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속에 나타난 설교
주재용 박사/한신대학 학장
1.교회의 기원과 설교
교회사 속에 나타난 설교에 관하여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의 기원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교회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듯이 교회의 태동은 성령의 사건이고 성령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라면 교회의 생일은 오순절이다. 교회는 바로 성령의 성육신, 역사화 또는 현실화를 말미암아 시작되었다.
교회는 성령의 코이노니아이다. 교회를 성령의 코이노니아라고 이야기 할 때에 교회는 성령의 나눔, 성령의 참여, 성령과 함께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나눔이나 참여나 함께함 등은 결국 "증언"으로 진행된다. 왜냐하면 성령의 코이노니아는 결국 증언을 위한 코이노니아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증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 각 지역의 방언으로 증언하는 제자들을 보고 놀라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방언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제 3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되어 그 지역 사람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성령 사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이었던 것이다. 그때문에 성령의 제 1차원적인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설교도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으면 설교는 설교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그것은 너와 나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으면 이해도, 함께 나눔도, 친교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의 제 1차원적인 중요 목적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야 된다는 점에 있다.
다시 정리해보면, 교회의 기원은 성령에 있으며, 이러한 교회가 해야 할 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증언이고, 그 증언은 성령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순절 사건을 통하여 설교의 전형적인 유형을 하나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사도행전 2장 14절 이하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이다. 이 설교는 현재 문헌상으로 남아 있는 설교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설교이다. 이 베드로의 설교가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사실은 이 설교가 분명히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성령받은 사람들이 첫 번 설교를 하는데 있어 그 설교의 언어가 자기의 언어가 아니고 상대방의 언어였다는 점, 즉 방언이 등장했다는 점은 중요한 사실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설교를 할 때는 반드시 자기 언어가 아닌 상대방의 언어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신앙의 통용어보다는 그들이 쓰는 용어를 사용하여 학식이 낮은 자들에게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지식인들에게는 그들의 언어로 각각 맞추어 증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설교의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베드로의 설교가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 주는 중요한 교훈의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오순절 사건은 구약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과 대칭되는 하나님의 구원사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벨탑에서는 인간의 언어를 혼란케 했지만 그 혼란한 언어를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끈 것은 오순절 성령의 사건인 것이다.
베드로는 그의 설교의 내용을 예수 사건에 초점을 맞추었다. 신학적으로 예수 사건과 그리스도 사건은 내용상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설교의 전반부는 예수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 그 핵심을 "너희가 죽인 예수"에 두고 있다. 즉 "너희가 죽인 예수"는 분명히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를 의미하며 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인간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인간의 저항적 자세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적 행동이었다. 이 구속적 행위 속에 등장되는 것이 그리스도 사건이다.
이같이 성령을 받은 후 베드로와 제자들이 행한 설교 의 기본 구조는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십자가의 부활의 구조였던 것이다. 오늘날의 설교도 이와 같이 성령의 감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겠고 또한 십자가의 사건은 반드시 부활의 사건으로 결론 내려져야 할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희망, 삶의 용기, 존재의 용기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이어 질 수 있으나, 베드로의 설교 속에서는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이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질문했을때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 회개하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설교의 마지막은 사람들에게 회개를 요청하는 것이다. 즉 회개가 부활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령은 살아 있는 영이다. 살아 있는 영이라는 말은 성령은 시공간에 따라서 자기의 뜻대로 사건을 일으키시는 분이란 의미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획일적으로 이해하여서는 안된다. 성령은 요한복음에 표현되었듯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자유의 영이기에 성령을 어느 특정한 틀에 묶어 놓아서는 안된다. 성령 운동이란 말을 성령주의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도 성령주의라고 하는 경우 성령을 이데올로기화 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성령은 획일적인 모습으로, 하나의 이념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사건으로 우리들에게 임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연결하여 우리는 왜 베드로가 예수 사건, 그리스도 사건, 회개를 강조한 설교를 했는가의 문제를 살펴볼 수 있다.
이 문제는 결코 그 당시의 상황을 떠나서는 이야기 되어질 수 없는 문제이다. 당시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청중들은 대부분 예수나 그리스도 사건에 대해서 잘 모르던 유대인들이었다. 때문에 베드로에게 임재하셔서 역사하시던 성령은 당시의 이러한 상황을 아시고 이에 맞추어 예수와 그리스도 사건 그리고 회개라는 설교를 하도록 그를 인도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계시를 받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추상적이거나 철학적 이념으로서 성령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아니요,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응답적으로 받아들인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움이나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설교한다는 것은 반드시 그 설교가 역사성을 띤 설교라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예수님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복음을 다르게 비유하여 증거하셨고, 구약의 훌륭한 예언자들을 통하여 나타나신 성령의 역사도 각 예언자들이 처했던 역사적 상황에 따라서 그 말씀의 내용과 계시가 각각 다른 강조점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설교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개념 나열이 아닌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여 선포될 때만이 성령의 사건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베드로의 설교는 성령과 설교의 올바른 관계성을 보여 주는 훌륭한 실례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2.초대 교회에 있어서의 성령과 설교
앞에서 언급한 신약 성서의 원시 기독교 시대를 1세기까지로 잡는다면 초대 교회 시대는 대개 2세기에서 6세기까지를 의미한다. 그러면 초대 교회에 있어서는 성령과 설교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초대 교회가 어떠한 상황 속에 있었는가 하는 배경을 살펴 보아야 한다.
당시 초대 교회는 가혹한 박해 속에 있었다. 초대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보다도 어둠과 죽음의 상황을 딛고 일어선다는 의미를 지닌 부활절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는 사실은 이와 같은 박해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초대 교회의 예배 원형 가운데 말씀뿐만 아니고 성찬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도 마찬가지 경우로 봐야 한다. 즉 초대 기독교가 그 박해속에서도 공동체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말씀, 설교, 율법에 대한 해석 등도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함께 먹고 마시는 이 성찬식이 절대적인 작용을 했던 것이다.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는 교회 생활의 여러 면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는 성찬식을 통한 성령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이 박해 상황이라는 대전제를 이해하고 초대 교회 설교의 몇 가지 특징을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변증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
초대 교회가 박해를 받은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 정치적 국가적인 박해의 핵심적인 내용으로는 기독교가 황제 숭배를 거절했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기독교는 이러한 정치적인 박해에 대해서 변증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철학적인 차원에 있어서도 많은 박해 요인이 있었으므로 교회는 황제와 일반 사회들과 철학자들에게 변증의 설교를 해야 했다. 때문에 이 변증적 설교의 내용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다도 비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을 해야 할 것은 대표적인 변증가 저스틴 마터가 기독교를 변증하는 글을 쓰거나 설교를 할 땐 항상 자신의 설교나 글을 대하는 상대방의 어휘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만일 그가 소위 기독교적인 전용 언어를 그 언어권내에 깊이 들어와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사용했다면 그것은 분명 일방적인 언어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 신자들의 증언의 내용을 아주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이다. 그는 서커스단의 어릿광대 이야기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어느 날 한 마을에 서커스단이 와서 공연을 하는데 이 서커스단의 어릿광대가 자기 순서를 준비하기 위해서 분장을 하던 중에 서커스 천막 안에 불이 났다. 서커스단이 동네 마을과 가까운 곳에 있었고 거기서부터 마을까지는 짚단들로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일단 불이나면 그 짚단을 태우며 동네까지 번질 위험이 있었다. 이를 안 서커스단 주인은 분장한 광대들을 급하게 마을로 보내며 이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했다.
그러나 막상 이 광대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가서 불이 났으니 와서 불을 좀 꺼달라고 호소했을 때, 동네 사람들은 분장한 광대들의 말을 믿지 않으며 생각하기를 '서커스 공연에 사람이 하도 오지 않으니까 이런 식으로 우리를 동원시키려는 구나' 하며 계속해서 웃고 박수만 보냈다. 이 광대가 눈물을 흘리며 "내 말은 정말입니다" 라고 호소하면 할수록 모인 사람들은 더욱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그러는 사이에 서커스 천막은 물론 그 동네까지도 다 불타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바로 현대의 목회자들이 세상을 향하여 설교를 하는데 있어서 세상이 하나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과연 상대방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적어도 증언이라고 하는 것이 상대방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초대 교회의 설교의 내용에서 우리는 설교를 할 때는 어떠한 어휘들을 사용해야 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초대 교회 설교의 내용에 있어서 중심이 되었던 것은 철저한 윤리 생활의 강조였다. 이에 대표적인 운동이 2세기 몬타니즘 운동이다. 몬타니즘 운동은 그 당시 기성 교회가 권력 지향적으로 흘러 형식화되고 획일화되어 열정적 감동이 사라져 힘을 잃어가고 있을 때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운동이다.
이 운동은 이교 사제였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몬타누스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그는 성령의 감동이 메말라버린 교회 안에 성령의 바람을 다시 불러 일으키려 했으며 이를 위하여 핵심적으로 강조했던 것이 엄격한 윤리적 생활이었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 물질적인 욕망을 모두 털어버릴 수 있도록 재산의 사유화를 철저히 금지시켰던 것이다. 물론 후에 몬타니스트들이 모여서 페푸자라고 하는 곳에 새 예루살렘 도시를 건설하고 거기에 들어오는 사람들만이 하나님 나라의 재림을 맞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점에서는 문제의 여지가 있으나 그들은 거기에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철저한 공유 재산 체제를 형성하려 했던 것이다. 개인의 소유를 철저히 금지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정결하게 하고 예배드리는 등 중세 수도원에서나 볼 수 있던 금욕적인 엄격한 윤리 생활을 했다. 이것은 역으로 당시 초대 교회의 신자들 또는 초대 교회의 성직자들이 점차적으로 물질적 또는 비윤리적 생활로 흘러갔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현대의 윤리 문제를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에릭프롬의 작품 중에 "소유냐, 존재냐"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설교는 존재에 관한 설교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소유에 관한 설교이어야 하는가?" 이 거대한 물질 문명 속에서 현대인들은 소유를 향한 관심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은 존재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의 설교의 관심은 이렇게 소유로 치닫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존재"의 윤리를 인식시키는 것에 두어야 할 것이다.
몬타니즘과 연결되어 초대 교회 설교가 또 하나 가종하고 있는 것은 종말론적인 내용이다. 신약 성서의 종말론은 두가지 차원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미래적 종말론이고 둘째는, 실현된 종말론이다. "너희들이 죽기전에 내가 오겠다"하신 예수님의 묵시 문학적인 신양 성서의 표현을 원시 기독교인들은 사실상 어떤 점에서는 문자적으로 믿었다. 또한 연대적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그래서 자신들이 죽기 전인 50년 이내에 예수님이 흰옷 입고 구름 타고 오시리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직접 만난 1세대가 지나고 2세대가 지났는데도 이것은 이루어지지 않자 초대 교회 지도자들은 굉장히 당황하게 되었다. 종말에 대한 의식은 점차 퇴색되어 갔고 그로 인해 초대 교인들은 고난 앞에서 무기력하게 될 우려가 생겼다.
몬타니즘을 중심으로 하는 성령 운동가들은 이렇게 초대 교회의 퇴색된 종말 의식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종말론에 대한 설교를 해야 했다. 초대 교회는 다시 종말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종말론에 대한 의미를 부각시켜 신학적인 정의를 내리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 였다.
종말론적 내용의 설교는 고난의 상황에 있어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유대 말기의 메시야 대망 사상이 이를 보여 주고 있으며,정치적 역사적 위기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구약의 예언자들이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예언한 사실에서도 이러한 중요한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종말론에는 연대기적 개념이나 시공간적인 개념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몬타니즘이 비판을 받은 것 가운데 하나도 페푸자라고 하는 구체적인 공간을 지정해 놓고 그곳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주장한데 있었으며 그로 인해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던 것이다.
올바른 종말은 사실상 현재이고, 영원하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가 종말이다는 말은 현재와 미래가 언제나 긴장 상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종말론적인 설교를 한다는 것은, 현재가 나에게 있어서 마지막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설교학을 처음 배울 때 설교학 교수님이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설교를 할 때는 이것이 내 일생에 있어서 마지막 설교라는 마음 가짐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강단에 서라"는 말씀이었음을 기억한다. 설교는 목회자의 신학의 총체이다. 매주일 어디서나 하는 설교이지만 그 한 번의 설교가 그의 생애에 있어서 마지막이 된다해도 여한이 없을 정도의 자세로 설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종말 의식에서 하는 설교의 내용인 것이다.
셋째로, 초대 교회 설교는 기독론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이 기독론적인 성경은 다분히 교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도교부, 헬라교부들은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물음부터 시작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설교는 기독론적인 성격을 내포할 수밖에 없었다. 교리사 연구에 있어서도 제일 먼저 문제된 것은 예수가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는 가운데 에비오니즘이라든가 가현설과 같은 이단 사상이 생겨나는 등 이 기독론을 정립하는데 100여 년간의 기간이 걸렸으며 그러는 중에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 갈래의 기독론이 난립하자 또한 일치를 위한 설교가 설교의 중요한 내용으로 등장했다. 신약 성서의 고린도서에서도 분열의 상황을 볼 수 있듯이 초대 교회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설교 가운데 일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주제였다. 오늘날도 세계 교회 운동이 세계 교회의 일치를 이야기하고 있고 이와 같은 움직임이 초교파적인 모임을 통해 모색되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은 2,000년의 역사를 두고 계속되어 왔음을 초대 교회의 성찬식 기도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각각 사방에서 흩어져 있다가 여기와서 한 개의 떡과 포도주 한잔을 먹고 마시듯이 우리로 하나되게 하소서."
3. 중세에 있어서의 성령과 설교
초대 교회를 박해의 역사였다고 한다면 중세는 소위 교권 토쟁의 역사, 지배 의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중세의 특성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중세에는 지배적 성격을 띤 설교, 또는 교황이 자기의 절대권을 내세우기 위한 설교 강론, 미사와 같은 것들이 이루어졌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체제를 그대로 본받게 되었다. 이같이 교회 체제가 지배 지향적 국가체제를 따르게 되자 교회는 지상으로 내려와 지배 이데올리기화 되어갔다. 그레고리 1세나 헨리 4세가 투쟁한 그레고리 7세, 또는 "내가 유일한 거룩한 자" 라고 주장했던 보나파티우스 8세와 같은 사람들은 그들의 권위나 교회의 권위만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권위를 최고도로 올려놓기 위해서 설교의 중요한 내용을 신론에 맞추어 강조하였다. 신은 지배, 통치,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이렇게 무서운 하나님의 대리자가 교황이므로 교회는 절대권을 가지고 있다고 설교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은 누구도 면할 수 없으므로 면죄부라도 사야되는 그러한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서 신에대한 형벌, 신에 대한 무서운 이미지를 강조했다.
이러한 설교를 나는 악령에 의한 설교라고 보며 악령에 의한 설교는 오늘날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스도를 지배적 그리스도 이미지로 부각시킨다거나, 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신앙을 유착시키는 설교라든가 또은 어떤 특정한 정부체계에 기독교를 유착시키는 설교 등은 바로 이런 악령에 의한 설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악령적인 설교를 거부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일어난 운동가운데 하나가 중세 신비주의 운동이었다. 이것은 13세기에 일어난 성령 운동의 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엑크하르트, 존 파울러, 토마스 아켐피스 같은 사람이 있고 형제단 같은 단체도 있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으로 하여근 내 안에 거주하게 한다." 즉 내 안에서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이었다. 현대 신학자 폴 틸리히가 "내 존재 깊이가 곧 하늘의 깊이다" 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자신의 존재의 밑바닥에서 만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엑크하르트나 존 파울러나 토마스 아켐피스의 열정적인 설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들은 스콜라신학, 일명 사변신학은 반대하였으며, 존 파울러 같은 경우는 거리를 다니며 당시 흑사병으로 죽어가던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등 형식화된 기성교회나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역동적인, 살아 있는 설교를 했다.
그들의 설교에는 힘이 있었는데 그 힘은 지적인 힘이 아니고 신을 경험한 성령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러한 운동과 연결되는 것이 수도원 운동과 선교이다. 물론 수도원 운동에 있어서 설교보다는 노동과 봉사, 명상과 예배, 학문 등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 명상이 정적인 것으로 머물지 않고 그 명상 속에서 삶의 존재를 체험하고, 삶의 존재 속에서 신의 존재를 체험함으로써 역동적인 은사 이해가 가능하게 된다는 의미에서는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이 수도원에서 수도를 하고 깨달은 사람들이 사회로 진출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이를 대신한 것이 수사들이었다. 그들은 사실상 성직자가 되지 않고 모두 브라운 가운을 입고 현장에 투입되어 평생 봉사의 삶을 통해 설교하였던 것이다.
4. 종교 개혁기에 있어서의 성령과 설교
종교 개혁자들의 설교에서 가장 일반적인 특징은 성서 강해 유형의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성서 강해 유형의 설교들은 두가지 원리 원칙을 내포하고 있는데 하나는,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또 하나는 "이 개혁은 성서에 근거한 개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기본 원리의 핵심은 결국 "성서"이다.
그들은 당시 성서를 지나치리만큼 강조했는데 그 이유는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교황 교회의 권위에 대한 대치 개념으로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권위의 소재를 교회로부터 성서로 돌리기 위하여 그들은 성서를 우선 강조해야 했다. 그러므로 종교 개혁자들이 말하는 성서라는 개념은 단순히 66권의 책으로서, 또는 문자적 차원에서의 의미가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서라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이러한 개념 이해를 돕기 위하여 칼빈의 성서 이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성서는 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성서는 인간의 이성이나 자연을 통하여는 결단코 얻을 수 없는 깊은 신에 대한 지식을 보여 준다. 둘째로, 성서는 인간 삶의 유일한 규범이다. 인간의 삶의 유일한 규범으로서의 성서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하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준다. 셋째로, 성서는 참 종교의 유일한 자료이다. 이는 허위적인 유사 종교가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인데 성서는 우리에게 참 종교가 어떤 것인가를 알려 주는 것이다.
칼빈의 성서 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또 하나의 사항은 "성령은 성서를 증언한다" 즉 성서의 저자를 성령으로 보는 점이다. 그래서 성서를 참으로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내적 증언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1세기에 팔레스틴에서 성서 기자를 통해서 역사하셨던 그 성령이 20세기 오늘날 한국에서 그 본문을 읽는 나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실 때만이 그 본문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에 의하면, 말씀의 선포는 교회의 표식이며, 이 말씀의 선포는 성서 본문의 올바른 이해에 기반하고 있고, 성서 본문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성령의 내적 증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설교가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칼빈이 단순히 순간적 성령의 감동만으로 설교한 것은 아니다 그는 주로 주석 설교를 했는데 먼저 성서를 읽고 그의 이성과 그 당시의 지식과 철학과 사회 경험, 역사적인 상황 등을 고려하면서 설교를 착실히 준비하였다.
성령에 의해서 설교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일반적인 학문의 노력을 무시한다는 말과는 다르다. 다만 설교가 지식을 도용하는 지식적인 차원에서 끝나서는 안되며 반드시 성령의 내적 증언에 의한 역사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지식적인 차원의 설교는 반드시 성령의 내적 증언에 의한 역사로 학문의 노력을 무시한다는 말과는 다르다. 다만 설교가 지식을 도용하는 지식적인 차원에서 끝나서는 안되며 반드시 성령의 내적 증언에 의한 역사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지식적인 차원의 설교는 반드시 한계가 있으며 메마른 설교가 될 가능성이 많다.
이런 점에서 칼빈은 굉장히 냉철한 설교를 준비했지만 그의 설교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던 것은 그가 성령의 내적 증언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종교 개혁자들의 설교에 있어서 중요한 내용들을 집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면죄부에 대한 비판의 내용이다. 면죄부에 대한 비판은 물론 권위의 소재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연옥설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종교 개혁자들은 이 비판을 통해서 그 당시 로마 가톨릭의 불의, 잘못된 신앙, 잘못된 구원론, 잘못된 신론 등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둘째, 구원의 소재가 어디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의 내용이다. 이것은 주석 설교에 많이 나타난다. 칼빈도 종교 개혁 이전엔 성서 주석가로서 모든 기독교의 권위의 소재가 성서에 있음을 성서 주석을 통해 강의하였다. 루터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이신득의의 위대한 신학적 진리도 그가 수도원 생활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이다. 이같이 종교 개혁자들은 그들의 설교를 통하여 권위의 소재가 성서에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였던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의 윤리를 강조했다. 이것은 일부 기독교 신자들의 오해를 받고 있는 내용인데, 종교 개혁자들이 구원은 공적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으로만이 이루어진다 라고 강조했다고 해서 그들이 마치 인간의 선한 행위나 윤리를 무시한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루터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같은 서신이라고 밝힌 바도 있으나 그것은 루터가 자신의 모든 신학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대상을 먼저 고려해 본 후에야 올바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는 권위주의와 형식화에 빠져 권위의 소재가 교황에게 있으며 구원은 인간의 공적에 대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이에 루터는 인간의 선행이 아니라 믿음으로 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으므로 자연히 선행의 부분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던 것이다. 결코 선행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 아니며, 선행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으면 선행은 이루어진다는 역논리를 주장했던 것이다.
개신교에서 "오직 믿음으로만"을 마치 행위의 부분을 무시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루터의 개신교 신학에 대해 부분적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종교 개혁자들은 교회와 국가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었다. 루터는 국가의 권위를 하늘에서 온 권위로 인정하고 일방적인 순종을 주장하는 입장에 선 반면, 칼빈은 국가의 권위가 하늘에서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동일하나 국가는 하늘의 뜻을 따라 백성을 다스릴 의무를 가졌으며 만일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는 무너뜨려도 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것은 바로 로마서 13장에 나오는 기본적인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통적인 종교 개혁자들보다 더 극단으로 나가는 소위 급진적 종교 개혁자들, 농민 운동을 전개시킨 개혁자들, 재세례파를 비롯한 여러 소종파들이 있다. 그들의 설교의 핵심은, 교회의 개혁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사회 개혁까지를 주장했던 것이다.
5.독일 경건 운동에 나타난 성령과 설교
16세기에 일어났던 종교 개혁은 불과 1세기도 가기 전에 그 사상이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종교 개혁자들의 사상이 일종의 죽은 전통과 같이 되고, 점차 형식화되어 가는 것에 대한 하나의 거부 운동이요, 거기에 대한 새로운 극복의 운동으로 일어난 것이 독일에서 일어난 17세기의 독일 경건주의 운동이다. 대표자로는 스페너, 푸랑케 같은 사람들이 있다.
이 운동의 전승사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완전한 회심과 생명있는 신앙을 강조했다. 완전한 회심, 회개 그리고 생명있는 신앙은 우리 나라 8.15 해방의 역사 속에서도 분명 요구되어졌어야 했다고 생각된다. 즉 일제 시대를 통하여 신사 참배 등과 같은 방법에 의해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굴복당했던 우리 민족의 역사적 상황을 돌아볼 때, 8.15 해방과 더불어 독일 경건주의 운동과 같은 회개의 바람이 역사를 움직이는 결정적 역할을 했어야 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회개의 운동이 일지 않았던 우리의 역사는 다시 제1공화국의 잘못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둘째, 헌신, 봉사, 행동하는 신앙을 강조했다. 물론 이 봉사는 현재 새로운 교회론에서 부각되고 있는 디아코니아와 연결될 수 있다. 이 헌신과 봉사는 선교로 이어져 진제도르프가 독일의 경건 운동을 이어받게 되고 이어 모라비안 운동이 전개되며 그 운동의 영향을 받아 존 웨슬레의 세계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된다. 선교에 대한 열정이라고 하는 측면을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 생각해 본다면 선교의 열정은 보수적인 신앙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며 실제로 진젠도르프나 모라비안 운동이 19세기 세계 선교운동의 선봉대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독일 경건주의 운동은 두 가지 차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세계전도운동으로 연결되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사실상 이 운동이 독일 사회를 향한 구원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경건 운동이 일어났을 때의 독일 사회는 30년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피폐되었다. 이러한 상황 중에서도 기성 교회들은 교리 논쟁만을 일삼고 있었다. 이때에 독일 교회들은 신론이 어떻고 그리스도론이 어떻고 하는 교리 다툼만 하고 있을 수 있겠느냐 하는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경건은 탈사회적, 탈세속적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사회 구원이라는 측면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이 성령의 역사는 "경건"을 통하여 일개 개인의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변화되고 구원하는 역사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6. 맺음말
교회는 성령의 사건화이며, 이러한 성령의 사건화로서의 교회는 구체적으로 말씀의 증언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성령은 획일적인 사건 운동이 아니며 동시에 현실을 떠난 추상적 이론이 아니다. 성령은 구체적 역사의 현장과 연결되어 그의 백성들을 다스린다고 하는 의미에서 볼 때 "성령의 역사화" "성령의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성령의 역사는 각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설교는 하나님의 정치의 증언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살아 있는 성령에 의한 설교는 역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민족사적인 과제와 세계사적인 과제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며, 또한 이것을 알게 하는 것과 이를 통해 그 역사의 한복판에서 역사성을 지닌 설교를 하게 하시는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세계 교회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사-3 (0) | 2020.03.16 |
---|---|
교회사-1 (0) | 2020.03.16 |
일본의 기독교 (0) | 2020.02.11 |
바울이후의 초기 기독교 (0) | 2020.02.11 |
교회사연구의 필요성 (0) | 2020.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