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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성경의 발전 과정

하나님아들 2022. 10. 6. 23:41

히브리어 성경의 발전 과정 - 없던 모음부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문화 창작품이 한글입니다.

한글은 세계의 그 어떤 문자들보다도 구성력에 있어서 탁월합니다.

한글은 세종대왕과 집현전의 학자들의 오랜 각고 끝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한글의 우수성은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모음부호에 있습니다.

한글은 대표적인 표음문자입니다.

표음문자는 모음부호가 절대적입니다.

표의문자와 달리 표음문자는 단어의 구성력이 모음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여기 “ㄱ”과 “ㄷ”이 있습니다.

여기에 모음이 어떻게 붙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집니다.

“ㅜ”를 모두에 붙여 보십시오.

구두가 됩니다.

비로소 자음은 의미를 갖는 단어가 됩니다.

 “ㅗ” 를 붙여 보십시오.

고도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자음은 구두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단어가 됩니다.

이제는 “ㅜ”와 “ㅗ”를 하나씩 붙여 봅시다.

구도가 됩니다.

이처럼 자음은 모음과 합쳐져야만 비로소 의미를 갖는 단어가 됩니다.

그런데 자음만 나열된 문서를 보면서 읽을 수 있는 집단이 있다면 어떻습니까?

그것은 분명 학습의 결과입니다.

그 문서에서는 어떻게 발음해야 한다는 것을 학습 받은 집단만이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역시 한글과 마찬가지로 표음문자에 속합니다.

따라서 히브리어도 모음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히브리어가 초기에는 모음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들 가운데 모음부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공존하는 이유입니다.

당연히 모음부호가 없는 히브리어 사본이 오래 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성각문자는 초기 사제집단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점차 이집트가 문화국가로 진입하면서 일반 문서의 기록 필요성이 대두됩니다.

이에 따라 문서기록을 전담하는 서기관 계급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도 사제집단과 마찬가지로 특권계층이었습니다.

사제와 서기관 양성을 위해 학교를 필요로 했겠지요.

특권층을 형성한 그들의 독점력은 대단했습니다.

이집트 문자는 상형문자에서 시작하여 효과적 기록을 목적으로 한 흘림체의 글자본으로 확대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결국 특권계층의 독점력의 결과입니다.

이집트의 특권계층이 궤멸이 이루어집니다.

로마제국 시절 기독교의 이교도 문화 말살정책에 따른 결과입니다.

결국 고대 이집트 문자는 사용 불능이 되고 맙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이 콥트 기독교에 남아 있는 고문서 군입니다.

 

자, 다시금 이집트 언어로 시작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언어는 그 민족의 문화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인의 언어를 살펴보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먼저 그 문화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지요.

따라서 히브리 민족이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살펴봅시다.

그럴 경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두 지역의 상이한 문화적 배경이 섞여 있는 것이 히브리 문화의 특성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월력(月曆)일 것입니다.

히브리 월력은 참으로 독특합니다.

즉 태양력과 태음력이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월력에서도 일정부분 태음력과 태양력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월력만큼 철저하게 뒤섞여 있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히브리인의 독특한 삶의 정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언어적 배경은 분명 아람계의 언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음부호가 없는 특이한 구조는

아무래도 이집트의 문화적 배경에서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집트어는 제관과 서기관이라는 집단에 의해 독점되고 있었습니다.

그 집단은 계속적인 독점을 위해 효과적인 교육체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바로 학교이지요.

제관과 서기관의 자제들만을 따로 세워 교육한 것입니다.

세습된 교육을 통해 문자의 신비감은 위력을 떨칩니다.

따라서 히브리인들 역시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자연스럽게 습득했을 것입니다.

제사장 집단을 위시한 지배계층의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한 수단이 모음의 전승입니다.

그렇게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은 모음부호가 없는 자음만의 문서였습니다.

결국 자음으로 기록된 문서를 보고 어떻게 발음해야 하느냐의 숙제가 남았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교육받은 집단의 몫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제집단은 구전(口傳)을 통한 전승방식을 택합니다.

그것은 다분히 이집트의 제관들의 학습과 닮았습니다.

 

물론 히브리인들의 구전방식은 특별합니다.

왜냐하면 특정 집단에게만 고집한 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아예 모든 세대와 계층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으로 암기하는 방식의 학습을 받습니다.

소위 구전에 따른 교육이 철저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구전은 특권계층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원동력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집과 관련된 직임이 세습되었습니다.

예배행위가 애초부터 회중들에겐 일정부분 원천봉쇄 된 구도입니다.

제사장을 비롯한 제사 관련 직임이 세습되었습니다.

구전의 내용에 세습에 관한 규정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사를 살펴보십시오.

이미 그 출발부터 제도가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천의 과정이 생략되었다는 뜻입니다.

아예 그 시작부터 종교의 제도적 특성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는 제사가 중심을 이룹니다.

그 제사를 위해 제사장을 비롯한 성전의 직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종교를 특징짓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움직이는 성전입니다.

우리가 성막이라 부르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의 종교는 사실 공간개념으로서의 성역화가 생략된 구조입니다.

성전보다 성막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표현되는 성막의 이동을 보십시오.

성막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점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뜻이 성막의 이동여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이동과 정착의 반복을 통해 성막의 일꾼이 조명됩니다.

개인적 일들이 철저하게 차단된 전적 헌신만이 이동과 정착을 용이하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 집의 일을 하다가 구름기둥이 높이 떴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이동명령은 떨어졌는데 성막으로 달려오기가 힘든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즉각적으로 이뤄져야할 이동인데 어떻게 지체할 수 있겠습니까?

성막의 구조는 이처럼 전적 봉사자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특화된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는 구조입니다.

율법은 레위인들로 하여금 성전 봉사를 감당하도록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예배관련 제도는 구전이 자연스럽습니다.

특정된 집단만을 위한 교육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따라서 히브리어의 모음부재 사실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성전예배를 위해 구별된 집단에 의해 성경의 보존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음만의 문서이지만 충분히 그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읽는다는 것은 해석을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사제집단이 존재하는 한 적어도 히브리어 본문을 읽지 못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차세대 사제집단을 위한 그들만의 교육 체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위기가 닥칩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사제집단은 대거 포로가 됩니다.

이른바 바벨론 포로기의 일입니다.

다행히 바벨론 포로기의 상황은 회당제도의 정착과 맞물려 있습니다.

새로운 지도자 그룹이 등장하게 됩니다.

서기관을 비롯한 랍비의 출현입니다.

물론 서기관은 과거부터 존립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역할이 확대되고 인원도 대거 늘어납니다.

회당에서의 교육과 교육교재인 말씀을 필사(筆寫)하기 위해서입니다.

회당의 설립으로 이스라엘의 교육 체제가 보편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회당은 성전과는 달리 다양한 곳에 설립이 가능합니다.

이 회당이 예배와 교육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성전은 재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당의 예배에 익숙하게 된 유대인들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의 예배행태는 이원화됩니다.

곧 성전중심의 예배와 회당중심의 예배입니다.

이 두 곳의 예배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여전히 속죄의 자리는 오직 성전뿐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도외시하는 예배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회당예배를 통해 성전예배와는 다른 경험을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전예배는 그들만의 예배입니다.

회중들은 철저하게 수동적인 위치에 놓입니다.

솔직히 회중들이 해야 할 일은 최소화되어 있습니다.

예배집례의 독점은 전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런데 회당예배는 달랐습니다.

얼마든지 회중들의 적극적 참여가 가능한 제도였습니다.

물론 예배의 일정부분은 여전히 특정 그룹의 지도자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도자의 자리에 그 누구라도 오를 수 있었습니다.

훈련을 잘 받고 준비만 되면 말입니다.

제사장과는 달리 항구적으로 세습되는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으로서의 훈련을 감당하면 됩니다.

장로가 되면 예배인도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제도는 역사가 되고 전통이 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보편주의로 출발한 회당예배도 결국엔 특정 집단의 지배아래 놓이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사제집단에 의해 독점된 성전예배와는 달랐습니다.

그 후로부터 말씀의 독법과 해석의 문제들이 전면에 나타나게 됩니다.

회당을 중심으로 학파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제집단에 의한 단일한 독법이 장로들에 의해 다양한 독법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어떻게 읽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설전이 오고갑니다.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학문의 전성기에 다듬어진 다양한 해석을 집대성 합니다.

그것이 미드라쉬와 미쉬나, 그리고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탈무드입니다.

이스라엘의 정신문화가 오롯이 녹아있는 이 모두가 히브리어 성경의 모음부재에 기인했다고 하면 어떨까요?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독법의 다양성은 학파의 전성시대를 낳습니다.

 

최소한 언어의 혼란기가 오기까지 그러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숱한 격동기를 통과합니다.

심지어는 국가의 멸망이라는 대위기도 경험합니다.

성전은 파괴되고 제사장 집단은 포로가 됩니다.

제사를 위한 정상적인 교육 시스템이 가동될 리가 없습니다.

자연스레 제사 관련 전승에 제동이 걸립니다.

연결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이번의 위기는 치명적입니다.

왜냐하면 사제집단이 전멸했기 때문입니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필자의 <요한복음 살펴보기>의 유대교의 형성과정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은 히브리어 문자 해독입니다.

자음만으로 된 글을 보면서 모음을 첨가하여 읽는다는 것은 고도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 교육의 전승에 틈새가 생긴 것입니다.

독법이 흐트러진 것입니다.

독법이 달라지자 말뜻이 달라졌습니다.

 

이는 엄청난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문자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읽을 수 없다면 문제가 됩니다.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이 그러했습니다.

독법의 혼란으로 온전한 뜻을 파악하기 어렵게 됩니다.

위기입니다.

더는 지체하다가는 성경을 읽을 수 없는 위기가 올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를 위기를 예감하며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위기의식을 느낀 학자들에 의해 뒤늦게 히브리어 모음이 계발됩니다.

이렇게 모음부호 계발에 앞장 선 학자들을 “맛소라 학파”라 일컫습니다.

그리고 맛소라 학파에 의해 만들어진 모음부호가 붙은 사본을 맛소라 사본이라 말합니다.

 

맛소라 학파에 의해 히브리어 성경은 색다른 맛을 갖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어 사본은 두 종류입니다.

즉 모음이 없는 것과 모음부호가 있는 사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히브리어 사본은 모음의 유무에 따른 두 종류가 있습니다.

우선은 그렇게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되기 까지의 긴 역사적 상황들을 자세하게 설명하진 못했습니다.

성막에서 성전으로, 성전파괴에 따른 회당제도 확립의 과정들은 추후 설명할 것입니다.

이 단락에서 기억할 일은 히브리어 성경이 원래 모음부호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위기과정을 통과하며 모음부호가 계발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음부호가 붙은 히브리어 성경이 있습니다.

반면 모음부호가 없는 히브리어 성경도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 두 개의 사본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오래 되었을까요?

물론 모음부호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자음만의 사본필사는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그 일은 그렇게 자연스런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적극적으로 모음부호를 붙인 성경필사가 행해 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음만의 사본이 비교적 더 오래 된 사본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948년 흥미로운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른바 사해사본의 발굴입니다.

사해의 인근인 쿰란 동굴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쿰란사본이라고도 부릅니다.

쿰란사본은 수많은 성경학자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사본을 보는 이마다 흥분했습니다.

그 이유는 쿰란사본은 모음부호가 없는 사본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연대측정의 결과는 더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갑니다.

그 사본들은 기원전 문헌이 분명했습니다.

 

고고학계는 초긴장합니다.

당시 발견된 성경사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헌은 8백년대의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모음부호가 붙어있는 사본이지요.

그런데 모음부호가 없는 사본이 발굴된 것입니다.

두 사본의 시대적 차이가 자그마치 천년 정도나 됩니다.

그러니 학계가 초긴장하게 되었지요.

성경을 단지 인류의 문학작품의 하나로 치부하는 무신론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번 기회에 두 문헌을 상호 비교하여 불일치점을 찾아내어 공격하려고 시도합니다.

학자들은 면밀하게 두 사본을 비교하며 일치와 불일치를 찾아냅니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놀랍게도 구약성경 전체 가운데 열 개도 안 되는 단어에서 불일치가 나왔습니다.

그것도 필사과정에서 잘못 표기했을 가능성이 있는 몇몇 자음들을 제외하면 정교하게 일치합니다.

성경이 단순히 인간의 작품이 아닌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말씀임을 증언한 것입니다.

 

성경은 오랜 세월 단일 언어인 히브리어만의 사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경의 가치를 알고 다른 언어로 번역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헬라어로 된 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칠십인 경이라고도 부릅니다.

그 이유는 칠십 명의 학자들에 의해 번역되었다는 전승에 따른 것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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