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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찬양의 기적 (대하 20:21-23)

하나님아들 2014. 1. 20. 13:50

찬양의 기적 (대하 20:21-23)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이 시간에 “찬양의 기적”이라는 제목입니다. 여러분, 다윗을 아시지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인 다윗, 다윗의 성공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다윗을 거름더미에서 높이 드셔서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고 왕의 왕이 되고 인류를 구할 메시아의 조상이 된 그 큰 복을 받은 원인은, 다름 아닌 찬송 때문입니다. 다윗은 찬송으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찬송에는 놀라운 기적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유다 왕 여호사밧이 찬송하다가 승리를 체험했습니다. 암몬과 모압과 세일 자손들이 거대한 연합군을 형성해서 유다를 침략했을 때 여호사밧은 레위지파로 성가대를 조직해서 찬양하게 했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심으로 적을 온전히 무찌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찬송은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찬송의 기적을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찬송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21절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왕이 백성들과 의논하니 백성들이 선지자의 말을 믿고 찬송을 부르자는데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어느 때입니까? 적이 침략하여 예루살렘이 위기에 처해 백성들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입니다. 이 때 적들 앞에 찬송하며 나아가자고 결의했다는 것은 놀라운 믿음입니다. 홍해 앞의 백성들처럼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나팔을 불며 돌 때 여호와께서 무너뜨려주심과 같이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니 군대 앞에 찬송하며 나가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또 찬송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찬송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만부가 넘게 판매됐다는 베스트 셀라의 작가 머린R. 캐로더스 목사가 쓴 ‘찬송생활의 권능’, ‘감옥생활에서 찬송생활로’라는 책이 있습니다. 캐로더스 목사는 이 책에서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끊임없이 감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사소한 일까지 참으로 완전하게 역사해주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문제 앞에서 주님을 찬양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현실 그대로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대응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 말대로 찬양하다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147:1-3에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 도다” 찬송하는 자에게 지금도 변함없이 기적이 일어남을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찬송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찬송의 능력을 믿어도 찬송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다시 21절에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여기 노래하는 자들은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입니다. 레위인의 직무배정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가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전문적으로 찬송하는 자들입니다. 일도 하지 않습니다. 십일조로 살면서 날마다 찬양만 합니다. 이들은 찬양을 위해 태어나 찬양으로 살다가 찬양을 위해 죽을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찬양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찬송을 알아도 찬송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찬송을 작사 작곡했어도 찬송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교회에서만 하는 것 아닙니다. 삶 속에서도 늘 찬양해야 합니다.


욥도 찬송의 사람입니다. 그냥 찬양의 사람이 아니라 찬양의 용사입니다. 그 큰 시험 당했어도 욥1:21에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찬양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찬송의 용사입니다. 활활 타는 풀무불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불이 그들을 사르지 못했습니다. 이런 찬양의 용사들이 되어야 진정 찬송의 사람입니다. 불같은 어떤 시험이 와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찬송 많이 불러야 합니다.


바울도 찬송의 용사였습니다. 그토록 매 맞고 착고에 채여 어두운 감옥에 갇혔지만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그럴 때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이런 찬송의 용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찬송을 구별되게 해야 합니다.


그 다음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거룩한 예복은 제사장이 입는 옷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힌 것은 제사장은 하나님의 사람이지 사적 개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이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이요, 예수 이름입니다. 내 개인 자격으로 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이처럼 찬송도 세상 노래와 구별되어야 합니다. 세상 노래는 내 흥을 돋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찬송은 나를 위한 찬송이 아닙니다. 사42:8에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했고, 사43:21에서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잘 알아야 합니다. 자기도취에 빠진 찬송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은혜 받기 위해 찬송하면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흥을 위한 노래가 되면 하나님께 올라가지 않아요. 찬송이 은혜가 없어요. 찬양축제다 뭐다 아쉬울 때가 많아요. 인간 위주로 진행하고 방송녹화를 위주로 진행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기도원도 그토록 찬송해도 은혜가 없을 때가 많아요. 은혜를 끼치려고 하니까 은혜가 안 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높이는 마음으로 구별되게 찬양해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바벨론에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은 바벨론 사람들이 하나님의 노래를 부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뭐가 잘못입니까? 그것은 자기들의 흥을 위해 부르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137:1-6에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 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 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 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 지로다” 탄식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높이려는 거룩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찬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4. 믿음의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사밧 찬양대는 또 어떻게 찬양했나요?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군대 앞에서 찬양했습니다. 군대 뒤에 숨어서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군대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찬송으로 선포하며 나갔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하지 않았습니까? 찬송은 바로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에는 놀라운 도움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지금 찬송할 때 은혜 주셨으면 좋겠다는 비굴한 자세를 버리고 이미 은혜 주셨음을 믿고 감사하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온갖 아름다운 것을 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받은바 된 사람들로서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멘이요, 감사요, 찬송입니다. 하나님께서 재능 주신다면 이런 복음 찬송을 많이 짓고 싶어요. 이 귀한 복음이 빠져버린 찬송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기 위한 찬송이 아니라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찬송하는 찬송이 되시기 바랍니다.


제가 가장 은혜생활이 풍성할 때를 늘 회고합니다. 그 때 어떻게 해서 그렇게 은혜로운 생활이 가능했을까? 곰곰이 돌아보니 예수 복음에 섰고 또 믿음의 은사를 많이 활용했습니다. 내 손에 다가온 것 없었지만 예수 안에서 이미 주신 것을 믿고 늘 감사하고 찬송했습니다. 불가능 앞에서도, 고통의 환경에서도, 나를 해하려는 원수 앞에서도 늘 믿음으로 나는 복인이다. 나는 승리했다. 하면서 기쁘게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베풀어 주신 복음의 진리를 알고 나면 그런 담대한 믿음의 찬송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영원토록 그 이름을 찬송해도 부족합니다. 찬송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찬송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만 거룩한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는 그 믿음으로 담대히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유다 왕 여호사밧이 찬송하다가 큰 기적을 체험한 것처럼 찬송하다가 온전한 은혜를 체험하는 기적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한성진목사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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