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
18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 28:19~20)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이하생략)”
성도들이 주일 연합예배 때에 사용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기독교 대백과 사전에는 믿음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습니다. “믿음은 어떤 사물에 대한 신념과 어떤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신학에서 믿음이란? “인간이 절대자 또는 초월자를 이해하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을 믿음이라고 지칭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다” 고백하고 있지만 성도들이 고백하고 있는 믿음의 표현을 자세히 살 표 보면 실상은 어떤 사물이나 사실에 대한 믿음의 표현들이 그 중심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참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고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고 그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에 있어서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이며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 인격과 인격이 만나서 맺어지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인격적 관계이기에 상대방에 대하여 기대를 하고 설득하는 신뢰를 바탕으로, 힘이 있는 한쪽이 힘없는 다른 한쪽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지와 결정에 대하여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며 존중하고 기다려 주는 인격적 관계를 말합니다. 하여 믿음이란? 인격과 인격사이에서만 가능한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말’은 인격을 지닌 이에게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말씀으로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은 “언제나 사랑과 긍휼하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여러분을 이 강단에서 뵙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도 반가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어떤 이들은 아픔을 고백하고, 어떤 이들은 기쁨을 노래하며 또 어떤 이들은 감사를 고백하는 이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처한 자리가 어떤 자리일지는 저는 잘 몰라도 바라기는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감사를 고백하며 보고하시는 시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가슴이 울렁이는 감사의 고백은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깊으신 소원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간 “교회는 병원이다.”라는 말씀을 통하여 교회에 속하여 있는 성도들이나 교회에 출석하고자 하는 새신자들이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자신을 온전하게 하고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니라,『있는 모습 그대로』주님 앞에 나아와 고침을 받고 새로워지는 은혜와 체험을 하여야만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이처럼 병원의 역할을 담당하는 교회가 진정 부름 받은 성도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며 또한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지를 성경적으로 살 표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대체로 초신자들이나 성도들이 교회의 존재 이유를 단순한 친교나 정보교환을 하며 복을 주는 곳으로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 상당수가 되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일도 교회가 해야 할 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것을 뛰어 넘어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신앙생활의 출발점에 선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대부분 교회에서 일어나는 충돌이나 싸움을 파악하여 보면 대게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굉장히 넓고 큰 것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예배가 제일 중요하다’ 또는 ‘성경공부가 제일 중요하다’, ‘그게 무슨 말이냐~!’ ‘섬김과 봉사가 제일로 중요하지~!’등 성도들의 의견이 분분한 것을 봅니다. 이들의 주장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한쪽 부분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정작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일은 뒷전으로 밀어 놓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일은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가 결정할 일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께서 마 28:18~20절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신 목적을 말씀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전 열한 제자에게 마지막으로 내리신 명령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불러 세운 열두 명을 ‘사도’라고 부릅니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무리’라는 뜻 입니다. 이들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가서 교회를 세우고 예수님이 친히 삶으로 보여주시고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고 분부 하신 것을 지켜 행하고자 있는 힘을 다 바쳐 헌신하신 분들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는‘가서’,‘세례를 주고’,‘제자를 삼아’그리고‘가르쳐’,‘지키게 하라’는 명령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명령을 지키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제자를 삼기 위한 목적으로 이 모든 것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음을 원문을 통하여 확인하게 됩니다. 원전을 직역하면 단도직입적으로 ‘너희들은 제자를 만들라’는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존재목적은 “제자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봉사와 헌신 그리고 예배와 성경공부, 선교와 전도를 한다 할지라도 제자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그 교회는 존재이유를 점점 상실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는 먼저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배운 것을 삶으로 살아야 하며, 더 나아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 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삶으로 삼고 또 무엇을 전수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본받고자 힘쓰고 그 분이 걸어가신 길을 함께 따라 가는 것을 “예수님을 닮아간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제자가 되어가는 과정이며, 점점 시간이 흐르며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삶으로 변화되는 사람들이 많아 질 때에 그 교회는 존재목적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제자를 만들기 위하여 ‘오라’ 하지 말고 너희가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예수 믿는 사람들을 “우리 교회로 오라”고 초청하는 것은 전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똑같은 성도가 자리만 이동하는 것이지 잃어버린 영혼 하나가 새로이 하나님께로 나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싫어하는 사람,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이 전도의 시작이며, 이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세례를 주어” 하나님 백성 삼는 것이 진정한 ‘전도’입니다. 안 믿는 사람과 아무리 친해져도 그것으로 그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문제없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 그 삶에 깊이 들어가 보면 아픔과 상처투성이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여 영접하게 하고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여야 합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예수님을 만나면 치유되고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례를 받고 난 이후에는 자기중심적으로만 살아오던 삶을 예수님을 본받는 삶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의 시작은 이기적인 욕심이 항상 그 시발점이기에, 욕심이 아닌 사랑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나는 죽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시는~” 삶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때에 야만 그리스도인의 참된 행복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려울 것도 아닌 이유는 처음에는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 자체가 타는 불속으로 죽으러 들어가는 모양새이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질 때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예수님처럼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맛볼 수 없는 참된 행복과 기쁨이 그 안에 있어 힘들어도 힘든 줄을 모르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조직도 잘 되어 있고 좋은 프로그램도 많아서 숨 쉴 새가 없을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참 제자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오히려 영적으로 지쳐가고 탈진하는 교회안의 교인들을 보는 것은 거리에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는 것처럼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제자를 만드는 방법에만 치우쳐서 근본적으로 참 제자를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양은 같은데 진짜가 아닌 것을 ‘짝퉁’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겉은 그리스도인 인 것 같지만 속사람은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이 지금의 교회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아픔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사모하는 성도들은 넘쳐 납니다. 그러나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친 아브라함은 찾아보기가 드문 것이 지금 교회의 현 주소입니다. 흔히 가장 믿음이 좋은 사람은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진짜 좋은 사람은 ‘사도들과 바울 그리고 스데반 집사님처럼’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죽이면 죽으리라는 자세로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 순교자들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느 정도까지 믿고 있습니까?
인자하신 하나님, 복을 주시는 하나님, 형통의 하나님~!,
아니면 더 나아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고 따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불속에라도 들어 갈 수 있는 믿음의 자리까지 입니까?
우리들이 섬기며 헌신하고 있는 교회는 이리와 늑대들이 우글거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처음에는 늑대와 여우로 출석하였어도 시간이 점점 지나며 온순한 양들로 변화되어 가는 새 삶의 축복이 여러분들 안에 주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또한 사도들과 같은 참 제자들을 세울 수 있는 교회의 구조는 신약성경에 기록된 초창기 교회 즉 가정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교회의 건물도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도 없어 “가정에서 가정으로, 집에서 집으로” 다니며 복음이 전파되어 갔음을 성경을 통하여 확인하는 일은 참으로 쉬운 일입니다. 주님의 증인들은 이처럼 가정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3년이나 삶을 함께 살아가며 본을 보여주고 따라 행하게 하는 가르침을 통해 제자들이 세워진 것처럼 제자들과 성도들이 함께 어울려 삶을 살아가며 제자들의 영향력에 자신들을 맡긴 성도들이 제자 되어가는 것으로 나타났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성경에서「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의 수는 5천명이 넘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장에 마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한 성도의 수는 120명밖에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은혜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름떼처럼, 벌떼처럼 몰려다니던 그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실 때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구경하는 사람, 참석하여서 놀라운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과 다만 좋은 말씀으로만 여겼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정작 십자가를 지시던 당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외치던 부류와 같은 사람들이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처럼 대중들을 향한 설교와 성경공부는 우리에게 감동도 주고 새로운 결심도 하게 하지만 순교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제자를 만들어 내지는 못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찾던 의인 열 명을 지금 이 세대의 교회에서 찾기를 원하십니다. 단순히 복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힘을 빌어 보고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고자”하는 참 제자를 세워가는 교회를 성도를 찾고 계십니다. 제자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삶을 나눌 때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열두 명을 뽑아서 3년 동안 생활을 같이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를 만드신 방법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는 분들이 교회에 처음 나와서 예배를 드려보면 마치 ‘이국땅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미 예수 믿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구조와 틀에 맞추어 너도 이 틀에 맞추라고 강요를 당하는 것 같고, 강단에서 들려지는 설교는 헌금강조와 희생과 헌신만을 강조하기에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이 든다’하는 분들도 있다 합니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평소에 살던 자신의 삶과 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과 너무나도 큰 간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가정교회의 모델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전도하는데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성도들 몇 사람이 가정에 모여 식사도 함께하고, 도울 것이 있으면 함께 돕고, 아프고 슬픈 일들은 함께 아파하고 함께 슬퍼해 주며 교회에 나오기를 원하시는 분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채워주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가정에서 “어떻게 하면 저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나도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기도록 삶으로 먼저 보여주는 증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도 행복의 삶에 초청하는 것이 진정한 전도입니다.
예수 믿는 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출석과 예배의 참석을 뛰어 넘어 주님의 참 제자가 되어 먼저 자신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기쁨과 참 행복을 먼저 누리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이 주님이 주시는 기쁨의 천국잔치에 초청하여 함께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불러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며 우리에게 거룩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먼저 “제자가 되라”는 것이고 둘째는 “제자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부여잡고 교회와 전문 목회자의 도움을 통하여 삶의 문제들을 치유 받고 회복하여 주님의 참 성도가 되고, 더 나아가 다른 지체들의 사람과 돌봄 속에 믿음이 자라나 참 제자가 되어, 다른 지체들을 돌보는 사랑의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 가고 있다’는 것이고 예수님을 닮아 갈 때에 이전 자연인 일 때는 감당 할 수 없었던 일도 능히 감당하는 자가 되어 그 삶에서는 이해와 용서 그리고 사람의 힘이 샘솟아 나와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이러한 일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룹으로 어울리는 전통적인 구조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신약교회 즉 원형교회인 가정에서 함께 부름 받은 사람들이 주님이 보여주신 삶을 둘 셋이 모여 삶을 함께 나누며, 서로 돕고, 서로 세워가는 생활공동체를 이룰 때 가능하여 집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정교회라 하고 이러한 전도를 오이코스전도 즉 가정 초청 전도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실 분들(VIP)과 교회와의 넓은 간격 속에 인도자 가정이 징검다리(작은 교회)가 되어 먼저 살아가는 삶으로 본을 보여주고, 생활을 함께 나누며 교회와 예수님을 조금씩 알아가다 교회에 출석하여 정식교인이 되면 첫 출석부터 외톨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전 가정에서 함께 모이던 식구들이 사랑으로 돌보고 섬김으로 배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온전한 새신자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디자인 하신 교회는 지금의 교회와는 많은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하여 우리교회는 전통적인 교회관을 이제는 쇄신하여 성경적인 교회로 세워가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 중직 되신 성도님들과 성경적인 새로운 교회를 희망하시는 성도님들께서는 지금의 교회도 좋지만 더 좋은 예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교회를 함께 세우기 위하여 뜻을 모으고 힘을 모아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 취할 것은 취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가 우리교회가 되도록 함께 힘써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 날로 날로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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