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 (엡 1:7-10)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사랑 이라는 단어만큼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있겠습니까? 사랑에 대한 시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드라마를 만들어 내지만 인간은 사랑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들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지만 사랑에 갈증을 느끼며 사랑에 대한 욕구불만 때문에 가슴속이 텅텅 비어 있습니다. 인간은 남녀 간에 피어오르는 에로스적인 사랑이나 혈육 간에 교제하는 필로스 적인 사랑만을 가지고 절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고차원적인 사랑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랑은 언제나 상대적입니다. 마치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암꽃과 수꽃이 서로 꽃가루를 나누어서 번식하듯 인간의 사랑은 이러한 생물학적인 사랑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랑도 우리의 마음의 공백을 메울 수 없습니다. 사랑의 이방지대가 있습니다. 이것을 일컬어서 영혼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영혼의 갈증을 메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혼에는 창조자를 찾는 본연의 끊임없는 절규가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세상에 눈에 보이는 어떤 사랑을 가지고도 우리의 마음을 채울 수 없습니다. 어거스틴의 말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 까지는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이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전 마음속에 진정한 평안,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요일 4:10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죽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곧 생명입니다. 희생입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십자가입니다.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사랑합니까?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다니지 않습니까? 십자가에는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눈이 열리고 심령의 문이 열리면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주님 어찌하여 나 같은 죄인도 사랑하십니까?” 눈물이 맺히고 마음이 뜨거워질 정도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을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은혜로 받았지만 이 세상 속에 붙잡혀 살아보면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찬송을 불러도 십자가의 복음을 들어도 우리의 심령은 감동이 없습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 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 감격, 은혜를 회복할 수 있을 까요?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 앞에 진지한 부딪힘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심령을 열어서 십자가의 복음을 다시 담아야 합니다. 그때 복음은 우리의 영혼을 다시 살리실 줄 믿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신령한 복, 우리를 선택해 주시고 자기 아들로 삼으신 축복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증거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구원이 영광스럽고 신령한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러한 영광스럽고 신령한 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삶과 그 은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은혜의 풍성한 구속을 체험하라(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서 속량, 구원 곧 죄사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구속’은 값을 지불하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노예들을 몸값을 주고 자유롭게 해준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로마에는 수 백 만명의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예들과 살다보면 주인은 노예와 정이 들게 됩니다. 주인이 노예를 해방시켜 주려고 하면 거금의 몸값을 주고 이 노예를 먼저 사야 합니다. 그리고 노예를 자유인으로 세상에 풀어주게 됩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구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다고 했습니까? 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 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우리는 죄의 노예 된 신분에 있었습니다. 죄의 종 된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 죄의 종 된 자리에서 자유함을 얻기 위해서는 죄의 값을 치루어야 하는데 그것이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입니다. 죄의 종에서 풀려 날려고 하면 누군가가 죽어서 피를 흘려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목숨을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속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구속을 설명하면서 “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몸값을 지불하신 죽음이 그 은혜의 풍성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의 종 된 자리에서 구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이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려서 우리를 구속해 주십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 은혜의 풍성함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죄 가운데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았다면 그것에 상응하는 벌을 주시기 않고 하나님께서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와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주시고 은혜와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이 구속입니다. 풍성한 구속의 은혜가 우리 속에 넘치려고 하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 긍휼로 죄 사함, 용서한 받은 것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인가를 깊이 체험해야 합니다.
범죄 했던 다윗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좆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좆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까? 죄책감 속에 괴로워 는 다윗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 죄사함의 은혜와 기쁨 때문에 시 103:2-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면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자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고 은혜의 풍성함이 넘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차고 넘치는 은혜의 풍성함을 맛보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노력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을 때 행복함 보다도 오직 죄 사함 받은 은혜의 풍성함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바울은 감옥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육체의 제약 , 환경의 장벽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구속)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누구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공물을 가지고 다메섹까지 달려갔습니다. 살인자요 핍박자요 훼방자요 죄인중에 괴수였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에게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이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습니다. (딤전 1:14)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은혜의 풍성함이 넘칠 때 어떻게 고백합니까?
롬 8:35 =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으리라” 고 외쳤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풍성함 때문에 내가 실패하더라도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게 하는 능력이 하나님 은혜입니다. 믿습니까? 그 은혜 때문에 구속 곧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은혜가 날마다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신앙의 삶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구원 속에 감추어져 있는 은혜의 풍성함을 놓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값싼 은혜로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지불하신 피 값은 너무나 값비싼 은혜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축복보다 세상의 욕심에 붙잡혀 있을 때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언제나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끝내자 쓸데없이 교회 속에 깊이 들어가지 말자 거기는 상처만 남을 뿐이야 하면서 My Way를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면 하나님께 나왔는데 왜 돈이 안됩니까?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시험과 환난은 더 많습니까? 예수 믿어도 별수 없네요 하면서 겉으로는 거룩한 척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은 점점 메말라 가는데 지금 내게 먹을 것, 입을 것이 있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은혜와 풍성한 구속을 맛보아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구속이 무엇입니까? 죄 사함 이라고 했습니다. 죄 사함이 있어야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으로부터 영적인 힘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날마다 은혜의 풍성한 구속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2) 계시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는 은혜에 감격하라 (8-9)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그 뜻의 비밀이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속계획입니다.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구속의 비밀은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깨달을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비밀’(뮈스테리온)은 사도바울의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인간에게 말씀하시지 않고 감추고 계셨습니다. 아무에게나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영광스럽고 놀라운 비밀을 하나님의 자녀에게 알리셨습니다. 즉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그 비밀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뜻입니다. 우리가 구원시켜 달라고 요구 한 것도 아니고 떼를 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계시를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영원한 목적을 갖고 계시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사실이 믿어지고 깨달아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부르셨는가?
롬 16:25-26 =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었다가 이제는 나타나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의 눈이 멀었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라는 선지자가 와서 그에게 안수 할 때에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종교적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을 준수했지만 그의 눈에는 비늘 같은 것을 쓰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광채가 깨달아질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눈에 비늘이 벗겨지지 않고는 모든 것이 왜곡됩니다. 생선비늘을 생각해 보세요 그 비늘을 눈에 끼고 사는데 어떻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비늘이 벗겨져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고백할 때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가 눈에 비늘을 끼고 살았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율법을 지키며 살았지만 그가 믿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계시의 비밀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그 결과 바울은 그가 만났던 하나님과 그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와 주의 복음을 위해서 일관된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은 사도바울 개인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계시, 비밀을 특정한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밀’그러니까 감추고 있다는 뜻이니까 누구에게나 알게 하면 무슨 비밀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비밀을 말할 때에 “집사님 이건 비밀인데 절대로 다른 사람이 알면 안돼, 당신과 나만이 알아야 돼, 비밀을 꼭 지켜 주어야 해”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전부 알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의 “그 뜻의 비밀,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모든 백성들에게 알려 주시기를 하나님이 기뻐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영적인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복음의 진리가 깨달아지도록 해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깨달아지게 해주신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인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도록 믿음의 눈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립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통해서 구원을 얻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영광스러운 비밀을 알게 된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의 심령 속에 넘칠 때 영원하신 하나님을 붙들 수 있습니다. 계시의 비밀이 깨달아지는 은혜가 없으면 우리의 신앙과 행위는 현실의 삶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고 이 세상에서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오히려 영원하신 하나님을 이용하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계시를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넘쳤을 때 눈에 비늘이 벗겨짐으로 그토록 자랑할 것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실상을 알았습니다.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삶을 단념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구원의 놀라운 비밀을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마땅히 멸망 받고 심판받아야 할 죄인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도록 축복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합시다. 오늘 이 세상 속에서 감격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적인 지혜로 알 수 없는 천국의 비밀을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며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언제나 이 세상의 모든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 될 역사의 마지막을 알 수 있도록 은혜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