 흑암의 권세를 이겨야 한다는 전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마땅히 십자가와 믿는 이의 관계를 알도록 하나님의 자녀들을 인도해 주어야 한다. 에베소서 6장의 싸움은 영적 전쟁이다. 그러므로 먼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만이 믿는 이가 영적 세계에 들어갈 수 있고 영적 전쟁을 할 수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영접하는 것에 대해 많은 근심과 답답함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성령을 영접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성령을 받은 후에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외적인 표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그들은 이에 대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성경은 우리가 밖의 느낌으로 받았다고 말하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았다고 말한다(갈 3:2-3). 그러나 우리는 성령께서 자유롭게 일하시도록 모든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온전히 순종한 후에도 계속적으로 순종이 필요하다. 우리는 성령께서 믿는 이들 위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모든 장애믈을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한 걸음 씩 그분의 지시를 받게 될 것이다.

어느 때라야 우리가 흑암의 권세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겠는가? 온 땅에 있는 많은 믿는 이들은 전일하고도 분병하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받드시 구원을 받는다고 전파한다. 또 다른 많은 믿는 이들은 참으로 성령의 침례를 알고 '부흥의 단계'에 속해 있다. 즉 성령을 알고 성령과 동역하는 단계에 있다. 또 한 무리 - 인수가 많지 않음 - 가 있는데 그들은 성령을 알고 그 능력을 의지해 골고다의 어린양을 따르기 위해 힘차게 전진하며 십자가의 길 가운데 행하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마지막 무리는 대ㅐ 저지를 당하는데 이것은 그들 앞에 그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이 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어린양의 영 안에서 십자가의 길의 종착지에 이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때 흑암의 권세는 홍수처럼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범람하여 여러모로 하나님의 일을 저지하고 지체되게 할 것이다. 흑암의 권세는 십자가의 교통(못 박힌 생명)을 소유한 사람에게 흑암의 권세에 대해 공격하고 정복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부족한 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부름은 "그리스도의 새 생명과 성령(당신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성령) 공급 안에서 그리스도의 숭리를 붙들고 원수에 대해 공격하는 태도를 취하는 데에서 일어난 것이다." 활동하는 옛 욱체의 생명 - 혼 생명의 힘 - 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분별'되고 세상에 대하여 죽은 사람들은 마땅히 그들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함께 승천하여 주님의 권위 안에서 원수의 세력을 다스릴 수 있는 생명임을 깨달아야야 한다.

 

 

 

 

십자가의 길을 아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위험은, 그들이 성령의 능력과 십자가의 길을 알고 마땅히 어린양을 따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양 한다는 것을 인식하여 영적 노정에서 성실히 전진하고 있을 때 부지불식간에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서 그들의 순종이 피동적으로 변해 버리는 데 있다. 즉 생각 속에서 피동적인 상태가 된다 - 때로는 생각뿐 아니라 온 존재가 피동적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육신 안에서 대적하지 않으므로 그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피동적'으로 순종하게 된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그들은 사탄의 뜻을 순종하고(그들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는 영 안에서 악한 영을 대적하는 것임) 그를 대적하는 일에 완전히 실패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들의 순종은(부지불식간) 피동적으로 사탄에게 순종하는 것이 된다. 오늘날 교회는 흑암의 권세를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마귀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앞에 있는 원수와 그의 군대를 대적하지 않고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결국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점차 '파동적'으로 변하고 혹은 모든 것을 피동적으로 견디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들은 어린양만 알뿐 '사자 -어린양'을 모른다. 어린양은 죽기까지 순종했지만 '사자-어린양'은 마귀를 이기셨다.

이러한 믿는 이들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피동적인 상태에서 나와 흑암의 권세를 공격하기 위해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들은 새롭게 된 의지(판단력)로 하나님과 적극적으로 동역하여 공격하고 정복하는 태도를 취하고 승리의 기도로써 마귀의 모든 저지를 대적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서 십자가의 승리로 원수의 세력을 이기도록 간구해야 한다. 우리는 죽음에 잠김으로써 육신과 혼에 속한 모든 기력(氣力)이 끝났기 때문에 능히 성령의 은사를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싸움에서 그들은 어떤 은사든지 다 사용할 수 있는데 그러한 필요는 성령께서 공급해 주신다.

또한 믿는 이가 어떤 단계에 있든지 그들 뒤에 있는 사람들을 인도하고 도와줄 수는 있지만 결코 자신들이 들어가지 못한 더 높은 단계에 들어가도록 사람들을 인도해 줄 수 없을 뿐더러 그 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판단할 수도 없음을 주의해야 한다. 모든 단계는 그 단계에 따른 상태와 위험과 지식의 한계가 있다. 이것들은 오직 그 단계에 속한 사람만이 알 뿐 그 전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원수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때때로 두 단계에 속한 어린 믿는 이들에게 자기보다 전진된 단계의 진리를 대적하게 한다. 사실 셋째와 넷째 단계의 진리는 그러한 것들이 필요한 셋째와 넷재 단계의 사람을 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메시지에서 말한 믿는 이의 영적 생명이 수준 곧 단계는 체험적인 면, 또는 "주관적인" 관점에서 말한 것이지 결코 심사하는 면과 위치적인 면에서 표현한 것이 아니다. 심사하는 면과 위치적인 면의 진리에 있어서는 회개한 그 날로부터 '그리스도 안의 갓난아이'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자'로 불릴 것이다. 사람은 어린아이에서 점점 자라 성인이 되는 법이다.

 

 

"내가 …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 3:12).

 

 

 

 

상큼

 

 

 

출처 : coram deo
글쓴이 : 해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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