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이 인간과 다른 세 가지by Scott Swain
“ 하나님의 아버지되심과 피조물인 인간의 아버지됨 사이에는 결코 일대일 비교가 불가능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이 독특하고 초월적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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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주시며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라고 하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따라서 기독교 신학의 목표는 성경적 서사를 삶에 더 유연하게 적용시킴으로 기도와 선포 그리고 찬양을 통해 아버지의 이름을 더욱 더 거룩하게 높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높이는 법을 올바르게 배우기 위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아버지되심과 그 외 다른 모든 형태의 아버지됨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근본적이며, 독특하고, 또 초월적이다. 따라서 이런 사실은 우리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 아버지의 이름을 어떻게 거룩하게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1.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근본적이다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아버지가 되는 다른 모든 피조물 이전부터 존재한 첫 번째 형태다. 피조물이 존재하기 전부터 즉, 피조물 아버지와 피조물 아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아버지와 독생자는 성령과의 교통 안에서 영원하고도 또 상호 교환적인 기쁨 속에 거하셨다(요 1:1, 17:24-26). 더욱이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이 존재의 순서에서 최초인 것처럼 의미의 순서에서도 근본적이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 아버지는 오로지 하나님의 신성한 아버지되심을 본받으며 그 순서는 바뀔 수 없다. 그분은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엡 3:14-15)다. 또한 모든 피조물의 아버지됨은 그의 신성한 아버지되심을 닮은 형상이다(창 5:1-3).
2.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독특하다
하나님이 아버지되심은 피조물의 아버지됨을 따라 만들어진 게 아니다. 또한 하나님이 아버지되심이 피조물의 아버지됨을 포함하는 더 큰 부류의 아버지됨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거룩하고 구별되며 또한 유일무이하다. 유일신이신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피조물이 만들어내는 아버지됨 또는 신과 피조물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아버지됨이라는 측면에서 정의될 수 없다. 하나님이 아버지되심의 의미는 오로지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으로만 결정된다. 그는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다(출 3:14). 그의 아버지되심은 유일무이하다(고전 8:6; 엡 4:6).
3.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초월적이다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이 근본적이기에 모든 존재의 순서에서도 처음이고 또한 모든 의미의 순서에서도 처음이다. 또한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독특하기에 아버지에 관한 일반적인 외부 표준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모든 생물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것이다. 피조물의 아버지됨과는 달리,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종속적이지도 않고, 복합적이지도 않고, 또 변화하지도 않으며, 거기에 더해 제한받지도 않고, 또 일시적이지도 않다.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자존적이고 단순 불변하며 또한 무한하고 영원하다. 빛나는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다른 모든 형태의 아버지됨 '위에' 머문다.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우리의 언어 그리고 우리의 하나님
앞서 논의한 내용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아버지되심과 피조물 형태가 보이는 아버지됨 사이에 닮은 점을 보게 되는데, 중요한 사실은 후자가 전자의 패턴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또한 동시에 하나님의 아버지되심과 피조물인 인간의 아버지됨 사이에는 결코 일대일 비교가 불가능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이 독특하고 초월적이기 때문이다.
앞선 내용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말할 때 사용하는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아들과 성령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실 때, 그분은 몸을 굽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신다. 그는 천사의 언어가 아닌 인간의 언어로 “사람처럼”(신 1:31; 8:5) 말씀하신다. 더욱이 그렇게 함으로써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고유한 언어를 사용하여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초대하신다. 그 결과 우리는 원래 아람어와 그리스어로 쓰여진 말, “아바! 아버지!”(갈 4:6)를 우리 입술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자녀를 사랑하시므로 스스로를 낮추어 당신의 자녀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시며 또한 그들도 자신들의 언어로 하나님께 이야기하도록 초대하셨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결코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인간의 언어로 이야기하시는 은혜를 근거로 도리어 오만방자하게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이 피조물의 아버지됨에서 유래되었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동시에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마치 초월적인 의미가 들어있지 않은, 공허한 어린아이의 말장난처럼 간주해서도 안 된다.
비유적 이야기는 거룩한 이야기다
성경이 평범한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여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 또한 성경의 인도에 따라 기도와 선포, 그리고 찬양을 하며 우리가 인간의 평범한 언어로 아버지 하나님을 부를 때, 사실상 우리는 일종의 '비유적' 방식을 사용한다.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워낙 독특하고 초월적이기 때문에 비록 피조물의 아버지됨을 통해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설명하더라도 결코 '딱 한 가지(univocal)' 방식으로 가능하지 않다. 또한 피조물의 아버지됨이 비록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독특하고 초월적인 아버지되심을 희미하게나마 닮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말할 때 결코 '모호한(equivocal)' 방식으로도 말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아버지되심과 모든 피조물의 아버지됨 사이의 유사성과 비 유사성을 인정하면서 '비유적으로' 말한다.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비유적으로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독생자와의 관계 그리고 창조주이자 구속주로서 우리와의 관계를 근거로 그분이 참 아버지임을 고백한다. 우리는 또한 그가 모든 지혜(시 145:3)와 모든 말(느 9:5)을 능가하는 방식으로 기본적이고 독특하며 또한 초월적인 의미에서 아버지되심을 고백한다.
그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 6:9)다. 그의 이름은 너무도 대단하기에 찬양받아야 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엡 1:3).
원제: 3 Ways God’s Fatherhood Is Different Than Ours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비유적으로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독생자와의 관계 그리고 창조주이자 구속주로서 우리와의 관계를 근거로 그분이 참 아버지임을 고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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