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목사/풍성한 은혜는 모든 것을 덮는다 (벧전 5:10)
우리는 아주 빡빡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유나 약간 빈 듯한 공간 없이 빡빡합니다. 수고하지 않고 얻기도 어렵지만 수고하고 땀을 흘려도 그 대가를 얻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얻고자 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야합니다. 다른 사람 차를 긁었다면 변상해 줘야 하고 교통위반을 해서 CC 카메라에 찍히면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한 달 일했다면 한 달 치 월급을 주지 더 주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그것에 맞는 보응을 받고 대가를 내야합니다. 세상은 율법적입니다. 철저하게 따지고 계산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내가 행한 것에 비해 너무나도 과대하게 주어지는 혜택이고 상입니다. 은혜는 내가 갚을 수 없을 만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은혜의 책입니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라서 은혜의 바다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와같이 행한 대로 갚고 보응해야하는 율법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대우를 해 주십니다. 부모에게서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은혜를 주십니다. 성경에서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빠져듭니다. 은혜의 하나님을 만나면 내 삶을 드릴 정도로 하나님께 빠지게 됩니다. 이 밤에 그 은혜의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강물처럼 흐릅니다. 어떤 분은 구약은 공의를 강조하고 신약은 사랑을 강조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속성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강조되지만 공의를 사랑으로 덮어놓으셨습니다. 은혜라는 큰 폭 안에 정의가 있습니다. 율법과 공의만 있다면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소선지서에서 선지자들이 매섭게 회개를 촉구하고 율법을 대며 망할 것이라고 외쳤지만, 하나님의 마지막 속성은 돌아오기만 하면 무한정 용서하고 사랑하겠다고 하십니다. 구약도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세상에서 경험한 율법적인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 은혜의 특징은 매우 풍성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풍성함을 자주 반복합니다. 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에베소서 2장 7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은혜를 ‘지극히 풍성함’이라고 표현합니다. 또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라고도 표현합니다. 필설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우리가 구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넘치도록 하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풍성하다는 말은 내가 어디에 있든지 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사단은 주로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도록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것도 사단이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도록 한 것입니다. 사단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물었습니다. 아주 왜곡된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딱 하나만 빼고 동산의 모든 것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야박하셔서 하나를 안 주신 것이 아닙니다.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그 하나만 제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마음대로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사단의 질문은 마치 하나님이 많은 것을 제한하시고 인색하신 것처럼 오해하게 하는 것 입니다.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편견, 오해가 있었습니다. 동생이 돌아와서 아버지가 송아지를 잡아주었는데 맏아들은 나를 위해서는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잡아주지 않았다며 인색한 아버지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한 분이십니다. 베드로는 오늘 본문 10절에서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10절은 베드로의 자서전적인 부분입니다. 그는 인생의 수많은 희비의 곡선을 그으면서 하나님이 견고하게 세워주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수없이 흔들리고 깨어지며 무너졌던 인생이었지만 견고하게 서서 오늘 나를 여기 있게 하신 것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풍성한 성품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보다 큽니다. 베드로는 구원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 말합니다. 자신에게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이나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자격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운전하더라도 자격증을 따야 하고 수능시험을 쳐서 대학갈 자격을 얻어야 합니다.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세상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동자 앞에서 감히 누가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 자신을 보면 우리는 죄 덩어리입니다. 우리는 죄를 피해서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구원은 아무 자격이 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받아주시고 구원의 자격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베드로전후서를 보면 베드로는 지난 세월 자신을 돌이켜보는 글을 많이 썼습니다. 자신의 구원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은혜, 모든 은혜의 하나님 외에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허물과 실수와 범죄를 덮을만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한 번의 부도로도 더는 제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번의 실수로 인생이 추락한 사람도 많습니다. 신문에 나오는 글을 보면 세상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용서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더는 탕감할 능력이 없는 부도난 인생입니다. 베드로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누가복음 5장을 보면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죄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죄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주님 앞에 설 수 없어서 나를 떠나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에도 수많은 실수와 허물로 얼룩진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모든 은혜의 하나님」은 자신의 삶 속에서 모든 실수와 죄악과 허물이 얼마나 컸는가를 표현한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 후 요한복음 21장에 디베랴 바닷가로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셨을 때는 배반했던 못난 베드로를 이미 무조건 용서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를 통해서 과거 자신의 숱한 죄들을 바라볼 때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5장 20절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는 말은 아무리 죄를 많이 지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더 큰 은혜로 덮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물컵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물이 흐려집니다.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계속 떨어뜨리면 맑았던 물이 새카매질 것입니다. 그러면 회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의 죄도 물 컵의 잉크에 비유한다면 새카만 정도가 아니라 새카만 잉크일 것입니다. 찬송가 423장을 보면 “먹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마음”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물컵이 새카맣게 되면 맑아질 소망이 없습니다. 방법은 물컵을 수도꼭지에 대면 한순간에 검을 물이 사라지고 맑은 물이 됩니다. 십자가의 은혜, 보혈의 능력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실수와 죄악이 먹보다도 더 검지만, 예수의 보혈이 강같이 흐르면 한순간에 정결케 될 줄 믿습니다. 어떤 죄도 씻겨져 나갑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는 내가 지은 죄보다도 더 큽니다. 이 밤에 죄로 자학하지 않고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고 나아가시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죄에 대해서 감정과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나의 죄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십니다. 그리스도의 피만 붙잡는다면 우리의 과거를 기억도 하지 않으시고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멀리 옮기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보다도 큽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살고 싶지만, 생각만큼 잘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얼마나 한심한 때가 많은지 모릅니다. 뭔가를 할 때 생각한 만큼 열매가 거둬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결심과 계획대로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지만, 작심 3일이고 죄의 속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만 봤을 때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잘 아십니다. 훈련받고 은혜도 받지만, 여전히 맴도는 수준을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은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는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라고 말합니다. 파도처럼 변덕스러웠던 베드로를 온전하고 굳게, 강하게 하셨습니다. 허물로 무너졌던 그를 오순절의 주역으로 세우셨습니다. 나의 열심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집은 우리가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십니다. 우리가 일곱 번 넘어지나 여덟 번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노력에 의한 대가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20장 포도원의 비유에서 은혜를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아침부터 일꾼을 시간별로 불러서 일을 시키고 그 삯을 줍니다. 시간별로 다 다르게 밭에 와서 일했는데 종일토록 놀다가 해가 저물 즈음에 불려 온 품꾼에게도 주인이 동일한 삯을 줬습니다. 그러니 일찍 온 사람들이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잘못한 것이 없다, 늦게 온 사람에게 같은 노임을 준 것은 내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불평한 사람들은 비은혜의 논리로 따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직 은혜의 논리로 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일 뿐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덮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점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야곱도 약점이 수없이 많았지만,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습니다. 나의 약점과 연약함으로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잘나서 죄를 이겨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고 앞으로 기대할만한 인생으로 이끌어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연약함보다 더 크고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흐르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고통보다 크십니다. 베드로전서는 고난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베드로는 당시 고난당하고 있는 성도들의 고난의 현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먼저 은혜의 하나님을 언급합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고통을 덮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은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은혜 안에 들어가면 놀라운 변신이 일어납니다.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이것이 베드로 자신의 고백입니다. 바울도 가시 때문에 고통을 겪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지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지 않으셔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고통을 없애주시지 않고 마치 작심하신 것처럼 고통을 그대로 두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하나님이 작심하고 고통을 주려고 의도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경을 보면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에게 고통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도 함께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고통과 은혜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분리되어있지 않습니다. 고통보다도 더 큰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닥쳐오는 어떤 고통이라 할지라도 견딜만하게 하십니다. 고통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고 있다면 견디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 어떤 고난이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그 고통이 축복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데반은 그 고통의 순간에도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려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스데반은 그 고통의 순간에 눈이 열려 하늘의 보좌에서 일어나 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임한 것입니다. 고난의 문제를 스스로 이겨내려고 하는 사람은 원한이 맺혀서 독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어떤 고통이든 만만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나와 함께하면 고난은 변형됩니다. 고통 속에서 흘러오는 하나님의 풍성한 위로와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1장을 보면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것은 사라가 시킨 일이지 하나님이 원하신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나중에 사라는 이삭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이 소년이 되어 이삭을 놀리는 것을 보고 사라는 화가 나서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성화에 못 이겨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몹니다. 이방 여인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은 광야에서 의지할 곳, 살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 처합니다. 16절을 보면 「16.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이스마엘은 몸종인 이방여인의 아이였고 아버지가 버린 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여인의 아이이고 그 아버지에게 쫓겨나서 설움에 복받쳐 광야에서 울부짖는 이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에게 쫓겨나도 하나님은 품어주십니다. 19절을 보면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사막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습니다. 그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미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는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고통보다 더 큰 은혜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지금 당장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고통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 당장 우리에게 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경에서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자주 말합니다. 죄의 문제, 우리의 연약함, 고통의 문제는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가 아무리 커도 우리가 아무리 연약하고 힘든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있다면 우리의 상황은 달라질 줄 믿습니다. 우리 자신을 보고 절망하고 현재 형편만 보고 비관하지 마십시오. 은혜를 아는 사람은 아무리 상황이 처참해도 절대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똑같은 상황에 처해도 은혜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은혜를 아는 우리는 다릅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자학하고 비관하며 주저앉지만, 은혜를 아는 신자는 평안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어떤 실패도 성공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죄를 짓고 연약함을 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숱한 고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만 한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일으키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고 견고하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오늘 이 밤에 어떤 죄보다도 더 크고, 어떤 연약함보다도 더 크고, 어떤 고통보다도 더 큰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덮으시면 우리를 넉넉히 이기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것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강력한 게런티입니다. 이 밤에 이 풍성한 은혜를 받아 기대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은혜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은혜로 나에게 찾아오는 숱한 어려움을 덮고 이기게 하시고 다시 일어서게 하셔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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