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는 우리의 일입니다. 고린도전서9:16-27절
한 크리스챤 월간지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사역했던 전도 사역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복음 전도회를 조직하기 위하여 신앙상담집중훈련 코스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맨발에 허름한 옷을 걸치고 수염도 깍지 않은 한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코스에 참석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집중코스에 참석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체로 상위의 교육을 받고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집중훈련에 적극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 걸인 같은 사람은 모든 강좌에 열심히 참석하였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가 불신자 상담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몇 주 후에 집중코스를 수료한 사람들은 불신자 신앙상담을 위하여 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그 사람도 그곳에 참여하였습니다. 허나 리셉션에 있는 사람들은 처음에 그에게 사람을 배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불평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모든 상담자들이 사람들로 바쁜 가운데 그 지역의 의사 한 사람이 신앙 상담을 위하여 들어 왔습니다. 리셉션에 있는 사람들이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려는 순간 이 걸인이 일어나 그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상담실로 들어갔습니다. 책임자는 그들의 모습을 걱정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그 의사는 그 걸인의 말에 매우 흥미 있게 듣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이 상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책임자는 그 의사에게 ‘그 사람과 어떠했습니까? 다른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은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아 예! 감사합니다. 저 분은 저에게 아주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음 날 그 의사는 두 명의 동료들과 함께 다시 그 곳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그 걸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한 주간 동안 그 걸인은 네 명의 의사와 그들의 부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헌신된 종을 필요로 하십니다.
전도하라는 명령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만을 위하여 살라고 명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교회 안에서 서로를 섬기기만 하라고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복음전도의 사명에 대하여 변명이란 있을 수 없도록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전도에 동참해야 합니다.
오늘 저는 본문을 중심하여 “전도는 우리의 일”이란 제목으로 우리의 사명을 다시 한 번 재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첫째, 내가 기독교인이라면 전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강권하시기 때문에 전도를 하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인간적인 판단으로 세상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전도를 하지 않으려는 변명으로 발전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세상을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될 것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강권하심에 어쩔 수 없이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증거 합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것이 싫어 초막을 짓고 시들어진 박 넝쿨 때문에 항의 시위를 하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는 우리의 사랑에 근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에 근거해야 전도가 됩니다.
그분이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전도는 예수님이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5:6절에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사랑을 부으셨던 하나님은 세상에 대해서도 동일한 사랑을 부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사랑 때문에라도 전도해야 합니다.
가족을 위한 가장 큰 사랑이 전도입니다.
친구를 위한 가장 큰 사랑이 전도입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것을 주어야 합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고 소망을 주고 구원을 가져다 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도하는 우리의 삶 자체가 사랑이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마태복음22:37-39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사랑을 위한 최선의 수고를 다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1:3절에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는 일 들 중에 하나님에 의하여 기억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그리고 소망의 인내. 이 중 사랑의 수고는 이웃에 대한 노력입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우리가 행해야 할 가장 큰 사랑의 수고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히 하나님에 의하여 기억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고린도전서13:13절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사랑의 수고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천해야할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2) 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자신의 목숨을 버려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서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구원하기 위하여 최선의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입니다.
둘째, 우리는 전도하기 위하여 양보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2:17절에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타협하고 양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수다한 사람’이라는 말은 길거리에서 뭔가를 파는 행상을 가리킵니다.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라는 말은 행상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팔려고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당시에 복음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보다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기 좋게 바꾸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그러한 사람들과 같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1:9절에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에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복음의 본질은 절대로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을 위해서는 우리가 얻은 자유를 양보해야 합니다.
복음을 변질시키기 보다는 진정으로 양보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자유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8:19절에서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 구걸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유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종이 되기를 자처하였습니다.
자기의 자유를 스스로 종이 되어 자신을 억제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15:1-3절에서 전도자는 자신보다는 이웃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자신의 기쁨을 포기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자신의 유익을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도 그 분의 뜻에 합당히 행하여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타협해야 할 것은 복음의 색깔을 화려하게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듣기에 달콤한 말로 사람을 끌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얻기 위하여 내 자신의 자유함을 양보하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종이 되고 섬기는 자가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은 모두다 전도를 위하여 최선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마가복음16:15절에 주님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서로 간에 경쟁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전도를 위한 하늘의 상급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한 전도자에게 의의면류관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받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상급이 등급(1등 2등 3등)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내 자신과의 경주입니다.
경주자로써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주자에게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누구에게든지 상급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최선의 경주는 주님의 명령에 근거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어떤 사람은 증거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설교자가 되라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 모두 다 해당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문장은 선택형으로 끝나지 않고 명령형으로 끝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전도는 주의 모든 제자들이 선택의 여지없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는 교회가 살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주께서 구원받는 자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는 교회”(행2:47)였습니다.
한마디로 사도행전의 교회는 “성장하는 교회”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행전의 교회는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게 증거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전도를 할 때 성장하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교회는 전도를 할 때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생존의 문제인 것입니다.
전도를 하지 않는 교회는 성도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떠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공부하고 연구하기 위하여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파되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전파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말씀이 그 교회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전파되지 않는 교회에 성령이 역사하실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전파가 없는 교회에는 주님이 그들 가운데 거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전도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경기하는 자를 비유하여 권면하였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그러나 경기 하는 자들은 썩을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최선의 경주를 하지만 우리의 경주는 썩지 아니할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는 어떤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특별한 교회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모든 사람 모든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어진 사랑이 우리를 권면합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를 위하여 우리 자신의 자유를 양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성장하기 위하여 모든 성도가 전도에 동참하여 최선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전도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 아 멘 -
함께 복음 전도에 동참하여 면류관을 받아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한 크리스챤 월간지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사역했던 전도 사역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복음 전도회를 조직하기 위하여 신앙상담집중훈련 코스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맨발에 허름한 옷을 걸치고 수염도 깍지 않은 한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코스에 참석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집중코스에 참석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체로 상위의 교육을 받고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집중훈련에 적극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 걸인 같은 사람은 모든 강좌에 열심히 참석하였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가 불신자 상담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몇 주 후에 집중코스를 수료한 사람들은 불신자 신앙상담을 위하여 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그 사람도 그곳에 참여하였습니다. 허나 리셉션에 있는 사람들은 처음에 그에게 사람을 배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불평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모든 상담자들이 사람들로 바쁜 가운데 그 지역의 의사 한 사람이 신앙 상담을 위하여 들어 왔습니다. 리셉션에 있는 사람들이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려는 순간 이 걸인이 일어나 그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상담실로 들어갔습니다. 책임자는 그들의 모습을 걱정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그 의사는 그 걸인의 말에 매우 흥미 있게 듣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이 상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책임자는 그 의사에게 ‘그 사람과 어떠했습니까? 다른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은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아 예! 감사합니다. 저 분은 저에게 아주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음 날 그 의사는 두 명의 동료들과 함께 다시 그 곳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그 걸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한 주간 동안 그 걸인은 네 명의 의사와 그들의 부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헌신된 종을 필요로 하십니다.
전도하라는 명령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만을 위하여 살라고 명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교회 안에서 서로를 섬기기만 하라고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복음전도의 사명에 대하여 변명이란 있을 수 없도록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전도에 동참해야 합니다.
오늘 저는 본문을 중심하여 “전도는 우리의 일”이란 제목으로 우리의 사명을 다시 한 번 재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첫째, 내가 기독교인이라면 전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강권하시기 때문에 전도를 하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인간적인 판단으로 세상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전도를 하지 않으려는 변명으로 발전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세상을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될 것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강권하심에 어쩔 수 없이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증거 합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것이 싫어 초막을 짓고 시들어진 박 넝쿨 때문에 항의 시위를 하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는 우리의 사랑에 근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에 근거해야 전도가 됩니다.
그분이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전도는 예수님이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5:6절에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사랑을 부으셨던 하나님은 세상에 대해서도 동일한 사랑을 부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사랑 때문에라도 전도해야 합니다.
가족을 위한 가장 큰 사랑이 전도입니다.
친구를 위한 가장 큰 사랑이 전도입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것을 주어야 합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고 소망을 주고 구원을 가져다 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도하는 우리의 삶 자체가 사랑이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마태복음22:37-39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사랑을 위한 최선의 수고를 다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1:3절에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는 일 들 중에 하나님에 의하여 기억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그리고 소망의 인내. 이 중 사랑의 수고는 이웃에 대한 노력입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우리가 행해야 할 가장 큰 사랑의 수고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히 하나님에 의하여 기억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고린도전서13:13절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사랑의 수고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천해야할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2) 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자신의 목숨을 버려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서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구원하기 위하여 최선의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입니다.
둘째, 우리는 전도하기 위하여 양보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2:17절에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타협하고 양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수다한 사람’이라는 말은 길거리에서 뭔가를 파는 행상을 가리킵니다.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라는 말은 행상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팔려고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당시에 복음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보다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기 좋게 바꾸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그러한 사람들과 같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1:9절에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에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복음의 본질은 절대로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을 위해서는 우리가 얻은 자유를 양보해야 합니다.
복음을 변질시키기 보다는 진정으로 양보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자유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8:19절에서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 구걸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유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종이 되기를 자처하였습니다.
자기의 자유를 스스로 종이 되어 자신을 억제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15:1-3절에서 전도자는 자신보다는 이웃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자신의 기쁨을 포기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자신의 유익을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도 그 분의 뜻에 합당히 행하여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타협해야 할 것은 복음의 색깔을 화려하게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듣기에 달콤한 말로 사람을 끌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얻기 위하여 내 자신의 자유함을 양보하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종이 되고 섬기는 자가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은 모두다 전도를 위하여 최선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마가복음16:15절에 주님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서로 간에 경쟁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전도를 위한 하늘의 상급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한 전도자에게 의의면류관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받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상급이 등급(1등 2등 3등)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내 자신과의 경주입니다.
경주자로써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주자에게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누구에게든지 상급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최선의 경주는 주님의 명령에 근거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어떤 사람은 증거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설교자가 되라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 모두 다 해당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문장은 선택형으로 끝나지 않고 명령형으로 끝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전도는 주의 모든 제자들이 선택의 여지없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는 교회가 살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주께서 구원받는 자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는 교회”(행2:47)였습니다.
한마디로 사도행전의 교회는 “성장하는 교회”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행전의 교회는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게 증거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전도를 할 때 성장하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교회는 전도를 할 때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생존의 문제인 것입니다.
전도를 하지 않는 교회는 성도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떠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공부하고 연구하기 위하여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파되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전파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말씀이 그 교회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전파되지 않는 교회에 성령이 역사하실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전파가 없는 교회에는 주님이 그들 가운데 거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전도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경기하는 자를 비유하여 권면하였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그러나 경기 하는 자들은 썩을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최선의 경주를 하지만 우리의 경주는 썩지 아니할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는 어떤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특별한 교회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모든 사람 모든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어진 사랑이 우리를 권면합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를 위하여 우리 자신의 자유를 양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성장하기 위하여 모든 성도가 전도에 동참하여 최선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전도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 아 멘 -
함께 복음 전도에 동참하여 면류관을 받아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 전도카페 / 가서 제자 삼으라
글쓴이 : 박성도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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