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환목사/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갈 2:20)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영원토록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주님께서는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실뿐 아니라 땅에 있는 우리의 마음속에 한결같이 함께 계십니다. 주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인간은 여기와 저기에 동시에 있을 수 없지만 주님은 이 세상 모든 곳에 동시에 계시고 가장 소중한 우리안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경험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끊임없이 나를 위로하시고 힘주시고 도와주시는 것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이 세상에 어려움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어떤 가정도 어려움이 없는 가정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어느 나라도 어려움이 없는 나라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보다 더 좋은 나라로 이민도 많이 가지만 확실한 것은 어느 나라에든 어려움은 다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을 떠나서 얼마나 부부간에 증오하고 미워하고 책임전가를 하며 원망, 불평하지 않습니까? 또한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이 형제간에 서로 죽이지 않습니까? 다윗같이 하나님을 잘 믿은 가정에도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압살롬같은 불효막심한 아들이 태어나서 아버지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고 형제들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합니까?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는 것은 정상입니다. 예수를 잘 믿어도 어려움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우리 가정의 어려움을, 우리의 삶의 어려움을, 국가의 위기를 우리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가대에서 부른 찬양도 우리하고 맞지 않습니까? “넉넉히 이기리라”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를 도우심으로 우리는 모든 문제를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제 감동적인 편지를 받았습니다. 희준이라고 하는 대학생이 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1996년 10살인 초등학교 3학년 때에 이 학생은 뇌종양 수술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도 암에 걸려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암에 걸렸는데 10살밖에 안된 이 학생도 암에 걸려서 큰 수술을 받고 저에게 왔습니다. 어린아이가 아프니까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래서 그 아이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이 아이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소망을 가졌습니다. 믿을 수 있는 분은 주님이시니까요. 믿을때 주어지는 능력이 얼마나 큽니까? 절망하면서 치료받는 것보다 믿음으로 치료받는 것은 그 효과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 학생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깨끗하게 낳았습니다. 살아났습니다. 저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학생한테 제가 민수기 6장 24~26절에 있는 말씀을 성경에다 싸인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이 학생은 이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계속해서 이것을 늘 외웠다고 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 학생에게 소망이 되는 메시지를 준 것입니다. 주님이 너를 지켜주신다. 주님이 너에게 은혜를 주실 것이다. 주님이 너를 도와주실 것이다. 주님이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 이것을 계속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 학생은 치료를 받고 뒤늦게 다시 공부를 해서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금년에는 좋은 대학교 3학년에 편입까지 했답니다. 편입을 해서 학교 구내식당에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아르바이트 해봐야 한 달에 얼마 못 받지만 이 학생은 너무 감사했습니다. ‘아, 내가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건강을 얻어서 대학까지 오다니. 아, 종합대학에 편입을 하다니. 내가 이렇게 건강을 얻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은혜냐?’ 그래서 첫 월급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둘째 달인 이번 달 월급 20만원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게 가져왔습니다. 저는 그 돈보다도 ‘네가 살아서 건강해서 이렇게 대학에 들어오고 종합대학에 들어와서 일할 수 있다는 거 얼마나 은혜냐?’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학생도 불평을 하려면 불평투성이 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날을 생각할 때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속에 감사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56%라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금도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인구 가운데 20억 명이 비위생적인 물을 먹는다고 합니다. 26억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수돗물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수돗물 사용한지가 몇 십년 되지 않지 않습니까?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좋은 옷을 입고 자동차 문화 속에서 집집마다 자가용을 타고 다니리라고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그 전에는 양말도 한 켤레 가지고 다녔습니다. 일년 내내 한 켤레만 신었습니다. 그래서 떨어지면 또 깁고 깁고 일 백번 고쳐깁어서 살지 않습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 전에는 제가 설교를 하다보면 교인들의 안경이 떨어져 나가서 실로 꿰매어 가지고 사용하는 분들을 저가 많이 보았습니다. 지금은 안경이 얼마나 많습니까? 북한을 보십시오. 텔레비젼에 보면 북한 사람가운데 안경을 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또 안경 낀 분 가운데 제가 보낸 안경이 참 많습니다. 오래전에 안경을 많이 보내드린 일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텔레비젼에 비춰보세요. 애들도 전부 안경을 꼈습니다. 우리가 축복으로 생각하면 한없는 축복입니다. 냉장고 있지요. 에어컨 있지요. 얼마나 은혜입니까? 여러분! 감사하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감사할 것을 찾으면 너무 감사할 것이 많고, 기쁨을 찾으면 기뻐할 것이 너무 많고, 행복을 찾으면 행복할 것이 너무 많은데도 오늘 많은 사람은 내게 없는 것만 생각하고 괴로운 것만 생각하고 답답한 것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일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열린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든 어려움을 우리는 이길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말한대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 (고후 4:8,9).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요 위대한 민족이요 위대한 국민이 될 수 있는 길입니다.
지난 10일 동안 우리는 뉴스를 통해 13명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이 집단으로 연탄가스로 자살하는 소식을 보았습니다. 강원도 인제에 있는 한계리 휴게소에서 지모씨 47살 속초 분입니다. 한 사람은 여수 분으로 29살 난 분입니다. 한 사람 이모양은 양산에서 올라와서 셋이 인터넷을 통해 만나서 차안에서 연탄불을 피워놓고 함께 죽었습니다. 그들은 남긴 유서에 “우리는 자살해 가니까 미안합니다. 조사하지 마세요.” 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8일에는 정선 민박집에서도 35살 신모씨, 43살 김모씨, 23살 이모씨 그리고 네 명이 자살해 죽었습니다. 연탄을 피워놓고 연탄가스가 안나가도록 스카치 테이프로 문에 붙여놓은 뒤에 죽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들이 죽는 이유가 유서에 나와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해서 죽고 직장이 없어서 죽는다는 겁니다. 또 23살 아가씨는 얼굴에 기미 때문에 죽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현대인들은 죽을 것을 찾습니다. 사업하시는 분이 사업에 실패해보지 않고 어떻게 성공합니까? 연구하는 사람이 실패하지 않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습니까? 달리는 선수는 넘어지게 되어있고, 복싱을 하는 사람은 얻어맞게 되어있고, 축구하는 사람도 넘어지게 되어있는 것이 세상인데 사업해서 안된다고 자살하면 어떻게 됩니까? 얼굴에 기미도 낄 수 있고 여드름도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기미도 없어지고, 또 좋은 화장품 요사이 나옵니다. 당장 없이하려고 그러지말고 서서히 노력해보십시오. 계속 노력하면 없어지는 날이 오는 겁니다. 한 순간에 없이하려고 하지말고 살아가면 다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얼굴이 전부입니까? 물질이 전부입니까? 직장이 전부입니까? 어두운 밤이 지나가면 새 아침이 오듯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옵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가 허무주의에 빠져있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있습니다. 사는 일에 적극적이던 이 민족이 자살하는데 적극적으로 이렇게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자살공화국이라고 부릅니다. OECD 국가 가운데 제일 자살 많이 하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이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이 병들어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잘못된 생각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미 5년, 10년 전 부터 잘못된 생각을 마음에서 길렀던 것입니다. 살기 싫은 생각을 마음에 길러서 그 마음이 그들을 지배해 버리고 파괴해 버린 것입니다. 기독교는 마음의 종교입니다. 안의 종교입니다. 심령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내 마음에 있는 어두움의 세력, 사탄의 세력, 마귀 사탄, 이 죄악의 어두움을 다 버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기독교는 그러기 때문에 밖의 종교가 아닙니다. 안의 종교입니다. 성도의 기쁨은 안에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축복은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일 날 교회나오는 것은 안의 문제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안의 복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은 Heart's Day 라고 합니다. Body Day가 아닙니다. 내 심령을 축복하는 성령이 오셔서 말씀으로 여러분의 심령을 찾아오셔서 우리 영혼의 양식을 주는 날이 주의 날입니다. 우리의 때묻은 마음을 말씀으로 씻어내고 주의 보혈로 씻어내어 깨끗하게 심령을 치료하는 날이 주의 날입니다. 무너진 심령을 일으킵니다. 이 세상은 우리를 오염시켜 심령을 녹슬게 하지만 이 녹슨 마음을 제거해 주는 곳이 바로 주님의 교회요,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배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집니다. 삭개오의 마음,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이 새로워지듯이 주님의 성전에 나오면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낙심과 좌절에서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으로 바뀌어집니다. 기독교는 안의 종교입니다. 많은 사람은 인간의 문제를 물질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거룩한 심령이 있습니다. 천국이 있습니다. 거룩한 땅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람은 ‘속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귀한 것은 속에 있는 내 영혼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심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동물, 모든 생명은 먹을 것만 있으면 만족해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먹을 것이 있다고 해서 만족해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부유해도 마음은 가난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고 아무리 화려한 문명일지라도 그 안에 있는 심령은 병들 수가 있습니다. 안에 있는 것과 밖에 있는 것은 좀처럼 잘 만나지 않습니다. 세상 것으로 안을 채우려고 하면 채워질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은 내 안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내 안이 하나님 만드신 거룩한 땅이기 때문에 밖에 있는 것은 문을 열어주지를 않습니다. 지식이 있다고 내 마음의 영혼이 부유해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늘 날 우리는 어느 때보다 더 물질문화가 발달하고 의복문화도 발달하고 산업문화 기계문화 지식의 문화 발달했지만 우리 마음은 어느 때 보다 더 초조해하고 불안해하고 긴장하는 것은 우리 심령은 하나님이 창조해 주셔서 세상에 있는 것으로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여러분의 심령은 문이 열립니다. 주님이 여러분 안에 오시면 천국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의 얼굴 뵙기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마음속에 이뤄지니 날로날로 가깝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
여러분의 심령이 천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이 천국같이 좋은 세상이라 해도 여러분의 심령이 지옥이면 지옥입니다. 이 세상이 지옥같은 세상이라 할찌라도 여러분 안에 주님이 오셔서 성령으로 거듭난 여러분 안에 천국이 이루어지면 이 세상을 천국같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힘은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심령이 새로워진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된 것입니다.”(고후 5:17)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 3:20)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 고 했습니다(벧전 1:3). 우리는 거듭났습니다. 우리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이전에 내가 아닙니다. 그 전에 어두움이 지배했던 우리의 마음은 주의 빛이 지배합니다. 그 전에 절망이 우리를 찾아왔지만 이제는 소망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 전에는 세상 것을 찾기 위해서 생명걸고 투쟁하고 긴장하고 바쁘게 살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살면 안됩니다. 이제는 영적인 삶에 시간을 많이 바치고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일에 시간을 바치고 육적인 일에 조금 템보를 늦추어야 합니다. 슬로우 템포로 바뀌어야 합니다. 빨리 살아야 되겠다, 빨리 벌어야 되겠다, 너무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건강도 오래 사는 생명은 다 느리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오래 사는 거북이가 얼마나 느립니까? 맥박이 일 분에 두 번만 뛴답니다. 그 정도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데 그렇게 오래 사는 겁니다. 사람도 천천히 걸어가고 여유있게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잘산다는 겁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유럽에 가 보십시오. 저녁에 문을 닫으면 일 분만 지나도 안팝니다. 오후 다섯 시만 되면 다 문 닫아 버리고 안팝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더 잘 살지 않습니까? 밤 12시에도 나가고 그런 나라가 잘 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영육이 균형을 잘 맞추어야 잘 살수 있습니다. 너무 한쪽으로 잘 살아야 되겠다, 빨리빨리 살아야 되겠다, 건강해야 되겠다, 행복해야 되겠다. 이렇게 하면 심령도 무너지고 육체도 무너집니다. 다 무너지고 맙니다. 동물도 빨리가는 스피드있는 생명이 단명한다는 겁니다. 제일 조급한 것이 쥐입니다. 쥐는 8개월밖에 못 삽니다. 짧게 살다 죽습니다. 가만히 서있어도 초초합니다. 계속 긴장하니까 오래 못사는 겁니다. 여러분! 이제 마음을 여시고 푸셔서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긴장할 일이 없습니다. 교회에 왜 나옵니까? 긴장 풀려고 나오는 겁니다. 예수 왜 믿습니까? 마음에 여유 가지려고 믿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되신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면 여러분은 여유가 있습니다. 주님이 지켜주심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살찌워야겠습니다. 우리 마음을 건강하게 해야겠습니다. 오늘 이 사회는 너무나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마음이 병들면 위기입니다. 마음의 아름다움이 무너졌습니다. 떠나갔습니다. 마음이 아름다워야 아름다운 것입니다. 동물은 보이는 아름다움이 있지만 사람의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 안의 아름다움인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너무 안의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십시오.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동행하십시오. 여러분 안에 천국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주의 빛으로 비추어 여러분 안의 문제를 주님의 은혜로 해결하십시오. 인간의 힘으로 국가의 힘으로 법적으로 과학적으로 우리 안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안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수많은 사람이 접근하지만 인간의 안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주의 보혈의 은총으로 여러분의 심령이 새로워지시기를 바랍니다. 성공했다고 해서 안에 기쁨이 있는 것 아닙니다. 부유하다고 해서 안에 평화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히틀러는 힘있고 능력이 있었지만 너무 불안해서 비행기를 타면 의자를 뒤엎을 정도로 폭력적이고 강팍해서 자기도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오늘 얼마나 능력이 있고 권력이 있어도 초조하고 불안한 사람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보는 것입니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요 14:1). 주님이 함께 하시는 심령 주의 심령이 함께 하는 심령은 주님이 지켜주시고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아무도 넘어뜨릴 수 없는 견고한 성이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안에 거하시면 이 세상에 어떤 세력도 여러분의 안을 해칠 수 없습니다. 때에 따라 물질을 가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때에 따라 건강은 가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에 있는 보화는 내 안에 있는 평화는 아무도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산성이 되시고 피난처가 되시고 방패가 되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세계적인 가장 좋은 항구는 해수욕장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으로 아주 아름다운 항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제일 좋은 항구는 파도가 없어야 합니다. 큰 풍랑이 밀려오면 않됩니다. 물론 방파제를 만들지만 사람이 만든 방파제는 언제나 넘어설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최고의 휴양도시라든지 해수욕장은 자연적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태평양 바다에서 대서양 바다에서 밀려오는 어마어마한 파도가 겉으로는 안보이지만 항구 가까이 아래에 바위가 한 산맥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 파도가 거기오면 탁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파도를 막아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오면 2차 방파제가 또 있습니다. 또 한번 파도가 죽어버립니다. 그 다음 세 번째로 막아낸 뒤에 항구에 다다를 즈음에는 조용한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면 여러분에게 밀려오는 어마어마한 파도, 오늘날 인류를 파괴하는 어마어마한 세력들도 십자가 보혈 앞에 죽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주님과 함께 찬송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위대한 정신을 끊임없이 세계를 움직이고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놀라운 능력이 주님으로 부터 끊임없이 공급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축복인 것입니다.
요즘 농구 시즌입니다. 한참 야구 시즌이지만 겨울 스포츠인 농구가 이제 마감하는 결승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제 농구 결승전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삼성 감독인 안준호 집사님이 계시기 때문에 저는 삼성팀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있는 모든 분야는 좋게 봅니다. 그래서 저는 자나깨나 삼성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여 이기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농구의 가장 핵심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guard가 중요합니다. 지난 번에 모비스와 삼성이 경기를 했습니다. 모비스는 일등이었지만 삼성한테 졌습니다. 삼성은 4위로 4강에 올라갔는데 일등을 이긴 것은 삼성에는 노련한 가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드의 역할은 뭡니까? 가드는 공을 배급해 주는 사람입니다. 찬스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키 크다고 넣는 것이 아니라 이 가드가 공을 주어야 넣을 수 있습니다. 모는 찬스를 가드가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넣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을 공격하고 올 때는 가드가 선수들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제 위치를 주고 가 있으면 공은 여기서 치다가 주면 거기서 공격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몇 초를 남겨두고도 넣는 것입니다. 삼성에는 유명한 가드가 있습니다. 이상민이라는 가드가 이상할 만큼 잘합니다. 가드가 찬스가 만들어줍니다. 배구는 center가 중요합니다. 공을 받아서 center가 모든 사람에게 공격할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여러분! 우리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guard가 되셔서 절망일 때 희망의 생각을 우리에게 넣어 주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생명을 우리에게 배급해 주십니다. 찬스를 만들어 주십니다. 성공은 심령, 즉 마음에서 오는데 우리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끊임없는 볼 배급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업을 잘 할 수 있도록 주님은 여러분에게 놀라운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다가 심어주십니다. 할렐루야! 훌륭한 어머니가 되도록 훌륭한 민족이 될 수 있도록 세계를 움직이는 민족은 모두 위대한 정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정신만 위대하면 위대한 민족이 되고 정신이 무너지면 무너지고 맙니다. 로마도, 헬라도, 바벨론도 정신이 무너질 때, 그 나라가 무너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세계의 문제는 정신적인 위기 때문에 수많은 가정의 위기, 경제의 위기, 정치적인 위기가 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도 경제만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만 일어나면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위대한 정신을 창조하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왜 기도합니까? 왜 찬송 부르십니까? 왜 예배드리십니까? 예배 시간은 주님으로 부터 우리에게 위대한 놀라운 정신을 가져다 줍니다. 채워주어서 그 정신과 그 생각과 그 사상과 그 이념으로 그 인격으로 세계적인 위대한 일을 하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간의 이런 마음을 넘어뜨리고 우리 국가도 좋은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 마음이 이렇게 강팍해진 것은 악한 세력, 어두움의 세력이 우리에게 침투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많이 모이고 은혜로운 교회로만 늘 있을 수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밖으로 부터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잘못된 생각과 사상들이 위장을 해서 우리에게 침투합니다.
여러분께서도 보셨던 트로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트로이 목마’ 라고 하는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트로이라고 하는 이 성은 굉장히 견고한 성입니다. 그리스에서 정예부대가 공격했지만 도무지 넘어뜨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략을 썼습니다.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서 그 속에 아주 정예부대를 숨겨서 안에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이 뒤로 다 후퇴했습니다. 그 때에 트로이 안에 성에 있는 온 나라는 이겼다고 다 물러갔다고 기뻐하면서 목마를 성 안에 끌고 들어갔습니다. 트로이 백성들은 잔치를 베풀고 술을 먹고 모두 승리에 도취되어 가지고 흥청거리고 잠잘 때에 목마속에 숨어있던 군인들이 나와서 성 문을 열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밖으로 그리스 군대가 침투해 가지고 트로이 성을 완전히 점령해 버렸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 인간은 마음만 무너지지 않으면 심령만 무너지지 않으면 내 심령만 지키면 어떤 대적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트로이 성을 넘어뜨리듯이 온갖 세속 문화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문화라고 다 받아드리면 안됩니다. 안방극장이라고 다 받아 들이면 안됩니다. 우리 가정에 그 드라마를 통해서 들어오는 트로이 목마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 한국 교회도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온갖 이단과 공산주의와 요사이는 이슬람 문명까지 이슬람 보십시오. 세계 어느 나라 가든지 다 파괴하고 나라를 분열시킵니다. 9.11테러를 보십시오. 세계 어느 나라에 테러를 안하는 나라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슬람만 들어가면 그 나라가 반쪽이 나고 다 무너지고 맙니다. 생명걸고 다 모두 자살폭탄 가지고 달려드는데 누가 이길 수 있습니까? 여러분! 경제 경제 하면서 아무 문화나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우리는 정신 차려서 하나님이 주신 위대한 나라를 지키고 위대한 신앙을 지키고 영원토록 여러분의 가정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면 여러분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성은 견고한 이 성은 아무도 넘어뜨릴 수 없는 십자가의 성안에 부활의 성안에서 주님과 함께 길이길이 복되게 사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거룩한 주의 날입니다. 아버지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의 심령을 충만하신 은혜로 채워주시고 능력으로 늘 채워주옵소서. 여호와를 앙모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위기를 이기고 절망을 이기고 질병을 이기고 시험을 이기고 불경기를 이길 수 있는 능력있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할 수 있습니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민족이 일어나서 세계적인 축복된 민족으로 복의 근원으로 사명을 다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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