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회사!!

교회사자료2

하나님아들 2020. 2. 11. 15:40
교회사자료2

10. 로마제국의 10대 기독교 박해사건

연도

황제

박해의 유형 및 범위

대표적인 순교자

64

네로
로마와 근교 부근에서 박해를 가했다.
로마시 대화재의 혐의를 재난의 원인을 그리스도인에게 전가시켰다.
네로의 궁전을 밝히기 위한 소위 '인간횃불'로서 그리스도인을 화형에 처하는 광란(狂亂)을 벌였다.
바울
베드로

90년경
-96년

도미티아누스
로마와 소아시아 지역에서 일시적이고도 산발적인 박해는 그리스도인들의 황제숭배 거부로 비롯되었다.
로마의 클레멘트
사도요한(밧모섬에 유배)

98-117

트라야누스
점차 박해가 강화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비애국적인 집단으로 규정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은 발견 즉시 처형되었다.
이그나티우스
시므온
조시므스
루프스

117-138

하드리아누스
황제 숭배는 계속되었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을 하는 자는 처벌되었다.
텔레스포루스

161-18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독교를 사상적으로 배격한 스토아주의자인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을 자연재해의 장본인으로 규정하였다.
순교자 저스틴
포티누스
블란디나

202-211

셉티무스
세베루스
기독교로의 개종을 금지시켰다.
레오니다스
이레니우스
페르페투아

235-236

트라키아의
막시미누스
기독교 성직자를 처단하였고 그리스도인들이 황제가 암살한 전임황제를지지하였다는 사실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다.
우르술라
히폴리투스

249-251

데키우스
최초로 제국전체에 박해의 손길을 펼친 그는 황제숭배의 향기로운 제물을 요구하였고 기독교의 완전한 파멸과 더불어 이교신앙으로 복귀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파비아누스
예루살렘의 알렉산더

257-260

발레리아누스
그리스도인의 재산을 몰수하며 그들의 공민권(公民權)을 박탈하였다.
오리겐
씨프리아
식스투스 2세

303-311

디오Х뮷센틈㈌?
갈레리우스
가장 혹독한 박해로서 교회는 파괴되었고 성서는 불태워졌으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시민권은 박탈위기에 처했으며 로마신들에 대한 숭배가 강요되었다.
마우리티우스
알바누스

11. 니케아회의 이후의 교부들

이름

연도

목회지

대표 저서

주요 사실

락탄티우스

240년경
-320년
이탈리아
고올(프랑스)
  • 신학 강요
그의 아버지는 이교도였으며 성년기에 개종하였고 콘스탄티누스 황제 아들의 가정교사로 활동하였다.

유세비우스

263-339년경
가이사랴
  • 교회사
  • 연대기
  • 콘스탄티누스 전기
교회사의 아버지로 불리우며 가이사랴의 신학교에서 가르쳤으며 그곳에서 감독직을 수행한 후 안디옥의 감독 요청을 사양하였다.
아리우스 논쟁에서 타협점을 모색하였지만 아리우스와 아다나시우스의 견해를 모두 동조하지 않았으며 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자문역으로 활약한 그는 천년왕국설에 완고하게 반대입장을 견지하였다.

힐라리

291년경
-371년
포아티에
  • 삼위일체론
생애 말년에 그리스도인이 된 그는 아리안주의에 서방측 반대론자로 활동하였으며 350년 포아티에 지역 감독일을 맡아 보게 되었다.

아다나시우스

296년경
-373년
알렉산드리아
  • 그리스도의 성육신론
  • 아리안주의 반박서
  • 아폴리나리우스 반박서
정통 삼위일체론자의 대표적인 변증가로 알렉산더 주교의 비서일을 보면서 니케아회의에 참석하였다.
328년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된 후 다섯 차례의 망명생활과 철저한 금욕생활을 하였다.

바질

329년경
-379년
갑바도키아
  • 에우노미우스 전집(5권)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여 아테네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금욕생활로 일관한 그는 갑바도키아지역 가이사랴의 감독이 된 후 아리안주의와 논쟁을 벌였으며 나병환자 진료소를 세웠다.

닛사의 그레고리

330-394년경
갑바도키아
  • 에우노미우스 반박서
  • 아폴리나리우스 반박서
  • 성자와 성령에 대하여
바질의 동생으로 오리겐의 영향으로 은유론자가 되면서 결혼후에도 철저한 금욕생활을 추구하였다.
372년 권유에 못이겨 닛사의 감독이 되었고 아리안주의와 싸웠으며 삼위일체론 가운데 본체와 위격의 구분을 최초로 주장하였으며 콘스탄티노플회의에 참석하였다.

낫시안수스의
그레고리

330-390년경
갑바도키아
콘스탄티노플
  • 신학개론
낫시안수스감독의 아들로 바질과 함께 그리스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철저한 금욕주의자로 374년 낫시안수스의 감독이 된 후에 381년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일도 보았으나 곧 사임하였으며 아리안주의에 반대한 당대의 웅변가요 시인이었다.

암브로시우스

340년경
-397년
밀라노
  • 신앙론
  • 성령론
  • 성찬론
고올(프랑스)지방 총독의 아들로 태어나 관료가 되려고 준비중에 북이탈리아의 집정관에 오른 그는 374년 밀라노의 감독직을 맡았으며 그후 금욕생활을 표방하였으며 아리안파와 논쟁을 벌였고 황제 데오도시우스가 데살로니가인을 학살하자 여기에 맞서 싸웠으며 그의 설교는 어거스틴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다.

요한 크리소스톰

374년경
-407년
안디옥
콘스탄티노플
  • 설교학
  • 목회학
그의 별명은 '달변가'로 고대교회의 가장 위대한 설교가였으며 그의 설교는 윤리적인 실천에 큰 비중을 두었고 로마 관료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수사학을 공부하였으며 수도생활을 자청하였다.
397년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직에 올랐으나 여황제 에우독시아에 의해 추방되어 망명지에서 여생을 마쳤다.

제롬

345년경
-420년
로마
안디옥
베들레헴
  • 라틴어성서(Vulgate)
  • 저자목록 색인[다수의 주석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나 수사학을 배웠고 수도원운동의 주창자로 대부분의 생애를 사막에서 운둔생활로 보냈으며 당대에 히브리어에 능통한 극소수의 사람으로서 로마의 감독 다마수스의 비서일을 담당하였다.
그의 영향으로 수많은 로마여성들이 금욕주의에 호응하였으며 그의 후반 생애의 35년간은 베들레헴에서 보냈고 그의 불후의 역작인 라틴어성서(Vulgate)는 가톨릭교회의 공식성서로 인정되었다.

몹수에스티아의
데오도르

350년경
-428년
안디옥 몹수에스티아
  • 소예언서 주석
  • 은유론자 반박서
  • 원죄 옹호론자 반박서
안디옥 신학파의 대부로 크리소스톰의 친구였던 그는 금욕생활을 청산하고 결혼하였고 392년 몹수에스티아의 감독이 된 후 성서해석을 위해 문법적, 역사적 자료의 활용을 주장하였다. 성서의 은유적 해석에 반대하였고 네스토리우스(경교)의 지도자가 된후 제2차 콘스탄티노플회의로 파문당했다.

어거스틴

354-430
북아프리카
  • 고백록
  • 명상록
  • 신(神)의 도성
  • 신학개요
  • 재고록
그리스도인 어머니와 이교도인 아버지에게서 출생한 그는 카르타고에서 공부한 후 젊은 시절 마니교에 심취하였으나 386년 개종하여 밀라노의 감독 암브로시우스에게 강화를 받았다.
395년 히포의 감독이 된 후 수도원생활을 동경하였다.
마니교, 도나투스파, 펠라기안주의자들을 배격했으며 기독교 역사철학에 초석을 마련하였고 그의 저서는 거의 중세 신학논쟁의 모든 부분에서 폭넓게 수용되었다.

씨릴

376-444
알렉산드리아
  • 네스토리우스 반박서
  • 배교자 율리아누스 반박서
알렉산드리아 신학파의 거장으로 412년경 감독직에 추대되었고 그를 적대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표리부동하게 처신하였으며 크리소스톰, 데오도르, 네스토리우스를 배척하였고 마리아 숭배를 옹호하였다.

12. 초대교회(1~5세기) 감독제도의 발전

시기

출처

내용 설명

1세기

신약성서
모든 교회는 장로(감독)와 집사들은 사도들의 관리 아래 있었다.

2세기 초엽

이그나티우스
감독직과 장로직은 구분되었고 각 교구들은 감독, 장로, 집사들에 의해 처리되었다.

2세기 말엽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일정 지역의 교회들을 관할하는 지방 주교들은 사도들의 후계자로 간주되었다.

3세기 중엽

씨프리안
목회직분과 제사직분이 구분되어 장로는 제사(속죄)하는 사제로 여겼으며 로마주교의 우위성이 공인되었다.

4세기 却?/FONT>

니케아회의
대주교는 그들 교구의 규모에 따라 관례상 지방주교들에게 지배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4세기 말엽

콘스탄티노플회의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의 주교들을 총대주교(대감독)로 추대하였으며 로마대주교 궐위시 그 역할은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그 권한을 대행케 되었다.

5세기 중엽

레오 1세
칼케돈회의
로마 대주교(교황)의 우위권 천명-레오 1세는 베드로 사도의 계승원칙을 내세워 모든 교회는 로마교황의 권위에 복종할 것을 역설하였다.

13. 로마대감독(대주교)이 교황이 된 요소

요소

결과

신약성서
마 16:17-19

예수께서 사도 베드로에게 모든 교회의 권한을 일임하셨다는 사실을 교황은 주장하고 있다. 이 내용은 레오1세에 의해 처음 채택되었다.

사도 계승권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사도 베드로의 최고 권위가 로마주교들에게 계승되는 것으로 전하여지게 되었다.

베드로와 바울의 순교

순교한 성자들을 존경하는 상황에서 로마는 두 사도의 순교지였다는 측면이 적극 고려되었고 또한 네로의 대박해시 로마교회는 굳건한 신앙을 유감없이 견지하였다.

로마의 인구

도시와 교회의 규모가 주교의 권한과 관계가 있었다.

제국의 수도

밀라노칙령 이후 대체로 황제들은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로마주교들의 자문을 구하게 되었다.

언어

로마주교가 주창한 서방세계의 라틴어는 신학논쟁시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였으며 반면에 라틴어에 미숙한 동방기독교는 불분명한 의미만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장소

다섯 지역의 대주교 도시 가운데 서방에서는 로마시민이 해당되었고 로마의 주교는 다른 지역의 대주교보다 훨씬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가 있었다.

선교사 파송

로마교황 그레고리1세는 로마에 대해 우호적인 이방 민족들에게 전도사업을 펼쳤으며 반면, 동방교황들은 페르시아 민족과 회교도들에 대한 선교활동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민족의 침입

이민족의 침입 후 서구세계의 몰락과정에서 제국 내에 이방 그리스도인들을 비롯한 대다수 세력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통합되었다.

이슬람의 정복

대주교 관구지역인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의 함락과 지속적인 콘스탄티노플에 대한 이슬람군의 공격이 로마교황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켜 주었다.

14. 고대교회의 주요 교리논쟁
논쟁점
이단파
지도자
정통파 지도자
회의
결정된 사항

삼위일체론

아리우스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
아다나시우스
호시우스
대(大)바질
닛사의 그레고리
낫시안수스의 그레고리
힙포의 어거스틴
니케아(325)
콘스탄티노플(381)
그리스도는 '성부와 본체시며 성부, 성자, 성려은 영원성과 본체성과 동등성을 지닌다.'

기독론

아폴리나리우스
네스토리우스
유티케스
알렉산드리아의 씨릴
데오도르
레오1?
콘스탄티노플(381)
에베소(431)
에베소(로버회의)(449)
칼케돈(451)
그리스도는 '두 가지 본성을 지닌 인격체로서 순수성, 불변성, 동일성을 지닌 분리할 수 없는 분이다.'
마리아는 '성모(聖母)'이다.

도나티스트 운동

도나투스
케실리안
힙포의 어거스틴
아를(314)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펠라기안주의

펠라기우스
코엘레스티우스
요한 카시안
아를의 케사리우스
힙포의 어거스틴
제롬
에베소(431)
오렌지(529)
반(半)어거스틴주의 : 성만찬의 은총은 사람들의 원죄를 씻겨줄 수 있다.

15. 고대교회의 삼위일체론 이단

이단학설

대표적인 변증가

주장하는 내용의 논점

모나키안주의(양자설)

비잔티움의 데오도투스
사모사타의 바울
예수는 수세(水洗)시 그리스도가 되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는 성부에 의해 양자가 되었다.

사벨리안주의
(양태론, 성부고난설)

시벨리우스
프락세우스
오직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세 가지 방편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아리안주의

아리우스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
유독시우소
유노미우소
그리스도는 최초의 피조물이다.

반(半)아리안주의
(유세비안니즘)

앙키라의 바질
라오디게아의 그레고리
그리스도는 성부와 본체시나 그에게 종속되어 있다.

마케도니안주의
(성령피조물설)

마케도니우스
성령은 하나의 피조물이다.

16. 고대교회의 기독론 이단 FONT>
이단학설대표적인 변증가주장하는 내용의 논점

아폴리나리안주의

아폴리나리우스
그리스도는 인간정신을 지니지 않았으며 대신에 로고스(Logos)을 지니고 있다.

네스토리안주의

네스토리우스
로고스는 두 본질(God-Man)이 하나의 인격과 실체 안에 동시에 내주하신다기보다는 그 안에 분명한 두 존재 또는 인격이 계시며 그 두 인격은 본질적 연합이 아니라 단지 도덕적 연합에 불과하다.

유티키안주의

유티케스
그리스도의 인간본성은 로고스에 의해 흡수되었다.

단성론

세베루스
할리카르나수스의 줄리안
스데반 니오베스
그리스도는 하나의 본성을 지니셨다(인격을 지니지 않는 그리스도의 인간본성을 수용하기란 곤란하다.)

단의론

아라비아의 데오도르
세르기우스
알렉산드리아의 씨루스
그리스도는 인간의지를 갖고 있지 않으며 오직 신의(神意)만을 지니고 계신다.

17. 펠라기우스 논쟁
입장대표적인 변증가주장하는 내용의 논점

펠라기안주의

펠라기우스
에클라눔의 줄리안
코엘레스티우스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게 태어났으므로 그 자신이 구원에 필요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어거스틴주의

힘포의 어거스틴
인간은 죄 가운데 죽으며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며 그 대상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다.

반(半) 펠라기안주의

요한 카시안
하나님의 구원은 은총과 인간의지의 협력작업이며 구원에 있어서도 인간은 그 주도권을 행사해야만 한다.

반(半) 어거스틴주의

아를의 케사리우스
하나님의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며 구원에 필요한 것을 인간이 선택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18. 초대교회의 회의
장소연도황제참가 대표자주요 성과

니케아

325
콘스탄티누스
아리우스
알렉산더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
호시우스
아다나시우스
  • 성자는 성부와 homoousios(동일본체)임
  • 아리우스파 정죄함
  • 니케아신경의 원안을 공식적으로 채택함

콘스탄티노플

381
데오도시우스
멜레티우스
낫시안수스의 그레고리
닛사의 그레고리
  • 니케아회의의 결정을 재확인함
  • 니케아신경의 개정작업 완료함
  • 삼위일체논쟁에 종지부를 찍음
  • 성령의 신성(神性)을 재천명함
  • 아폴리나리안주의를 정죄함

에베소

431
데오도시우스 2세
씨릴
네스토리우스
  • 네스토리안주의를 이단으로 선언함
  • 알렉산드리아학파의 기독론을 수용함
  • 펠라기우스를 단죄함

칼케돈

451
마르키아누스
레오 1세
디오스쿠루스
유티케스
  • 글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불변성, 통일성, 동일성을 지니고 있음을 선언함
  • 유티키안주의를 배격함

콘스탄티노플

553
유스티니아누스
유티키우스
  • 단성론(單性論)의 3개 장에 반대칙령 발표함
  • 칼케돈 회의의 씨릴의 해석을 재확인함

톤스탄티노플

680-681
콘스탄티누스 4세
  • 단의론(單意論)을 배격함
  • 교황 호노리우스(638년 사망)를 이단자로 배격함

니케아

787
콘스탄티누스 6세
  • 성상숭배의 합법성을 선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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