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성장과 부흥의 +,-,×,÷ ]
- 하용조 목사 (온누리교회)
복음, 말씀, 구원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위해 나머지 모든 것을 유연성 있게 포기하고 변하고 빼서라도 그 진리를, 구원을, 성령의 역사를 이어가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주제는 교회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은 채, 젊은 이들에게 복음의 핵심을 전할 수 있는 방법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전통적 교회의 상징은 뾰족탑, 파이프 오르간, 스테인드 글라스, 장의자, 가운 등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교회의 틀은 서구 교회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영국의 데니스레인 목사님 댁을 방문했을 때 집 가까운 곳에 아주 큰 웅장하고 예스러운 교회가 있었습니다.
데니스 레인 목사님도 어렸을 때 그 교회를 다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박물관과 같았습니다. 예전에는 교회에 사람들이 꽉 찼었는데 요즘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건물이 좋아서 조금씩 고치면 더 나을 것 같았는데 성도들의 반대로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예전의 문화에 맞춰진 교회이기 때문에 오래전에는 성도들이 그 곳을 찾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그곳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급변하고 다변화된 우리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저는 우리 목사님들께 우리는 하늘나라의 광대다, 광대 짓을 하자고 말합니다. 한 사람이 예수 믿겠다고 하는데 권위세우고 점잖게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엄청난 시대적 흐름입니다. 저를 포함한 현재 40대 이상의 모던시대 사람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이미 포스트모던 시대입니다.
예전에는 기독교가 유일한 종교라고 믿었지만 종교 다원주의인 현시대에 기독교만이 유일한 종교라고 말하기를 거부합니다. 이 벽을 어떻게 뚫고 들어가서 차세대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현실적 고민입니다.
오늘 저는 교회성장과 부흥의 +,-,×,÷ 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사실 이 주제는 휴스턴의 펠로우십 교회의 에드 영 목사님이 한 컨퍼런스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참 신선한 아이디어라고 느껴서 허락을 받은 후 한국적 상황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는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처음 배우는 기호입니다. 복잡한 미분 적분도 연산에서 시작합니다. 초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이 기호가 없는 수학공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나 기업, 국가와 가정을 꾸려나가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적용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쉬운 말로 하자면 첫째, 교회 부흥에는 더하기 요소가 있습니다. 둘째, 교회성장과 부흥에 손해가 되는 것은 다 빼야 합니다. 셋째, 교회 성장과 부흥에 기적을 만드는 것은 다 곱하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해서 얻은 축복을 전부 나누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라. 그렇게 생각하니까 논리가 정리 됩니다. 우리의 환경을 이 수학의 기본 기호로 만들어진 공식에 적용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우리 교회, 가정에 부족한 것은 무엇이며, 너무 지나친 군더더기는 무엇일까요?
교회도 빼야 할 것을 움켜쥐고 있으면 죽을 수 있는데도 여러 가지 습관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 결과로 교회는 이 세상에서 외면을 당하고 ALE지 않는 사람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매력이 없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는 것입니다. 식당에도 가더라도 맛이 있어야 갑니다. 매력이 있어야 사람들이 그를 찾아가지 않겠습니까. 인내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 교회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통해 교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비전, 은사, 교회의 모든 것을 더하라
첫째, 더하기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되듯, 더할수록 그 값이 커집니다. 더한다는 것은 좋은 것, 풍요로운 것입니다.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 부흥을 위해서도 우리가 살펴본다면 여러 가지 더하기 요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더하기를 다른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병든 자는 약이나 운동으로 건강을 되찾아야 합니다. 약자에게 뭔가를 더해주면 강자가 됩니다. 더하기로 작은 자가 큰 자가 됩니다. 패배가 승리로, 실패가 성공으로, 죽음이 부활로 바뀔 수 있습니다. 더하기 요소에는 치유와 회복이 있습니다. 더함으로 잃어버린 은사, 감추어진 은사, 개발하지 않은 은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쩌면 목회는 너무 단순합니다. 제가 이렇게 강의 할 때도 마이크에서 조금만 떨어지면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마이크를 들면 움직이며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사고가 굉장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먹는 것이 그 틀에 맞춰져 있습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유지하다 보면 그것이 제도, 습관이 되어서 생산성, 융통성, 적응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세상 환경이 변하면 어쩔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소외되고 도피하게 됩니다.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교인들의 은사가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답고 풍성한지를 느끼며 놀라곤 합니다. 목사 혼자 교회 사역을 어떻게 다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모든 사역을 성도의 은사에 따라 리더십을 주고 권위를 주고 위탁하면 그 분들은 밤잠을 자지 않고 신명이 나서 일하십니다. 교인들을 단순히 예배드리는 사람으로만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더하기 요소가 아닙니다.
그러나 교인 한 명 한 명의 직업과 성격에 맞는 은사를 신명나게 발휘할 수 있도록 인도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모두 숨겨진 더하기 요소입니다. 그런데 그런 요소를 왜 사용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보면 활용할 사람들, 돈, 전문가들이 얼마나 많이 숨어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평신도의 은사가 교회에서 쓰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봉사자는 기쁨을 경험합니다. 잃어버리고 숨겨진 은사를 교회 부흥의 더하기 요소로 써야 합니다.
이 더하기 요소는 매트릭스와 네트워킹입니다. 혼자서는 다 할 수도 다 가질 수도 없습니다. 우리 비전교회 중 마지막에 세운 교회가 제일 좋은 프로그램, 인테리어, 장비를 갖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매트릭스를 짜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를 보완하고 격려하는 디딤돌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이런 요소들을 내 것만 가지고 혼자서만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교회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교회 뿐 아니라 다른 교회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지금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유년주일학교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유년주일학교에 노하우를 지니신 교사와 목회자 모아 팀을 만들어 유년주일학교가 필요한 곳에 파송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의 유년주일학교를 일이년 안에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대학부는 허리우드 극장 조조할인 3백석을 사서 주일마다 그 곳에서 예배드리고 학원을 빌려 성경공부한 후 오후에는 종로거리로 나가 전도합니다. 며칠 전 종로학원 경영자인 자매님을 만나 부탁을 드렸습니다. 며칠 후 학원을 오픈한다는데 가서 보니 교회로 쓰면 딱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학원에서 대학생들이 주일예배를 드리면 어떻겠냐고 하니 그 자매님이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주일에 쓰지 않는 학원 건물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더하기 요소입니다. 지금 제 눈에는 서울 시내가 전부 교회입니다. 주일에 비어있는 학원, 병원, 사무실, 강당이 교회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사람들에게 교회로 오라고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나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데 있어서 교회라는 건물, 장소에 집착합니다. 내 교회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끼리 조금씩 나누고 네트워킹 한다면 엄청난 부흥이 일어날 텐데 우리는 이런 더하기 요소들을 우리는 묵살하고 죽이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더하기 요소는 빈 곳을 채우는 것입니다. 에드 영은 이 플러스 요소를 다섯 가지로 이야기 했습니다.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는 비전을 극대화 시켜라, 그 비전을 이룰 수 있는 지도자를 극대화 시켜라. 그 지도자에게 열정과 헌신을 극대화 시켜라 그리고 창의력을 극대화 시켜라. 마지막으로 당신을 극대화 시켜라.’ 교회 부응에서 더하기 요소는 무엇입니까?
현재 있는 것, 주어진 것만 보지 마십시오. 그러면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 더 깊이하고 바꾸면 굉장히 다양한 놀라운 일들이 우리 주변에 쌓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목사님은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냐?’고 묻습니다. 제 아이디어는 간단합니다. 저는 교회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루 종일, 꿈속에서도 그 생각을 합니다. 온누리교회가 아무리 크더라도 제 눈 안에 들어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나는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행을 가면 항상 디자인 서적을 뒤집니다.
그 색감과 디자인을 교회에 어떻게 적용할까를 고민합니다. 이 모두가 더하기 요소입니다. 저는 순간순간 생각을 합니다. 너무 생각이 많아서 계속 바꿉니다.
여러분, 돈 안 들여도 더하기 요소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특별히 자원봉사자는 보물이요, 황금입니다. 목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아닙니다. 저만해도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제가 세상과 접촉하지 않는데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겠습니까? 그러나 평신도들은 매일 세상에 나가 삽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은 평신도입니다. 그 평신도들과 목회 리더십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 평신도들이 영적으로 풍성하고, 열정적이고, 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어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비본질적 요소는 빼고 바꾸어라
둘째, 빼기 요소입니다.
빼기는 손해, 부정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 풍성한 열매를 위한 가지치기, 아름다운 조각을 위해 돌을 찍어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의 삶, 직업, 공기에서 더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뺄 요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지치기를 하고 돌을 찍으면 아파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렇지만 교회에 살을 빼야 할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살이 쪄서 비만증에 걸리면 교회가 움직이지 않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이 빼는 훈련, 포기하는 훈련은 자기절제, 자기 십자가를 뜻합니다. 다른 말로는 단순화 한다는 것입니다. 버리는 것, 단순하게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복음주의 삶의 요점이 단순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집을 사도 빈 공간을 다 채워야만 만족하는 우리는 이미 세속, 물질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잘못된 관습을 빼기가 어렵습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조조정 하지 않으면 죽는데도 회사를 정리하기는 싫습니다. 회사를 정리할 때는 가장 이익이 좋은 회사를 팔아야 합니다. 그런데 제일 장사가 되지 않는 회사를 팝니다. 그러면 구조조정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7년 된 교인, 5년 된 목사님은 나가라고 말하면서도 저에게 필요한 사람은 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유혹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분들을 포기하고 내 보낼 때 진정한 축복과 부흥, 건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현재 당신의 교회에서 무엇을 뺄 수 있는지를 생각하십시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뺄 수 있는지를 생각하십시오. 제가 설교를 준비할 때도 한 말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여러 가지입니다. 그래서 설교문을 작성하면 제 자신의 의도와 욕심을 빼는 작업을 되풀이 합니다. 많이 빼면 설교가 좋아지지만 그것을 빼지 않으면 군더더기 설교가 됩니다.
목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저희 교회 서빙고 성전은 장의자를 빼고 개인의자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집회때 테이블을 넣을 수가 있었습니다. 무대를 크고 넓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그 위에서 다양한 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연예인 교회를 할 때 구봉서 장로님이 한 부흥사가 강대상에 올라가면 목소리의 톤이 저음으로 달라지는 것을 보고 드신 적이 있습니다.
장로님은 저에게 “목사님, 저런 쇼는 내 전공입니다. 저런 모습은 진실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있는 목소리대로 내지 않습니까? 강대상 위에서만 목소리와 걸음걸이가 달라지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위대한 것이지 내 목소리, 내 동작이 위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빼야 할 많은 것 들을 붙잡고 있습니다. 온누리교회가 손들고 찬양하는데 7년이 걸렸습니다. 우리의 몸이 이미 굳어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강단 위의 의자를 저 아래로 내리는 것도 몇 년이 걸렸습니다.
처음 1년 동안은 강대상 뒤에 의자를 숨겼습니다. 그리고 익숙해 진 뒤에 의자를 저 아래로 내렸습니다. 의자가 강대상 위에 있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점은 자연스러워 지자는 것입니다. 생활적이자는 것입니다. 가식적으로 폼 잡는다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우리가 종교적, 목회자적 권위를 갖고 있다고 일이 더 잘 되겠습니까?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제가 영국에 가서 충격 받은 일이 있습니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가에 갔을 때 학생들이 청바지를 입고 자리에 서서 손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찬양하는 것을 봤을 때입니다. 저는 그것을 처음 봤습니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드럼을 치고 있었습니다. 축도도 교인들끼리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전도사가 되어도 축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책에서 제일 수난 받는 구절이 고린도후서 13장 13절임을 아십니까? 그 구절은 교인들이 읽지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변하고 고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통, 관습에 의해 그동안 해왔던 대로 고수합니다. 우리는 그대로지만 세상의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미 변했습니다.
이제 권위주의가 먹히지 않습니다. 전통을 내세우는 것이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미 변화된 세상에 사는데 교인은 계속 과거 지향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싶지만 그들이 교회에 와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좋은 것은 계속 발전시켜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주일에 일하시는 분들을 위해 9시 예배를 만들었더니 그 분들이 찾아오십니다. 11시 30분 예배를 만들어 놓고 모두 거기에 맞추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극장, 학원, 커피숍에 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복음, 말씀, 구원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위해 나머지 모든 것들은 유연성 있게 필요하면 언제든지 포기하고 변하고 빼서라도 그 진리를, 구원을 그 성령의 역사를 이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빼기 요소에서 생각할 것들입니다. 어떤 고정관념 안에서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비판하고 정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년주일학교에 60년대부터 붙여진 이름인 개나리반, 민들레반을 언제까지 고수할 것입니까? 요즘 아이들이 그것을 어떻게 견딥니까? 윌로우 크릭 교회에서는 주일학교 교사가 농구복을 입고 있습니다.
어린아이 앞에서 교조적으로 넥타이를 매야 할까요? 제가 무조건 세상 풍조를 따라가자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변화는 세상풍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더 복음 되고 교회가 더 교회되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더욱더 효과적으로 전달되게 하기 위하여 비본질적 요소를 제거하자는 것입니다. 항상 물을 것은 그것이 본질이냐 비 본질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당회, 재직회가 꼭 필요한 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90년대까지는 여전도회라는 구조가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의 다양한 은사가 인정받는 오늘날에는 부적당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성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곱셈의 혁명은 하나님의 역사
셋째, 곱하기가 있습니다. 이 곱하기가 교회 안에서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바로 제자양육입니다. 내가 한 사람을 가르치면 그가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또 그가 다른 사람을 가르칠 것입니다. 나는 아이를 한 명 낳았지만 그것이 60억 인구가 된 것처럼 교회의 승법번식, 곱하기는 제자양육으로 이루어지는 엄청난 세계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곱셈의 법칙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곱하기의 원리는 과격하게 기도하고 기하급수적으로 수직하는 성장을 보여줍니다.
예컨대 우리는 파워웨이브를 통해 2007년까지 한국의 성령운동이 수직상승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인공위성을 통해 전 세계의 만2천명 선교사들에게 수신기를 달아주어 그가 어디에 있든 언제나 이 방송을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더하기와 빼기는 일상적이지만 곱하기는 혁명적인 것입니다. 비전은 하나님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비전이 아닙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역사에 있어서 특별히 교회가 곱셈에 도전해야 합니다. 수직상승해야 합니다. 그러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저는 요즘에 인공위성을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합니다. 전도는 곱셈입니다. 전도는 상식과 논리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희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어느 한 순간 영향력을 주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온누리교회의 역사를 돌아볼 때 기적적으로 보이는 일이 한동대에 2백억을 기부한 일입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선교와 전도에 곱셈을 했습니다. 교회에는 더하기 요소, 빼기 요소, 곱셈 요소가 필요합니다. 기하급수적인 팽창과 영향력을 극대화 시켜야 합니다. ACTS 29로 제가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를 살리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곱셈을 한 것입니다.
우리교회 재정으로 그 사역은 무리가 있고 그 일로 다른 일이 위축됩니다. 그렇지만 어떤 시점, 어떤 분야에서는 하나님이 원하는 곱셈이 필요합니다.
비교, 경쟁이 아닌 성경적 나눔 으로 마지막은 나누기입니다.
곱셈으로 이루어진 수직상승을 나누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 모든 교회에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이 축복, 이 감동과 감격을 모든 교회에 나눠주는 것입니다. 제가 30개 지교회를 선포한 것도 대형교회가 갈 길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서울과 경기에 인공위성을 보내주지 않아야 이 집회에 더 많은 분들이 오시겠지만, 나누자고 결심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비교가 아니라 나눔입니다. 경쟁이 아니라 나눔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나눔에 대한 이야기는 밤새도록 하고 싶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다른 교회에 들어가는 것, 선교사 보내는 것, 인공위성을 설치하는 것이 모두 나눔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교회가 건강해 집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모든 지역교회 여러분들에게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은혜 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구원의 정의(定義) (0) | 2013.09.17 |
|---|---|
| [스크랩] 믿음의 정의(定義) (0) | 2013.09.17 |
| [스크랩] 십자가의 복음 (2) 거짓 신앙체계 (0) | 2013.09.14 |
| [스크랩] 십자가의 복음 (2) 거짓 신앙체계 (0) | 2013.09.14 |
| [스크랩] 십자가의 복음 (2) 거짓 신앙체계 (0) | 2013.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